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생긴 일

O.HENRY     

 

  3월 어느날이었다.――여러분이 소설을 쓸 때에 서두를 이런식으로 떼어서는 안 된다. 서두가 아무리 서투르기로서니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써 놓으면 창의성이 없고 평범하며 맛이 없어 다만 바람이 스쳐가는 소리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 소설에 한해서는 이런 서두가 용납될 것 같다. 왜야하면 이 소설은 다음 구절에서 시작되어야 할 터이지만 사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구절을 독자들 앞에 선뜻 내놓으면 터무늬 없는 과장이 되기 때문이다.

   <사라는 그녀의 메뉴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독자 여러분, 메뉴에 눈물을 떨어뜨리는 뉴욕의 한 여성을 머릿속에 그려 보라!
  이러한 광경을 설명하기 위해, 새우가 다 팔리고 없다든가, 혹은 사순절(四旬節)이 되어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는다든가, 또 값싼 양파요리를 주문했다든가, 그녀는 방금 싸구려 극장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상상하여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모두가 터무늬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진행시킬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굴과 같은 것이다.  검(劍)으로 굴을 깠더니 훨씬 큰 소득을 보았다고 말한 신사가 있다. 검으로 굴을 까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은 타이프라이터를 가지고 인생의 조개껍질을 까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방법으로 산 조개를 열두 개 씩이나 깔때까지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 사라는 손에 익지 않은 무기로 조개를 까서 그 속에 그 차겁고 질긴 맛을 조금은 보게 되었다. 그녀는 상과대학 속기과를 갖 나온 사람 정도의 속기 기술 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화려한 일류 회사에서 일을 볼 수는 없었다. 그나마도 그녀는 타이프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여분으로 생기는 자잘구레한 일이나 치우는 것이었다.

  사라가 세상과 싸워나가는 가운데 가장 보람있고 영광스러운 일을 한 것은 슐렌버그 홈레스트랑과의 거래에서였다. 이 식당은 그녀가 세를 들어 있는 붉은 옛 벽돌 건물 바로 옆에 있었다. 그녀는 어느날 저녁에 이 식당에서 다섯 가지 찬에 40센트짜리 정식(흑인의 머리에 야구볼 다섯 개를 던지면 금새 나오는 음식과 마찬가지의 싸구려였다)을 먹은 후에 메뉴 한 장을 갖고 집에 돌아왔다. 그것은 영어인지 독일어인지 거의 분간할 수 없는 펜글씨로 적혀 있었다. 주의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것은 이쑤시개와 라이스 푸딩에서 시작하여 수우프와 연월일로 끝나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었다.

  이튿날 그녀는 슐렌버그씨에게 예쁘장한 카드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요리 이름들이 정하게 씌여져 있는 메뉴였다. 거기에는 <오드 브르>에서 시작하여 여러 가지 요리 이름들을 순서대로 정확하고 단정하게 그리고 구미를 돋구게끔 써 내려가다가 나중에는<외투와 우산은 각자가 보관해 주십시오>라는 글까지 적혀 있었다.

  슐렌버그씨는 당장에 마음에 들어 하였다. 그는 헤어지기 전에 자진하여 계약을 맺었다. 즉 그녀는 식당에 있는 스물 한 개의 테이블에 타이프로 친 메뉴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날 그날의 정식마다 새 메뉴를 공급하되, 아침과 점심은 요리의 종류가 달라지거나 새 메뉴가 필요할 때만, 타이프를 쳐서 보내 주기로 하였다.
   슐렌버그씨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가급적 양전한 급사를 시켜 사라의 방에 하루 세끼의 식사를 날라다 주기로 하는 동시에, 날마다 오후가 되면 단골손님에게 다음날 마련해 줄 메뉴를 연필로 적어서 그녀에게 넘기기로 하였다.

