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불

O.HENRY

  이 문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제 그 한가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때때로 숍·걸(shop-girl)이라는 말을 듣는데, 실은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긴 숍(상점)에서 일을 하는 걸(아가씨)은 있다. 그녀들은 이렇게 하여 생계를 우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지하여 그녀들의 직업이 형용사로 쓰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사물을 공정한 눈으로 보도록 하자. 우리는 5번가(街)에 사는 아가씨들을 가리켜 매리지·걸(marriage-girl)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루와 낸시는 서로 다정한 사이었다. 이들은 자기 고향에서 놀고 먹을 처지가 되지 못하므로 일터를 찾아 도시로 나왔다. 낸시는 올해 열 아홉 살이고 루는 스무 살이 되었다. 두 아가씨는 예쁘장하고 상냥스러우나 무슨 무대 같은데 나서 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늘에서 천사가 두 아가씨를 값이 싸고 점잖은 하숙비으로 인도하였다. 이윽고 그녀들은 일터를 찾아 월급장이가 되었다. 여전히 의가 좋았다. 내가 독자들에게 알려 드리고 싶은 것은 그 후 6개월이 지나서 그녀들에게 일어난 이야기이다. 한 쪽은 남에게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독자 여러분이고 또 한 쪽은 나의 여성 친구인 낸시양과 루양이다. 여러분은 그녀들과 악수를 하고 있는 동안에 그 옷차림을 살짝 바라보라. 그래 살짝 말이다. 그녀들은 전람회의 높은 관람석에 앉아 있는 부인들처럼 눈여겨보면 금방 화를 낼 테니까.
  루양은 세탁소에서 다람질을 도급으로 맡아서 하고 있다. 그녀는 잘 맞지 않는 보라색 옷을 걸치고 모자에 꽂힌 깃털이 4인치나 된다. 말하자면 너무 길다. 그러나 그녀의 돼지 가죽 목도리와 머리 수건은 25딸라 짜리인데 이런 동물의 모피는 철이 지날 무렵이면 7딸라 58센트라는 정가를 붙여 진열잘에 걸어놓게 마련이다. 그녀의 뺨은 불그스럼하고 부드러운 푸른 눈은 맑다. 그녀에게는 만족감이 넘치고 있다.

 한편 낸시양은 이른바 숍·걸이다. 흔히들 이렇게 부르니 말이다.  숍·걸에 어떤 독특한 타입이 있는 것은 아닌데, 고약한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무슨 타입을 찾고 있다. 굳이 그렇다면 그녀가 어떤 타입에 속하는 아가씨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녀는 가발을 높이 씌워 폼패도식으로 앞머리를 위로 곧장 빗어올렸다. 후레아 스커어트는 재생한 것이지만 매무새가 단정하다. 쌀쌀한 봄추위을 막을 만한 모피 등속은 걸치지 않았으나, 고급 모직으로 된 자켓을 마치 페르샤의 양피 제품이나 되는 듯이 보기 좋게 입고 있다. 그녀의 얼굴과 눈 언저리에는 냉정한 타입의 사람들처럼 전형적인 숍·걸의 표정이 넘쳐 있다. 그것은 배반을 당한 여성에게 무언중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경멸적인 반발의 표시로, 장차 있을 복수를 예언하는 것이다. 그녀가 크게 웃을 때에도 그런 표정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이러한 표정은 러시아의 농민들의 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언젠가는 인간에게 기쁜 소식과 위안을 갖다 줄 가브리엘 천사가 우리를 책망하려고 내려왔을 때,  우리들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은,그 얼굴에서 이런 표정을 찾아볼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은 이러한 표정에 대하여 짓굳게 웃어버리고 꽃다발을 묶어서 갔다 주게 마련이다.

 그러면 이제 독자 여러분은 모자를 벗어 들고 루양이 <그럼 또 오세요>하는 명랑한 인사말과 낸시양의 비웃는 듯하면서도 다정한 눈웃음을 받으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물러가기로 하자. 낸시양의 눈웃음은 마치 지붕너머 멀리 별나라를 향해 날아오르는 흰 나비처럼 벌리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두 아가씨는 길 모퉁이에서 미스터 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루양의 착실한 보이프랜드였다. 믿음직스러운 청년이냐구요? 암요. 후양이 일꾼을 열 두 사람이나 시켜 자기의 길 잃은 양을 찾아내려고 할 때 그가 바로 가가이서 살펴 주었다는 거지요.
