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아직 중천인데 나는 누나를 졸라 새참을 빨리 준비하라고 야단을 쳤다.
그리고 달려가듯 밭에 도착하니 똥 장군에 물을 길러다 넓은 밭고랑 사이에 물을 주고 계셨다.

"아버지- "
"오-냐, 이리 더울 때 뭐하러 일찍 와-"
아버지는 아직도 서너 고랑이 더 남았다고 하시며 나에게 선선한 원두막에 가서 놀아라 하시면서 노란 참외 두 개를 따서 양손에 한 개씩 쥐어 주신다.

"한 개는 나중에 먹어라!"  
  노란 참외를 "긴마까"라고 부르는 일본종자라 하시며, 일본사람들이 농작물 종자를 잘 만들어 내고있지만, 그 사람들이 전부 일본에 잡혀간 조선사람들이라고 하셨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도 조선사람이라 하셨다. 참외 하나를 다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심심해서 아버지가 밭도랑에다 많은 물을 붓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달라 물어보았다.

"아버지-"
"와-"
"다른 사람들은 밭 두덕에 물을 주는데 아버지는 밭고랑에다 물을 붓십니꺼?"
"어으, 니 데게 목마를 때 찬물 조금 마시고 나면 또 마시고 싶지…"
"예 그래요"
"목이 말라도 고랑에 몸을 담그고 모욕을 하면 물먹고 싶은 생각이 안 나지…?"
"예 진짜 그래요"
"밭두덕에 물주는 거는 찬물 마시는 꼴이라 수박에 해롭다."
"사흘에 한번을 주더라도 미꾸라지가 헤엄칠 정도로 고랑에 물을 듬뿍 주면 수박이 시들지 않고 건강해지는 기라"

  아버지는 수박도 사람처럼 더위를 먹으면 시들고 병이 들어 사람을 해치는 독이든 수박이 열린다고 하셨다. 마치 병든 닭이나 소를 잡아먹는 것과 똑 같은 무서운 결과가 된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먼 곳에서 물을 길어 오시는데도 금새 물을 다 주었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부지런한 모습은 진짜 신선같이 보였다. 손을 털며 원두막으로 오신 아버지는 참 바구니를 열어 보시고 기뻐하신다.   

"어디 한잔 해 볼거나"
"앗다 야, 오늘은 술 한 병에 고기도 있구나."
석양에 붉게 물든 밀짚모자 밑의 하얀 아버지 얼굴이 친구의 얼굴처럼 다정해 보였다.
"구용이 니도 한잔 해볼래?"
"아니요"
  나는 도리질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자 아버지도 웃으시며, 일본사람은 부자지간에 담배는 피우면서도 술은 못 마시게 하고, 조선에서는 그 반대라고 하신다. 왜 그러냐고 묻는 나에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두 번 세 번 설명을 해 주신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예절을 지키며 과음을 하지말고 맑은 정신에서 술을 마시도록 절제하는 습관을 키우도록 일부러 어른들과 함께 술을 마시도록 허락하셨단다.
  또 술을 적당하게 마실 때는 건강에 도움을 주어, 선비와 군자가 만드는 신비한 음식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러나 담배는 '백해무익'의 마약이라 어른이 되기 전에는 담배를 못 피우게 하여 성인과 미성년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고 하셨다.

  반면에 일본사람들은 예전부터 술과 담배가 다 같이 즐기는 향락기호식품으로 동일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성을 쉽게 잃을 수 있는 술은 어른들과 함께 못 마시게 하고 담배는 피우게 한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구용이, 니 오늘 점심 먹고 바로 왔지?"
"예"
"원두막에 혼자 심심하재?"
"…"
  땅거미가 지면서 선선한 바람이 원두막으로 불어온다. 아버지는 오래 기다린 나를 보시고 아이들은 제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데, 내가 아버지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것이 참 기특하다 하셨다.  

"저녁이슬이 해롭다. 오늘은 여기서 이야기하자."
"예, 어서 해 주이소!"
나는 노란 참외 한 개를 양다리를 갠 가운데 얹어 놓고 아버지가 이야기하시기를 기다린다.
"어디까지 했니라?"
"여자하고 입맞추다가 기절 한 것까지 예."
"아 그래, 그랬지"
  한참을 기절을 당했던 선씨의 귀에 어디서 들어보았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하시며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삼 독사에 걸렸으니 이를 어쩌나!"
 선씨는 몽롱하여 눈을 멀뚱히 뜨고 예쁜 아주머니를 초점을 잃은 눈으로 쳐다본다.  
"천명이 어찌 이리도 기이한고!"
 바로 두삼랑 이었다.
 삼 독사가 사람인 당신을 삼키다가 몸에 지닌 영단을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는 바람에 다행이 살아났다면서, 앞으로는 무슨 악귀가 가로막더라도 숨을 멈추고 달려가야지 멈춰서는 해지기전에 서왕모를 만나지 못한다고 일러주었다.

