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다섯 바퀴

  '운동장 다석 바퀴 돌기' 이는 나의 아침을 여는 일과 중의 하나이다. 6시에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보면, 운종장을 도는 행렬리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약속이라도 한듯, 시계 바늘과는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돈다. 연령층은 30대이하는 가물에 콩 나듯 보이고, 40대가 좀 보이며, 50~60대가 주류를 이루고, 70대 이상도 제법 보인다. 남자보다는 여자 들이 더 많다. 그들은 마치 걷기운동이 요즘 부르짖는 웰빌 생활의 기본이나 되는 것처럼 열을 올려 돌고 있다.

  내가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기 시작한 것은 2년 반쯤 되었다. 40대부터 조기 등산을 시작해 15년을 계속했었다. 그 후 60대가 들어서는 한때 산비탈에 아침 농장을 마련해 5~6년간 상추, 무, 배추, 시금치 등 채소를 심어 무공해 야채 반찬을 식탁에 올려놓는 것을 낙으로 삼았었고, 어느 해는 80개의 호박을 수확, 이웃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보람을 느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L아파트로 옮긴 후로는 다시 뒤산 등산을 시작하였은데, 우연히 운동장에 들렀다가 원을 그리면서 도는 일에 매력을 느껴 여기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운동장 한 바퀴 원 그리기의 거리는 내 걸음으로 360보, 1보를 55cm로 잡으면 약200미터이니, 다선 바퀴를 돌면 1천미터(1km)가 되는 셈이다. 소요시간은 약20분, 그 후 맨손체조를 5분가량 하고, 또 최근에는 부산진구청에서 주민들을 위해 헬스 시설을 해 놓은 것이 몇 종류 있어 이를 활용해 약간의 운동을 곁들이기도 한다. 그리고는 벤치에 앉아 10분쯤 휴식을 취하고는 돌아온다.

  걷는 시간이 20분, 체조시간이 15분, 휴식시간이 10분이므로 총 소요시간이 45분 걸이는 셈이다.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매일 지속 하는데는 여간한 끈기가 따르지 않고서는 어렵다. 여기에 부언중에 나를 독려하고 채찍질을 가해 주는 노부부 한쌍이 있어 힘을 얻고 있다. 남편은 나와 갑장인 80세란다. 그런 남편이 매일 아침 중풍걸린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와서 운동장 구석에 설치된 늑목에 손을 잡고 20바퀴 정도를 돌게 하는데, 남편의 그 정성에 나는 고개가 숙여진다.

  남편은 우체국장을 지내고 정년퇴임을 하였으며, 부인은 20년 가가이 목욕탕 카운터에 앉아 돈받는 일을 하면서 박봉인 공무원 남편을 도왔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잇엇던 게 원인이 되었음인지, 중풍으로 쓰러졌던 모양이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걸 갖고 있었기에, 어쨌든 건강을 회복시켜 보려는 지극 정성으로 매일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출근하가시피 하고 있으니 존경할 만하지 않은가?

  아침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나와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도대체 이들의 목적이 무엇일까? 한결같이 모두의 얼굴에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표정으로 그려져 있다. 고령 인구가 날로 증가하여 우리나라에도 평균수명이 남자 73세, 여자 80세, 평균76세라 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가 되면'고령화사회'라하고, 14프로 이상이 되면 '고령사회'라고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10프로에 육박했다고 하니 고령사회가 눈앞에 왔다.

  노인병원에 가서 치매나 반신불수로 남의 센세를 지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저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싶고, 금지되어 있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고개를 든다. 사람이 장수 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장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라는 조건이 붙은 장수를 바란다. 내가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염원은 단지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나의 자식들이나, 주위 사람들을 생각해서이기도 하다.

  운동장을 돌면서 생각나는 게 있다. 전직 교직동료 중에 60세에 상처하고 40대 중반의 여인을 만나 재혼을 하였다. 그로부터 3~4년은 마치 신혼부부처럼 여행도 즐기고 하면서 남이 부러워 할 정도로 깨가 쏟아지듯 살았는데, 건강을 잃어 병원 진찰을 받으니 당뇨병이었다. 절친한 친구가 병문을 가서 당뇨병에는 적당한 운동이 꼭 필요하니 매일 조금씩 걷는 운동을 하라고 당부하다시피 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마이동풍으로 흘리고, 방안에서 TV보는 데만 낙을 붙이고 지내다가 일년 후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간곡한 충고를 했던 드 친구는 장례식장에서 "안 움직이면 간다고 그처럼 충고를 했는데도 듣지 않더니..." 하면서 원망하듯 우정의 눈물을 짓는 것을 본 기억이 생생하가.

  아침에 내가 잠이 깨어 눈을 떳을 적에, 벌떡 일어나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일어나자'와 '조금 더 자자'가 내부전쟁을 일으킨다. 그때 나는 '안 움직이면 간다'는 그 충고가 나에게 하는 말로도 들려 용기를 내어 박차고 일어나 운종장으로 직행하는데, 이렇게 하여 운동장 다섯바퀴 돌기를 마치고 나면 다리가 가벼워지니 이는 무슨까닭일꼬? 자전거를 타다가 바퀴가 칙칙해졌을 적에 기름을 칠했을 때와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 나의 운동장 다섯 바퀴는 녹슨 몸에 기름칠을 하는 일이 아닌가?

  나의 서재 한 벽면에는 원상(圓像)이 그려진 액자 하나가 걸려있다. 50년 전에 나의 어머니가 대구 성전암에서 성철스임으로부터 받아온 것이다. 그냥 한지에다 먹으로 원(圓)을 그린 것인데, 설철스임께서 나의 어너님께 주실 적에 액자에 넣어 매일 부처임께 예불 드리듯 하면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로부터 30여 년간을 어머님은 하루 네 번 절에서 스님들이 예불 드리듯 '백팔 배'를 그러지 않고 하시었다. 92세까지 장수를 하셨는데, 그것은 매일 108배를 네 번 함으로써 정신건강과 더불어 온몸 운동의 효과를 가져와 건강을 누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내집에 오는 친구중, 그 원상을 보고 "원불교 믿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나는 원불교 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가져오신 그 원상을 어머님 가신 후에 물려받아 아침마다 아내와 함께 천수경 녹음을 틀어 놓고 예불을 드리는 동안에 원상에 공경심이 가고, 원상 속에서 부처님 상을 보게도 된다.

 돌고 돌아도 끝나는 곳이 없는데 원(圓)이다. 내가 아침 등산 대신, 운동장돌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우리집 원상 모시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세상 하직하는 그날까지 원을 그리면서 운동장 도는 일을 어머니께서 생존 시에 원상 모시듯 그렇게 거르지 않고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