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語의 回想

Maupassant    

  요새 한동안 세상에서 떠들어 대는 라틴어의 문제와 관련하여 머리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있다. 그것은 내가 젊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중부지방의 어느 큰 도시에서 쑤프상(商)을 하는 집에서 내 젊은 시절의 학창생활을 끝내었다. 그 집은 바로 로비노 학원(學院)으로 특히 학생들의 라틴어 실력이 후수하여, 소문이 지방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에 이 학원은, 이 도시의 공립 중학을 비롯하여 군내(郡內) 모든 중학이 참가하는 학술 콩쿠우르에서 줄곧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처럼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피끄당씨 또는 피끄당 아버지라고 부르는<아기>교사의 공로라는 소문이 퍼졌다.

 세상에는 중년에 벌써 백발이 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그도 그런 사람 측에 속하였다.  언뜻 보아 나이를 짐작할 수 없고, 첫 인상이 벌써 그가 지나온 반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일찍이 갓스물 난 해에<아기 교사>로 어떤 학교에 봉직하게 되었다. 그무렵에 그는 좀더 공부를 하여 우선 면허를 얻고 나서,  학위(學位)도 받을 심산이었으나, 어느새 그만 그 생활에 젖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한평생<아기 교사>로 머물러 있게 되었으나, 라틴어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여, 그 병적(病的)인 열의(熱意)로 하여 괴로움을 받는 것이었다. 그는 여러 시인, 문인, 역사가들의 작품을 애독하고, 번역도 하여 주석을 붙이곤 하였는데, 그것도 광적(狂的)으로 열중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 자기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은 반드시 라틴어로 대답하도록 하려는 생각이 들자, 그 후로 이것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여, 드디어 학생들이 라틴어를 자기 나라 말처럼 할 수 있게끔 되었다.
  그는 마치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악사들의 연주를 듣는 것처럼, 학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尺)로 책상을 연시 딱딱 치며 말하였다.
  「르프레에르, 네가 하는 이야기는 어법(語法)에 맞지 않아! 아마도 문법을 잘 모르나 보군!」
  「플알뗄, 네 말은 완전히 프랑스말 식이야. 라틴어 맛이 전혀 없는 걸. 언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 자 좀 들어 봐……」
  이렇게 해서 결국에는 이 로비노 학원 학생들은 주제상(主題賞), 번역상, 토론상 등 라틴어 상을 모두 독점하였다.

  다음 해에, 걸레처럼 초라하고, 초췌하고, 사나운, 몸집이 작은 교주(校主)는, 학생 모집 광고와 학교 간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넣게 하고, 교문에도 써 붙이게 하였다.
  <라틴어 전문 학원―다섯 학급이 다 1등상을 받았음>
  <프랑스 전국 중·고등 학교 콩쿠우르에서 두 개의 우등상을 받았음>
  지난 10년 동안에 로비노 학원은 해바다 이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도 그 성공에 마음이 끌려, 나를 그 로비노 학원―우리는 라틴어 식으로 로비에뜨 또는 로비에띠노라고 불렀다.―에 특강생(特講生)으로 넣어, 피끄당 아버지에게 개인 교수를 받게 하고 한 시간에 5프랑씩 제공하였다. 이 5프랑은 피끄당 아버지에게 2프랑, 교주에게 3프랑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열여덟살, 철학과 학생이었다.

  수업은 거리로 면한 작은 방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피끄당 아버지는 교실에서처럼 라틴어를 쓰지 않고, 프랑스어로 자기의 슬픈 과거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었다.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는 의로운 그는, 나에게 정이 들어, 자기의 따문한 개인 사정을 들려주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 10년 내지 15년 동안에 누구하고나 단둘이서 이야기 한번 오붓이 나눈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난 말하자면 사막에 자란 한그루의 참나무 격이지.」
  근는 라틴어로 이말을 다시 되풀이하였다.