  「낸시, 춥잖아.」
하고 루양은 말하였다.
  「그래 한 주일에 겨우 8딸라를 받으면서 겨우내 그런 껄렁한 상점에서 일을 보다니 너도 어지간히 바보로구나! 난 지난 주일에 18딸라 50센트나 받았어. 그야 물론 다람질 하는 일이, 진열장 뒤에서 레스를 파는 것처럼 께끗하지는 못해. 하지만 실속은 있어. 다림질을 하는 일꾼 치고 한주일에 10딸라 짜리 이하는 없어 얘. 게다가 나로서는 어느 편이 더 점잖지 못한 일인지 분간할 수 없어.」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낸시양은 콧날을 추켜들고 말하였다.
  「나는 한 주일에 8딸라씩 받아도,  값싼 셋방살이를 해도 좋아. 멋진 상품과 근사한 사람들 속에서 살면 그만이지 뭐. 그렇지만 혹시 네게 좋은 수가 생길지 알아? 두고 봐야 알거야. 요전만 하더라도 우리 백화점에서 장갑을 팔고 있던 애가 피츠버그에 살고 있는 신사와 결혼했어.……무슨 제철회사라나 청공장이라나를 한다는 백만장자래. 나도 언젠가는 근사한 사람을 하나 잡을래. 내 얼굴 값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잘만 하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을 것 같애. 다만 나는 운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세탁소에서 일해 가지고서야 무슨 수가 나니?」
  「천만에. 내가 단씨를 만난 것도 다 이 세탁소에선 걸.」하고 루양은 무슨 승리나 거둔 것처럼 떠들기 시작하였다.
  「그이는 일요일에 입을 샤쓰와 칼라를 찾으려 와서, 맨 앞자리에서 다림질하는 나를 발견한 거야. 아무튼 거기서 일하는 애들은 저마다 앞자리에서 일하고 싶어 해. 그날은 마침 엘라·매기니스가 병으로 나오지 못해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 뭐야. 그이는 첫눈에 토실토실하고 옥같이 힌 내 팔뚝을 보고 감탄했다는 거야. 난 소매를 걷어부치고 일하고 있었거든. 세탁소에도 이처럼 좋은 분이 찾아오는거야. 그런 분들은 흔히 멋있는 여행가방 속에 옷을 넣어 갖고 와서는 문앞에 불쑥 나타난단다.」
  「루, 너 그 따위 웨이스트를 다 입고 있니?」하고 낸시양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이만저만한 악취미가 아니야!」
  「이 웨이스트 말이야?」
하고 루양은 화가 치밀어 눈을 커다랗게 치뜨고 반문하였다.
  「왜, 어째서……16딸라나 주고 산 거야. 하지만 25딸라 짜리는 충분히 돼. 어떤 여자 손님이 세탁을 맡겼다가, 찾아가지 않은 거야. 주인이 판다기에 샀지 뭐니. 하나하나 손으로 수를 놓아 공들여 만들었어. 네가 입은 마구잡이 싸구려 옷은 어떨구……」
  「이 마구잡이 값싼 옷은……」
하고 낸시양은 목청을 낮추고 말하였다.
  「피셔부인이 입고 있는 것을 본떠서 만든거야. 여점원들이 그러는데 부인은 작년 1년중 동안만 해도 우리상점에서 사간 것이 일만 오천딸라치나 된대. 그래 내가 이렇게 만든거야.」
  「1딸라 50센트가 들었어. 시피트 밖에서 보면 부인거나 비슷해.」
  「그래?」
  루양은 상냥스럽게 말하였다.
