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는 指導者의 어린 時節

SARTRE, JEAN PAUL

  이튿날 아침에 류씨앵은 학교에서 기가를 보자 가슴이 죄어오는 것 같았다. 기가르는 엉큼한 얼굴을 하고 그를 못 본체 했다. 류씨앵은 화가 치밀어 노트도 제대로 받아쓸 수 없었다.
  <고약한 자식 같으니!>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강의가 끝나자 기가르는 류씨앵의 곁으로 다가왔다. 안색이 창백하였다. 류씨앵은 겁이 났다.<저 녀석이 까불면 한 대 멕여 줄 테다.>하고 류씨앵은 생각하였다.
  그들은 잠시 서로 마주 서서 구두끈만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이윽고 기가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런 실수를 해서 미안하게 됐네.」
  류씨앵은 깜짝 놀라면서 으아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가가르는 괴로운 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그자를 검도장에서 처음 만났네. 그래서 말이야, 우리는……시합을 같이 했지. 그후에 자기집에 초대를 받았네. 그러나 물론 내가 잘못한 거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초대장을 보낼 때, 그런 생각은 마처 못했거든…….」
  류씨앵은 여전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분은 풀어졌다. 기가르는 고개를 숙인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아 한번 실 수 했기로서니……」
 「자넨 바보네.」
하고 류씨앵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나도 자네가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지 않네.」
  류씨앵은 너그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그런데 나도 잘못했어. 상스러운 짓을 했으니까.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유태인과는 살이 닿는 것이 싫으니까. 아주 생리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었거든, 놈들의 손에는 비늘이라도 돋아있는 것 같에. 피에렛은 나더러 뭐라고 하던가?」
 「미친 듯이 웃기만 하더군.」
하고 기가르는 서글픈 듯이 말하였다.
 「그리고 그놈은?」
하고 류씨앵은 물었다.
 「눈치를 채었네. 나는 애써 달래 보았지만 15분쯤 있다가 꽁무늬를 빼어 버렸네.」
  기가르는 여전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네가 옳다는 거야. 신념ㅇ,ㄹ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지 뭔가.」

 류씨앵은 <신념>이라는 말을 되씹어 보았다. 그는 기가르를 힘껏 껴안고 싶었다.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야. 친구 사이의 일인데 뭘 그래.>하고 그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면서 생 밋쉘 거리를 내려왔다. 그는 자기가 이미 다른 사람이 된 듯 하였다.
  그는 생각하였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나 자신을 몰라보게 되었다.) 아늑하고 부드러운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봄소식을 듣고 놀란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거닐고 있었다. 류씨앵은 군중 속에 쐐기라도 박는 듯이 뚫고 들어갔다. <이것은 이미 내가 아니다>류씨앵은 어제밤만 하여도 페롤의 귀뚜라미처럼 부풀어오른 벌레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속도계(速度計)처럼 맑고 정확한 기분이었다. 그는 라쑤우르스로 들어가서 베르노를 주문하였다. 동지들은 이 카페에 이방인들이 들끓는다고 해서 드나들지 않았지만, 오늘은 이방인이나 ㅇㅍ태인이 류씨앵의 비위를 조금도 거슬려주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 바람에 나부끼는 보리이삭처럼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류씨앵은 자기자신이 이상하게 공포에 사로잡혀, 마치 기괴한 큰 시계가 번쩍거리며 걸상에 걸터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지난 학기에 법학부의 복도에서 이 J·P에게 얻어맞은 몸집이 작달막한 유태인을 알아보고 흥겨워졌다. 그 똥똥하고 침착해 보이는 괴물에게는 매맞은 자국이 전혀 없었다. 한때 상처를 갖고 다니다가 다시 동그랗게 얼굴이 소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 비굴한 체념과 같은 것이 드러나보였다.
  그는 한동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노곤한 모양 하품을 하였다. 햇살에 코구멍이 간지러웠다. 그는 코를 후비고 나서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것은 미소였을까? 차라리 어느 방구석에서 일어나 그의 입술 위에서 사라진 일종의 진동이 아니었을까?