  다른 선생들은 그를 싫어하였다. 그런데 그는 시내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에게는 시내에 사는 사람들과 시귈 시간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밤에도 마찬가지야.  여가가 있어야지. 그게 제일 골치야. 내 소원은 단지 방을 하나 갖는 거야. 가구가 있고, 책들이 꽂혀 있고, 아무도 마음대로 손을 대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일용품 몇 가지가 갖춰진 방 하나 말이야. 그러나 나는 지금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지 뭐야. 한껏해야 바지와 웃저고리 하나 뿐, 털 이불과 베개도 없지 않아. 그러니 내가 들어 앉은 벽 넷이 전부야.  그밖에 내가 이 방에 글 가르치러 왔을 떼에만 이 방하나가 내 소유가 될 뿐이야. 넌 이해하기 아려울 거야. 나처럼 어딜 가나 사색과 회상과 상상 때문에 갇혀 있어야 할 처지에 있지 않은 네가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내가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는 열쇠 하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오직 그게 나한테는 행복일 텐데!
  낮에는 저 날뛰는 아이들과 한 교실에 갇혀 있고, 밤이면 한 침실에서 그것들이 코 고는 소릴 들어야 해. 그 개구쟁이들의 침대가 두 줄로 쭉 놓여 있는데, 그 제일 끄트머리 침대가 내 거야. 나는 거기서 자면서 그 개구쟁이들을 감독해야 해. 한시도 혼자 있을 때가 없군 그래. 간혹 밖에 나와 보면, 온 세상 사람들이 총 출동한 것만 같이.  그래서 길을 걷다가 피로해지면,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카페로 가곤 하지. 정말이지 이건 감옥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왜 좀 딴 일을 해 보시지 그러세요?」
  그는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뭐 뭐라구? 난 구두장이나, 목수나, 모자 장수나, 푸주간 주인이나 이발사가 못돼. 그러니 어떡하나? 난 라틴어 밖엔 아는게 없어. 그나마 수완이 없어서 바싸게 팔 줄 모르거든. 내가 학위만 가졌던들, 지금 내가 100쑤에 파는 걸 100프랑에 팔 수도 있을 거야. 그렇게만 되면, 아마 분명히 상품의 질은 낮아지겠지. 학위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네 명예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그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너와 같이 보내는 시간 외에는 휴식이란 취할 수 없어. 뭐 그렇다고 걱정을 말어. 네한테 손해가 가게 하지는 않을 테니. 그 대신 교실에서는 딴 아이들의 갑절이나 너와 이야길 하고 있거든.」

  나는 어느날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담배를 권하였다. 그는 처음에 어리둥절하여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방문을 바라보면서 말 하였다.
  「혹시 누가 들어오면 어쩌나!」
  「그럼 창 옆에서 피우시죠.」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리에 면한 창 옆으로 가서 창가에 팔을 짚고, 각자 조개 껍질처럼 우묵하게 패인 손으로 가느다란 권련(卷煙)을 가리우곤 하였다.
  맞은 편에 세탁소가 있었다. 흰 캬로꼬 옷을 걸친 여자 넷이 흰천을 펴 놓고 묵직하고 뜨거운 다리미를 이리저리 문질러 댈 적마다 김이 서려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별안간 다른 여자가― 그러니까 다섯 번째 여자가 팔에 커다란 바구니를 든 채 허리를 꾸부정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리미질을 마친 속옷과 목도리 씨이츠 따위를 손님 들에게 배달하기 위해서였다. 여자는 벌써 피로한 듯이 문간에서 멈춰 서서 담배를 피우는 우리를 바라보고 방긋이 웃더니 한 손으로 우리에게 키쓰를 던지는 것이었다. 조심성 없는 노동자들이 흔히 하는 그런 장난기가 서린 키쓰였다. 그녀는 이윽고 바구니를 메고 느릿느릿 나가 버렸다.