  「배를 졸라매면서까지 허세를 부리기야? 그것도 좋아. 그렇지만 나는 일거리가 많고 보수도 넉넉한게 좋아. 아무튼 내게 알맞는 멋지고 예쁜 옷이 있으면 알려 줘.」
  때마침 미스터 단이 나타났다.  기성품 넥타이를 단정히 맨 선량한 청년으로 도회지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경박한 티는 없었다. 그는 한 주일에 30딸라씩 받는 전기 기술자로, 로미오와 같은 슬픈 눈으로 루양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수 놓은 웨이스트를 보고, 파리라도 잘 잡을 수 있는 거미줄 같은 것을 연상하면서,
  「인사하시죠. 이분은 제 친구 오웬스씨……이쪽은 미쓰 단포스예요.」
하고 루양이 말하였다.
  「단포스양을 뵙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고 말하며 미스터 단은 손을 내밀었다.
  「루양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고마와요.」
  낸시양은 싸늘한 손끝으로 그의 손가락을 스치면서 말하였다.
  「전 루 한테서 당신의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요.」
  루양은 낄낄대며 웃었다.
  「낸시, 그 악수는 피셔부인 한테서 배웠지?」
  「그래, 그렇다고 해 둬. 너도 배워 두는게 좋을거야.」
하고 낸시양은 말하였다.
  「난 필요 없어, 내겐 너무 멋드러져 보여, 그런 고급 악수는 다이어몬드 반지나 돋보이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다이어몬드 반지를 두세 개 살 때까지 기다려 줘. 그때 배울테야.」
  「미리 배워 둬.」
하고 낸시양는 깜찍하게 말하였다.
  「그러면 다이어 반지를 곧 갖게 될거야.」
  「싸움은 그만 하시죠.」
하고 미스터 단은 여느때처럼 쾌활하게 웃으면서 참견을 하였다.
  「한 가지 제의하겠습니다. 제가 두 분을 티피니 같은 큰 곳에는 모시지 못하지만, 자그마한 극장에라도 가는 것이 어떻겠어요? 입장권을 갖고 있어요. 진짜 다이야몬드를 낀 손과는 악수 할 수 없을 테니까, 무대 위의 다이어몬드라도 구경하는 것이 어떨까요.」
 세사람은 나란히 길을 걸어갔다. 이 소탈한 시골 신사는 한길 맨 끝에 서고 그 옆에는 밝은 색깔이 아름다운 옷차람을 한 공작 같은 루양이 따라서고,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참새처럼 침침한 색깔의 옷을 입었을망정 피셔부인의 걸음걸이를 하는 낸시양은 한길의 맨 안쪽을 걷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룻밤을 적절한 오락으로 즐기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다.

  큰 백화점을 무슨 교육기관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낸시양이 일하는 백화점은 그녀에게 일종의 교육기관과 같은 고장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언제나 고상한 취미와 세련된 아름다움을 풍기는 상품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사치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게 되면 그것이 자연히 몸에 배게 마련이다. 그러한 상품들이 자기 돈으로 산 것이건 남의 돈으로 산 것이건 관계 없는 것이다.
  낸시양이 대한 손님들은 대개가 사교계에서 몸차림이나 예절이나 또는 지위로 보아 손곱히는 부인들이었다. 그리하여 낸시는 이 부인네들을 통해서 어쩐지 자기 눈에는 최고라고 생각되는 것을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하였다.
