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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O·헨리(본명은 윌리엄·시드니·포오타;Wiliam Sydney Porter)는 노오드케롤라이나州의 길포오드·카운티의 그린즈브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르쟌·시드니·포오타는 의사로 평판이 좋았으나, 나중에 말명에 열중하여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어머니 메아리·젠·버지니아·수에임은 才媛으로서 그림, 문장에 능했다.

어머니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O·헨리는 고모 라이나·포오타 밑에서 자랐고, 그녀가 경영하는 사숙에서 공부했다. O·헨리는 이 고모의 지도로, 스코트, 디킨즈, 삭카레이, 윌키, 코린즈, 듀마 등을 애독했다. 특히 디킨즈는 전작품을 되풀이 하여 읽었다고 한다.

이때까지 O·헨리는 친구들과 각지를 여행했다. 이 해부터 백부가 경영하는 트럭 가게에서 일을 보게 되었다.

3월, 택사스주 코타라로 가서 목동 생활을 했다. 여기서 프랑스어, 독일어 독학을 시작했다가 스페인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도 소홀히하지 않아 항시 헵스터 사전을 옆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9월, 목동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 州의 오스틴으로 나가, 잠시 약품회사에 근무했다.


토지회사에 근무, 급료는 100불을 받았다.


O·헨리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 에이졸·에스티스와 처음으로 만났다.


텍사스 토지 관리 사무소로 전근, 7월 1일, 에이졸과 결혼, 새 가정을 이룩했다. 에이졸은 그때 19세. 부인의 권유로 쓴 두 편의 소품 <최후의 승리>와 <사소한 실수>가 잡지사에서 채택되고, 6불의 원고료를 받았다. 9월에는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딸 마가렛 태어나다. 부인이 산후 회복이 좋지 않아, 처거로 데리고 갔다.


다시 오스틴을 돌아와서 헌간에 서재를 꾸며, 천 권의 장서를 장만하여 거기서 글을 썼다. 토지관리 사무소를 그만두고 프아스트·내셔널 은행의 출납계가 되었다. 이 은행에 재직중 신문 발행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여 막대한 빚을 지고, 공금횡령죄에 말려들었다. 이로 인하여 에이졸과의 가정생활은 파탄되어 극도로 불행해졌다.

 3월, 은행을 그만두고 주간지 발행에 전념.


주간지 경영이 뜻대로 안돼 4월17일호를 마지막으로 폐간. 11월, <휴스톤·포스트>사에 취직. <포스트>에 게재했던 그의 회화가 호평을 받아, 수입도 늘어 가정생활이 편안해졌다.

2월 11일, 은행돈 횡령죄로 체포당했다가, 부인의 병이 악화하여 보석으로 귀가. 7월, 재판받으러 가는 중 뉴우오올리언즈로 줄행랑, 거기서 신문사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거기서 다시 중미의 혼듀라스로 도망.

 부인이 위독하여 1월 하순에 귀국. 7월 25일, 부인이 세상을 떴다.


재판 경과 5년형을 언도받고, 4월 25일, 오하이오주 형무소에 수용되어 거기서 작품을 썼다.

단편 <휘파람 디크의 크리스마스·스토킹>을 발표. 이밖에 형무소에서 쓴 작품이 12편쯤 된다고 한다.

모범수로서 5년 형기를 3년 3개월로 단축, 7월에 출감. 즉시 처가에 맡겼던 딸 마가렛이 있는 피츠버어그로 가서 창작생활을 계속.

2월, 뉴우욕으로 가서 <에인즈리·매거지인>편집자 길만·호올의 호의로 집필생활을 계속.

<뉴우욕·와르드>지 일요판에 매주1편씩 작품을 제공하기로 계약, 그후 4년간 계속했다.



최초의 단편집 <캬베쓰와 임금님> 출판.


어릴 때의 친구 살리·콜만과 편지 왕래가 시작, 드디어 약혼하기에 이르렀다.


제2단편집<四百萬>출판, 일약 문명(文名)을 떨쳤다.


단편집<손질이 잘된 램프>, <서부의 마음>을 출판. 11월 27일, 살리와 결혼식을 거행, 처가에 맡겼던 딸도 데려다 함께 가정생활을 했다.

<도회의 소리>, <친절한 접목사> 출판. 음주벽과 낭비벽으로 가정생활이 금이 가고, 가을에 부인과 딸을 처가에 맡기고, 혼자서 아파트에서 살았다.

<우명의 길>, <선택권>을 출판 건강을 해친 그는 일단 부인이 있는 내시빌에 가서 정양.


<꼼꼼한 장사>출판. 3월, 처가에서 다시 뉴우욕으로 돌아왔다. 그후 아파트에 들어박혀 원고를 계속 쓰다. 6월 5일, 간장병으로 영면, 처가가 있는 내시빌에 매장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