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느에트

Maupassant   

  「아무리 큰 불행도 날 슬프게 할 수는 없지요.」하고 쟝·부리텔은 말하였다. 그는 회의주의자(懷疑主義者)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나는 이번 전쟁을 가까이서 목격하였어요. 그리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시체를 밟고 넘기도 했어요. 대 자연이나 인간의 온갖 엄청난 야수성이 전율 또는 분개로 하여 함성을 지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어떤 조그마한 슬픈 일을 눈으로 볼 때처럼 동골에 소름이 오싹 끼치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을 안겨 주지는 않아요.」

   두 말 할 것 없이, 인간이 체험하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어머니로서는 자식을 잃어 버리는 것이고, 사나이로서는 어머니를 잃어 버리는 거 겠지요. 그건 분명히 무섭고 끔찍한 일이요, 정신이 나갈 일이요, 가슴이 미어질 일이긴 해요.  그런데 어떤 우연한 기회에 일어난 눈에 잘 뜨이지 않고 짐작 밖에 할 수 없는 사소한 일에서 오는 어떤 은밀한 슬픔이나 불신(不信) 같은 것은, 인간의 고통을 휘저어 갑자기 고뇌의 문을 눈앞에 열어 보이는데, 이건 얼키고 설켜서 좀처럼 치유(治癒)가 되지 않아요.  
  고통이 심하여 어찌 보면 무슨 시련 같기도 하고, 너무나 쥐어짜는 아픔이라 얼른 종잡을 수 없으며, 또한 너무나 끈덕진 괴로움이라 거의 습관처러 생각되어, 마치 고통의 흔적이나 쓰디쓴 입맛 또는 오랜 시일이 지나야 놓여 날 수 있는 환상적인 감각이나 되는 듯이 그대로 가슴 속에 팽개쳐 두기가 일수지요.
  내 눈 앞에는 항상 몇 가지 기억이 떠올라요.―이런 따위는 여느 사람 같으면 숫제 눈에 뜨이지도 않았을 터이지만, 내 가슴에는 곧잘 뚫고 들어와서, 마치 빼낼 수 없는 가시자국처럼 되어 버렸어요.
  여러분은 아마도 그런 순간적인 인상에서 시작하여 이렇게 뚜렷이 남아 있는 감정을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요.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이야기 하겠어요.

  그것은 꽤 오래 된 이야기지만,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각되는군요. 그러므로 지금 머리 속에 그려 보기만 해도 그 당시의 감동이 새롭게 느껴져요. 나는 올해 나이가 쉰인데, 이 이야기는 내가 아직 젊어서 법률 공부를 하던 때의 일이지요. 나는 그 부렵에 좀 우울하고 꿈많은 청년으로, 염세적인인 철학에 빠져, 시끄러운 친구들과 어울려 소란한 카페에 드나들며 어리석은 계집애들과 상종하는 따위에 맞지 않았어요.
  나는 아침이면 일찍 자리에에서 일어났어요. 내가 가장 즐기는 도락의 하나는 아침 여덟 시 쯤에 륙상부우루 임업 시험장을 혼자서 산책하는 것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아마 이 임업 시험장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지요? 그것은 전 세기(世紀)부터 이미 세상에서 잊혀진 정원으로, 노인네의 인자한 미소와도 같은 아늑한 곳이었어요. 우거진 나무 울타리의 무성한 가지가 비좁은 오솔길에 쭉 늘어서 있었으며, 정원사는 커다란 가위로 쉴 새 없이 그 가지들을 손질하고 있었어요. 마치 소풍을 가는 중학생들처럼 늘어선 어린 나무들이며, 울창한 장미와 과일나무가 숲을 이룬 가운데 군데 군데 여러 가지 꽃이 만발한 꽃밭이 눈에 뜨었어요.