  이런 계약을 맺고 두 사람은 서로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슐렌버그 식당의 손님들은 자기네가 먹고 있는 요리가 무엇인지 몰라 때때로 어리둥절하였지만, 지금은 그 이름을 분명히 알게 되엇으며, 한편 사라는 싸늘하고 음산한 겨울 동안에 식사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력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봄은 제철이 되면 으레 오게 마련이다. 아직도 정월달의 얼어붙은 눈더미가 거리마다 바위처럼 쌓였는데 아코디온은 섣달의 흥청대는 경기의 기분으로 <즐겁고 그리운 여름철에>를 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활절에 입을 옷을 사기 위해 삼십일자로 연수표를 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건물 관리인은 스팀을 그만 피우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도 거리는 아직 겨울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것이다.

   어느날 오후에 사라는 자기의 아담한 침실에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소위<난방 완비. 매우 깨끗함. 모든 시설 완비. 일차내람을 요망함>이라는 방이 그 모양이었다. 그녀는 슐렌버그씨의 메뉴가 아니면 일거리가 없었다. 그녀는 버들가지로 되어 삐걱거리는 의자 위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벽에 걸린 달력은 그녀에게 이렇게 소근거렸다.
   <사라양, 봄이 왔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사라양, 나를 좀 쳐다보세요. 내 모습이 그걸 말하고 있지 않아요. 당신도 몸을 아름답게 단장하세요. 아름다운 봄의 모습으로……당신은 왜 그렇게 슬픈 얼굴로 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사라의 방은 이집 뒷켠에 있었다. 그리하여 창밖으로는 맞은편 거리에 있는 제함소의 창문없는 뒤쪽 벽돌담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벽은 투명한 수정처럼 맑게 보였다. 그리하여 그녀의 눈앞에는 벗나무와 느티나무가 그늘지고 딸기 숲과 체로키장미로 이루어진 잔디밭길이 떠올랐다.

  봄 소식은 우리의 눈이나 귀로 알아보기에는 너무나 미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꽃이 핀 크로커스와 숲의 왕자인 산딸기를 눈으로 보거나 파랑새의 노래를 듣고서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밥상에서 메밀이나 굴이 자취를 감춘 것을 분명히 느끼게 되기 전에는 그 둔한 가슴에 <녹의(綠衣)의 여인>을 맞아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비로운 대지의 총애를 받는 어린이들에게는 이 가장 청신한 대지의 신부(神父)로부터, 그들이 워하기만 한다면, 양자로 데려가겠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다.
   <지난 여름에 사라는 시골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어느 농부의 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소설을 쓸 때에는 이처럼 뒤로 물러서서는 안된다. 이건 좋지 못한 기교이다. 따라서 흥미가 없어진다. 그냥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사라는 그때 써느프루크 농장에 두주일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지주인 프랭크린 영감의 아들 월터와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워낙 농부들은 사랑을 하자마자 곧 결혼을 하게 마련이며, 이어서 바로 일터에 나가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월터 프랭트린은 현대적인 농부로 외양깐에도 전화를 놓고 있었다. 그는 이듬해에 거둘 카나다 종자의 밀 수확이 달빛을 못 받는 땅에 심은 감자에 주는 양향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월터가 사랑을 고백하고 개가를 올리게 된 것은, 나무 딸기가 열려 있는 그늘진 그 오솔길에서였다. 둘이는 서로 마주앉아 사라의 머리에 씌울 미들레의 화관을 짜고 서 있었다. 그는 사라의 갈색 머리에 노랑꽃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신이 나서 말하였다.
  그녀는 머리에 화관을 얹은 채 밀짚모자를 손에 들고 내저어며 집으로 돌아왔다.
  월터는 봄이 되면――맨 처음 봄소식이 전해지면 결혼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리하여 사라는 도회지로 돌아와 다시 타이프라이터를 치게 되었던 것이다.

