壁

SARTRE, JEAN PAUL

   그는 팔을 치켜들고 지하실을 뛰어다니다가 짚방석에 위에 쓰러져 흐느껴 울었다. 톰은 침울 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 이제는 위로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소년은 우리보다 더욱 소란을 피웠으나, 우리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그는 마치 열(熱)의 힘으로 병과 사우는 환자나 다름이 없었다. 그 열도 없게 되면 훨씬 위독한 것이다.

  그는 울고 있었다. 자기자신이 가엾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죽음 자체를 생각하고 있는게 아니다. 나는 한때나마 나 자신을 가엾게 생각하여 울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소년을 힐끗 바라보니, 울어서 들먹이는 작은 어깨가 눈에 띄었다. 나는 갑자기 냉혹해졌다. 나는 타인은 물론 나 자신도 가엾게 여길 수는 없다. 나는 마음 속으로 <깨끗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톰은 자리에서 일어나 둥근 천장 아래로 가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깨끗이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의사가 시간을 알려준 후로, 시간이 한 방울 한 방울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 어둠컴컴하였다. 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
 「응!」
  넘들이 뜰안을 걸어오고 있었다.
 「뭣하러 왔을까? 설마 어두운 데서 총은 쏘지 못할 텐데.」
  이윽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톰에게 말하였다.
 「먼동이 트네.」
  페드로가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 등불을 끄고 동료 간수에게 말하였다.
 「추위가 지독하군」
  지하실에 희미한 빛이 비치고,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시작이군.」하고 나는 톰에게 말하였다.
  톰은 의사에게 담배를 한 대 달라고 하였다. 나는 담배 생각이 없었다. 술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놈들은 그때부터 계속해서 총을 쏘아대었다.
 「알겠나!」하고 톰이 말하였다.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문이 열리더니, 중위가 네명의 졸병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톰은 담배를 떨어드렸다.
 「스타인 복크는?」
  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페드로가 그를 가리켰다.
 「후앙 비르발은?」
 「짚방석에 앉아 있는 놈입니다.」
 「일어서!」
  후앙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사람의 병정이 소년의 겨드랑 밑에 손을 넣어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손을 빼지 곧 쓰러져 버렸다. 병정들은 망서렸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을 보나? 둘이서 들고 가. 현장에서 적당히 처리할테니까.」   중위는 톰을 향해 말하였다.
 「어서 가!」

  톰은 두 병정 틈에 끼어 나갔다. 그 뒤를 다른 두 병정이 소년의 겨드랑이와 넓적다리를 들고 따라섰다. 기절한 것은 아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뺨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따라 나서려고 하는데 중위가 길을 가로막았다.
 「네가 이비에타지?」
 「네.」
 「넌 여기서 기다려! 나중에 부르러 올 테니까.」
  모두들 밖으로 나갔다. 의사와 두 사람의 간수도 나가고 나만 혼자 남께 되었다. 나는 곡절을 알 수가 없었다. 빨리 당했으면 싶었다.

   거의 같은  간격을 두고 총질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번번이 몸서리를 쳤다. 고함을 치고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호주머니 속에 두 손을 넣고 있었다. 끝까지 깨끗이 감당하고 싶었다. 한 시간즘 자나서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여송연 냄새가 나는 어느 2층 방으로 끌려갔다. 방안은 무더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두 사람의 장교가 안락의자에 앉아서 무릎 위에 서류를 올려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비에타지?」
 「네.」
 「라몽 그리스는 어디있나?」
 「모르겠습니다.」
  키가 작달막하고 똥똥한 사나이가 나를 취조하였다. 그는 코안경을 쓰고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이리 와!」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땅속으로 쳐넣기라도 하려는 듯이, 사납게 노려보면서 힘껏 팔뚝을 움켜쥐었다.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위협하려는 연극이었다. 이어서 그는 내 얼굴에 구린 입김을 내뿌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나는 차라리 웃고 싶었다. 죽어가는 인간을 억누르려고 하면, 그런 정도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건 전혀 효과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나를 와락 떠밀고 다시 위자에 앉았다.
  「지금 네가 죽느냐, 그놈이 죽느냐 하는 판이란 말이야. 그놈이 있는 곳만 알려 주면 네 목숨은 살려 줄 테다.」