  내 시선을 송두루째 빼앗은 그 숲속 한 켠에는 꿀벌 일가가 살고 있었어요. 짚으로 된 벌통들은 나뭇가지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하늘을 향해 얌전히 놓이고, 재봉털 뚜껑 같은 널따란 문이 열려 있었어요. 그리하여 근처의 길가에는 어디나 금빛 꿀벌들이 붕붕거리며, 고요한 정원의 주인 아씨로 행세하고 있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이 주랑(柱廊) 같은 고요한 숲길의 진정한 샌책자(散策者)가 아니겠어요.
  나는 거의 매일같이 이 정원을 찾아와서 의자에 걸터앉아 책을 읽었어요. 때로는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주위에서 파리떼가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해묵은 관목 숲 속의 무한한 휴식을 즐기곤 하였어요.
 그런데 나는 이윽고 그 뚫어진 구멍을 통하여 이 정원에 드나드는 단골 손님이 나만 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 우거진 숲속 한 모퉁이 같은 데서 때때로, 몸집이 작달막한 어떤 기이한 노인과 마주치곤 했어요.
  그는 당꼬 바지에, 스페인 식의 밤색 프록코오트를 두르고 바클이 달린 단화를 신고 잇었어요. 넥카이 대신 레이스를 졸라매고, 챙이 넓고 긴 털이 달린 커다란 모자를 쓴 모습이 흡사 노아의 홍수 시절을 연상케 하는 노인이었어요.

  그는 몸이 매우 가냘프고 뼈대가 앙상하니 드러났으며, 얼굴을 찌그러뜨리면서 미소를 지어 보엿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눈까풀을 움직이며 눈동자를 번뜩이고 손잡이에 금이 박힌 단장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이 단장에는 굉장한 추억이 서려 있는 듯 싶어요.
  나는 처음에 이 노인을 만나자 꽤 놀랐지만, 나중에는 상당한 흥미꺼리가 되었어요.
  나는 담을 이룬 나무 잎사귀 사이로 노인을 바라보며 멀찌감치 뒤를 밟으면서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숲 모퉁이를 돌아갈 적마다 발길을 멈추곤 했어요.
  하루는 그 노인이 자기 혼자만 있는 줄 알고, 괴상한 몸놀림을 하기 시작하였어요. 처음에는 깡충깡충 뛰다가 멈춰 서서 한 번 경례를 붙이더니, 성컴 뛰어 오르면서 그 가느다란 다리로 짝자꿍을 하고나서, 맵시있게 빙그르르 돌며 괴상한 모습으로 다시 뛰어 오른 후에 흡사 여러 관중이라도 앞에 있는 것처럼, 인상을 쓰며 포응을 하는 듯한 몸짓을 하고 한바탕 웃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어서 그 인형 같은 초라한 몸을 뒤틀면서 텅 빈 정원을 향해 우스울 정도로 정다운 절을 가법게 해 보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깜짝 놀라 잠자코 멈춰 서서 분명히 우리 두 사람 중에서 어느 하나가 미쳤구나 했어요. 그리하여 서 노인이 미쳤나, 아니면 내가 미쳤나 입속으로 중얼거렸어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춤을 맞추더니, 마치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하듯이, 앞으로 나갔다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두 줄의 나무 숲을 향해 희극 배우처럼 떨리는 손으로 키쓰를 던지고는 의젓이 산책을 계속하는 것이었어요.
  그 후로 나는 잠시도 놓치지 않고, 그 노인의 뒤를 밟아오았어요. 그리하여 나는 그가 날마다 그 괴상한 짓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하루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정을 하고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은 날씨가 꽤 좋군요.」
  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하였어요.
 「그래, 꼭 옛날의 그 날씨야!」