  선씨는 정신을 가다듬고 얼마가지 않아서 너들 너들 황포적삼을 입은 노지심 같은 사람이 철퇴를 들고 길을 막아서며, 나도 천도복숭아를 얻지 못해 신선이 못되고 삼밭에 숨어살며 너 같은 놈을 잡아 먹고사는데, 천도복숭아 반쪽만 주기로 약속하면 길을 열어 주겠다고 얼음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선씨는 아무 말도 않고 숨을 멈춘 채 똑바로 걸어나갔다.

"어? 이놈 봐라 사람이 귀신을 놀려?"
  모른척하고 앞으로 치달으니 뇌성벽력 같은 큰소리로 '이놈 게 섰거라!' 하고 고함을 지르며 철퇴를 휘두르며 뒤를 따라오는 바람에 오금이 저리도록 더 빨리 뛰는 바람에 삼밭을 더 쉽게 벗어나게 되었다.

  마을에 들어서니 온 마을이 복숭아 향기로 가득하고 일년 사시절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아름답기가 그지없는데,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고운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고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 공손하게 절을 하면서, 다정하게 웃는 모습들이 모두 신선과 같았다. 어떤 사람은 어디서 오셨으며 어디를 가시느냐고 다정하게 물어보면서 무엇이든 도와 드릴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은 이곳은 사람이 죽거나 아프지도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곳이라 일러주기도 했다. 여기는 죄를 짓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없이 사랑이 충만하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늙지 않고, 싫증나거나 시기심도 생기지 않는 마을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자기 집에 머물자고 다정하게 권하기도 하였다.
  아무런 대답 없이 지나가는 선 씨에게 다정하게 이르기를 누구에게도 이곳의 이야기를 해서는 상제의 꾸중을 듣게된다고 하면서, 이곳을 나가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못하는 곳이므로 돌아가지 말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서로 초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이렇게 진실한 행복을 세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다.

 얼마를 더가니 서왕모가 있다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정자에 도착하여 인사를 드리며 모친의 병환을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더니, 어머니의 병환은 도원의 복숭아도 고칠 수 있는데, 기어이 천도복숭아를 얻어가려는 까닭이 무엇인지 묻는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선씨는 잉어왕자가 가르쳐 주지 않아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멍청하게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네가 살려야 할 사람이 있느냐?"
 서왕모가 이상한 듯 다시 다짐하듯 묻는 바람에 서씨는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아버지가 보고싶습니다"
"사람이 신선이 못되는 이유가 이것이니라!"
  서왕모는 천도복숭아 하나를 넘겨주면서 상제의 뜻이니 그대는 아버지든 어머니든 한 사람만 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천도복숭아를 받아 보니 그 아름다운 빛이 누에같이 해맑고 투명한 빛깔이 속까지 보이는 듯하였다.

  천도복숭아를 안고 무사히 돌아온 선 씨를 보고, 너무나 부러워하는 잉어왕자의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왕자는 천도복숭아는 생명과실이라고 말하면서, 죽은 사람은 백골이 되어도 살아나고, 사람이 먹으면 삼 천년을 사는 신선이 되게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상제가 다른 신들에게 특별하게 주는 선물이라고 설명해준다.

  천도복숭아가 아니라도 도원의 복숭아는 사람이나 짐승의 어떠한 병도 고치고, 생명도 구할 수 있고, 신선이나 귀신의 마음도 고칠 수 있는 영물로 용왕께서 만드는 삼색영단도 도원의 복숭아 없이는 만들 수가 없다고 했다.
  용궁의 신선을 만들 수 있는 도원의 복숭아도 삼 천년마다 한번씩 서왕모가 천도복숭아를 딸 즈음 상제의 허락을 얻어 도원을 찾아와 겨우 한 개의 봉숭아를 얻어온다고 하였다. 왕자는 우리가 이곳을 나가면 상제가 허락한 삼 천년 후가 아니면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아 올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나갈 때는 언제나 천도복숭아든 도원의 복숭아든 오직 하나밖에 가져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번에 왕자가 죽기를 각오하고 이곳에 온 것은 신선을 닮은 세상사람과 같이 오는 길에 선씨의 손을 빌어 도원의 복숭아 하나를 더 얻어가 용왕에게 효도를 하고싶었던 미련한 생각을 숨김없이 말했던 것이다.
  효자 선씨도 왕자의 간곡한 말에 감동하여 천도복숭아를 왕자에게 맡겨둔 채 다시 동굴을 나와서 왕자자신은 지날 갈 수 없는 삼밭을 지나 도원으로 다시 들어가 보았더니, 새로운 사람을 맞는 듯 다정하게 대접을 해주기에 두 집에서 복숭아 한 개씩을 더 얻어 가지고 나오려는데,   복숭아 두개를 가지고 도원을 나설 수가 없으니 반드시 하나를 버려 두고 가야 할 것이라 하였다. 선씨가 가까스로 돌아와 동굴에서 기다리던 왕자에게 그 말을 전했다.
  왕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 없다가 한참동안 묵념을 하고 나더니 선씨에게 가만히 명령하듯 말하였다.

