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이진원  

오지바위(五指岩)의 전설  

   너무나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라 안달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허락을 얻어 집으로 빨리 들어갈까 궁리만 하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 늦둥이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지긋한 웃음이 입가에 돈다.
  일찍 집에 돌려보내 봐야 아버지와 함께 들어오라고 일렀는데 그간을 못 참고 먼저 집으로 들어온 나를 어머니가 그냥 둘 리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시고, 어차피 밤늦도록 밭을 지키고 있다가 함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과 가을 추수농번기가 되면 다른 친구들은 여행이나 캠핑을 간다고 하는데 나는 어머니의 엄명에 따라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지 않고는 어머니와 약속한 것이 있어 그 무서운 벌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여름이면 수박과 참외, 가을이며 배추와 무를 한 두 포기를 장난삼아 빼어 가는 서리 가 아니고 해질녘이나 이른 새벽이면 시장을 파한 수레몰이꾼들이 소 말 달구지를 대어놓고 밭두렁채로 훔쳐 가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버지는 보통 해질 무렵부터 새벽까지 언제나 감시를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식사시간 교대를 해 드리거나 새참을 갖다 드리기로 어머니와 약속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육이오 사변이 일어나기 전 유달리 무덥던 여름밤이다. 어둠이 깔리자 너뱅이 강둑에 인기척이 그치고 등뒤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이 솔 냄새를 풍긴다.

"구용아!"
"예 아버지."
"요새도 너 들이 광평서 모욕 많이 하재?"
"……"
"니는 광평서 모욕하면 절대 안된다이."
"……"
"오지바구 알 재…응?"
나는 입을 쫑 곳이 세우고 대답도 없이 멍청히 아버지 옆모습을 처다 보는데
"그 오지바구가 말이다 죽은 사람 손인 기라 니 그 아나…응?"
"예…?!"
"오지바구 전설 얘기 해줄거나?"
"예…"

  나는 머리가 쭝긋 서며 소름이 확 끼쳤다. 어둑해진 저녁의 들판 주위가 갑자기 무서워진다. 엉덩이 오금 밑에 땀이 났는지 축축한 것 같아 털고 일어서서 아버지 옆으로 붙어 앉으려 하니, 아버지는 집단 한 모서리를 밀어내 주시며 가까이 앉으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
  아버지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는 듯 포근하다. 그리고 아버지는 헛기침을 두어 번하시더니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생길 때지…"
  전라도 보성에서 효성이 지극한 한 효자가 살았는데 성이 선 씨고 자가 유지라는 한 중국사람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어머니가 시름시름 하더니 병환이 갑자기 위독하여 조선 천지를 다니며 한의를 모셔왔으나 어머니의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였고, 어머니는 기어이 말문을 닫은 채 그 해 겨울을 넘기게 되었다.
  효자는 하얗게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저녁에 머리를 깎고 찬물에 목욕을 한 후 삼베옷을 입은 채로 어머님 곁에서 치성을 다하여 봉양을 드리고 있는데, 싸리문 밖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하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 오면서 가슴을 흔드는 듯 하였다.

"어이할꼬 부모만 알고 부처를 모르니 세상이 난세로고!"
 효자는 이상하여 밖으로 나가 스님을 모시고 들어와 어머님을 보이시며 병환을 설명하여 드렸다.
"여름 것을 겨울에 찾으시니 운명이 저주로다."
 효자가 연유를 물어보니, 도원의 천도복숭아를 얻어 즙액을 드시게 하면 말문이 열릴 것이라 하시며 개나리 봇짐을 덜 쳐 메고 눈길을 떠나려 한다. 효자 선 씨는 황급히 막아선다.
"시장 끼라도 면하고 가시오"
"급한 이는 내가 아니외다"
 눈보라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할 때까지 멍청히 서있는 효자를 돌아보고 중얼거리듯 말하며 사라진다.
"딱하구려, 뱃길이 얼어 세존인들 가겠는가!"
"용왕에게 물어 갈 수 있을지!?"
 효자는 통나무처럼 얼어버린 몸을 비비며 집으로 들어와 벽에 기대앉아 깜박 졸다가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 하소연을 하였더니 알 수 없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신다.

"기다리지 않는 산밑에 두꺼비가 산다는 강으로 가보라."
 세월을 기다리지 않는 산은 무등산(無等山), 두꺼비가 사는 강은 섬진강을 말하는 것이다. 선씨가 이곳을 찾아 와보니 무등산은 어머님 품같이 양팔을 벌리고 아들을 안아 젖을 주는 듯한 형상이고, 치마폭 아래의 절벽 밑에 강변이 있었다. 효자는 꽁꽁 얼어버린 강 안으로 들어와 어음을 깨고 울면서 목이 메이도록 고함을 질러댄다.

"용왕님 천도복숭아를 구해 주세요!"
"도원으로 데려가 주세요!"
 애절하게 부르기를 계속하던 사흘째 되는 새벽이었다.
 파란 여명을 뚫고 몽롱해진 눈앞에 섬광이 비치며 강 위로 솟아난 황금덩어리 같은 잉어 한 마리가 효자의 가슴팍에 떨어진다.

