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은 해질 무렵이 너무 기다려진다. 땅거미가 지기도 전에, 작은 누나에게 아버지 새참을 갖다드려야 한다며 서두르자, 누나는 이상하게 여기며 아버지 새참이야기만 하면 뺀-지일 뺀-지일 핑계를 대다가 어머님 호통을 듣고 나서야 눈물을 훔치며 들에 나갔던 내가 자진하여 서두르는 행동이 참으로 이상하다며 별일라 하였다.
 

"구용이가 오늘 왼 일이고, 살다보니 참 별일이네!"

내 딴엔 제법 거드름을 피워보려고 무의식중에 말이 나왔다.

"누야, 오지바구 알 재… 응?"

"오지바구? 광평 섬진강 말이가?"

"응…"

"그 오지바구는 와?"

"준비 됐음은 이리도, 갈란다!"

 하고는 새참 바구니를 빼앗듯이 들고, 날 듯이 대문을 뛰어넘는다. 새참 심부름이 이렇게 즐거운 것은 처음이다. 새 참이라야 소주반병에 정구지짐 몇 쪽을 꽃 접시에 담고 용이 그려진 대나무젓가락 한 쌍이 든 수저통이 전부다. 평소에는 이것도 무겁고 귀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따라 아버지의 새참이 너무나 볼품이 없어 보이고, 아버지께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

"오-냐 어서 오이라! 오늘은 어찌 빨리 왔네"

"아버지 어서 오이소 예"

"아이다, 원두막에 두고 오이라, 나중에 묵고로…"

 강둑에서 수박밭으로 길게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 끝에는 누런 황혼을 등진 아버지의 실루엣 영상은 마치 장군과도 같이 믿음직하였다. 내가 다람쥐처럼 수박밭고랑을 홀딱 홀딱 건너뛰면서 아버지 곁으로 질러오는 것을 보시고 조심하라고 이르신다.
 

"애야 천천히 오이라 수 박 밟을라-"

숨을 할딱거리며 아버지 곁에 털 석 주저앉자마자 아버지의 팔을 끌었다.

"아버지 이야기 해 주이소"

"오냐-"

"오늘은 전부다 해 주이소 예? 일부로 일찍 안 왔심니꺼."

둑 언덕을 뛰어 올라와 할딱거리며 아직도 숨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보고 미소지으시며 누렇고 빨간 붉새가 무등산을 덮고 있는 풍경을 지그시 처다 보시며 대답하신다.
 

"오-냐, 그러마"

"저- 황혼 빛을 가슴에 담으면 인정이 많아진단다"  

"황혼 빛을 어찌 가슴에 담심니꺼"

"이렇게 양팔을 들면서 놉새 바람을 천천히 마시는 기라! 아버지 하는 거 보래!"

 석양을 바라보며 다리를 벌리고 두 팔을 천천히 올리시며 심호홉을 하신다. 언제나 똥 장군을 짊어지고 다니시는 아버지가 이처럼 아름답고 즐겁고 재미있는 생각을 가지신 분인 줄을 오늘 처음 안 것 같다.
 

"구용아-!"

"예 아버지"       

"오늘은 니가 수박을 한번 세어보거라!"

너마지기 가 옷이 넘는 큰 밭인데 두세 고랑만 황금참외를 심었고 모두가 수박이다.

"저 많은 것을 언제 다 셈니꺼, 내일까지 세믄 됩니꺼"

"아니다, 아버지가 새참을 먹는 동안 세야지."

"어찌로 예?"  

