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형과 종달새형

  오늘날 우리나라 '삼성' '현대' '엘지' 등 기업체들이 세계적으로 우뚝 서게 된 데에는 그 이면에 올빼미형과 종달새형 사람들의 숨은 공로가 깃들어 있음을 아는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작년의 TV연속극「영웅시대」는 지난날 이들 기업들이 곤경속에서 부딪혀 싸워나가는 과정을 재현시켜주는 현대사극이었다.

  그러기에 당시를 함께 걸어온 50대 이상(40대 일부포함) 사람들은 향수를 느끼며 재미있게 볼 수 있엇다. 그런데 뜻밖에 당시 대통령의 업적을 과대평가하고, 또 차기대통령후보 모씨의 인기를 부추겨 준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서 제동이 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조기 종연이 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지금 내 두뇌컴퓨터에 입력돼 있는 기억으로는 당시 기업체들의 핵심 멤버들은 오로지 소속 기업체를 육성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기가 일쑤였다. 일반 종업원의 출근시간은 오전 8시였지마는, 간부직원들은 두 시간이나 앞당긴 6시에 모여 그날의 기획회의를 열고, 기업체의 효율적 가동에 만전을 기하였다. 뿐만아니라, 밤에는 일반 직원들이 5시나 6시에 퇴근한 후에도 간부들은 10시, 11시까지 퇴근하지 않고, 심지어 밖에 나가 식사하는 시간까지 아까워 배달을 시켜 먹으면서 내일의 효율적인 준비에 온 정열을 쏟았었다.

  올뻬미형 인간이니, 종달새형 인간이니 하는 말이 생겨나온 것이 이때부터였다. 올빼미는 몸집이 좀 큰 새로 밤에 주로 활동하며, 청각과 시각이 매우 발달하여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먹이를 잡을 수 잇는 독특한 새이기에 밤에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을 일러 올빼미형이라 부른다. 종달새는 '종다리' 또는 '고고지리'라고도 하는데, 참새보다 약간 큰 새로, 아침 일찍 '삐르르 삐르르'하고 날이 새었음을 알리듯 울기에, 이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설치는 사람을 비유하여 종달새형라 한다.

  그런데 올빼미형이나 종달새형 인간에 대하여 이를 보는 시각에는 두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한 측면은 회사 직원을 지나치게 혹사한다는 부정적 측면이요, 또 한 측면은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 헌신적 정신으로 임하지 않으면 경쟁시대에 이겨 나갈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기가 어려우므로 부득이하다는 긍정 측면이다. 아무튼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세계 속에 두각을 나타내는 경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ㅇ리부 젊은 세대들 가운데는 지난날 선배들이 겪은 곤경 따위에는 눈을 감아 버린채, 오늘날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한국 기업의 성공이 마치 하루 아침에 얻어진 성과처럼 착각하고, 근로자를 편드는 쪽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니 지난잘의 역사를 지켜본 증인들로서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없지 않다.

  올빼미형 인간과 종달새형 인간. 이는 얼핏 보기에는 인간적임을 벗어난 비정상적 생활을 하는 기형적 생활인으로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들이야말로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선두주자 역할을 한 기수였음을 알게 된다.

  올빼미형 인간과 종달새형 인간이 어찌 기업체에만 존재하는 것이랴. 눈을 닦고 세상을 보면, 학생들 사회에도, 밑바닥 서민사회에도 수없이 많이 있다.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 가운데는 시계바늘이 자장을 가리키는 순간까지 책과 씨름을 하다가 잠시 눈을 붙이고는, 다시 4시, 5시가 되면 눈을 뜨고 씨름을 계속하는 학생이 부지기수이며, 남들이 코를 골고 있는 새벽 4시, 5시에 장사 준비차 집을 나서는 서민들도 허다히 있다. 이들이 모두 올빼미요, 종달새 인간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렇게 볼 때, 지난날 기업체에서 자칫 건당을 해칠 수도 있는 위협을 무릅쓰고 오로지 회사의 발전을 위해 밤낮을 안 가리고 헌신함으로써, 세계적 기업으로 탄생시킨 올빼미형과 종달새현 안간-그들의 공로에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동시에 오늘날 학창에서 장차의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올빼미형과 종달새형 미래 세대들에게도 격려를 보내야 할 것이 아닌가?

 한편, 돌아보면 나의 일생 가운데도 올빼미형과 종달새형의 생활이 있었다. 50~60때까지만 하여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그 일을 마쳐놓고서야 이불 속으로 드는 버릇이 있었느니 올빼미형이었다. 그러나 70대에 접어 들면서는 그러한 무리가 통하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요즘은 종달새형으로 바뀐 것이다. 저녁 식사 숟가락만 놓았다 하면 우박 같이 퍼붓는 잠을 감내하기 어려워 9시 뉴스도 보는 둥 마는 둥, 꿈나라로 가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새벽 5시에는 거의 어김없이 눈이 뜨이니, 그때부터 책이나 신문을 보거나, 시원찮은 글씨기에도 시간을 할애해 보게 된다.

  이처럼, 내가 올빼미 형에서 종달새형으로 체질 개선(?)을 하고보니, 이는 결국 나의 노령화에 따른 자연스런 생활습관의 변화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나의 선고께서 살아 계실 적에 "애야, 내가 요즘 새벽 서너시만 되면 잠이 깨어 그 후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하시면서 불경을 외거나 한서(漢書)를 뒤적이시던 일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