 그녀는 20세쯤 되어 보이는, 몸집이 작달막하고 좀 여윈 편이며, 창백한 얼굴에 예쁘장한 처녀로, 잘 빗질을 하지 않은 금발에 가린 두 눈에 언제나 웃음을 뜨우고 장난기가 있어 보였다.
  피끄당 아버지는 감동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저런 일을 어떻게 한담! 제게 어디 여자가 할 일이야! 소나 말이 할 일이지.」
 그는 말을 마치고 인간의 불행을 눈물로 동정하여 마지 않는 것이었다. 감상적인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흥분되어 가지고, 마치 쟝·쟈크·루쏘의 어투로 눈물을 머금고 노동자들의 괴로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이튿날 우리가 역시 그 창문에 팔을 고이고 있자니까, 어제의 그 여자가 우리를 보더니,「안녕하세요!」하고 좀 이상스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두 손으로 어제처럼 손짓을 하며 놀려 대었다.
  나는 그녀에게 담배를 하나 던져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 담배를 받아서 곧 태우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다른 네 여자도 문간으로 튀어나와 자기네도 담배를 얻으려고 저마다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날마다 그녀들과 학원의 두 게으름뱅이들 사이에는 어느새 우애의 거래가 되었다.

  피끄당 아버지는 실로 우스운 사람이었다. 그는 누가 불까봐 안절부절 못하였다. 잘 못하다가는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정쩡하니 우스운 몸짓을 하였는데, 그게 모두 그녀들에 대한 소심한 사랑의 표시였다. 그리하여 여자들은 일제히 키쓰를 던져 그에게 응답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짖궂은 생각이 하나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하여 하루는 우리 방에 들어서면서 귓속말로 믉은<아기 교사>교사에게 소곤거렸다.
  「선생님, 방금 저는 그 귀여운 처녀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왜 잘 아시죠? 그 바구니를 낀 여자 말씀예요.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았어요.」
  그는 내 심상치 않은 어조에 마음이 약간 들뜬 듯 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래, 그 여자가 뭐라고 하든?」
  「그 여자가 내게 하는 애기가……아……네게 하는 얘기가……선생님이 무척 좋아 뵜다는군요……제가 보기에는 분명히……분명히……선생님께 좀 반한 것 같아요.」
  그의 얼굴은 금새 새파랗게 변하더니 나에게 말하였다.
  「스 여자가 날 조롱하는 거겠지, 그런 일이 내 나이에 어디 있을 법이나 한가.」
  나는 심각한 어조로 말하였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그처럼 거장하신데 뭘요.」
  그는 나의 이 농담에 너무나 감동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내 주장을 내세우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그 처녀와 마난 체 하면서, 선생에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 이야기가 꽤 그럴싸하여 나중에는 내 말을 믿더니, 그 여자에게 자신있게 뜨거운 키쓰를 보내게까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나는 학원에 나오는 길에 정말로 그 여자를 만났다. 나는 서슴치 않고, 마치 10년 전부터 얼굴이 익은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그녀의 옆에 다가섰다.
  「안녕하셔요? 요새 별고 없습니까?」
  「네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담배 드릴깝쇼?」
  「아녜요. 거리에서 뭘.」
  「그럼 집에 가서 피우시죠.」
  「그렇다면 받지요.」
  「그런데 아가씬 아직 모르고 계셔요?」
  「뭐 말예요?」
  「그 늙은이가, 내 선생인 걸 말예요.」
  「피끄당 아버지 말예요?」
  「네, 바로 피끄당 아버지 말입니다. 선생의 성함은 벌써 아시는군요.」
  「암요. 그래서요?」
  「그 분이 아가씨에게 홀딱 반했단 말예요.」
  여자는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하더니, 큰 소리로 말하였다.
  「싱거운 농담 작작하셔요.」
  「천만에, 농담이라뇨? 수업 시간에도 줄창 아가씨 얘기를 하는 거예요. 두고 보세요. 그 분은 아가씨와 혼인을 하고야 말 테니까.」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결혼 문제는 모든 처녀들을 심각하게 만드는 법이다. 이윽고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뇌까렸다.
  「농담 말아요.」
  「맹세하죠. 글쎄 엄연한 사실이라니까요.」
  그녀는 발 앞에 놓인 바구니를 집어 들면서
  「아무튼 두고 보면 알게 되겠죠.」하더니 가버렸다.
  나는 학원에 가자 곧 피끄당 아버지를 외따른 데로 끌고 가서 말하였다.
  「그 아가씨에게 편지를 쓰셔야 합니다. 선생님한테 아주 미쳤어요.」
  그러자 그는 아닌게 아니라 긴 편지를 썼다. 솔직하면서도 은근한 어투로 비유와 수식이 많고 선생의 문장답게 철학적인 동시에 정중한 사랑으로 가득찬 편지라, 아름다운 희극으로서는 한편의 걸작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그녀에게 전하기 위해 맡았다.
  그녀는 심각한 태도로 감동하면서 그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이렇게 종알거렸다.
  「어쩌면 이렇게도 잘 쓰셨을까! 꽤 유식한가봐요. 나와 혼인하고 싶다는 얘기가 정말이예요?」
  나는 서슴치 않고 장담하였다.
  「여부가 있나요. 지금 그 분은 그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그러시다면, 오는 주일날 날 꽃섬(花島)에라도 초대해야 쟎아요?」
  나는 그녀를 초대하기로 약속하였다.

