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결혼의 달
O.HENRY
만일 시인이 5월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거든, 그놈의 눈알을 후벼 버리게. 5월은 재앙과 광증을 일으키는 마귀가 날뛰는 달이니까. 잎사귀가 피어나는 숲속에서는 작은 마귀와 재잘거리는 계집애들이 함게 다니고, 도시나 시골에서는 그 심술쟁이 마귀가 꼬마들을 거느리고 싸질러 다니는 걸세.
5월이 되면 우리에게 자연이 손가락질 하면서 <너희들은 신이 아니야. 아무리 뽐내어도 다 내 족속에 불과해>하고 말한다네. 이를테면 잡채 요리에 쓸 조개나 당나귀와 형제요, 오랑캐 꽃이나 침판지의 직계 후손이요, 구구 우는 비둘기며 괙괙거리는 오리새끼, 식모계집애나 공원을 순찰하는 순경과 4촌간이라고 하네.
큐피드가 5월에 화살을 날리면,――백만장자가 여자 속기사(速記士)와 결혼을 하고 현명한 교수께서 싸구려 요리집 카운터에서 흰 에프론을 두르고 껌을 씹는 아가씨에게 매혹되며, 학교의 여선생은 방과후에 짓궂게 구는 덩치 큰 학생애를 혼자 남아있게 한다네. 사내녀석들이 잔디밭에 나가면 줄리엣 아가씨가 망원경을 눈에 대고 창가에 기대 서 있으며, 젊은이들이 짝을 지어 산책을 나서기만 하면 으레 돌아올 때에는 부부가 되어 있다네. 그리고 늙은 것들도 흰 각반을 치고 여자 사범하교 주위를 서성거리는 꼴을 보게. 그러나 그 뿐이가 버젓이 결혼한 치들까지 주책없이 마음이 들떠 감상(感想)에 잠겨 마누라의 등을 두드리며 <요새 기분이 어때, 여보……>하며 낑낑거리지 않나.
이와 같은 5월――여신(女神)이 뭐야, 다만 요부(妖婦)에 지나지 않지. 5월은 사교계에서 흥청대는 여름을 위해 마련한 무도회에까지 가면을 쓰고 나타나 우리를 저마다 공탈먹인다네.
늙은 카울슨씨는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환자용 의자에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그는 한쪽발에 심한 풍증을 일으키고 있는 환자로, 그래머씨 공원 근처에 집 한채와 백만장자의 절반쯤 되는 돈과 말 하나를 갖고 있었다. 집안 일은 한 사람의 가정부가 하고 있었다. 위덥부인! 이러한 환경과 그녀의 이름은 각각 독립된 센텐스를 지닐 권리가 있을까? 물론이다.
5월이 카울슨씨의 육신을 쑤실 때, 그는 산비둘기의 오라비가 되었다. 그가 앉아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창가에는 노란 수선화, 히야신스, 제라늄, 오랑캐꽃, 그리고 이런 꽃을 심은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수런대는 바람이 그 향기를 방안에 실려 보내곤 하였다. 꽃향기와 풍증에 바르는 고약의 악취 사이에 큰 시합이 벌어졌다. 고약이 쉽게 이겼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꽃향기가 늙은 카울슨씨의 코에다 한 대 먹인 뒤였다. 인간을 영낙없이 매혹시키는 요녀(妖女)와 같은 5월이 그 짓궂은 장난을 이미 저지른 것이다.
거기에도, 지하철 위에 서 있는 큰 도시의 냄새――특이한, 마치 특허권이라도 갖고 있는 듯한 봄냄새가 공원을 거쳐 카울슨씨의 코에 닿았다. 뜨거운 아스팔트의 냄새, 지하실의 냄새, 가솔린·박하·귤껍질·하수도의 냄새, 유욕제 그램 기계, 이집트제 권연, 모타르, 그리고 새로 나온 신문의 잉크 냄새가 방안에 풍겨 왔다. 불어오는 바람결은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문밖에서는 참새들이 짹짹 울고 있었다.
