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브로커의 로맨스

O.HENRY

   브로커(仲介業者) 하비·맥스웰 상회에 비서로 있는 핏쳐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아홉시 반에 고용주가 젊은 여자 속기사와 함께 선뜻 들어서자, 적지 않은 흥미와 놀라움까지 느끼는 것이었다.
   맥스웰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핏처! 잘 잤어?」
   그는 마치 뒤어넘기라도 하려는 듯이 자기 책상을 향하여 뒤어갔다.  그러자 곧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편지와 전보의 무더기 속에 파묻혀 버렸다.

   이 젊은 여자는 지난 1년동안 맥스웰의 속기사 일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속기사에 어울리지 않는 미모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유혹적이고 화화로운 폼파드머리는 하고 있지 않았다. 목걸이도 팔찌도 로케트도 차자 않았다. 또 점심 초대를 받고 싶어 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잿빛 양장은 수수하고 단정하고 몸에 잘 들어 맞았다. 그리고 산뜻한 검은 타반의 모자에는 연한 금빛이 감도는 녹색 깃털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오늘 아침따라 어딘가 모르게 수줍은 듯하면서도 명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눈은 꿈이 담겨 있는 듯이 빛나고, 볼은 복숭아 꽃처럼 뽀얗고 얼굴은 추억에 잠긴 행복을 담고 있었다.

 핏쳐는 여전히 호기심에 잠겨, 그녀의 거동이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이상하게 보였다. 그녀는 책상이 놓인 옆방에 바로 가지 않고 앞 사무실에서 서성거리며 무엇인가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윽고 그녀는 맥스웰이 자기 존재를 알아차릴만큼 그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책상에 마주앉은 기계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주히 돌아가는 차바퀴나 풀려나가는 용수철에 의해 움직이는 뉴욕의 분주한 브로크였다.
  「그래……뭐지? 무슨 볼일이 있어?」
하고 맥스웰은 재빨리 물었다. 겉봉을 뜯은 우편물들이, 마치 무대에서 사용하는 눈더미처럼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 잿빛을 띤 그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본래의 성격을 잃어 버리고 새침해지면서 약간 초조한 듯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
   속기사는 방긋이 웃고 물러서면서 대답하였다.
  「핏처씨」하고 그녀는 비서에게 말하였다.
  「사장님이 어제 속기사를 새로 채용한다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 못 들었어요?」
  「네, 말씀이 계셨습니다.」하고 핏쳐는 대답하였다.
  「제가 어제 직업소개소에 후보자 두 세 사람을 오늘 아침에 보내라고 일렀지요. 지금 9시45분인데……타조(駝鳥)의 깃털이 꽂힌 모자도 나타나지 않고 파인애플, 츄임껌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 군요.」
  「그럼 제가 그냥 일을 보겠어요.」
하고 젊은 여자는 말하였다.
  「새로 채용된 사람이 올 때까지 말예요.」
  그녀는 바로 자기 책상에 가서 잉꼬의 금빛 어린 녹색 깃이 꽂힌 검은 타반의 모자를 벗어 걸었다.
  일거리가 밀려닥친 시간에 분주히 돌아가는 맨해턴의 브로커의 꼴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인류학의 권위자가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시인은<인생의 영광스러운 분망한 시간>에 대하여 곧잘 노래를 부른다. 워낙 브로커의 시간은 분망할 정도가 아니라, 일분 일초 앞 뒤로 꽉 차있는 전차처럼 빈틈없이 짜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맥스웰이 매우 분주하였다. 주권시세표시기는 미친 듯이 테이프의 코일을 마구 돌리기 시작하고 탁상전화는 무슨 만성병에나 걸린 것처럼 찌르릉거렸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사무실에 몰려와, 간막이대 넘어로 혹은 즐겁게, 혹은 예리하게 혹은 표독스럽게, 혹은 열띤 어조로 그에게 말을 건네곤 하였다. 급사아이는 편지와 전보를 갖고 뛰어다녔다. 사무실에서 일보는 사원들은 마치 폭풍을 만난 사공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핏처의 얼굴에는 활기가 돌기시작하였다. 증권거래소에는, 태풍과 사태와 눈보라, 빙하 그리고 화산이 터진 것 같았다. 이 브로커의 점포에는 그런 천지개벽과 같은 소동이 소규모로나마 일어났다. 맥스웰은 바람벽에 의자를 대고, 무용가처럼 발끝을 움직이며 사무를 처리해 나갔다. 그리하여 주권시세표시기에서 전화로 뛰어가고 책상에서 출입문으로 달려가며 능숙한 광대같은 솜씨를 보였다.