  피끄당 아버지에게 내가 그 여자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더니 몸시 감동 하였다. 나는 덧붙여 말하였다.
  「아가씨는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무척 정직한 여자 같아요. 유혹을 해 놓고 나서, 나중에 버리시면 안됩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 역시 정직한 사람 아닌가.」
 나한테는 사실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나는 단지 장난을 해본 것이다. 이를테면 학창시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 늙은 <아기 선생>의 천진난만함과 동시에 그 약점을 알아 차렸다. 그리하여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별로 생각지 않고, 단지 유희 기분으로 한 일이었다. 내 나이가 18세로, 그때 나는 벌써부터 고등학교에서 전형적인 개구쟁이로 통해 있었다.
  이리하여 나는 피끄당 아버지와 함께 마차를 타고 리·드·바슈 나루터에까지 가서, 거기서 앙젤양과 만나, 두 사람을 내 배에 태워 목적지까지 가기로(그때 나는 배를 저을 줄 알고 있었다)작정하였다. 꽃섬에 가서 우리는 셋이서 식사를 할 참이었다. 내가 자진하여 그들 사이에 뛰어든 것은, 내 승리를 향락하기 위해서였다. 또 내가 참가하는 데 동의한 것으로 보아 늙은이가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도 무릅쓸 정도로 그 여자에게 홀딱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내 보우트가 기다리고 있는 그 나루터에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풀밭, 아니 풀밮이라기보다는 높다란 풀언덕에 커다란 빨간 양산― 마치 엄청난 코끌리꼬 꽃 같은 양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그 양산 아래에 나들이 옷을 입은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놀랐다. 그녀는 얼굴이 좀 창백하고 정숙하며, 걸음걸이에 일꾼다운 데가 있기는 하였으나 정말 귀여운 여자였다.
  피끄당 아버지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끄덕여 그녀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늙은이가 먼저 내 배위로 올라왔다. 나는 노(櫓)를 쥐었다.
  두 남녀가 뒷 걸상에 나란히 걸터 앉았다.
  늙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뱃놀이를 하기에는 참 좋은 날씨죠.」
  여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러게 말예요.」
  그녀는 강물에 손가락을 적셨다. 손가락 위에 유리 칼날 같은 투명하고 얄다란 막이 생기곤 하였다. 배가 미끄러짐에 따라 가벼운 물결소리가 찰랑거렸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여자도 입을 열어 식사를 주문하였다. 뛰김 하나, 영계하나와 사라다―이윽고 그녀는 우리를 섬으로 안내하였다. 그녀는 섬에 대하여 자기집처럼 잘 알고 있었다.
  섬에서 그녀는 무척 명랑해지면서 엣되게 장난끼까지 나타내었다.