 말꼬투리를 잡고 묻는 나의 질문이 딱하셨던지 아버지는 한 고랑의 수박만 세면 전체를 알게 된다고 하신다. 한 고랑에 심은 수박포기 숫자와 한 포기에 열린 수박 개수가 같다고 하신다. 매일 밭고랑을 순번대로 바꾸어 세어보면 전체의 수박의 변화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하셨다. 그래야 매매할 때 한 개의 오차도 생기지 않는다고 하셨다. 여니 유통상인이나 이웃 어른들은 아버지를 보시고, 이 생원은 진짜 신농씰세! 하시며 영농법을 묻기도 하셨고, 그 당시 유기농업방식의 표본농장으로 진주농대의 견학실습현장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새참을 드시는 동안 나는 둑 안쪽으로부터 세 번째 고랑의 수박을 세어보다가 똑 같은 크기의 수박이 두개씩 같은 간격으로 진열된 것처럼 열려있는 것을 보았고, 그 넓은 밭에 수박이 한 개만 없어져도 쉽게 알아내는 아버지의 신기한 마술을 그때야 알게되었다. 중간쯤 세며 가는데 고슴도치 한 마리가 놀라 도망가다가 수박 껍질에 작은 상처를 입혔다.  
  수박을 다 세고 난 뒤 말씀드렸더니 "맞았다! 잘 세었구나. 오늘 또 수박하나가 줄게 되었구나"하시며 밭으로 내려가시더니 고슴도치가 껍질에 상처를 입힌 수박을 따 가지고 오셨다. 오늘은 나에게 수지맞는 날이었다.

  수박을 낫으로 두껍게 쪼갠 뻘건 반달모양의 수박 두 쪽을 양손에 쥐어 주시며, 천천히 먹으라고 하시며 수박이 기관지를 마지않도록 천천히 타이신다.

"수박을 욕심내고 빨리 먹다가 체하면 숨 못 시고 죽는 기라"

"수박씨는 깨물지 말고 친구같이 사귀며 먹으면 신선이 되는 기라!"

 주의를 듣고서도 나는 수박을 한 입 가득히 베어 물었다가, 양손에 수박을 든 채 뱉어내지도 못하고 우물거리지도 못하는 나를 보시고, 나의 오른손의 수박을 받아주시며 웃으시는 아버지의 표정은 나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시고 놀리시는 것 같았다. 입안의 수박을 다시 꺼내어 수박 씨를 고르며 천천히 먹는 것을 보신 후, 오른손에 다시 수박을 쥐어 주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그 잉어왕자가 말이다…"

 나는 깜짝 놀라 먹던 수박을 입에 문 채 가만히 아버지 옆에 다가앉았다. 그리고 소리도 나지 않게 수박을 혀로 깨어 삼켰다. 아버지는 곁눈으로 나를 살 작 보시고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약속한 그믐날이 되자 잉어왕자는 얼어붙은 강물 밑에서 효자 선씨보다 먼저 와서 애타게 기다리며 얼음 뚜껑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해가 지고 삭풍이 눈보라를 몰고 오는 바람에 얼음은 두꺼워지고 천지가 눈으로 덮여 강과 들판을 구별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제발 효자 선씨가 시간을 지켜 그 많은 명주실타를 무사히 구해 가지고 와서 함께 용궁의 해수문을 함께 빠져나갈 수가 있을지 걱정이 태산같다. 잉어왕자는 초조하게 가다리다 못해 해수문을 한번 더 다녀오는데 어디서 왕자님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너무나 반가웠다.
 

"왕자니-임 잉어 왕자님-"

 잉어 왕자가 강물위로 나와보니 약소장소에서 비쩍 마른 늙은 나귀 한 마리가 큰 대나무 통발 여러 개를 차곡차곡 쌓아 실은 수레를 끌고 남쪽에서 강을 따라 얼음지치듯 눈썰매로 올라온 효자 선씨의 수염에는 눈물과 콧물이 고드름처럼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도끼와 톱으로 뚫은 구멍의 얼음 두께는 석자가 넘었다. 잉어왕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선씨의 손을 잡으며 신선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완성하여 어머님의 병환은 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두삼랑의 인정이 효심에 감동하셨구려!"

나는 이상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기만 하면 에 지체 없이 물었다.

"아버지, 두삼랑이 누군데 예?"

"뽕과 누에를 기르는 신선이지"

"그 신선한테서 명주실을 얻어 왔심니꺼?"

