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家紹介와 書評

 

 모파상은 1850년 8월 5일, 노르망디의 디에프에서 아버지 규스타프와 어머니 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할아버지代부터 노르망디에 정주했으며, 모친은 전통적인 노르망디家 출신이다. 12세때 부모가 별거하게 되어, 어머니는 두 자녀를 에틀타 별장에 데리고 가 이브토오의 신학교에서 보통 교육을 받게 했다.

  보불전쟁 때에는 유격대로서 종군한 뒤에 파리에 살면서, 해군성, 문교성에 있을 때 외숙의 친구 플로오베에르 밑에서 문학지도를 받았다.  그는 제대후에는 전쟁에 대한 혐오를 느껴 詩, 小說 등, 문학에 전념했다. 70년대 후반에는 관능적인 詩<물가>를 발표한 탓으로 기소까지 되는 등,  약간의 문명을 얻은 바 있었으나,  그가 작가로서의 결정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전쟁을 테에마로 한 졸라 등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간행한<메당의 저녁 때>라는 단행본에 <비게 덩어리>를 발표한 뒤부터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신경계의 질환인 안질의 증세가 차츰 더 심해졌다.

  1881년에 그는 처녀시집<메종 텔리에>, 82년에는 단편집<피피양>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어 <질 브라스>지에 <여자의 일생>을 연재, 그 문명이 똘스또이에게도 인정되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 후<벨라미>(85), <몽트리올>(87), <피에르와 쟝>(88), <죽음처럼 강하다>(89), <사나이 마음>(90)과 같은 장편과 <메종 텔리에>(81), <달빛>(84), <파랑氏>(86), <르 오를라>(87), <수꽃>(90) 등이 수록된 중·단편과 <물가>를 포함한 3권의 여행기와 그밖에 수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그러나 젊었을 때 얻은 질병과 勞作에서 오는 피로로 병이 재발, 발광하여 자살을 기도, 브랑슈 박사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나 보람도 없이 사망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 자식이 없으며, 하나 밖에 없는 동생도 그 보다 5년 앞서 발광증을 일으켜 죽었다.

  그의 문체는 명석하고 강인하며, 결정론적인 인간관에서 오는 강한 염세사상을 지녔으며, 신의 존재를 인정치 않았다. 그의 전형적인 자연주의사상은 교양에 의해 얻어진 것보다는 그의 타고난 성품과 생활체험 위에 보불전쟁을 겪고난 당시의 시대사조가 겹쳐서 이룩된 것이 더 많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일부의 자연주의작가에게 나타나는 결정론에서의 이탈이나 改宗을 볼 수 없다.  만년에 이르러 그의 작풍은, 특히 장편에 있어서는 부르제 등의 심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바 있으나, 사상의 주축에는 변화가 없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노르망디의 어부, 농민, 소도시의 시민들이 많고, 전쟁, 파리의 소시민들을 관찰해서 얻은 생활체험이 주요소재가 되어 있다.  만년에는 즐겨 사교계의 여성들을 주제로 써 왔는데, 거기에도 생활체험이 나타나 있다. 그의 염세관은 1888년에 쓴 여행기인<물가>와,  만년에 쓴 중편의 <올리브 밭>, <항구>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文名을 세계에 떨친<女子의 一生>(原題 어느 生活)은 어느 지방 귀족의 순결한 아가씨가 아내와 어머니로서 겪는 여자의 비극적인 생애를 그린 명작중의 명작이다. 거칠고 이기적인 남편에게 시달라면서 한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청순한 여주인공 쟌의 애처로운 일생이 노르망디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비할데 없이 훌륭한 시정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마지막에 그녀를 버린 바람기 있는 아들의 아이를 안고 오면서,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졸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라고 말함으로써 여자의 일생을 함축성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장편으로서 갖는 구성의 몇가지 결점이 없는 바 아니지만, 테에마에 있어서나 수법에 있어서나 자연주의문학에 깊이와 넓이를 준 작품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85년에 발표한<벨라미>는 이 <여자의 일생> 다음에 쓴 두 번째 장편으로, 재능이 없는 비열한 한 젊은이가 여자의 힘을 빌어 파리의 저널리즘을 무대로 출세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작자의 사물을 관찰하는 눈과 염세관이 직접적으로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이작품은 권세욕에 들뜬 냉혈한 뒤로아를 통하여 제2공화국치하의 부르조아 프랑스 사회의 추악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리얼리즘의 걸작이다.