  어떤 부인에게서는 그 몸짓을, 또 어떤 부인에게서는 멋진 눈짓을, 다른 부인에게서는 걸음거리나 핸드백을 다루는 법, 눈웃음을 치는 법, 친구와 인사하는법, 손아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법 등등을 배워가지고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피셔부인에게서는 그 특징인 은방울처럼 맑은 음성――마치 티티새의 울음소리 같은 부드럽고 나직막한 음성을 본받기도 하였다. 낸시양으로서는 이런 상류 사교계의 세련된 풍모와 높은 교양을 보여주는 분위기 속에서 그 커다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엇던 것이다. 훌륭한 습성은 훌륭한 원칙보다 앞선다는 말과 같이, 좋은 예절은 좋은 습성보다 나을지 모른다. 부모가 가르쳐 주는 것만 가지고서는 뉴일글랜드의 양식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위가 수직적으로 된 의자에 앉아 <프리즘스 앤드 필그림즈>라는 말을 만 번쯤 되풀이하면 아마 악마라도 도망쳐 버릴  것이다. 낸시양은 피셔부인의 음성을 흉내내어 말할 떼에는 골수에 사무치게 귀족적인 특권의식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 백화점에는 교육의 근본이 되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여러분은 여점원들 몇 명이 한데 모여 쇠줄로 만든 팔찌를 쩔렁거리며 조잘거리며 것을 볼 적마다, 그녀들이 에텔의 뒷머리를 튼 모습이라도 평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녀들의 이러한 좌석은 남성들의 집회에 비하면 시시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이브와 그의 장녀가, 아담에게 가정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구수회의를 했을 때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여성들의 공동방위와, 또한 사회에 대한 공격과 반격의 전술을 의논하기 위한 모임인 것이다. 다만 그 사회란, 무대와 남성, 그리고 무대에 짖궂게 꽃다발을 던지는 관객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자란 동물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것――어린 사슴은 귀엽지만 재빠리 도망치는 힘이 없고, 작은 새는 예쁘기는 하지만 하늘 높이 날아다닐 만한 힘이 없으며, 꿀벌은 단 꿀을 담뿍 갖고 있지만, 꿀벌의……이런 비유는 그만 두기로 하자……벌써 어떤 여자는 한대 얻어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생존경쟁에 대한 회합을 갖고 서로 무기를 빌려 주고 각자 자기네들의 생활 전선에서 생각해낸 전술들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할테야.」
하고 사디양은 입을 열었다.
  「당신 같은 분에게는 어림도 없어요. 내가 당신한테 그런 소리를 받아들일 여잔줄 아세요?……이렇게 말하면 그 남자가 나한테 뭐라고 할지 알겠어?」
  그러자 밤색, 검은 색, 연한 노랑색, 붉은 색, 그리고 금빛 머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해답이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들의 공동의 적인 남성과의 거래에 있어서 적의 공격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하는 방법이 결정된다.
  낸시양은 이렇게 하여 방어술을 받아들였다. 이런 멋진 방어술이 여성에게는 곧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백화점의 교육과정은 범위가 상당히 넓다.  백화점만큼 그녀들에게 커다란 야심, 즉 결혼이라는 행운의 제비를 뽑게 하는 대학은 없을 것이다.
  백화점에 있는 그녀들의 판매장은 이상적인 곳이다. 가까이 음악실이 있어 일류 음악가들의 작품을 언제나 들어 귀에 익게 되었다. 그녀가 장차 막연히 발을 들여 놓으려는 사교계에서 적어도 음악 감상자로서 통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도자기라든가 값비싼 옷감, 그밖에 여성에게는 하나의 교양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식품에 대하여는 자연히 알게 되었다.
  동료들은 낸시양의 야심을 곧 알아차렸다.
  「낸시, 저기 백만장자가 온다!」
  멋진 남자가 낸시양의 진열장 앞으로 다가오면 그녀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함께 온 여자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에 남자는 흔히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진열장의 흰 손수건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기가 일쑤였다.
  낸시양은 여러 사람한테서 배운 세련된 기품과, 타고난 고상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그리하여 많은 남성들이 그녀앞에 와서 점잖게 대해 주는 것이었다. 그들 중에는 아닌게아니라 백만장자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부자인 체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낸시양은 이것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손수건 진열장 한끝에 달려 있는 창문에서 거리를 내다보면, 물건 사러 온 손님들의 자동차의 차이가 그 주인을 분간해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굉장한 신사 한 사람이 손수건을 네 타나 한거번에 사고 나서 의젓한 태도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였다. 그는 마치 거지와 결혼했다는 코페투아왕과 같은 언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 버리자 동료 여점원 하나가 말하였다.
  「낸시, 어떻게 된 거야? 저런 사람을 냉대하다니……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고급품이던데 그래?」   「듣기 싫어!」
하고 낸시양은 냉담하게 그리고 애교 있게, 또 태연히 피셔부인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난 그렇게 보지 않아. 그가 밖에서 어떤 자동차를 타고 오는가를 똑똑히 봤단 말이야. 12마력 짜리인데, 운전수는 아일랜드 사람이야. 그런데 그가 어떤 손수건을 사갔는지 알어? 맹추야! 그리구 그 사람은 손가락을 앓고 있어. 나한테는 진짜가 아니면 통하지 않아!」
  이 백화점에서 가장 세련된 여자 축에 드는 감독과 회계는 몇몇 굉장한 신사들과 때때로 식사를 같이 하고 하였다. 하루는 그 신사들이 낸시양도 초대 하였다. 그리하여 대단히 호화로운 카페에서 저녁식사를 하게되었다. 선달 그믐날 밤에 식탁을 차지하려면 1년 전에 선금을 배고 미리 계약을 해야 하는 카페였다.