"명주실을 구해오는 이야기가 더 길고 재미있지…"

"우리 구용이, 학교에서 공부 잘하겠네…"

 나는 양심에 가책이 되어 부끄러워 머리를 극적이며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하자  

"명주실 구해온 이야기는 다음에 허기로 했 재?"

"예…"

"니 손에 든 수박 다 먹고 이야기 듣거라!"

 아버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시며 곰방대를 피워 무신다. 나는 이야기 듣느라 양손에 그대로 든 채 넋을 잃고 먹지 못한 양손의 수박을 이때다 하고 부지런히 다 먹어치웠다. 그러자 아버지도 곰방대 쇠목을 손바닥에 탁탁 치며 재를 트시고 난 뒤, 몸을 옆으로 기울여 곰방대를 허리춤에 꽂으시는 비스듬한 자세의 곁눈으로 이야기들을 준비가 완료된 나를 보시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신다.
  

 왕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서두르며 선씨에게 명주실 한 끝을 주면서 강변 왕대 숲 튼튼한 대 뿌리에 세 겹 세 매듭으로 단단히 묶어라 하였다. 그리고 난 후 왕자는 다른 한 끝에 석자 남짓한 대롱을 끼운 후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매고 대롱은 얼음구멍에 실과 나란히 묻어둔 채 선씨에게 앞으로 행동은 조금이라도 어기면 둘 다 무사할 수 없다고 일러주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해야 됩니다."

"예…! "

"선씨는 이 영단을 삼킨 즉시 내 뒷들 미를 두 손으로 꼭 잡고 눈을 감으시오! 그리고 숨을 멈추어야 합니다!"  

"나귀가 얼어죽을 텐데…"  

"우리가 도원에 도착하면 두삼랑이 저 영물을 거둘 것이오!"

 큰소리로 어서 서둘라는 명령에 따라 파란영단을 삼키고 왕자의 뒷들 미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그 순간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강물 속으로 들어가자 무수한 바늘이 한꺼번에 전신을 찌르듯 싸늘한 냉기가 몸 속으로 배어들더니 몸은 뻣뻣이 굳어버리고 말문이 막히며 면서 머리도 몽롱해지며 의식을 잃으면서 두 손은 빨판처럼 달라붙는 듯 하였다. 사람이 갈 수 있는 도원은 꿈속의 '몽유도원'일 뿐이며, 진짜로 도원에 갈 수 있는 길은 신선이 아니고는 갈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하고 혼자생각하고 있는데 왕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눈을 떠시오!"

"선씨! 눈을 떠도 됩니다."

 왕자의 말소리가 분명해 지자 가만히 눈을 떠보았다. 여름철 안개구름 속의 궁궐처럼 너무나 아름답고 따스한 용궁이 마치 아름답고 깊은 계곡 속에 숨은 듯이 그림처럼 보였다. 선씨의 두 손은 크다란 황금잉어의 등지느러미를 붙들고 있는 채 두 다리는 젓가락처럼 굳어 있었고, 입이 열리지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왕자의 등을 탄 채로 용궁으로 들어가려는가 생각하는데 용궁대문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큰 산호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화신 한 왕자는 이곳이 우리형제들이 어릴 때 숨바꼭질하던 놀이터라 하였다. 왕자의 말만 들을 수 있을 뿐 물을 수가 없다.
  왕자의 뒷들 미에 손이 붙은 채 산호 숲을 걸어나와 용궁대문 앞에 이르자 거북방패를 짊어진 뚱뚱한 수문장이 부하들과 함께 환영을 나오면서 공손히 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환영을 한다.
 

"왕자님 이제 오십니까?

"고맙소 귀두 별장!"

이 말소가 들리자마자 지금까지 굳어 있었던 몸이 확 풀린다. 그러자 왕자는 나를 돌아보며 장난처럼 나에게 이제 손을 놓을 있다는 암시를 준다.  

"선씨! 내 뒤들 미를 놓아주시오 도망은 안 하리다."  

그때서야 아- 하고 말문이 열리고 손이 저절로 풀린다.

"여기가 어딥니까?"

"용궁입니다. 용왕의 허락이 있어야 물길이 열립니다."