   회초리를 손에 들고, 장화를 신은 이 얼굴이 번드레한 두 사나이도 역시 나중에는 죽어야 하는 인간이다. 나보다 좀 늦게 죽을지는 몰라도 그다지 오랜 뒤의 일은 아니다.
   놈들은 서류를 뒤적이면서 명단을 찾느라고 애쓰고, 다른 사람을 못랄게 굴어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깐에는 스페인의 장래에 대해서나 그밖의 다른 문제에 대하여 제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었다. 놈들의 자질구레한 행동을 보니 내 눈에는 불쾌하고 우습기 짝이 없었다. 나는 도저히 놈들과 같은 심정이 되어 볼 수가 없었다. 미친 놈으로 보일 뿐이다.

   그 동똥한 사나이는 자기 장화를 채찍으로 때리면서 나를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민첩하고 사나운 야수와 같은 태도를 취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때, 바른대로 말해봐!」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가 마드리드에 있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장교는 피로한 듯이 핏기 없는 손을 쳐들었다. 그런데 이 피로한 듯한 태도를 해 보이는 것도, 역시 까닭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놈의 수작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런 짓을 재미있어하는 인간이 있다니,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었다.
 「15분 동안 여유를 줄테니 잘 생각해 봐.」하고 그는 천천히 말하였다.
 「이 자를 피복창고 쳐넣었다가 15분 후에 다시 끌고 와. 끝까지 부인하면 당장에 처치할 테다.」

  놈들은 연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하룻밤을 새워왔다. 그런데 놈들은 톰과 후앙을 총살하는 동안에 나를 한시간이나 지하실에서 더 기다리게 하였다가 이번에는 피복창고 속에 가두는 것이다. 아마 다 미리 짜 놓은 것이리라. 놈들은 인간의 신경이란 결국은 해이해지게 마련이라고 생각하여 나를 그 지경에 몰아넣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나는 피복창고에 끌려가지 피로에 못이겨 의자에 앉아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놈들의 제의(提議)에 대한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물론 그리스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 시내에서 4킬로 쯤 덜어진 사촌의 집에 숨어 있는 것이다. 나는 고문을 당하지 않는 한 <놈들은 그런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숨어 있는 곳을 대 주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것은 이미 마음속에 결정하고 있었으므로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다. 다만 나는 내가 뭣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놈들에게 그리스를 넘겨 주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왜 그럴까? 나는 벌써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에 대한 우정은 날이 밝기 얼마 전에 콘챠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삶의 애착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물론 아직도 그를 존경하고는 있다. 그러나 내가 그 대신 죽으려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목숨이 내 목숨보다 더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의 목숨도 가치는 없는 것이다. 한 인간을 벽에 기대 세워 놓고, 그가 죽을 때까지 총을 쏘아댄다. 그것이 나든, 혹은 그리스이든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가 스페인을 위해 나보다 훨씬 유익한 인간임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스페인도 무정부주의도 안중에 없다. 이제는 모든 것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 여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를 놈들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거절하고 있다. 우스꽝스럽게 생각 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고집에 불과하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거 무슨 외고집이냐!> 그러자 영문로를 유쾌한 기분에 싸이는 것이었다.

