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까지 살다 갈꼬?
우리나라 100세 이상 인구가 961명이란 통계청 발표가 나왔다. 이는 5년 전보다 27%가 급증한 것이란다. 그중 여자가 89.2%인 857명이라니 남자보다 월등히 많다. 그런데 최고령자가 역시 여성2명으로 111세이고, 남자 최고령자는 107세란다. 부부 모두가 100세 이상인 커플은 1쌍(남편105세, 부인101세)뿐이라니 부부 해로하기가 그만큼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 주목할 일은 100세 이상 고령자의 80.6%는 2세대, 또는 3세대의 가족 관계를 구성하고 있어 대부분이 자녀나 손자,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대가족 제도가 장수에 도움이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장수의 비결을 물은즉, 소식(小食)을 버릇한 절제된 식사생활을 꼽은 이가 39.9%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낙천적인 성격 17.2%, 규칙적인 생활 13.7%, 유전적 특성 12.9%, 원만한 가족생활 4.5%의 순이 었다. 그들이 선호하는 식품은 채소, 야채류가 44.6%로 가장 많았고, 다름으로 육류22,5%, 생선류 15.2%로 나타났다.
사람이 장수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961명 장수자들이 모두 건강하다면 얼마나 좋으련마는, 조사 결과에서 절반이상이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장수가 우리의 절대적 소방은 아니라 하겠다. 그들 중에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을 바라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내가 고희를 맞았을 적에,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가 할 것인가하는 생각에 잠기면서 "몇 살까지 살다 갈꼬?" 하는 느닷없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이미 10년 전의 일인데, 그때 내가 얻은 결론은 82세 정도가 적당하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엔 근거가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고혈압 증세가 있어 72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내가 임종도 못하였고, 자식으로서 평소에 혈압관리를 잘 해 드리지 못한 후회막급의 심정으로, 어머님 때에는 결코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마음 다짐을 단단히 하였던 바, 다행히 어머님께서는 그로부터 20년을 더 살고, 92세에 가셨다. 그러나 90에게 들어서면서치매 증세가 있어 모시는데 약간의 애로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중간인 82세정도 살다 가면 적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던 것이다.
이제 내나이 팔순에 이르렀으니, 그대로라면 2년 후엔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요즘 사회가 급변하는 시대인지라, 10년 동안에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몇 년 전 장수 연구를 하는 어느 의사가 '사람은 70세를 넘기기가 어렵지, 70세만 넘기면 100세까지 살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큰 희마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를 뒷받침이라고 하듯, 최근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여자는 80을 넘었고 남자도 이를 뒤따라르고 있다고 하는 발표가 있었다.
이런저런 발표를 접하고 나니, 나에게 슬거므니 욕심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10년 전에 가졌던 나의 '희망 수명- 82세'를 약간 상향 조정(?)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높일까? 문득 10년을 높여 내 어머니께서 누리고 가신 92세 정도가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으니,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할 것인가?
문제는 얼마나 건강하게 살다 갈 것인가에 있다 하겠다. 내 어머니처럼 '치매'마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터인데 하는 마음이 앞을 가리운다. 간혹 고령 환자들이 수용돼 있는 효도병원엘 가서 중풍, 관절염, 치매를 앓으면서 제 몸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남의 신세를 지고 있는 딱한 상황을 볼적에는 만감이 교차되고 저렇게라도 하여 오래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된다. 그들은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생존은 하고 있다. 그러나 반신불수의 옴이 되어 생활은 이미 불가능 상태이니,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생존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은 방정맞은 생각일까?
우리 또래들의 어느 모임에 나가 보아도 공통적인 화제는 건강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는 것 같다. 100세 이상 장수자 961명에게 장래의 소망사항에 대해 불어본 결과 ① 편안히 빨리 죽는 것이란 응답이 23.8%이고, ② 자손 잘 되기가 21.8%, ③ 건강 회복이 16.8%라고 하였으며, ④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응답자는 3,8%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니, 장수 보다는 건강이 최대의 소망임을 알 수 있다.
이미 팔순을 살아온 내가 '몇 살가지 살다 갈꼬?를 운운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오래 살기를 원한다고 소원대로 될 것이가? 중국의 진시황은 오래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해 먹는 등, 온갖 수단을 강구해 보았건만 50을 못채우고 황천길로 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지 않았던가.
그래도 오늘날 과학문명과 의학의 발달이 극도로 진전되어 장수시대를 맞았기에 감히 나 같은 늙은이가 마치 세상살이가 입맛대로 되는 양, '몇 살까지 살가 갈꼬?'라는 넋두리를 늘어 놓았는바, 이는 한갓 희망사항에 부과하다 할 것이다. 요즈음도 나의 주위에서는 쉴 새 없이 나이 순서와는 관계없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어떤 친구는 뇌진탕으로 말문을 닫았고, 또 한 친구는 바둑 두다가 슬며시 쓰러져 119차에 길려 갔으나 끝내 눈을 뜨지 못하였으며, 또 S는 점심 먹은 것이 얹쳤다고 연습처럼 병원을 방문하더니 심장마비란 선고장을 하사받고 세상을 바꾸고 말았다.
생사를 어찌 자기 뜻대로 하랴. 사람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은 조물주인 것을. 그러나 함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인간이니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희망사항은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장수시대를 맞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이것이 인간의 행복을 그만큼 확대시키는 일로 직결되는 일은 아닌 듯하다.
오늘도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문제'라는 과제를 되새겨 보게 된다. 나는 여기에다 '죽는 날가지 보람있는 일을 하다가 갔으면..' 하는 소망까지 덧붙이고 싶으니 욕심이 지나치다고 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