   누가 방문을 노크하였다. 그 소리에 저 행복하던 지난날의 꿈은 흩어지고 말았다.
   급사가 나타났다. 슐렌버그영감이 우툴두툴한 손으로, 홈 레스프랑의 이튿날 메뉴를 서툴게 초를 잡아 연필로 쓴 쪽지를 보내왔다.
   사라는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서 롤러 사이에 카아드를 끼웠다. 그녀는 비교적 재빠른 솜씨로 타이프를 쳤다. 한사간 반이면 스물 한 장의 메뉴를 찍어내는 것이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메뉴의 변화가 많았다. 스프는 전보다 한결 소담해지고 접시에서 돼지 고기가 빠져 나갔으며, 로우스트에는 러시아의 둥근파만 넣기로 되어 있었다. 봄의 아름다운 정기가 메뉴에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푸른 언덕에서 히히덕거리던 양새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새 설탕에 저려서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굴에 대한 찬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점점 꺽이는 기세였다. 프라이팬은 고기를 굽는 기계 뒤에 얹어 놓아 할 일이 없는 것 같이 보였다. 파이로 된 음식물이 늘어나고, 그름기가 많은 푸딩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소시지는 메밀과 고구마의 요리와 함께 시들어가는 꽃의 여명을 겨우 유지해 가고 있었으나, 그것도 단풍의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사라의 손가락은 여름철에 냇물 위에 떠 있는 하루살이처럼 춤을 추었다. 그녀는 요리의 순서에 따라서 각 항목의 적장한 위치를 정확한 눈짐작으로 재면서 타이프를 쳐 나갔다. 디저어트 바로 앞에 야채요리의 목록을 가져오고, 당근과 완두, 아스파라커스와 토우스트, 도마토 및 옥수수 콩을 섞은 요리, 리마이콩, 배추 등등…….

   사라는 그녀가 찍은 네뉴를 보며 울고 있었다. 어떤 신성한 절망의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눈물은 우선 가슴 속에 차 있다가 눈망울에 모여드는 법이다. 그녀의 머리는 조그마한 타이프라이터 위에 수그러졌다. 그러자 키는 눈물에 젖은 그녀의 흐느낌에 메마른 반주를 하듯이 딸가닥거렸다.
   그것은 벌써 두 주일째나 월터에게서 편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뉴의 다음 대목이 미들레――달걀 종류가 붙어 나오는 민들레, 그러나 달걀이 문제가 아니라――저 민들레 때문이었다. 민들레――그 노란 꽃으로 월터는, 그의 사랑의 여왕이자 미래의 신부인 그녀의 머리위에 왕관을 씌워 줬던 것이다.――민들레, 봄소식, 그녀의 슬픔의 왕관――그것은 그녀의 일생을 통하여 가장 행복했던 지난날의 추억이었다.

  여성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시련을 겪기 전에는 그녀를 감히 비웃지 못한다. 당신이 퍼시에게 정을 준 날 밤, 그가 당신에게 갔다 준 장미꽃이, 슬렘버그 식당의 테이블에 앉은 당신의 눈앞에 프랑스식 쏘스를 친 사라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라. 줄리엣이 자기의 사랑의 선물이 그렇게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면, 즉시 약제사를 찾아가 마음의 고민을 앚어 버릴  수 있는 독초를 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봄은 어떤 요술쟁이인가? 돌과 쇠붙이로 된 거창하고 차디찬 이 도시에도 봄소식을 전하는 것은 녹색의 옷을 걸친 겸손하고 다구진 들의 조그만 특사(特使)이다. 이 당·데·리옹, 즉 프랑스 요리인들이 말하는 이른바<사자의 이빨>은 참된 행운의 기사이다. 봄이 되어 꽃이 피면 이 기사는 애인이 밤새 머리에 화관처럼 끼어들어 사랑이 성취되도록 힘이 되어 주기도 하고, 아직 애송이로 망우리지지 않을 떼에는 끊는 솥에 들어가 사랑의 여왕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이윽고 사라는 간신히 눈물을 멈췄다. 메뉴의 타이프를 끝마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민들레의 꿈이 사라지지 않은 가느다란 불빛 아래 타이프의 키를 건성으로 치며 마음은 그 젊은 농부와 함께 거닐던 풀밭 오솔길에 가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다시 돌을 깔아 놓은 맨해턴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타이프라이터는 마치 동맹파업을 진압하는 당국의 자동차처럼 요란스럽게 덜컥거리며 뛰기 시작하였다.