"선씨가 천도복숭아는 동굴 안에 남겨두고 복숭아 하나만 품고 나오시오!"  
"왕자의 복숭아는 어떻게…?"
"동굴을 벗어나기 직전에 복숭아하나는 강 가운데로 멀리 던져 버리십시오!"  
"천도복숭아는 누가 가지러 옵니까?"  
"천도복숭아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상제의 신물입니다. 선씨 만이 돌아와서 가져가야 합니다."
"이곳은 두 번 다시 올 수 없다고 하던데…"
"상제의 허락 없이는 다시 이 길을 찾지 못합니다."
"천도복숭아는 잊어버릴 수도…"
"그래서 몰래 찾아올 물길을 찾기 위해 명주실을 준비한 것입니다."

  왕자가 이 말을 하자마자 그러자 조용한 산울림이 퍼지며 동굴이 운다. 떠나야 한다고 하면서 왕자가 마지막 선고를 하 듯 명령한 후 물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사라지면 파란영단을 삼킨 후 도원의 복숭아 하나를 멀리 던지고, 곧바로 물 속으로 뛰어 드십시오"

 선씨는 안절부절 하다가 천도복숭아를 감춘 곳을 한번 더 보고 파란영단을 꿀꺽 삼킨 뒤 복숭아 하나를 강 가운데 멀리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물에 뛰어 들었다. 이상하게도 풍덩하고 물에 사람이 빠지는 소리 하나만 주위에 메아리쳤다. 물 속에 들자 싸늘하게 굳어지고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어디론가 쏜살같이 끌려가면서 기어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어디서 징소리와 꽹과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선씨의 몸을 흔들면서 어서 일어나라는 조용한 말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정월대보름이라 강가에 달집을 짓고 동리사람들이 농악을 울리며 달맞이를 하고 있다.

"선씨 나는 돌아가야 합니다."
" … "
"어머님 병환이 낫거든 나를 부르시오!"
"어떻게…?"
"매월 그믐밤 자정에 묶어둔 명주실을 치며 나를 부르시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붉은 영단을 삼키시오."
  선씨가 마을로 들어서자 많은 이웃 사람들이 멀뚱히 바라보고서도 그냥 지나친다. 속으로 세상이 바뀐 것으로 생각했다. 집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어머니 혼자 두고 사람이 어디를 갔는지 걱정하며 어머니가 불쌍해서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제 서야 아직도 신선의 몸이 되어있음을 알고 방으로 들어가 붉은 영단을 삼켰더니 뜨거운 열기가 가슴에 퍼지면서 온몸이 눈 녹듯이 사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 뒤 동리 친구가 부르면서 가슴을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식은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식은땀을 이렇게 흘리며 잠을 깨지 못하는가!"  
"감기가 엄청나게 들었나 보네"
  눈을 뜨니 그때서야 친구들이 그를 알아보고 몸이 아프면 진작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골방에서 혼자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야단을 친다. 친구들이 애를 태우며 그 동안 어머니를 보살펴준 고마움을 알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자초지종 설명하여 주었다.

 친구들은 효심이 천상에 닿았다고 마을 잔치를 열고 상제께 감사제를 올린 후 어머님의 병을 구하자고 제안하여 제례를 마치고 동리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복숭아 즙을 어머니 입 속에 한술 두술 드리는데 세술 째 하품을 하시며 잠에서 깨어나듯 일어 나셨다.

