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데이 금요일 밤

 한때,「토요일, 토요일 밤에」란 대중가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긴 머리 짧은 치마……토요일 밤에 나 그대를 만나리라."라는 경쾌한 가사와 곡으로 많은 청장년들의 인기를 끌면서 애창되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어쩌다가 보니「금요일, 금요일 밤에」라는 노래를지어 부르고 싶은 심정에 젖어 있다. 그것은 매주 금요일이 아들 집을 방문하는 날로 정해져 있어 우리 내외가 가서 며느리가 정성껏 지어주는 저녁밥상을 받고, 여덟 살 손녀와 세 살 손자의 재롱을 보면서, 여섯 가족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 더없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이 우리 내외에게는 가족 모임 공든데이(Golden Day)로 한 주일 가운데 가장 삶의 보람을 느끼는 날로 손꼽아 기다려지게 된다.

 이처럼 이 날이 특별히 의미 있는 날로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나에게는 위로 딸 셋이 있어 벌써 출가시켰고, 막내둥이로 둔 나들이 뒤늦게 8년 전에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에 합가를 하느냐, 따로 살게 하느냐를 두고 고심을 했다. 나는 '합가'쪽을 선호하였기에 처음엔 아들은 물론 며느리 후보자로부터도 승낙을 받았던 것이나, 아내의 불찬성과 주위 사람들로부토의 별거를 하는 것이 서로 편하다는 권유에 밀리어 결국 따로 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별거를 하다보면 며느리를 맞아들인 심감이 나지 않으며, 얼굴은 언제 익힐 것인가? 그래서 1주일에 한 번씩은 아들 내와가 우리집에 와서 저녁밥을 지어 같이 먹고 가도록 하였던 것인데, 손자가 태어나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기가 먹을 우유와 기저귀를 분비하여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기에 우리내외가 아들네 집을 방문키로 방법을 바꾸어 시행하게 되었다.
  나는 요즈음 와서 매주 금요일 아들 집을 찾는 의미에 대하여 새삼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아들 지을 방문, 식사를 함께 하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부모 자식(특히 며느리)간에 정이 깊어진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비록 부모 자식이 피붙이로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할 지라도, 서로 떨어져 자주 만나지 않고 살다 보면 정이 덜 들지 않겠는가? 더욱이 아들은 피를 타고난 분신이니 선천적 정이 우러나다고 하겠지만, 며느리는 애당초 남남이 아니던가? 그렇게 남남인 며느리가 단지 자깅의 평생 짝지인 남편을 낳아 주신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그리 덥석 정이 깃들 수 있겠는가? '이웃 사촌'이란 말도 있듯이, 사람이란 가까이서 만남을 거듭하는 동안에 서로 정이 깊어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통계청에서 '우리나라 100세 이상 장수 인구 981명'에 개하여 발표한 바 있었는데, 100세 이상 고령자의 80.6%가 자녀나 손자,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이것은 가족은 역시 한 가정에서 정을 들여가면서 사는 것이 원칙적인 방식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30~40년 전만 하여도 장남이 결혼을 하면 한 집에서 부모 모시고 사는 것을 단연한 일로 알고 잇었으니, 그것은 효(孝)정신으리 발로로 우리민족의 미풍양속이요, 자랑이기도 하였고 세계인의 부럼움을 사기도 하였다. 그래서 20세기 최고 선학인 토인비는 "한국에서 장차 인류 문명에 크게 기여할 것의 하나는 효사상이다."라고 격찬하였다. 일찍이 공자도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그러던 것이 급진적인 변화의 시대를 맞은 형대에 와서 서센 변화의 태풍에 휘말리어 효사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힘없는 노령들이 이를 막아보려고 손바닥을 힘껏 들이대어 보지만, 어찌 이를 감내할 수 있으랴.

  그러니 어찌 하랴? 차선책으로 부모와 지식이 따로 살되, 서로 가까이에 집을 두고 자주 내왕하면서 정의 끄나풀을 이어가고 효의 명맥을 유지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처음에 합가해서 살 것을 강력히 주장하다가 '별거'쪽에 동의하는 동장을 찍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 별거는 하되 정의 끄나풀은 이어가고 싶다는 것이 나의 희망인 동시에 우리가족 간의 합의사항이었던 셈이다. 이것이 언제까지 유지될는지는 시개가 하도 변화무쌍한지라, 두고 보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은 세상을 하직하는 날가지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며, 민족 고유�l 아름다운 전통은 잃지 말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내가 금요일마다 아들집을 즐겨 찾게 되는 또하나의 까닭은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는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손녀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기에 학교에서 배운 노래도 불러주고 무용도 보여 주면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며, 세 살난 손자는 한창망을 배우는 시기여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연호하고 귀여움을 떨면서 함께 놀아 주기를 청하니, 마치 환영사를 듣는 둣 흐뭇하고 그의 재롱에 녹아 빨려 들어간다.

  이 세상에서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며, 제 손자 귀여워하지 않는 이가 있으랴마는, 나는 뒤늦게 얻은 손녀, 손자에게서 남달리 애정을 느끼고 매주 돌아오는 가족 모임 골든데이밤이 즐겁기 그지없다. 나의 행복한 시간이다. 지각없는 늙은이의 노망이라 핀찬을 받을지 모르겠다. '늙으면 어린이가 된다'는 속담이 떠로른다.

  금요일 금요일 밤에 그대를 만나리라.
  그 어느누가 손자가 없으랴마는
  늦둥이 2세가 안겨준 고마운 선물
  조상이 점지하신 혈손 유민과 현석

  금요일 금요일 밤에 그대를 만나리라.
  우리 가족 우리가정 삶의 뿌리려니
  윙크하고 배시시 웃는 생극한 수줍음에
  화목이 깃들이고 행복이 자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