유서로 쓰는 수필

 

  글은 무엇 때문에 쓰는 것일까? 나 같은 소인네들은 개인의 표현 욕구의 충족을 위해서, 정서순화를 위해서라고 할 것이며, 명사들은 한 차원을 높여 인간의 발견과 탐구를 위해서라고들 할 것이다. 문학 가운데서도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인생관을 표현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하나 더하여 자식들에게 유서를 쓰는 기분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자식들이 자랄 적에야 한집에 살았으므로,  교육 차원에서도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을 할 기회가 많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딸 셋은 출가하여으니 말할 나위도 없고, 아들놈 하나도 결혼 후에는 제 식구들과 함께 따로 살고 있으니, 대화의 기회가 없으므로 인격적 접촉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렇지만 글을 써서 전해 주거나 작품집을 만들어 놓으면 자식들이 꼭 그것을 읽어 줄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나는 후손들 까지도 읽어 줄 것으로 믿어진다.

  TV의 '아침마당' 부부탐방 프로를 보노라면, 흔히 평소에 직접 하지 못했던 말을 편지로 써서 전달하는 경우가 있으며, 가족 간에도 말로써 하기 힘든 속사연을 편지식으로 써서 전달하는 경우가 있으니, 진지한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말보다 글이 더 효과적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내가 글을 유서 쓰는 기분으로 쓰게 된 데에는 또 하나의 연유가 있다. 나의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작고하셨으므로,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한문 공부를 많이 하셨기에 유고(遺稿)를 남기셨는 바, 이를 나의 선친께서 8.15 광복 후에 문집으로 발간하였었다. 그러나 순 한문으로만되어 있었기에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10여 년 전, 정년퇴임후에 대학의 어느 한문학 교수에게 의뢰하여 우리말 번역본으로 발간을 하였다.

  그때 나는 교정을 보면서 여러차례 번역본을 읽어봄으로써, 할아버지께서 어떤 사상 감정을 가지고 사셨건가를 알게 되었고, 따라서 인품까지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할아버지이 얼굴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고. 그때 나의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뜨셨고, 90세에 가까운 숙부님과 고모님이 살아계셨으므로 불어볼 수가 있었다. 숙부님과 고모님이 살아계셨으므로 물어볼 수가 있었다. 숙부님의 말씀은 "너의 아버지 보다는 키가 좀 큰 편이고, 성질이 꼿꼿하셨으며, 사촌간인 성철스님의 아버지 모습과 약간 닮은 데가 있었다."고 하셨다.

  때마침 나의 선친의 문집과 할아버지 문집을 우리말 번역본으로 동시에 발간하게 되었는 바, 책 앞머리에 저자의 영정(影幀)을 실으려 하니, 선친의 사진은 있으나, 할아버지의 사진은 없어서 영정 수록을 할 수가 없어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문득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상상화로 그리고 싶어졌다.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성철스임의 아버지 사진을 구하기 위해 나의 삼종동생의 집에 갔더니 마침 구할 수가 있었다. 나의 아버지 사진과 성철스님의 아버지(나에게는 재종조부임)사진을 갖고 부산역 앞에 있는 산상성 초상화 연구소를 찾아가 의논을 하였다. 나의 아버지와 성철스님 아버지, 그 중간쯤 되게 그려 주시면 안되겠느냐고 주문하였더니, 최선을 다해 보겠노라고 하였다.

  두 주일 가량 후에 방문하엿더니 초상화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를 찾아들고 숙부님에게 달려갔더니, "어지간히 닮았다."고 하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안도와 함께 마치 부활하신 할아버지의 화신(化身)을 대하는 만큼이나 기뻤다. 이를 조부님 문집 번역본 앞머리에 영정으로 수록하였음은 물론, 그로부터 조부님 제사 때에도 그 영정을 지방 옆에 모셔놓고 절을 올리니, 할아버지를 곁에 모신 듯 한결 감회가 새롭고 친근감이 우러나는 듯하다.

  나는 조부모님과 선친의 문집이 전하고 있는 것을 매우 다행으로 여기고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갖고 있다. 이를 우리말 번역본으로 발간함으로써 나는 물론, 후손들에게까지도 읽힐 수 있게 되었으니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문집은 얼굴을 모르는 이 손자에게 유서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생시에 접하지는 못했지만, 문집을 남기셨기에 간접적으로나마 할아버지의 인품까지 잡할 수 있고,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었으니 문집이야말로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유서나 유언은 사람이 죽음에 임해 글이나 말로 남기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유서 또는 유언이라 하면 부모가 죽음 직전에 임해 자식들에게 재산 분배 등에 대하여 남기는 문서나 말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물질적 유산에 관한 것이다. 물질적 유산은 잇다가도 곧 없어지기 쉬운 거품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반면에 정신적 유산은 자손들이 두고두고 오래도록 음미할 가치가 있는 고귀한 재산이다. 글쓰기에서 얻어진 산물은 훌륭한 정신 유산이다.

 나는 글쓰기에 뜻을 두어 청년퇴임 후에도 수필가의 대열에 끼어 계속 글을 쓸수 있게 된 것을 더 없는 행복을 붙든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나의 글이 이작 신변잡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여 인간 발견이나 탐구 등, 거창한 기여를 하리라고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시민의 정서순화에 쥐꼬리만큼이라도 이바지를 한다고 하면 더없는 영광이겠고,설령 그것조차 안된다고 하더라도, 나의 할아버지께서 얼굴도 모르는 이손자에게 문집을 남김으로써 유서를 전하엿듯이, 나의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유서의 성격을 띤 자그마한 인생 참고서가 된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글쓰기에 대한 보람은 이루어졌다고 보고 만족하고 싶다.

 글은 어차피 누군가에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쓰는 글도 남이 읽어줄 것을 전제로 쓴다고 할 진대, 결국 내가 유서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비단 나의 후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적용된가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러고 보니 이세상 모든 글 쓰는 이들이 먼지 않아 세상을 하직할 것이니, 문필가들은 누구나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해 유서를 쓰고 있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