5월을 믿지 말라!
카울슨씨는 흰 수염 끝을 한번 꼬아보고, 아픈 발에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나서,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 달린 벨을 눌렀다.
위덥부인이 들어왔다.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는 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이요, 생김새는 폭시(여우같은)였다.
「히긴스는 밖으로 나가고 없습니다.」
그녀는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고 웃음을 띄우며 말하였다.
「편지를 부치러 갔어요. 뭐 저에게 시키실 일이 있으세요?」
「그 애코나잇(약)을 먹을 시간이 됐어.」
하고 카울슨시는 말 하였다.
「좀 타줘요. 약병이 저기 있으니까. 세 빙울만 물에 타요.――망할놈의 히긴스 녀석 같으니! 간호가 부족하여 내가 당장 이 의자 속에서 숨을 거둬도 이놈의 집에서는 걱정하는 사람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거야.」
위덥부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슬퍼할 사람이 멀마든지 있어요. 열 세 방울이라 하셨죠?」
「세 방울이라니까!」
하고 늙은 카울슨씨는 말하였다. 그는 약을 마시고 나서 위덥 부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알굴을 붉혔다. 그렇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독자 여러분 잠시 숨을 멈추고 가슴을 조이라.
「위덥부인!」하고 카울슨씨는 말을 이었다.
「우리들의 주위는 봄이 한창이요.」
「그럼은요.」하고 위덥부인은 말 하였다.
「바람이 한결 따뜻해졌어요. 거리의 모퉁이마다 맥주 광고가 나붙구요. 공원은 꽃으로 온통 울긋불긋하구요. 그리고 제 다리며 몸에서는 새 싹이라도 움트려는지 온통 들쑤시는군요.」
<봄에는……>하고 카울슨시는 자기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읊었다.
<봄에는 말하자면 인간의 꿈은 사랑을 향해 쏠리고>
「저런! 보세요!」위덥부인은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래요. 공기도 말씀예요!」
<봅에는>하고 카울슨씨는 계속하였다.
<활짝 피어난 분꽃이 윤기가 흐르는 비둘기 위에 빛나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매우 활발해요」
위덥부인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위덥부인」
중풍이 든 발에 경련이 일어났다. 카울슨씨는 이마를 찡그리며 말하였다.
「당신이 없다면 이 집이 얼마나 쓸쓸할까! 나는 이미 늙어 버렸지만 꽤 많은 돈을 갖고 있지. 50만불에 해당되는 정부의 공채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애정이, 설사 청춘의 정열로 불타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타오를 수 있다면 참된……」
바로 옆방 문에 쳐 놓은 휘장 근처에 있던 의자가 뒤집혀지는 요란한 소리가, 이 5월의 희생자의 말을 가로막았다.
메마르고, 꼿꼿하고, 키가 크고, 코가 높고, 무표정하고, 어젓하고, 서른 다섯 살 난 그래미씨 공원의 이웃 사람 다운 밴 미이커 콘스탄시아 카울슨양이 방안으로 활개를 치며 들어왔다.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위덥부인은 재빨리 허리를 굽혀 커울슨씨의 병든 발에 감긴 붕대를 보살폈다.
「전 히긴스가 와 있는 줄 알았어요.」
하고 밴 미이커 콘스탄시아 카울슨양이 말하였다.
「히긴스는 밖으로 나갔다.」
하고 아버지가 설명하였다.
「벨을 울렸더니 위덥부인이 와 주었다. 위덥부인! 좀 낳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뭐 별로 더 시킬 일은 없습니다.」
가정부는 심문이라도 하는 듯한 카울슨양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으며 얼굴이 혼당무가 되어 밖으로 나깠다.
「오늘은 봄날 치고도 유난히 밝게 개였나보지?」
늙은이는 그제서야 생각난 듯이 말하였다.
「그렇군요.」하고 카울슨양은 애매하게 대답하였다.
「참 위덥부인은 언제부터 휴가예요?」
「오늘부터 한주일 동안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하고 카울슨씨는 대답하였다.