선씨와 왕자가 귀두장군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와 용왕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니 용왕께서 왕자를 조건 없이 살려준 선씨의 착한 마음을 칭찬하시며 은혜를 갚도록 하여주신다.
 

"상제께서 효심이 지극한 그대를 보내어 왕자까지 구해 주었구려!"

"왕자를 구해준 은혜를 어떻게 갚을 고?"   

" … "

선씨가 고개를 돌려 왕자를 쳐다보자, 왕자는 고개를 들고 용안을 바라보며 선씨가 바라는 바를 대신 말씀하여 올린 뒤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간청한다.

"효자 선씨는 천도복숭아를 얻어서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려 하나이다. 소자가 입은 은혜를 스스로 갚도록 허락해 주소서!"

"왕자가 도원으로 갔다오는 것은 힘이 들어도 허락 할 수 있으나, 천도복숭아는 결코 얻지 못한다! 천상, 천하, 해수가 엄연히 구별되어 있음을 어찌 모르는고…?!"

 용왕이 탄식하며 참으로 걱정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호위하며 서있던 귀두 별장이 조용히 용왕 앞으로 나서며 신선의 일을 사람이 대신하고 왕자는 길만 안내하여 합작을 하는 꾀를 낸 것이다.
 

"대왕마마, 소신의 생각으로는 왕자께서는 물길만 안내하심이…"

"거참 옳거니, 별장!"  

"왕자는 은인을 대동하고 조심하여 한번만 다녀오너라!"  

  왕자와 선씨는 용왕께 감사를 드리고 별장의 호위를 받으며 궁문을 나서자 별장이 작은 주머니를 왕자에게 건네주며 대왕마마의 영단이라고 하였다. 별장의 환송을 받으며 용궁 문 을 나오자 왕자가 산호 숲으로 들어가 몰래 묶어 두었던 실을 허리에 다시 동이고 비장한 각오로 정벌을 떠나는 장군처럼 강에서 나올 때처럼 명령하며 재촉한다.
  얼떨결에 왕자의 뒤들미를 다시 잡자 이번에는 온몸이 나른하게 가벼운 풀잎처럼 하늘거린다. 어슴푸레 주위의 풍경이 눈에서 사라지는 듯 하였고, 왕자는 비단고래가 되어 인어처럼 따뜻한 물결만 따라 남쪽으로 날아가는 대붕처럼 빠르게 멀리 멀리 헤엄쳐갔다. 몽롱한 정신으로 얼마나 왔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때 왕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고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비단고래 등을 타고 앉아 있는 곳은 넓은 강 가운데 같기도 한데, 주위는 검푸른 녹음으로 덮인 산이다.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있다. 낮은 안개가 수면과 산 계곡에 자욱하게 깔려 있는 것이 병풍속의 그림 같고, 꿈에 가본 도원경이다.
  왕자가 선씨를 등에 태운 채로 강 호수에 이어진 계곡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는데, 구비를 돌 때마다 두세 개의 물길이 나누어지건만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똑 같아 보였다. 아홉 구비를 돌아들자 자욱한 안개바람 속에 그윽한 복숭아 향기가 풍겨나기 시작한다.  
  조금 더 들어가니 비단치마폭 같이 화려하고 넓고 높은 절벽아래 깊숙이 숨은 동굴이 보였다. 이곳에 들어서자 왕자는 영단주머니를 허리춤에서 꺼내어 선씨에게 넘겨주며 사용법을 설명한다.
 

"이곳이 도원으로 가는 첫 관문입니다."

"사람은 꿈에서만 가볼 수 있는 '몽유도원'이지요."

"이 영단은 빛을 색으로 바꾸어 만든 용왕의 영물입니다."

"사람이 영생할 욕심으로 신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신선은 사람으로 화신 하여 정직한 사람의 어려움을 보살펴 주기도 하고, 간악한 자를 징벌하기도 하면서 상제의 명을 어기지 않는 한 영생합니다."  
  나는 이야기 중에 모르는 것이 나오면 그걸 생각하다가 이야기를 잘 놓친다. 그래서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버릇이 있어 이야기를 또 중단시키며 물어본다.
 

