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두 신사

O.HENRY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있다. 진짜 미국인으로 자처하지 않는 우리가 정든 고향집에 돌아가서 소다를 넣은 비스켓을 씹으면서 현관에 나서면, <어쩌면 펌프소리가 전보다 저렇게 가가이 들릴까>하고 의아하게 생각되는 날 말이다. 이날에 축복이 있을지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우리에게 이날을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청교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러나 누가 청교도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쨋든 만일 그들이 다시 상륙해 오려고 하면, 우리는 단호히 그들을 물리칠 자신이 있다. 뭐 플리마스록크라구? 그것은 꽤 귀에 익은 말 같다. 칠면조 조합이 생긴 후로 많은 사람들이 암탉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워싱턴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추수감사절 공포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신두봉숭아가 많은 늪 동녘의 대도시 뉴욕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아주 제도화하였다.
11월달 마지막 목요일은 1년 중의 유일한 날로, 특히 뉴욕에서는 항구 건너편에 있는 본토(本土)를 생각하게 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이무튼 아날이야말로 가장 독특한 명절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대서양 이쪽에 살고 있는 미국의 전통이 영국의 그것보다 훨씬 빨리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 때가 왔다. 이것은 우리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피 피트는 분수 맞은편 길에서 동쪽에 자리잡은 유니온·스퀘어 공원에 들어가 오른 편에서 세 번째 벤취에 앉았다. 그는 벌써 아홉 해 전부터 추수감사절날 한 시가 되면 여기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 나오는 이야기처럼 좋은 수가 생겼던 것이다. 즉 조끼가 미어지고 온몸이 부풀어오를 정도로 배불리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스타피 피트가 해마다 찾아오던 그장소에 온 것은 하나의 습관에서였다. 흔히 자선가들이 생각하듯이, 가난뱅이들이, 생활에 쪼들린 나머지, 행마다 그때가 되면 유난히 심한 허기증 때문에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피트는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그는 간신히 숨을 돌리고 운신할만큼 진수성찬을 잔뜩 먹고 방금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들은 열매 같은 눈등에서는 개기름이 번지르르 흐르고 부숭부숭한 얼굴에서는 생기가 돌았으며 연신 숨소리를 가르릉거렸다. 그리고 기름진 국회의원의 몸집처럼 칼라가 제대로 맞지 않았다. 한 주일 전에 친절한 구세군이 달아 준 단추들은 마치 강냉이가 튀겨진 듯이 옷섶 둘레에 여기저기 달려 있고, 샤쓰의 앞섶이 벌어져 명치뼈가 드러나 보이므로 보기 흉하였으나 그로서는 신선한 눈송이를 날라다 주는 동짓달의 찬바람이 고마울 정도로 시원하였다. 그는 진수성찬으로 하여 오히려 영양과다증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굴로 시작하여 건포도를 넣은 푸딩으로 끝난 식사는 기름에 튀긴 칠면조며, 군 감자, 치킨, 사라다, 스퀴쉬 파이, 아이스크림 등등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들이었다.이렇게 먹고난 그는 배부른 사람들이 타령하듯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이런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그가 5街 입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커다란 어느 붉은 벽돌집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이집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잘 지키는 두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이국의 뉴욕에 있다는 것조차 염두에 없고 추수감사절이란 단지 워실턴 광장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집에 오래 전에 내려오는 습관의 하나는, 이날에 하인을 뒷문에 세워 두었다가, 저정이 되면 그앞을 맨처음에 지나가는 굶주린 행인을 불러들여 차려 놓은 성찬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스타피 피트는 이날 공원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그 곳으로 지나가다가 이집 하인들에게 끌려들어 대궐의 습관을 지켜주게 되었던 것이다.