  한 주일 후에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어요. 그리하여 나는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어요.  노인은 루이 15세 때부터 오페라관에서 무용을 가르쳐 온 분으로, 그 멋진 단장은 클레르몽 백작이 선사한 것이었어요. 그는 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입을 다물줄 모르고 끊임없이 지껄려 대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 노인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을 털어 놓았어요.
  「나는 카스뜨리쓰와 결혼을 했었지. 원한다면 자네에게 소개해 주지. 그런데 아내는 저녁 때라야 이리로 오네. 이 정원은 바로 우리들의 기쁨이자 생명이거든. 옛 것 중에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이것 뿐이라네. 만일 우리에게 이것마저 없다면, 우리는 살아 가는 재미를 잃을 걸세. 나는 여기 오면 젊은 시절과 다름없는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라네. 그래 우리 내외는 언제나 오후를 여기서 보내네. 그런데 난 아침 나절에 미리 이리로 발길을 옮기네. 난 아침에 워낙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나는 점심을 먹고 다시 륙상부우르로 돌아 왔어요. 그러자 그 노인도 와 있었어요.
 그는 검은 옷을 걸친 잘닥막한 할머니에게 점잖게 팔을 내어 맡기고 나를 소개하였어요. 할머니가 바로 라·카스뜨리쓰로, 임금님들과 귀공자를 비롯하여 온 세계에 낭만의 달콤한 씨를 뿌리고 다닌,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위개한 무용가였어요.  산뜻한 숲길에는 여러 가지 꽃 향기가 풍겨 오고, 부드러운 햇빛이 나무 잎 사이로 흘러들어, 물방울 처럼 우리의 머리 위에 군데군데 떨어지곤 하였어요.  그리고 라·카스뜨리쓰의 검은 드레스는 햇살이 배어 유난히 번들거렸어요.
  정원에는 아무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만 멀리서 들려올 뿐이었어요.
  나는 노인에게 부탁했어요.
  「인제 그 므느에트 무용의 유래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몸을 한참 떨더니 설명하기 시작하였어요.
  「므느에트는 춤 가운데서 단연 어뜸으로, 이를테면 춤의 여왕이란 말이야. 알겠어? 그러나 임금님들이 없어지면서부터 이춤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네.」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위엄 있는 태도로 매우 선정적(扇情的)인 긴 무용을 시작하였으나,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 스텝과 몸놀림과 자세만은 기억해 두고 싶었어요.  노인은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 혼란을 이르키고는, 화가 나서 짜증을 부리면서 서글픈 얼굴을 하였어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엄숙한 태도로 잠잠히 지켜 보는 옛 동료를 향해 말하였어요.
  「엘리즈, 어때요? 한 번 출래요? 이 분에게 므느에트가 뭔지 우리 같이 보여 주지 않으려우? 당신 의향은 어때요?」
  할멈은 불안한 듯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 보고는 말없이 일어나 영감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리하여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어요.
  두 늙은이가 꼭 어린아이 모양 이리저리 오가면서 희죽거리는가 하면, 서로 몸을 의지하여 고분고분 절도 하고,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흡사 낡은 두 인형이 녹슬은 기계― 옛날 에는 상당히 정교한 기술자의 손으로 된 것이지만, 지금은 금이 간―의 힘으로 날뛰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하여 가슴이 설레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애수로 하여 흥분하는 것이었어요. 마치 서글퍼지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환상이랄까, 아무튼 1세기쯤 뒤 떨어진 어떤 그림자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리하여 울음과 웃음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어요.
  이윽고 두 분은 춤을 멈추고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한동안 서로 마주 바라보며 놀라운 표정을 짓다가, 서로 부둥켜 안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어요.
 사흘 후에 나는 지방으로 떠났어요. 그리고는 두 분을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2년 후에 내가 파리에 돌아왔을 때에는 그 임업 시험장은 이미 없어진 뒤였어요. 그 정든 옛추억의 전당인 정원을 잃은 두 늙은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궁(迷宮)처럼 숲이 우거진 정원의 사라진 옛 향취 같은 그 꾸불꾸불한 오솔길이 잊혀지지 않는군요.

  그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까요? 그리하여 그 망령이 희망을 잃은 망명객처럼, 현대식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까요? 그 창백한 망령은 지금도 달없는 밤 같은 때, 묘지의 나무 숲을 누비며, 샛길을 무대로 그 꿈결 같은 므느에트를 추고 있을까요?
  나는 두 분의 추억이 잠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마음을 아프게 하며, 무슨 불치의 병이나 되는 것처럼 체내에 살고 있어요. 무슨 까닭일까요?  나로서는 알 수 없어요.
  여러분께서는 우스운 일이라고 조롱할실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