"아버지! 영물이 뭔데 예?"

"영물? 뭐인고 함은…, 하늘의 옥황상제, 산신선, 바다용왕, 염라대왕 등 모든 귀신이 만들어 낸 물건이나 음식 같은 기다."   

"도깨비감투 같은 거요?"

"그렇지!"

"부닥 방망이는 예?"

"그것도 영물이고 말고"

" 또… 삼년 고개도, 젊어지는 새미도 영물 입니꺼?"

"그렇지, 다 영물이고 말고, 구용이가 아는 것도 많구나"

 아버지가 칭찬을 해주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잘 모르는 것은 자주 물었다.
 

"아버지, 영생이 먼데 예?"

"사람이 안 늙고 안 죽고 오래 사는 긴데…"

"약방이름도 영생이 있던데 약방 같은 깁니꺼?"

"아니다, 사람이 천국이나 낙원에서 영원히 사는 기다."  

"그럼 천당하고 극락하고 낙원은 같은 깁니꺼?"

"요새는 천당하고 극락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라 하더라만…"

"안 죽고 오래 사는 사람이 신선이고, 신선들이 사는 곳이 낙원이다."

"효자가 가는 도원도 낙원 입니꺼?"

"그렇지, 그래서 신선이 되는 약을 먹는 기라."     

"예전부터 사람들이 신선같이 오래 사는 법을 만들어 냈단다"
 

  중국에는 신선이 되는 도교가 있고, 공자 맹자같이 성인이 되는 유교가 있다. 영국에는 천당 가는 기독교가 있고, 서반아나 이태리에도 천당 가는 천주교가 있다.
 중국같이 큰 인도는 극락 간다는 불교와 중국의 유교 비슷한 힌두교가 있지. 또 중동이나 아라비아 사막국가에는 회교하고 유대교가 있는데 서로 좋은 신을 모신다고 원수가 되어, 신선이 되기도 전에 죽기살기로 쌈질을 하는 바람에 새우 가재의 싸움에 고래가 등창이 날 정도로 세상이 시끄럽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런 기 없심니꺼?"

"진짜 신선이 되는 법은 조선에 있었지!"

"동학이 진짜다! 니 할아버지하고 큰아버지는 동학에 들었지. 나는 그때 니만 했다만…"

"아버지가 믿는 유교는 예?"

"응, 유교는 믿는 기 아니고 학문하는 것이다."

"교회에 가믄 영생하고 절에 가믄 극락 갑니꺼?"

"다 부질없는 일이지"

"부질없는 일이 먼데 예?"

"열심히 일 안하고 편히 살라는 욕심이다"

"아버지, 스님과 목사는 다 극락 가고 천당 갑니꺼?"

"다 못 간다. 착한 스님하고 목사만 가는 기라."

"효자가 약 묵고 물 속에서 숨을 심니꺼?"

"그래… 착한 사람이 신선을 만나면 신선같이 되는 기고, 신선이 착한 사람을 도와 줄라고 할 때는 사람으로 변하는 기다"

  아버지는 보통사람이 잠시 신선이 되고, 신선이 사람으로 바뀌는 이야기를 설명하시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왕자가 선씨에게 삼색영단을 색깔별로 설명하여 주는 말을 한다.

"이 영단 중 녹색은 잠시동안 산 신선의 몸이 되는 것이고, 파란색은 용궁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붉은 것은 본래의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선씨와 더 이상 동행 할 수가 없습니다."