   저녁 여섯 시가 되어 식당 급사는 그녀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고, 타이프로 친메뉴를 갖고 갔다. 그녀는 식사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달걀을 도리어 위에 덮은 민들레 요리를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이 텁텁한 요리가 마치 아름다운 사랑의 증인이 된 꽃을 수치스러운 소찬으로 만들어 버리기나 한 것처럼, 그녀의 여름 한철의 즐거웠던 꿈은 이제 사라져 바렸다. 쉐익스피어의 말마따나 사랑은 그 자신을 먹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라는 난생 처음으로 경험한 진정한 사랑의 정신적 만찬에 하나의 장식물로서 화려하게 등장하였던 민들레를 차마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곱 시 반쯤 옆방에 사는 두 내외가 싸우기 시작하였다. 윗방의 남자는 플류트로 A음(音)을 부느라고 애를 썼다. 취사용 가스가 잘 나오지 않는다. 석탄을 실은 세 대의 추럭이 짐을 부리기 시작하였다.――축음기가 부러워할 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뒷담장의 고양이들은 서서히 물러갔다. 이 모든 신호로 해서 사라는 책을 읽을 시간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트렁크를 놓고 발돋움을 해가면서<수도원과 가정>이라는 책을 꺼내었다. 이달에 제일 팔리지 않는 책이었다. 그녀는 이 소설을 펴 놓고 주인공 제라드와 함께 길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대문에서 벨이 울렸다. 주인 마누라가 대꾸을 하였다. 사라는 곰에게 쫓겨서 나무에 기어오른 제라드와 테니스를 읽다 말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렴, 독자들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자 아래층 홀에서 우렁찬 음성이 들려왔다. 사라는 마룻바닥에 책을 떨어뜨리고 첫라운드에 곰도 무난히 해치울 기세로 출입문 쪽으로 달려갔다.
   독자들은 이쯤 하면 짐작이 가시겠지요. 그녀가 층계의 맨 위에 있을 때 농부는 한번에 세층계씩 껑충껑충 뛰어 올라와,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그녀를 거둬들이는 것이었다.

  「왜 편지 않했어요――뭣 때문에?」
   사라는 울음을 터뜨렸다.
   「뉴욕은 아름답고 큰 도시지요.」
하고 월터는 말하였다.
  「나는 한 주일 전에 당신이 살던 이전 주소로 찾아갔지 뭐요. 거기서 당신이 목요일 날에 이사를 했다는걸 알았어요. 그러나 안심은 되더군요. 악운이 따르는 금요일은 아니니까. 그 후 경찰의 도움을 얻기도 하며, 혹은 다른 방법으로 당신을 찾아다녔오.」
  「어머, 저는 벌써 편지를 냈는데요.」
  사라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래? 받지 못했는데요!」
  「그럼 어떻게 이리로 찾아 오셨어요?」

  젊은 농부는 봄철 같은 모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 저녁에 옆에 있는 홈 레스트랑에 들렸지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누가 들어도 무방하지만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야채요리가 생각나요. 나는 그런게 없나 해서 예쁘게 타이프로 친 메뉴를 훑어보고 있었어요. 그주인이 당신이 있는데를 알려 주거군요.」
  「오라, 이제 생각나는 군요.」
   사라는 행복에 겨워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배추 아래 민들레가 있었어요.」
  「나는 어디 가 있던지 당신의 타이프라이터의 버릇인 글 줄에서 위로 비뚜러진W자의 모양을 보고 알 수 있지요.」
하고 프랭크린이 말하였다.
  「아니, 민들레에 W자가 없을 텐데요.」
   사라는 놀라며 말하였다.
  젊은이는 호주머니에서 메뉴를 꺼내어 어느 한줄을 가리켰다.
 사라는 그날 오후에 자기가 타이프를 친 첫 카아드를 곧 알아보았다. 카아드의 오른쪽 위 한구석에는 눈물이 떨어져 글을 흐려놓은 자극이 그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저 목장의 꽃이름이 적혀 있어야 할 자리에 두 사람의 노란 꽃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이 그녀의 손가락으로 하여금 무심코 타이프의 키를 느르게 했던 것이다.
   호배추와 풋고추전이라는 메뉴 사이에 다음과 같은 품목이 들어 있었다.
   <완숙한 계란이 들어 있는, 사랑하는 나의 월터>(Dearest Walter, with hard-boiled e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