 "아- 잘 잤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셔서 부엌으로 가시는 것이었다. 동리 사람들이 다 모여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왼 일들인가! 부끄럽게"
"어머니 아픈데 없으십니까?"
 아들이 묻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나 다름없이 선씨에게 하던 그대로 대구를 하신다.  
"아프긴, 너 시장하겠다. 어서 들거라! 곧 차려 갈 테니…"  

 이웃사람들이 어머님을 방에 들게 하시고, 일년동안 어머니가 주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몸이 이처럼 편안한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싶었다.
 그 날밤 선씨는 어머님께 자초지종을 여쭙고 아버지를 환생시키겠다고 하였더니, 꿈속에 너의 아버지가 사람욕심은 상제도 속인다고 하시며 못마땅히 여기시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선씨는 기어이 떠날 결심을 하고, 정월 그믐 자정이 가까워 섬진강변으로 내려와 얼음을 열고 실을 통기며 왕자를 불렀다.

  물 속에 소용돌이가 일더니 잉어왕자가 나타나 어머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 것을 아는 듯이 염려하며 묻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현몽하여 어머니께 하신 말씀은 말하지 않았다.

"어머님께서 아버지의 환생을 허락 하셨습니까?"
"아니오…"
"선씨가 정직하게 효심만 지킨다면 아버지를 환생케 하실 것이오!"
"부친이 몇 살에 돌아가셨습니까?"
"서른 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지금 연세는?"
"쉰 일곱입니다"
"선씨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서른 다섯입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환생을 바라십니까?"
"그럼… 누구나 그 때의 나이로 환생합니까?"
"그렇습니다. 상제라 할지라도 남의 세월은 빼앗지 않습니다."
"천도복숭아는 언제 가져옵니까?"
"선씨가 마음만 정하면 언제든지 갈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환생시킵니까"
"청명이 되면 모를 파고, 상제께 치성을 드린 후 관의 천을 열고 천도복숭아의 즙을 머리, 가슴, 배, 팔 다리 순서로 부어주면 됩니다."
"그러나 누구든 환생하는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봄눈이 녹고 강물이 풀리기 시작할 즈음 어느 날 선씨는 어머님 앞에 앉아 도원을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어머님은 극구 말리시며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라 일렀다.

"호사다마도 부질없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긴단다."  
"너의 아버지도 환생을 바라지 않으시고, 나 또한 그렇다."
 선씨는 그토록 말리시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이 집을 나섰다.
 황혼이 깔린 섬진강물의 쪽빛은 거울같이 맑았다. 강 건너 푸른 솔밭의 그림자가 모래톱에 거꾸로 붙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신선이 수를 놓은 비단처럼 곱다.

 선씨는 강변 대 숲에 앉아 해가 기지를 기다려 명주실을 치며 왕자를 부른다. 어둠이 깔리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강 심에 넓은 소용돌이 거품이 일어나더니, 어느새 선씨 옆에 잉어왕자가 나타났다.

"자정도 멀었는데 급한 일이 있습니까?"
"마음이 조급하여…"
"조급한 마음은 욕심 때문이오!"
 왕자는 체념한 듯 어차피 내가만든 운명이니 출발하자고 하며 쪽빛처럼 파란 구슬을 하나주며 혀 밑에 감추고 지난번처럼 한 손은 왕자의 뒤들미를 잡고 한 손은 명주실에 끼어져  떠있는 대롱을 붙잡고 눈을 감으라고 이른다.

 손씨가 구슬을 혀 밑에 머금고 왕자의 말대로 하자 엄청나게 힘 센 큰 메기로 변한 왕자가 대롱을 잡고있는 손씨를 등에 업고 명주실을 따라 곡예 하듯 남쪽으로 멀리 그리고 깊이 하늘을 나는 왜가리와 황새처럼 내 달라기 시작한다.

 몽롱한 가운데 추위와 따뜻함이 번갈아 느껴지면서도 어둠이 깔려 주위를 알아볼 수가 없고, 지난번의 아름다운 강과 바다 속의 풍광과는 사뭇 다른 암흑의 길이었다. 왕자가 초조해 하며 불안하게 말했던 것처럼, 열리지 않은 상제의 길을 실을 따라 몰래 가는 것이로구나 생각하니 더욱 불안하였다. 섬진강에 들어설 때는 검은 메기모습이었던 왕자가 이번에는 용궁에도 머물지 못하고 지나쳐가며 깊고 어두운 바다로 들어서면서 엄청나게 큰 뱀장어로 화신을 하여 명주실을 따라 끌려가듯 소리 없이 가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넓은 호수 가운데 도착한 왕자는 어느새 거북이로 변하여 선씨를 등에 업고 천천히 물가에 올라가 선씨를 내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잘 들어라 이른다.