   일이 점점 클라이막스로 접어드는 중대한 고비에 그는 별안간 벨베트와 타조의 깃털로 된 노딩 캐스피 모자 아래 높다랗게 말아 올린 금발 머리의 털깃과,  모조해서 만든 물개 가죽의 웃저고리와 아랬쪽 가까이에 은으로 된 하트가 달린 호도알 만큼한 구슬 목거리가 눈에 뜨이고, 이어서 이런 소지품과 관계있는 침착한 ㅈ럼은 여성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마침 핏처가 그녀를 알아보게 되었다.
  「속기사 소개소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보낸 여자입니다.」
하고 핏처가 말하였다.
   맥스웰은 종이와 시세표시 테이프를 손에 쥐고 고개를 반쯤 돌렸다.
  「일자라라니?」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속기사 자리 말예요.」
하고 핏처는 대답하였다.
  「어제 사장님께서 저더러 속기사를 부르라고 해서 오늘 아침 한 사람이 찾아온 겁니다.」
  「핏처, 자네 돌았나?」
   맥스웰은 말을 이었다.
  「내가 뭐하러 그런 일을 자네에게 일렀겠나. 레슬리양이 일 잘하고 있지 않나. 나는 불만이 조금도 없어. 레슬리양이 원한다면 그 자린 언제나 그녀의 거야.」
  「손님! 우리회사엔 빈 자리가 없어요! 핏처, 소개소에 부탁한 것은 취소하게. 이곳에 사람을 보내지 말라고 말이야.」

  은으로 된 하트를 단 주인공은 화가 치밀어 사무실의 즙기에 마구 부딪치기도 하고 비틀거리기도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핏처는 장부계원에게 말을 건네는 틈을 타서 사장님은 점점 머리가 흐려져……보통 세상사는 잊어 버렸나보다고 덧붙여 말하였다.
   일거리는 가속도로 재빨리 들이닥쳤다. 마루 바닥에는 여섯 가지 주권이 쏟아져 나왔다. 맥스웰의 단골 손님들이 엄청남 투자를 한 주권이었다. 매매를 위한 주문이 제비 날개처럼 재빨리 오고 갔다.  그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주권의 일부가 위기를 만나자 고도로 정밀하고 강력한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극도로 긴장하였다. 전속력으로 정확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시계처럼 신속하고 민첩히게 적절한 말과 결심과 확고한 태도를 취하였다. 주권과 공채, 대여금과 담보, 구전과 보증금――여기에는 경제의 세계는 있지만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들어박힐 짬이 없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소란은 좀 뜸해졌다.
  맥스웰은 오른쪽 귓등에 만년필을 끼워 놓고 이마까지 흩어진 머리를 하고, 전문(電文)과 메모 종이를 가득 쥔채 책상 옆에 서 있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 문지기인 <봄>이 대지의 선풍기를 통하여 따뜻한 입김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문에서는 이미 잃어 버렸는지도 모를 부드럽고 달콤한 라일락 향기가 흘러 들어와 한동안 이 브로커로 하여금 꼼짝달싹 못하게 사로잡아 버렸다. 그것은 레슬리가 지니고 있는 향기였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그녀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향기였다.

   이 향기가 그의 눈 앞에 그녀의 모습을 뚜렷이, 그리고 어지럼울 정도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경제의 세계는 별안간 조그마한 하나의 짐으로 줄어들었다. 그녀가 바로 옆방에 있다――스무 발짝쯤 떨어진 곳에.
  「암, 인제 해치워야지.」
하고 맥스웰은 나지막한 소리로 줄얼거렸다.
  「지금 무어봐야겠어. 왜 진작 이야기를 못했을까.」
   그는 안 사무실로 날아갈 기세로 뛰어들어가 속기사의 책상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눈웃음을 쳤다. 그녀의 뺨은 연한 홍조로 물들고 눈은 달래는 듯이 유순하였다. 맥스웰은 그녀의 책상 위에 한쪽 팔을 얹었다. 두 손에는 흩어진 서류 뭉치를 움켜쥐고 한쪽 귓등에는 아직도 펜대가 끼워 있었다.
  「레슬리양!」하고 그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나는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는 사람이오. 당장에 매듭을 지어야겠오. 나와 결혼해 주시겠오? 어서 말해요――저 사람들이 유니온 패시픽회사의 주권시세가 떨어졌다고 아우성이오.」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못 알아듣겠군요.」
   젊은 여자는 언성을 높여서 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놀라운 눈으로 그를 바라다보았다.
  「무슨 소린지 못알아듣겠어요?」하고 그는 외쳤다.
  「당신이 나와 결혼해 주기를 바란단 말예요. 레슬리양!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일이 좀 뜸해진 틈을 탄거요. 지금 사람들이 전화로 나를 부르고 있오. 핏처, 그사람더러 전화 좀 기다리라고 하게. 레슬리양! 어떻게 생각하오!」

  속기사는 이상한 거동을 하였다. 처음에는 어쩔줄 멀러 망설이더니 그 놀란 눈에서 누물이 쏟아졌다. 이윽고 그녀는 눈물에 젖은채 맑은 미소를 짓고 두 팔로 브로커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이제 알겠어요.」
하고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당신의 머리에서 한때 저에 대한 생각을 몰아낸 것은, 오랫동안 애써오신 저 사업 때문이에요. 처음엔 저도 놀랐어요. 맥스웰씨! 생각나지 않으세요? 우리는 어제저녁 여덟 시에 저 거리 모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에서 이미 결혼식을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