"도원은 사흘밖에 머물 수 없습니다. 더 지체하면 영원히 나갈 수 없게 됩니다"

  효자 선씨는 왕자가 가르쳐 준대로 동굴을 나서기 전에 초록색 영단을 입에 넣었다. 향긋한 꽃 풀 향기가 혀 밑으로 사르르 번지며 날 듯이 가벼워진다. 동굴을 나서니 아름답고 조용한 오솔길이 보였고, 그 길은 어릴 때 엄마와 손잡고 함께 가던 낯익은 황토 길도 같다.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가볍게 뛰어 가본다. 마치 구름 솜을 밟고 가듯 가벼운 몸은 비둘기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 같다. 눈 아래 보이는 산과 아름다운 마을은 그림책에 나오는 요술마을 같았고 마을 입구 앞에는 넓은 뽕밭이 있고 뽕밭주위에는 비단같이 부드러운 삼밭이 펼쳐있다. 효자 선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걸음을 늦추어 뽕밭으로 들어섰다. 드넓은 뽕밭에서 고운 비단옷을 입고 가는허리를 흔들며 뽕을 따고 있는 어여쁜 여인을 만났다. 어릴 때 어머님 모습 같기도 하고, 어디서 만나 본 듯 한 낯익은 얼굴이라 가까이 다가서서 도원 가는 길이 맞는지를 물어 보았다.
 

"아주머니! 도원으로 가는 길이 맞습니까?"

"명주실을 구하려고 나를 찾더니만 여기서 또 만나는 구나!"

왕자가 명주 실타래를 구해준 분이라고 말한 두삼랑(杜三娘)이다.

"당신의 효심이 천상에 닿았구려!"  

"다행이 서왕모(西王母)가 오늘 천도복숭아를 따는 날인데…"

 두삼랑은 하늘이 내린 천운이란다. 뽕밭을 지나면 넓은 모시삼밭이 나오는데 이곳을 무사히 지나야 도원에 도달할 수 있고, 도원을 다녀 나올 때까지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서쪽 깊은 산곡에서 해지기전에 서왕모를 만나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상제의 은혜를 입지 않고는 세상 사람이 천도복숭아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 뒤에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단 한번의 도움을 주는 기적이라 하였다.
 

"작은 욕심도 버려야 하느니!"

"예 고맙습니다"

 공손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가르쳐주는 길을 따라 부지런히 가보았으나, 좀처럼 길이 줄지 않고 제자리만 걷는 것 같아 뒤를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니의 병환을 걱정하는 순간, 눈앞에 삼나무 밭이 열리고 삼나무 향기가 그윽하게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머리가 텅 빈 듯 가볍게 취하면서 별의별 환영이 떠오르기도 하고 실제로 다가와서 달콤하게 유혹하기도 하고, 무서운 협박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기도 하였다.
 선씨는 두삼랑의 말을 기억하면서 세상사람이 신선의 나라에 들어올 때는 이러한 지옥과 같은 경계를 지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애써 정신을 차려 앞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갑자기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금방이라도 홀려버릴 것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둔부를 흔들며 다가 왔다.
 

"상제가 점지하신 효자라 하기에 모시러 왔습니다."

"…?"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이 앞으로 다가서며, 두 손으로 손씨의 목을 안으며 어지러울 정도로 짙은 향수냄새를 풍기는 머리를 가슴에 묻는가 싶더니 어느새 붉고 부드러운 입술로 손씨에게 입맞추며 터질 듯이 풍만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가슴을 문지르며 엄청난 힘으로 껴안는 바람에 손씨는 그의 입과 코가 통째로 촉촉이 젖은 밀가루 반죽 속으로 빨려드는 듯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힘을 다하여 밀쳐 낼 수록 점점 더 세게 죄어오는 포응에 그만 실신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오줌통이 터질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 좀 있다가 해 주이소"

"오냐, 어서 갔다 오이라!"

 큰 수박하나를 내 혼자 다 먹은 탓이다. 엉금엉금 기어 밭으로 내려가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본다. 어- 시원하다. 조마조마한 이야기 바람에 얼마나 참았던지 아랫배가 터질 것 같던 오줌통이 푹- 꺼지니 속이 후련하다.
  주위에 벌써 어둠이 깔려 둑에 앉아 계신 아버지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부싯돌 치는 소리와 함께 불빛만 반짝 빛난다. 벌써 이슬이 맺힌 듯 발등이 축축해지면서 풀밭이 미끄럽다. 천천히 기어올라와 아버지 곁에 앉으며 이야기를 다시 계속해달라고 하였다.
 