밴 미이커 콘스탄시아양은 들창 가에 서서 앞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을 바라보았다. 오후의 무르익은 햇살이 이글거렸다. 그녀는 흉칙한 5월의 매우 효과적인 무기인 꽃들을 마치 식물학자라도 된 듯이 눈으로 쳐다보았다. 콜론느 지방에서 온 쳐녀다운 차디찬 피가, 따뜻한 자연의 공세를 받아 싸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따뜻한 햇살도 냉랭한 그녀의 가슴을 에워싼 싸늘한 갑옷에 부딪치면 서리가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꽃향기도 그녀의 잠자는 마음속의 미지의 골짜기에 부드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참새들의 웃음소리도 괴롭게 들렸다. 그녀는 5월을 멸시하였다.
그녀는 이 계절에서 아무런 침해도 받지 않고 있지만, 이 봄이 지닌 힘만은 분명히 평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늙은이들과 이미 허리통이 굵어진 계집애들이, 마치 훈련을 받은 벼룩처럼 5월의 행렬 속에 뛰어드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5월은 짓궂은 달이다. 그녀는 일찍이 가정부와 결혼한 어수룩한 늙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감정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욕된 것인가?
이튿날 아침 여덟 시쯤 해서 얼음장수가 왔을 때, 쿡은 카울슨양이 지하실에서 그를 만나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하였다.
「그래 내가 올콧 앤드 데큐 회사가 아니냐고? 본명을 불러야지. 그런데가 어데 있어?」
얼음 장수는 약간 뻐기며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못이기는체 하며 걷어올린 샤쓰 소매를 내리고, 얼음 집는 갈구리를 걸어 놓고는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는 맨 미이커 콘스탄시아 카울슨양이 인사를 하지 곧 모자를 벗었다.
「이 지하실은 뒷문이 있어요.」
하고 카울슨양이 말하였다.
「옆집에 있는 공터를 통하여 출입할 수 있는 뒷문 말예요. 새 집을 짓기 위해 땅을 닦고 있으니까요. 두 시간 안으로 얼음 천파운드를 그길로 날라다 주세요. 운반하는 데 한두사람 더 써도 좋아요. 놓아 둘 장소는 내가 가르쳐 드리지요. 그리고 계속해서 사흘 동안, 그길로 얼음 천파운드 씩 갖다 주세요. 당신의 회사에서는 우리집 계산서에 액수를 적어 넣었다가 청구 하면 될 거야요. 이건 당신에게 드리는 특별 서비스예요.」
카울슨양은 10 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 얼음 장수 앞에 내밀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뒤로 도려 머자를 잡고 있었다.
「아가씨, 지금 곧 해드립죠. 아가씨 분부대로 하겠어요.」
가련한 5월이여!
카울슨씨는 오정때쯤 되어 탁자에서 유리컵 두 개를 동댕이치고, 벨의 스프링이 끊어지자 큰 소리로 히긴스를 불렀다.
「도끼를 가져와!」
카울슨시는 쓸쓸한 얼굴을 하고 말하였다.
「청산가리를 댓홉 사오든지 순경을 불러다가 나를 쏘아달라고 해. 얼어 죽는 것보다는 그편이 나을 거야.」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 같은뎁쇼.」
하고 히긴스는 말하였다.
「전에는 이렇게 춥진 않았는데요. 창문을 닫아 드릴깝쇼?」
「그래, 닫아!」카울슨씨는 말을 이었다.
「이게 봄날씨란 말이야? 어런 날씨가 오래 계속된다면 사암 바닷가로 다시 가야겠다. 이건 집이 아니야. 시체실이란 말이야!」
이윽고 카울슨양이 의무적으로 아버지 방에 들어와 좀 어떠냐고 물었다.
「콘그탄시아야!」하고 믉은이는 말하였다.
「날씨가 좀 어떠냐?」
「맑게 개였어요.」하고카울슨양이 말하였다.
