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사상 사이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던 무렵, 한 노인네들의 모임에서 동상철거문제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누군가가 맥아더는 우리 한국을 궁지에서 건져준 은인이었는데, 난데없이 남북통일을 방해하고 민족의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으니, 이는 그들을 가르친 교직자들에게 책임이 잇는 것 아니냐고 비꼬았다. 좌석에 참석한 3~4명 교직 출신을 겨냥한 말이었다.
  또 한 친구는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도 구긴정서를 올바로 순화시켜 주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도둑이 제 발자국 소리에 놀란다'고 나는 교직 출신이면서 문학인 대열에도 이름이 끼여있으니, 두 가지 면에서 추궁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동상 철거 주장의 동기를 유발했던 K교수가 부산고교 출신이라, 내가 그 학교에 재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나를 겨냥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실인즉 내가 K교수의 모교인 부산고교에 재직한 적이 있었지만, 그러나 K교수는 내가 부임하기 3~4년 전에 이미 졸업하였기에 나의 직접 제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내가 직접 책임을 느낄 일은 아니었다. 모임 친구들도 꼭 책임을 따진다기보다 농담조로 화제에 오렸던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나는 남달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으니 웬일일고? 지난날의 우리 교육이 인성교육면에서 비판받아야 할 일이 없었던가와 문학의 면에서 국민의 정서순화에 얼마나 기여를 하였던가를 되돌아 볼 때, 누구도 자신 있는 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6·25 한국전쟁은 분명 북한 공산군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남침전쟁이었다. 여기에 한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이 참전하였으며, 맥아더는 이의 선봉장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한국을 위기에서 구출 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맥아더를 은인으로 여기고 고마움의 뜻을 담아 기념동상을 세웠던 것이니 당연한 도리였다. 그런데 K교수가 갑자기 맥아더는 우리의 원수라 주장하고 나섰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경지에 살고 잇는 사람들인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이 교직자의 할 일이요, 올바른 정서를 심어주는 것이 문학인의 할 일이라 할 것이다. 앞서의 노인 모임에서 교직자들에게 책임이 있고, 문학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비록 농담조로 뱉은 말이기는 하지만, 교직자와 문학인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여 그 책임을 공감해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옛날부터 전쟁을 할 적에는 공격 사유를 담은 선전포고를 하고 시작했다. 그래서 포고문 내용이 명분이 있으면 정당성이 인정되고, 그러지 못하면 침략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6·25전쟁은 북한이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으로 시작하였으니 비겁한 처사였다. 유엔 16개국이 군사를 파견한 것도 한국이 불의에 짓밟히는 것을 보고 의분심을 공감한 데서 나온 결과였다. 여기에 선두 주자였던 맥아더는 우리의 은인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사람이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죽어가는 이를 보고 측은해 하며, 옳은 일에 앞장서는 이에게 박수보내고, 자기를 도와주는 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정상적인 정서를 지닌 사람이다. 학교 교육의 주목적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데 있고, 문학의 주목적은 올바른 정서를 심어주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어찌하여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동의하지 못할 '맥아더는 우리의 원수'라는 말을 안색도 변하지 않고 하는 것일까? 그들도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측은하다는 생각을 할까가 궁금해진다. 혹자는 그들을 정신이상자라고 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사상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눈에는 x밖에 안보인다'고, 그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짐으로써, 북한 공산당이 하는 일에는 선악을 가리는데 문을 감아 버리고 합리화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속담처럼 공산당의 안경으로 사물을 보니 '은인'이 '원쑤'로 보였던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어디가지가 정서이며 어디서부터 사상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가 어리둥절해진다.

  해방 후 북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부모 자식 간에도 사상이 다르고 고발도 밥 먹듯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인정사정없는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라 하였다. 그러니, 혈육 간에도 몰인정한 것이 공산주의 시회이거늘, 피부색조차 다른 맥아더를 두고, 은인에서 원수로 뒤집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상이 무엇인가? 사람의 생각이며, 사고 작용의 결과로 얻어진 체계적 의식 내용이요, 사회나 정치에 대한 일정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정서는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생각할 때에 일어나는 갖가지 감정, 또는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주위의 분위기아 기분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정서는 가변성이 있는데 비하여 사상은 고착성이 진하다 할 수 있겠다.

  정서는 감정이요, 사상은 생각이나 견해인데 그 소유주는 같은 사람이니, 이둘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람이 태어날 적엔 성선설(性善說)의 주장대로 양심을 갖고 태어나는 것처럼, 정서도 착함을 기반으로 한 아름다운 정서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라 단정한다면 나의 오류일까?
  사람은 출생할 때부터 아름다운 정서를 타고 난다고 하면 정서는 선천적인 면이 짙다 하겠다. 반면에 사상은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가운데 굳어지므로, 다분히 후천성이라는 생각이다.

 전쟁 중에서 사상전쟁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종교전쟁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들이 그 예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6·25전쟁도 따지고 보면 사상전쟁이라 할 것이니, 그만큼 잔인하고 무서운 전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은인이 원수로 뒤집히는 초정서적인 사태로까지 빚어졌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정서는 감성쪽이고, 사상은 지성 족이라 하겠다. 그러나 사상이 다른 사람끼리 싸울 때면, 사생결단을 내려고 드니, 지성과 감성이 무관하다 할 수 없고, 따라서 정서와 사상의 사이도 칼로 자르듯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직자와 문학인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하는 비판론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고 싶다. 바람직한 사상과 정서를 기르기 위한 교육 문학의 역할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때임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