"아버지 인자 해 주이소"

"오늘도 늦었다, 다음에 또 해 주께"

 아버지는 이야기를 다 하려면 날을 새야 하니 어차피 내일 또 하자고 타이르신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보니 배기 고파왔다.

"아버지도 시장하시지 예?"

"밥 때가 지났으니 나도 시장하다"  

"내일은 다 해주지 예?"

"이야기를 줄이면 끝나고 말고"

"줄이지 말고 다 해 주이소"

"오-냐, 인자 집에 가자"

  아버지가 천천히 일어서시더니 오늘은 광평 철둑길을 멀리 둘러서 집으로 가자고 하시면서 옛날 동학군과 일본군이 하동에서 싸운 이야기를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학도가 광평 솔밭에 모여 남원으로 가기로 했는데,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송림으로 가신다는 말을 듣지 호기심으로 뒤를 따라 솔밭으로 가 보았단다.
  긴 대창을 들고 온 사람도 있고 창 끝에 낫을 묶고 글을 쓴 깃발을 달고 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 솔밭 바위에 올라서서 고함을 지르며 시간이 없다고 큰소리로 연설을 하면서 지시를 내린다.
 

"우리와 같이 싸우러 갈 사람은 여기 죽창과 낫을 받아 가시고, 조금이라도 싸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조용히 돌아가시오! 일본군지원부대가 오기 전에 구례를 지나 남원까지 가야 하오! 경각이 급하니 지도자의 말씀을 잘 들어주시오!"  

바로 그때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몰래 송림까지 따라온 나를 보시고 할아버지는 호통을 치시며 집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하셨으나 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셨다.

"니가 뭐할라고 여기에 왔냐!"

"큰애 니가 병민이를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가거라!"

 큰 형님이 아무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아버지를 윽박지르다 못해 할 수 없었든지 할아버지에게 도저히 고집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병민이 때매 안되겠십니더. 병민이 데리고 철둑길로 둘러가 보입시다"

"그것참 구측스럽게 니가 따라와서 내…참"

  할아버지는 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손목을 낚아채고 강변모래사장 밑으로 걸어서 이 철둑길 밑을 돌아 나오시면서 큰아버지에 지나가는 말같이 큰 형님에게 '돌팍거리를 넘어갈지 모르것다' 하시며 걱정하시었다.
  일본군이 '돌팍거리'(옛날에는 양쪽이 바위산으로 길이 좁은 협곡이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지나는 못하는 관문 같았단다 ; 지금은 하동경찰서가 있다)에서 조총을 든 일본군 열댓 명이 잠복을 하고 하동 읍내를 지나가지 못하게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지원부대가 올 때까지 사수 할 것이라는 정보도 알고 계셨다.
 
  수백이 넘는 동학군이 머리띠를 하고 동학기를 높이세우고 하동읍을 진격하여 갔는데 '돌팍거리' 고개에서 조총소리가 콩볶듯 들리더니 잠시 후 동학군이 읍냇강(지금은 하동초등학교 앞의 복개천 도로가 되었다)을 따라 퇴각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식경이 지난 뒤에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와 같이 '돌팍거리' 현장을 지나가는데 일본군부대가 도착하여 동학군선발대 기수들의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일본군부대는 두 대로 나누어 한 부대는 동학군 뒤를 따라가고 한 부대는 남당 고개를 넘어 앞질러 가는 것을 보았단다. 남도 동학군들은 넓은 솔밭으로 재집결하여 다시 진을 치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거의 다 그곳에서 전멸하여 일본군이 송림에 동학군의 시체를 전부 묻었단다. 망국의 원한이 서린 공동묘지였다고 설명하셨다.
  아버지는 집에 다 들어 와서도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것을 보고 어머님께서 철없는 애한테 무슨 이야기를 그리 하시냐고 물어보신다.

"애를 데리고 무슨 이야기를 그리하는 기요."

"그런 기 있구마"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으시며 웃으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