  놈들은 나를 두명의 장교 앞으로 끌고 갔다. 발밑에서 쥐가 한 마리 튀어나왔다. 나는 그게 재미있어 병정에게 말하였다.
 「쥐 봤어요?」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울한 얼굴을 하고 싶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웃고 싶었으나 한 번 웃으면 좀처럼 그치 수 없을 것 같아서 참기로 하였다. 그 병정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말을 건네었다.
 「그 수염을 깎아 버리는 게 어때요?」
  털투성이가 된 얼굴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우습게 보였던 것이다. 그는 나를 슬거머니 걷어찼다.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때, 생각해 봤어?」
  똥똥한 장교가 물었다. 나는 신기한 곤충이라도 바라보듯이 의아한 눈으로 장교를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네, 그 사람 숨은 데를 알고 있어요. 무덤 속이 아니면 무덤 파는 인부의 오두막에 숨어 있어요.」
  나는 놈들을 골려 주려고 하였다. 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띠를 졸라매면서 분주히 서두는 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과연 놈들은 벌떡 일어났다.
 「좋아. 모레스, 로페스 중위한테 가서 병정 15명을 보내라고 해.」
  이어서 그 똥똥한 장교는 나한테 말하였다.
 「네가 사실대로 말했다면 약속을 지키지만, 거짓말을 했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해.」

   나는 병정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놈들이 잠시 후에 어떤 낯짝을 하고 돌아올까 하고 생각해 보니 절로 웃음이 터졌다. 머리가 멍청해지고 짖궂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놈들이 묘석(墓石)을 들어내고 무덤의 문을 일일이 열어보는 꼴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나는 마치 자기자신이 딴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현재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다.

  영웅이라도 되려는 듯이 버티고 있는 포로, 심각한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국민당원, 무덤 사리를 뛰어다니는 병정들―― 모두가 배꼽을 뺄 지경이었다.
   30분쯤 지나서 똥똥한 장교가 돌아왔다. 나를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러 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다른 놈들은 아직 묘지에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장교는 나를 바라보았다. 허청거리는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자를 다른 놈들과 함께 근 마당으로 끌고 가! 전쟁이 끝나면 정식으로 재판을 열어 죄상을 판결할 테니까.」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럼……나는 총살을 하지 않습니까?」
 「어쨋든 지금은 총살 안해. 나중 일은 난 몰라.」
  나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대답 대신 어께를 치켜올렸다. 병정들이 나를 데리고 갔다. 큰 마당에는 포로가100명쯤 모여 있었다. 여자도 있고, 아니도 있고, 노인도 몇 사람 보였다. 나는 한복판의 잔디밭 주위를 돌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얼떨떨하였다. 열 두 시가 되자 식당에서 점심이 나왔다. 몇몇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아는 사람 같았으나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는 자기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녁때에 새로 포로를 열명쯤 끌고 왔다. 그 가운데는 빵가게를 하는 가르시아가 보였다. 그는 나에게 말하였다.
 「자넨 운이 좋군. 자네가 살아 있어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놈들이 날 총살한다고 하더니 생각을 달리 한 모양이네. 무슨 영문인지 나도 모르겠어.」
 「난 두 시에 붙잡혔네.」
 「왜?」
  가르시아는 정치에 관계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알어? 놈들이 저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모조리 잡아들이는 판이니까.」
  그는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그리스가 죽었다네.」
  나는 온몸이 떨려 왔다.
 「언제?」
 「오늘 아침. 그 자도 어리석은 짓을 했지 뭔가. 화요일에 사촌과 언쟁을 하고 집을 나온게 탈이었네. 숨겨 줄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만, 남의 신세를 지기가 싫다는 거야……. 이비에타의 집에 가서 숨어 있어도 좋겠지만 놈들에게 잡혀 갔으니, 묘지에나 가서 숨겠다고 하더니 그만…….」
 「뭐, 묘지에?」
 「그래, 그게 화근이었네. 놈들은 오늘 아침에 그리로 몰려갔지 뭔가. 그러니 잡힐 밖에. 놈들은 묘지 인부들의 오두막에서 그를 발견하게 된 걸세. 그래 즉석에서 쏘아 죽였다네.」
 「묘지에서…….」
  나는 사방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제정신이 들어서 보니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고 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