"여기가 도원의 외문인 그때의 동굴입니다."
"… "
"입안에 있는 구슬을 뱉어내고 이 구슬을 입에 넣으시오"
 왕자가 주는 녹색구슬을 청색구슬과 바꾸어 입에 넣자 그때서야 말문이 열리고 천도복숭아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아- 그 천도복숭아 냄새가 납니다."
 선씨는 깜깜한 동굴을 더듬어 지난번에 숨겨둔 천도복숭아를 쉽게 찾았다. 복숭아를 찾아온 선씨를 거북왕자 등에 태우고 호수가운데까지 들어온 왕자는 다시 구슬을 바꾸어 주며 물 속으로 깊이 잠수하더니 크다란 뱀장어로 변하여 명주실을 따라 천천히 헤엄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몽롱한 꿈속에서도 두 세 번 따뜻하고 차가움을 느끼며 한참동안 하늘을 치솟듯 올라오더니, 갑자기 눈앞이 훤하게 열리며 아름다운 용궁의 풍광이 보였다.
 오른 손은 명주실에 낀 대롱을 붙잡고 왼손에 천도복숭아를 든 채 빛이 바래고 힘이 없어 보이는 잉어의 등을 타고 있는 선씨에게 잉어왕자는 기진 맥진한 기력으로 유언하듯 간신히 타이른다.

"선씨! 무사히 도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
"나는 더 이상 선씨를 도울 기력이 없습니다."
"…"
"선씨는 대롱을 이대로 꼭 잡은 채 두발로 물장구를 부지런히 치면서 몸을 흔들면 들 물이라 인어처럼 빨리 물길을 따라 섬진강으로 돌아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명주실 끝에 닿으면 파란구슬을 물에 뱉어 버리면 인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천명을 다하여 신선의 몸을 버립니다. 내가 뒤집어 가라 가라앉으면 부지런히 혼자 가야 합니다."
"…"
"사람이 신선이 되지 못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 때문입니다."
 잉어왕자는 선씨의 발 밑으로 천천히 내려가더니 하얀 배를 보이며 머리를 밑으로 꽂아 내리듯 가라앉아 버린다.
 선씨의 몸이 왕자를 따라 아래로 휩쓸려 가는 것을 느끼고 부지런히 물장구를 치며 고개와 몸을 흔들었다. 드디어 인어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맑은 강물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강속의 아름다운 광경이 황홀하고 아름답다. 수많은 작고 큰 물고기들이 오가면서 다정하게 손짓하는 것 같고, 조개들의 이야기도 들리는 듯 행복하다.
  도원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어 보인다. 문득 문득 신선의 부러움이 가슴에 움트기 시작한다. 강변에 도착하여 물 밖으로 나올 즈음, 선씨는 자기보다 젊은 아버지를 모시는 것 보다 차라리 신선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입 속의 파란구슬을 물 속에 뱉어버리는 순간 천둥 같은 상제의 노한 음성이 들리며 사람이든 신선이든 나의 영을 거역할 수 없느니라 하셨다.

『사람이 신선이 되지 못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망 때문이니라』
『나를 속인 너의 몸으로 도원의 물길을 막으리라!』
  상제의 노한 음성과 함께 손씨는 그 자리에서 다리부터 점점 크다란 바위덩어리로 변하기 시작하는 순간 "어머니-!" 하고 부르며 들어올린 왼손이 물위로 나오는 바람에 천도는 없어지고 강물 위로 다섯 손가락만 솟아올라 바위가 되었으니 이 바위를 섬진강의 오지바위(五指岩)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지금도 오지바위 밑에는 깊은 동굴이 있는데 무등산 꼭대기까지 연결이 되어 있어 섬진강 이무기가 이 굴을 통해 하늘로 승천한다고 말하시며, 무등산에 안개구름이 짙게 끼는 날은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는 날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래서 무등산(無等山)을 무등산(霧登山)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말씀하시며, 다시는 광평 오지바구 앞에서 목욕하지 말아라 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특히 부모님에게 불효하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거짓말 잘하는 아이들은 절대 오지바구 있는데서 목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매년 섬진강에 빠져죽는 사람들은 아마도 거짓말을 많이 하는 아이들일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이야기를 다 마치신 아버지는 '이것이 너의 외갓집 보성 선씨 가문의 전설이다' 하시며, 시조 선윤지(宣允祉: 호 退休堂)는 원래 명나라 사람으로 문연각 학사였는데 고려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전라도 안념사(按廉使)가 되어 전라도 일대에 침입하는 왜구를 소탕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유교의 진흥과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이셨다 한다. 그 후 조선이 개국되자 은퇴하여 신선이 되는 도를 닦으셨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전해졌단다.

 나는 그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어머님이 유별나게 무서운 것도 이상하지 않았고 그 후 중학교 입학 할 때까지 아마도 광평 송림의 오지바구 있는데서 목욕을 하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