  88년에 발표한 <피에르와 쟝>은, 백부에게서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둘러싸고 피에르가 겪는 질투와 혐오와 모정의 배반에 따르는 복수극을 롤랑 일가의 성애의 심층을 파헤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한 여성, 피에르의 모친이 범한 간음과, 거기서 생겨는 기만과 허위로 구축된 세계에서 인물들이 비극적인 환경에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냉혹하게 해부하고 있다. 그러나 번득이는 메스가 지나치지 않고 인간 심성을 적절히 표출해 냄으로써 작자의 가슴 속에는 인간애의 깊은 연민이 흘러넘친다. 그리고 작자는 피에르를 통해 청정한 것을 동경하기 때문에 추악한 것을 참지 못하는 고충을 신음토록 한다.
  작자는 인간을 통렬히 꾸짖으나, 동시에 그것을 이해하고 눈물을 흘린다.  파국이 온 후 모친이 아들 피에르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는「매를 맞으면서 용서를 구하는 개처럼 겸손하고 온유하며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 들어 있다.  모파상을 싫어한 똘스또이가 이 작품에 감동을 느끼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많은 단편 가운데서도 그의 출세작<비게 덩어리>는 중편소설로, 그 작품 배경은 보불전쟁 때의 프러시아의 점령지인 루앙에서 점령군의 허가를 얻어 디에프로 향하는 첫 합승 마차 안이 그 무대가 되어 있다. 그 합승 마차 안에는 백작부부, 공장주, 수녀,  전쟁으로 한몫 톡톡히 보는 주류상부부, 쿠르뉘데라고 불리는 공화주의자, 뚱뚱하여<비게 덩어리>라고 불리는 매춘부 등 각계각층이 망라되어 있다.  도중에서 프러이센 장교가 <비게 덩어리>를 건드릴 욕심으로 마차를 보내지 않자, 애국심에 불타는 매춘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적의 장교에게 몸을 바친다. 그 때문에 불발이 허용되자, 매춘부의 그 지고한 헌신을 잊고 더러운 것을 피하기나 하듯이 그녀를 외면하면서 저희들끼리 식사를 한다. 어두워지는 창밖, 내리는 눈속을 달리는 마차, 여자 설득에 실패한 코르뉘데가 홧김에 냅다 부르는 마르세예즈, 매춘부의 훌쩍이는 울음소리, 이 모든 것은 실로 자연주의문학이 남긴 주옥편이다.

  1888년에 쓴 <물가>는, 그가 정신이상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무렵에 쓴 것이므로, 작품 전체가 어두운 페시미즘으로 일관되어 있다. 작품 내막은, 요트<벨라미號>를 조종하여 지중해의 니스에서 서쪽으로 항해한 후, 친구의 초청으로 다시 모나코에 이르는 기행문이다.
 그는 이 기행문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주제는 허공에 떠 있는 지구가 바다위에 유전하는 불변의 본능을 지닌 산 기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쨌던 그의 문학은 스승인 플로오베에르의 말과 같이
 <이 세상에는 어디에도 똑같은 두 알의 모래가 없고, 두 마리의 파리가 없으며, 똑같은 두 개의 손, 두 개의 코도 없다는 진리를 표방하고 나서, 나에게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몇줄의 문장으로 표현하게 하되, 같은 종족, 같은 종류의 모든 인물이나 사물과 구별되도록 그 특징을 정확히 묘사하게 하였다>
  라는 가르침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낱말밖에는 없고, 그 동작을 나타내는 데는 단 하나의 동사밖에 없으며,  그것을 수식하는 데는 단지 하나의 형용사밖에는 없다. 그런므로 우리는 끝까지 단 하나의 그 낱말, 그 동사, 그 형용사를 찾아낼 때까지 애서야 한다. 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비슷한 것으로 만족하거나 잔재주를 부리거나 또는 언어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된다>
  라는 말 속에 잘 담겨져 있다.
  그는 1880년 졸라가 주재하는 잡지<메당의 저녁 때>에 발표한 중편소설<비게 덩어리>로 일약 문명을 떨친 후, 1893년 42세를 일기로 죽을 때까지, 여섯 편의 장편과 300여 편의 단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