 외국인들은 모두가 어둡고 무거운 물위에 떠 있어, 그 소용돌이가, 흐물흐물한 살을 흔들고, 팔을 치켜올리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입술과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불상한 놈들!> 류씨앵은 그들을 동정까지 하였다. 뭣하러 프랑스에 온 것일까? 그 어떤 해류(海流)가 그들을 이곳에 몰아다가 내던졌을까? 생·밋쉘 거리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어도 해파리밖에 못되는 녀석들이라 별 수가 없다. <나는 해파리가 아니다. 그런 가엾은 동물일 수는 없다. 나는 물속에 뛰어들 수 있으니까.>하고 류씨앵은 생각하엿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카페와 외국인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하나의 잔등만 눈에 띄었다. 그것은 근골이 장한 잔등으로 조용한 힘에 휩쓸려 멀어져가고 안개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기가르도 보였다. 기가르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잔등을 바라보면서 눈앞에 보이지 않는 피에렛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쯤 실수했기로서니……>류씨앵은 커다란 기쁨을 느겼다. 그 억세고 고독한 잔등은 바로 자기자신의 잔등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어제 일어났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 무던히 애써 기가르의 몸이 되어 자기 등을 기가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그는 기가르의 굴욕을 몸소 느끼고 달콤한 전률에 사로 잡혔다. <그들에게 커다란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자 무대가 갑자기 변하였다.