「그렇지만 꽤 싸늘해요.」
「나한테는 겨울 같구나.」
하고 카울슨씨는 말하였다.
「잠시 동안……」
콘스탄시아는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며 말하였다.
「잠시 동안 겨울이 봄의 무릎위에서 머뭇거리보죠. 제비유가 세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말예요.」
그녀는 얼마 후에 공원 옆을 지나 서쪽으로 구부러져 브로드웨이에 물건을 사러 갔었다.
그녀가 나가자 얼마 후에 위덥부인이 병실에 나타났다.
「부르셨어요?」
그녀는 보조개를 지으면서 물었다.
「히긴스를 약방에 보냈어요. 벨이 울린 것 같아서……」
「난 안 눌렀는데……」
「어제 주인 어른께서 무엇인가 이야기하려고 하였을 때 혹시 제가 훼방을 놓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위덥부인!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집안이 이렇게 추우니 말이요.」
「추우시다구요?」가정부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이 방이 춥다도 하셨죠? 바깥은 6월이나 다름 없이 따뜻하고 맑은데요. 이런 날씨에는 샤쓰 밖으로 신장이 튀어 나올 것 같아요. 담장이는 잎이 무성하여 집 한 모퉁이 벽을 완전히 뒤덮어 버리고, 손풍금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한길에서는 아이들이 춤을 추구요. 마음속에 감춰 두었던 말을 입밖에 꺼내기에 알맞은 때에요. 어제 말씀하시기를……」
「이봐요!」카울슨씨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벽창호로구려. 이집을 살펴 달라고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게 아니겠오? 나는 방구석에서 얼어 죽을 지경인데 당신은 담장이가 어떻구, 손풍금이 어덯구 하며 헛소리만 지걸이는구료. 어서 외투나 갖다 줘요. 그리고 아래층 문과 창들이 다 닫혀 있나 봐요. 당신처럼 피둥피둥 살이나 찌고 무책임한 여자들이나 이추운 한겨울에 봄이니 꽃이니 하고 지걸이는 거요. 히긴스가 돌아오면 따듯한 람주(酒)가 섞인 펀취를 가져오게 해요. 인제 당신은 그만 나가요!」
그러나 대체 누가 환한 5월의 얼굴을 모욕할 수 있겠는가. 설사 5월이 건강한 사람들의 마음의 평화를 교란하는 학한이라고 치자. 그러나 한 현명한 쳐녀의 잔꾀나 얼음 창고 따위로서는 5월로 하여금 고개를 목들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가 지났다. 히긴스는 아침에 카울슨영감이 앉아 있는 의자를 들창가에 옯겼다. 그러자 방안의 취위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훈훈한 향기와 부드러운 온기가 방안에 가득찼다.
위덥부인이 재발리 들어와 의자 옆에 서 있었다. 커울슨씨는 자기의 매마른 손으로 그녀의 통통한 손을 꽉 잡았다.
「위덥부인!」하고 그는 말하였다.
「당신ㅇ 없다면 이 집은 집 구실을 못할거요. 나는 돈을 50만불이나 갖ㄱ 있오. 돈과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애정이……비록 젊지는 않으나……추위가 아직……」
「날시가 왜 추워졌는지 알게 되었어요.」
위덥부인은 의자에 기대면서 말하였다.
「온통 얼음이었어요. 몇 톤짜리 얼음 말예요. 지하실, 난방실 할 것 없이 온통 얼음으로 가득차 있어요. 가엾은 카울슨씨, 당신의 방에 올라오는 통풍조절관을 닫아 버렸어요. 그리하여 이제 다시 5월이되었어요.」
「내 진정요……」카울슨씨는 놀라운 얼굴을 하고 말하였다.
「봄이 다시 소생시킨 내 진정은……그런데 위덥부인, 딸애가 뭐라고 말할까?」
「걱정 마세요.」하고 위덥부인은 반가운 얼굴로 말하였다.
「카울슨양은 어젯밤에 그 얼음장수와 함께 어디론가 도방쳐 버렸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