"한번만 살려 보내주세요"
 어디선지 애원하는 말소리가 들려 응급 결에 황금잉어를 강물 속으로 넣어 주었다. 한 동안 물 속에 소용돌이가 일더니 조용해졌다. 통곡을 하며 용왕을 부른지 또 사흘이 되던 날 저녁 무렵 물 속에서 소용돌이가 일더니 황금빛이 번쩍하고 눈앞을 가리더니 얼음 구멍 저편에 해맑은 얼굴의 소년이 미소를 머금고 앉아 조용히 말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 이곳을 지나다가 아저씨 울음소리를 듣고 경거망동하게 나왔다가 아저씨 옷자락에 몸이 감겨 물로 돌아가지 못할 번하였는데, 아저씨가 저를 살려 주셨습니다."
"뭐라고-?"
"아저씨의 통곡소리가 또 들리기에 사연을 알고싶어 조심하며 나왔습니다."
"동자는 도대체 누구요?"
"海水龍王의 셋째 왕자로 강을 다스리고있습니다."
"지난번의 은혜에 인사도 없이 떠났다가, 삼 귀 일이라 여기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효자는 어머님의 병환에 도원의 천도복숭아가 아니면 살릴 길이 없다고 말하고 용왕께 빌어 보라는 도인의 말을 자초지종 전하여 주었다.
"한번은 도와 드릴 수는 있으나…, 효자께서 감당하실 수 있을지…"
"목숨인들 못 바치겠소!"
"나의 천명도 은인에게 달려있습니다."  
"약속은 남의 생명도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리다."

  선씨가 약속하자, 그렇다면 섣달그믐자정까지 두 사람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게 튼튼히 만든 큰 명주실타래 12개를 매듭 없이 이어 가지고 이곳에 와서 저를 불러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만약 약속을 어기면 해수문(海水門)은 닫히고 완자는 용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방황하다 황금빛깔을 잃고 섬진강 이무기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잉어왕자는 비장한 결심을 하듯 싸늘한 하늘을 바라본 후 강 물 속으로 사라진다. 엊그제 동지가 지난 한겨울에 명주실을 뽑는 데가 어디 있으며, 보름 남짓한 날짜에 그토록 많은 큰 명주실타래 12개만 구하려해도 어려운 일인데 두 사람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 이음새 없이 이어놓아야 한다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이성에서 최선을 다하면 할 수가 있는 일이다. 도대체 그 길이가 수 천 수 만리나 되는데 이렇게 긴 명주실을 어떻게 구하고, 그것을 구해온들 어디에 쓴단 말인가!    이야기를 하시던 아버지께서도 탄식을 하시며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듯 무성영화 변사처럼 혀를 쯧 쯧 차시며 실감나게 표정을 지으시며 재미있게 연출형식으로 설명을 해주신다. 나는 미리 더 알고싶어 더 조급해진 마음으로 머뭇하시는 아버지께 다급히 묻는다.

"아버지, 그 사람이 명주실은 구했심니꺼 예…?"
 아버지는 어험 흠 큰기침을 하시고 난 뒤, 작고 낮은 목소리로 나를 다정하게 돌아보시며
"그럼 구하고 말고, 명주실을 구해오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길다. 이번에는 빼고 다음에 따로 하기로 하자 에이?…"
"다음에 꼭 해주이소 이?"
"그러마"
 대답하시고는 허리춤에서 짤막한 곰방대를 꺼내어 담배쌈지의 꽂아 한참을 만지작거리시며 연초를 꾹꾹 담아 넣으신 담배 위에 쑥 솜을 하얀 차돌과 함께 올리시고, 강철편(鋼鐵片: 야쓰리-쇠 줄)으로 부싯돌을 치 면 어두운 밤중에도 뻔쩍 빛나며 쑥 솜에 단번에 불이 붙고 처음은 쑥 타는 냄새가 몽개몽개 나다가 서서히 빨라 당기는 곰방대에 담뱃불이 붙으면 아버지의 특유한 담배 냄새가 강바람을 타고 나에게 옮겨진다.
  그 때의 담배 냄새가 요즈음처럼 싫지 않았다.

"아버지! 성냥으로 부치면 안 싶십니꺼?"
"뭐가 급해서! 어둡고 바람 부는 밤에는 부싯돌이 더 낫다 야, 불도 안 무섭고…"

 나는 참 신기하게 느껴져 언젠가 아비지 몰래 나도 한번 해 보았으나 아버지처럼 도시 부싯돌에 불꽃도 잘 안 나고 쪼그마케 나는 불티가 쑥 쏨에 불꽃도 붙지 않았다.

"어 흠, 아까 어디까지 했 재?"
"명주실타래 구해오는 것부터 예."
그렇게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듯 하시다가
"한시간이 넘었재?"
"내일 또 와서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언제 가실 낀데 예?"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나도 가야지. 니, 배고프재?"
"예…"

 오늘은 정말로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아버지가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실 줄은 진짜 몰랐다. 아버지와 함께 생글거리며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신 어머니께서 대견하다는 듯이 칭찬을 해 주신다. 회초리만 때릴 줄 아시는 어머니로부터 난생 처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진짜 이상하게 좋았다.  

"구용이가 아버지하고 같이 들어오다니 이제 장군이 다 되었구나!"
아버지가 인자하게 웃으시며
"내일도 같이 들어 올 끼 거만…"

  어머니께서 늦게 차려 주시는 아버지와의 겸상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버지가 꼭 삼분지 일을 남겨주시는 하얀 쌀밥을 내가 다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는 내가 항상 밥을 빨리 먹고 먼저 일어나는 것을 불러 앉히시고, 어른과 겸상을 하면 수저는 어른 보다 늦게 들고 찬도 어른이 들고 난 뒤 남는 것을 먹어야 하며, 어른이 수저를 놓은 뒤에 제 수저를 놓고 직접 상을 물려드리는 예절을 가져야 선비가 된다고 하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