  그것은 피에렛의 방에 일어날 앞날의 장면이었다. 피에렛과 기가르가 신중한 얼굴로 초대자의 명부에 오른 이름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류씨앵은 그 자리에 없었으나 그 세력이 그들에게 미치고 있었다. 기가르가 말하였다. <아니 이건 안돼. 류씨앵을 만나면 경칠 테니까. 그는 유태인과는 아주 상극이야!>
  류씨앵은 다시 한번 자기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류씨앵은 나다. 나는 유태인을 원수로 생각하는 사나이다.> 이 말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입밖에 내었지만 오늘은 어느 때와는 전혀 다를게 생각되었다. 그것은 겉으로 보면 단지 사실의 인정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류씨앵은 굴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든가, <류씨앵은 춤추기를 좋아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혼동할 수는 없다. 춤을 추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저 유태인 녀석들에게도 있을 수 있다. 그건 해파리가 발발 떠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놈들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그 기호(嗜好)는 냄새나 피부의 반영(反映)처럼 몸에 찰싹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무섭게 껌벅거리는 눈까풀이나 쾌락이 찐덕거리는 미소와 마찬가지로, 몸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만, 류씨앵의 반유태주의는 이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이를 테면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새파란 칼날처럼 자기자신에게서 나와서 타인의 가슴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다. 거것은…… 그것은 신성하다.>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어릴 적에 때때로 어머니가 야릇한 목소리로 <아빠는 서재에서 일하신다.>고 말하던 생각이 났다. 그말은 갑자기 종교적인 의무감을 깨우쳐주는 신비로운 구절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딱총놀이를 하거나, <쿵, 쿵, 쿵더쿵>하고 떠들어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치 사원(寺院)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발끝으로 복도를 조용히 걸어갔던 것이다. <이제는 내 차례이다.> 만족스럽게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수근 거릴 것이다. <류씨앵은 유태인을 싫어한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기운이 빠져 손발이 괴로운 화살에 마구 찔린 것 처럼 느낄 것이다. <기가르도 피에렛도 어린애야.>하고 그는 동정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큰 죄를 저질렀으나, 류씨앵이 덤벼드는 척만 하여도 곧 뉘우치고 작은 소리로 소근거리며 발끝으로 조용히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류씨앵은 다시 한번 자기자신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가르의 눈을 빌리지 않아도 무방하였다. 그는 드디어 육체의 기호와 습관과 감정의 껍질을 뚫고 직접 자기 눈으로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자기자신을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의 모든 과거에 대하여 성실하고 세심한 검토를 해 보았다.
  <그러나 만일 현재의 나 자신에 머무르게 된다면 나도 저 유태인과 다를 것이 없다. 저놈의 끈적끈적한 내부를 아무리 깊이 파보아도 육체의 비애와 평등이란 비열한 허위와 무질서 밖에는 찾아 볼 것이 없다. 첫째 격언 자기자신을 통찰하지 말 것, 그보다 더 위험한 과오는 하고 류씨앵은 생각하였다. 참된 류씨앵은 이제 진정한 자아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말게 되었다. 그것은 타인의 눈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피에렛이나 기가르의 비겁한 복족 속에서, 그리고 류씨앵을 위해 자라나는 모든 사람들, 즉 그의 직공이 될 젊은 견습공들――언젠가 그가 시장(市長)이 될 페롤의 어른들과 아이들, 그 모든 사람들의 희망에 충만한 기대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류씨앵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자신이 너무 위대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의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류씨앵은 언제나 그 모든 사람들의 큰 기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지도자라는 것이다.>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시 근골이 장한 그 둥근 잔등이 보이고, 그 뒤에 커다란 사원(寺院)이 떠올랐다. 류씨앵은 그 속에서, 유리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조용히 거닐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나자신이 사원이다!>그는 자기의 옆에 앉은 키 큰 큐바사람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갈색 살결이 흡사 담배 잎사귀 같았다. 이 희한한 발견을 표현 할 수 있는 언어를 반드시 찾아내어야만 하였다. 류씨앵은 자기의 손을 불이 켜진 초처럼 살며시 이마에 가져갔다. 그는 한동안 신성한 명상에 빠졌다. 그러자 언어가 저절로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중얼 거렸다. <그렇다. 나한테는 권리가 있다.> 권리! 삼가형이나 원(圓)과 같은 무엇, 그것은 너무나 완전하여 존재할 수 없을 정도였다. 콤파스로 원을 천개를 그려보아도 단 하나의 원도 만들어낼 수 없다. 직공들은 대대로 류씨앵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그래도 그이 명령하는 권리를 탕진해 버릴 수 없으리라. 권리란 수학의 대상이나 종교의 교리처럼 존재의 피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류씨앵이 바로 그것이다. 즉 그는 그대한 책임과 권리의 꽃다발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기가 우연에 떠다니는 존재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 그의 위치는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태양에, 페롤의 땅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결혼하기 전부터 기대의 대상이었다. 그가 태어난 것은 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존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처음으로 빛나는 숙명의 영상(影像)을 감득한 것이다. 그는 중앙학교에도 조만간 입학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언제이건 관계없다. 그리고 그는 모오를 버릴 것이다. 그 여자는 언제나 그와 자고 싶어 한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녹아 붙은 육체는 이봄의 무더위 속에서 타오르는 시추의 냄새를 내고 있었다. 더구나 모오는 뭇사람의 것이다. 어늘은 내 것이고 내일은 남의 것이니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는 페롤에 살러 갈 것이다. 프랑스의 어디선가 피에렛처럼 명랑한 아가씨, 꽃다운 눈을 한 시골 아가씨가 그를 위해 순결을 지키고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의 매래의 주인, 두렵고 상냥한 남편을 꿈꾸어 보지만 그 모습이 좀처럼 눈앞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쳐녀는 류씨앵만이 자기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슴깊이 깨닫고 있다. 류씨앵은 그 쳐녀와 결혼하며,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될 것이다. 그것은 그의 권리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녀가 밤에 성스러운 몸짓으로 귀엽게 옷을 벗을 때에는 마치 하나의 제물처럼 보일 것이다. 류씨앵은 뭇사람의 동의를 얻어 그 처녀를 껴안을 것이다. 그는 <너는 내 것이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류씨앵에게 보인 것은 다른 누구에게 보여도 안된다는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라의 행위는 그에게 있어서 자기의 소유물에 대한 달콤한 검증(檢證)이 될 것이다. 그이 가장 아름다운 권리, 가장 친밀한 권리, 육체까지도 존경을 받고, 침대에서도 복종을 받는 권리. <나는 일찍 결혼할 것이다.> 그는 또 자식을 많이 두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사업에 대하여 생각하고, 하루 속히 그것을 이어받고 싶었다. 그는 아버지가 곧 죽지 않나 하고 자문해 보았다.

  시계가 오정을 쳤다. 류씨앵은 일어났다. 그는 완전히 변신(變身)을 한 것이다. 한시간 전에 이카페에 들어온 것은 귀엽고 결달성이 없는 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간 것은 한 어른이며, 프랑스의 한 지도자였다. 그는 프랑스의 빛나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몇 발짝 내어디뎠다. 에콜르거리와 생·밋쉘 거리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어떤 문방구점 유리창에 자기 얼굴을 비쳐보았다. 그 얼굴에서 그는 존경하는 르모르당의 얼굴처럼 무뚝뚝한 표정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유리창은 아직 그다지도 두렵지도 않은 귀엽고 애띤 고집통이 얼굴밖에는 비쳐주지 않았다. <수염을 길러야 되겠다.>하고 그는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