  스타피 피트는 한 10분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른 데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척 힘을 들여 고개를 왼편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은 무섭게 튀어나오며 숨이 멎어 버렸다. 그리고 미끌어지지 않도록 징을 박은 구두를 신은 짧은 그의 다리는 자갈 위를 버둥거렸다. 그 늙은 신사가 4街를 지나 앉아 있는 벤취 쪽을 향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9년 전부터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그 노신사는 이곳에 찾아와 스타피를 만나는 것이었다. 노신사는 이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9년 동안 해마다 추수감사절에 여기서 스타피를 만나면 그를 식당에 데리고 가서 으레 그에게 많은 음식을 사주고 그가 먹는 모습을 물끄럼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이런 일들을 무의식적으로 해마다 하고 있지만 그러나 역사가 짧은 이 나라에서 9년 동안이나 그렇게 하였다면 결코 짧은 시간이락고 할 수 없다. 이 노신사는 미국의 성실한 애국자로서 나라에 전통을 세우는 데 있어서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자처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면 그일을 한번도 빼놓지 않고 오랫동안 계속해야 하는 법이다. 산업보험회사가 매주일 10센트의 보험료를 거둬들이는 것이나 또한 거리를 날마다 청소하는 것도 그렇다.
   노신사는 자기가 계획한 연중행사를 정정당당히 곧장 추진해 왔다. 스타피가 해마다 이날에 얻어먹은 것은, 옛날 영국의 대헌장이나, 또는 아침에 잼을 먹는 풍습처럼 어떤 국가적인 성격을 띈 것은 아니었다. 그런자 그러한 성격의 첫단계는 되어 이제와서는 거의 봉건제도처럼 굳어 버렸다. 이것은 적어도 뉴욕, 이를테면 미국에도 습관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노신사는 몸집이 여위고 후리후리한 키에 나이는 60이었다. 온통 검은 옷차림에 콧등에 제대로 붙어 있지 않는 구식 안경을 끼고 있었다. 머리칼은 지난해보다 더욱 희고 엉성해졌으며 구부러진 손잡이가 달린 매듭진 큰 단장에 더욱 몸을 의지하는 듯이 보였다.
   이 낯익은 자선가가 다가왔을 때, 스타핀,ㄴ 숨을 헐떡이며, 마치 주인 마나님의 꽁무늬를 따라가던 쌀찐 개가 거리에서 으르렁대는 큰개를 만난 것처럼, 몸을 떨었다. 큰 개를 만난 것처럼 그는 수째 지향없이 날아라도 가 버리고 싶었지만, 비행선을 만들어낸 산토스 뒤먼트의 재주로도 그를 그 자리에서 뜨게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두 할머니의 하인들은 직책을 잘 완수 한 셈이다.

   「안녕하시오!」
하고 노신사는 말을 건네였다.
   「해가 또 바뀌어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고 잇는 당신을 보니 퍽 반갑소. 우리에게 모처럼 추수감사절이 마련된 것도, 그것을 축복하기 위한 거요. 그럼 나를 따라 오시죠. 당신의 육신도 마음의 행복에 어울리도록 식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노신사가 지난 9년동안이나 추수감사절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이 말 자체가 하나의 입버릇이 되었다. 독립선언서 밖에는 이말과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 전에는 스타피의 귀에 이 말이 한나의 음악으로 들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는 눈물겨운 괴로움울 얼굴에 가득 담고 노신사를 쳐다보았다. 눈송이가 땀이 번진 그의 이마에 떨어지며 금새 녹아 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노신사는 가볍게 몸을 털며 바람을 등지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스타피는 이 노신사가 왜 약간 슬픈듯한 어투로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이 한이 되어 그러는 것을 그는 미쳐 몰랐다. 자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아들이 대를 이어 스터피 앞에 으시대며 나타나,<아버님의 뜻을 받르어…>하고 말할 아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노신사는 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공원 동쪽의 고요한 거리 한쪽에 있는 붉으스럼한 낡은 돌집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겨울이면 큰 트렁크만한 온실에 푹샤꽃을 기르고 봄이면 부활제의 행렬에 끼어 돌아다니고, 여름이면 뉴저지주의 산속 농가를 찾아가 등의자에 몸을 기대고 언젠가는 발견하게 되리라는 진귀한 나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세월을 보내왔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스타피에게 한상 듬뿍 차려서 선심을 썼다. 이것이 이 노신사의 연중행사였다.