  이때 두 사람의 신사가 동석하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머리칼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대머리였다. 호화로운 생활이란 머리칼이 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 또 한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자기의 재산과 괴변을, 남을 설복시키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포도주는 콜크 병마개의 냄새가 풍긴다는 괴변을 늘어 놓았으며, 다이어몬드로 된 카프스 단추를 달고 부자임을 자랑하였다. 그는 낸시양에게서 좋은 덤을 찾아내었다. 그는 숍·걸들을 좋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낸시양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류사회의 견식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순진한 매력까지 풍기고 있었다.
   그는 이튿날 백화점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언저리에 장식이 달린 아일랜드산의 린넬 상자너머로 낸시양에게 프로포즈를 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거절하였다.
 밤색 머리를 한 여점원 하나가 10피이트쯤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거절을 당한 사나이가 밖으로 나가 버리자, 그녀는 낸시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넌 정말 알맹추야! 저 사람이 눈군데 드래? 백만장자란 말이야……봔·스키틀즈 영감의 친 조카란 걸 알아야 해. 그 분은 진정으로 말을 건네온거야. 너 돌았니?」
  「뭐, 돌았다고?」
하고 낸시양은 말을 받았다.
  「내가 저분을 잘못 봤다구? 어쨋든 저 사람은  네가 말한 것 같은 그런 백만장자는 아니야. 집에서는 1년에 2만딸라 밖에는 자기한테 주지 않는대.  며칠 전에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을 때 대머리 영감이 다 말해 줬어.」
  밤색 머리는 좀더 가까이 다가와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였다.
  「얘, 넌 대체 어던 사람을 원하는거냐?」
  그녀는 껌을 씹지 못하는 닷인지 목쉰 소리로 물었다.
  「저래도 안된단 말이지? 너 몰론교인이 되고 싶니? 네 주제에 록펠러와 글래드슨과 스페인 왕을 한데 묶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니? 1년에 2만딸라를 갖고서는 못살겠단 말이지.」
  낸시양은 상대편이 토라진 새까만 눈으로 쏭아부친 눈총을 얻어맞고 약간 얼굴을 붉혔다.
  「캐리, 결혼은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야.」
하고 낸시는 말을 이었다.
  「저번날 저녁에 식사를 나누면서 그 사람은 굉장한 거짓말을 하다가 친구한테 들켰어. 그 거짓말이란 그 분이 극장에 같이 간 일이 없다는 어떤 여자에 대한 거야. 아무튼 나는 거짓말쟁이는 믿을 수 없어. 한마디로 말해서 난 그사람이 싫어. 그럼 말 다 한거지 뭐야. 난 나 자신을 싸구려로 팔아 넘기는 대목장에 나가고 싶지는 않아. 나는 사나이답게 의자에 버티고 앉아 있는 그런 사람이 좋아. 난 좋은 결혼 상대를 찾고 있지만 소리만 요란스러운 빈 그릇이 아니라, 쓸모가 있는 그릇이라야 해.」
  「넌 정신병원에나 가!」
  밤색 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렇게 쏘아부쳤다.
  낸시는 이상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주급(週給)8딸러씩 받으면서도 이런 고상한 생각을 언제나 품어 왔다. 그녀는 말마다 마른 빵을 씹고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미지의 커다란 노획물을 찾아 들판을 헤메였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용감하고 귀엽고 싸늘한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끈기있게 남성을 사냥하려는 사냥꾼에게서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웃음이었다. 이 백화점은 말하자면 그녀의 사냥터와 같았다.
  그녀는 언제나 커다란 뿔을 머리에 인 사슴을 향해 몇 번이고 총을 겨누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깊이 도사라고 있는 본능으로 하여 계속하여 그 사슴의 발자취를 더듬는 것이었다. 이러한 본능은 사냥꾼의 것일지도 모르며 여성의 것일지도 모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