   스타피는 몸이 달아오르고 자기자신이 한없이 민망스러워 노신사를 쳐다보았다. 노신사의 눈은 남에게 적선하는 기쁨으로 빛났다. 얼굴은 해마다 주름이 늘어가도 조그마한 검은 나비넥타이를 여전히 단정히 매고, 와이샤스는 새하얗고, 흰 콧수염 끝을 점잖게 감아 올리고 있었다.
   스타피는 노인의 말에 대답한다는 것이 마치 솥에서 콩이 부글브글 끓는듯한 소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자 스타피는
  「선생님 고맙습니다. 따라가지요. 고맙습니다. 저는 정말 배가 고픕니다. 선생님!」
하고 지금까지 아홉 해 동안이나 한결같이 반복한 것처럼,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간주해 버렸다.

   그는 배가 너무 불러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그 노인의 연중행사의 대상이 되어 잇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추수감사절에 갖는 그의 식욕은 결코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현행출소제한법(現行出訴制限法)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의 관습적인 신성한 행위에 의해 선취특권을 가지고 있는 노신사의 것이었다. 미국은 과연 자유의 나라다. 그러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되풀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반복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 영웅이 되려면 반드시 쇠나 금붙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 단지 은으로 도금한 쇠와 양철의 무기만을 휘두르는 영웅도 있지 않은가!

   노신사는 해마다 한 번씩 자기의 뒤를 따르는 이 사람을 만쪽 식장으로 데리고 가서, 어제나 성찬을 대접하던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 사람들도 그들을 알아보았다.
  「저 영감이 또 오시네. 감사절마다 같은 거지에게 한턱 내는 영감말이야.」
하고 급사의 하나가 말하였다.
   노신사는 식탁을 가운데 두고 앉아 진주처럼 빛나는 눈으로 장차 전통의 주춧돌이 될 스타피를 바라보았다.

    급사들은 명절 음식을 식탁 위에 가득 차려놓았다.
  그런데 스타피는, 굶주린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오해를 살만큼 한숨을 내쉬며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불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음식을 뭉턱 잘라먹었다. 이보다 더 용감하게 적진을 향햐 돌진한 영웅이 어디있는가! 칠면조, 고기덩어리, 수우프, 채소, 파이들이 앞에 놓이기가 무섭게 없어지곤 하였다. 그는 식당에 들어올 때 이미 목구멍까지 꽉 차 있었으므로 음식 냄새부터가 손님으로 초대된 체통을 잃어 버릴  만큼 역하였으나 있는 힘을 다하여 騎士의 체면을 유지하였다. 노신사는 얼굴에 자비로운 행복의 빛――일찌기 푹샤꽃이나 진귀한 나비에게서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한 빛――이 보였다. 스타피는 노인에게서 이러한 빛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스타피는 전투에서 이기고 의자에 기대 앉았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그는 구멍남 증기의 파이프처럼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쪽으로 향하였다. 눈이 어지러웠다. 급사하나가 달려와 그를 팽이처럼 돌려세우며 출입문을 가리켰다. 노신사는 은전으로 1딸러하고 30센트를 차근차근 세어놓고 급사에게 5센트짜리 백동전 세잎을 팁으로 주었다.

   두 사람은 해마다 그렇듯이 문앞에서 헤어졌다. 노신사는 남쪽으로, 스타피는 북쪽으로.
   스타피는, 첫길 모퉁이에 가서 이족을 향해 잠시 발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는 올빼미가 날개를 치듯이 누더기 옷을 펄럭거리더니 마치 더위를 먹은 말처럼 행길에 쓸어졌다.
   구급차로 달려온 젊은 의사와 마부는 환자가 무겁다고 투덜거렸다. 술냄새가 나지않으므로 경찰의 순회차에 실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스타피와 함께 두 차례에 걸쳐 먹은 잔치는 병원으로 옮겨졌다.병원 사람들은 그를 침대에 눕혀놓고, 무슨 수술이라도 하려는 듯이 이상한 병은 없나하고 진찰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시간이 자나서 또 하나의 구급차가 노신사를 싣고 왔다. 의사들은 그를 다른 침대에 눕혀놓고 맹장염이라고 떠들어대었다. 노신사는 치료비를 낼 수 있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젊은 의사 한사람이, 눈매가 예뻐서 좋아하는 가호원을 만나 방금 들어온 두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기 누워 있는 노신사 말이야!」하고 젊은 의사는 말하였다.
  「굶어 죽어가는 환자란 말이오. 그야 말로 긍지를 잃지 않은 지체높은 가문 출신이가 보아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