  모래밭에 이를 때까지는 사랑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나는 샴페인을 권하였다. 피끄당 아버지는 얼큰히 취하였다.
  여자도 좀 취기가 돌았다. 여자가
  「피끄당씨」하고 선생을 불렀다.
  「아가씨, 라울씨가 벌써 내 심정을 충분히 전해드렸지요?」
  선생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여자는 마치 판사(判事)처럼 심각한 얼굴을 하였다.
  「네, 그러셨어요.」
  「거기 대해 대답해 주시겠어요?」
  「그런 물음에는 아무도 대답 안하는 법이에요!」
   남자는 후끈 달아 숨을 헐떡이면서 말하였다.
  「적어도 제가 앞으로 아가씨 맘에 들 날이 오긴 올까요?」
  여자는 방긋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큰 바보세요. 너무 점잖단 말씀예요.」
  「아가씨, 적어도 시일이 좀 지나면, 생각해 주시겠어요? 저희들이……」
  그러자 여자는 함참 주저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건 혼인 말씀이시죠? 그밖의 일은 있을 수 없을 테니까요.」
  「물론이죠.」
  「피끄당 선생, 그러시다면 좋아요.」
  이리하여 이 장난꾸러기의 잘못으로 한 쌍의 혼인이 약속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별로 중대한 일로 생각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그들 두 사람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여자의 머리에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선생님도 짐작하시겠지만, 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단돈 몇 푼도 없어요.」
  남자는 씰랜드처럼 취하여 중얼거렸다.
  「나한테 저금해 놓은 돈이 5000프랑 있어요.」
  여자는 신이 나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토대는 닦을 수가 있겠군요.」
  남자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토대라뇨? 무슨 토대요?」
  「저더러 무슨 속셈이 있느냐구요? 두고 보세요. 5000프랑만 있으면 뮈든지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은 제가 그 학교 구내에 들어가 살기를 바라지는 않으시겠지요? 안 그래요?」
  선생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는 당황한 어조로 어물어물 대꾸하였다.
  「우리가 무슨 토대를 따로 세워요? 그건 옳지 못한 생각이오. 난 라틴어 밖에는 모르는 사람인 걸요.」
  이번에는 여자 쪽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전에 은근히 바라던 직업을 하나 하나 생각해 보았다.
  「선생님은 의사가 될 수는 없으세요?」
  「안되지요, 면허가 없는 걸요.」
  「그럼 약사(藥師)는요?」
  「그것도 안되구요.」
  그러자 여자는 기쁨의 함성을 올렸다. 마침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 올랐던 것이다.
  「그럼 우리 식료품 가게를 하나 사도록 해요. 전 그게 큰 소망이에요! 그걸 하나 사시면 돼요. 뭘 그다지 크지 않아두 좋아요. 5000프랑으로는 그리 큰 건 바라지 못해요.」
  남자는 불만을 말하였다.
 「아니죠. 난 식료품 가게 주인이 되지 못해요. 난……난……난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져서……또 내가 안다는 건 저……저……라틴어밖에 없구요……그러니 난…….」
  여자는 샴페인을 가득 따룬 술잔을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 그러나 그는 그 술을 받아 마시고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우리는 다시 배를 탔다. 새까만 밤이었다. 무척 캄캄하였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잘 보였다. 그들은 서로 허리를 껴안고, 여러번 입을 맞추곤 하였다.

  우리들의 그 탈선이 발각되자 피끄당 아버지는 작장에서 쫓겨났다. 그것은 커다란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도 화가 나서 나를 리보테 학교로 보내어 철학 공부를 마치게 하였다.
  여섯주일 후에 나는 그 학교를 마치고, 파리로 가서 법률 공부를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2년이나 지나도록 고향에 한 번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쎄르팡가(街)의 길목에 가게가 하나 선 것이 눈에 띄었다. 간판에는 <피끄당 식민(植民)생산물상>이라고 쓰고, 그 여백에 무식한 사람들도 알아 보도록<식료 잡화상>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나는 <쿠안툼 무타루스 아빌로!>하고 소리를 질러 보았다.
 피끄당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더니, 손님드을 내 버려 주고 두 손을 내밀며 내게 와락 달려 왔다.
  「야아! 이 사람아! 어서오게. 이게 얼마만인가! 이런 반가울 데가 있나!」
  이어서 보송보송하니 예쁜 여자가 급히 점포에 뛰어 나오더니, 나 앞에 몸을 확 던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몸이 비대하여 나는 알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 재미가 어떠세요?」
  하고 내가 물었다.
  피끄당이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하였다.
  「아아, 아주 멋 있어. 그래 멋 있지. 암 멋있구 말구. 올해에는 순이익이 3000프랑이나 되었다네.」
  「그러시면, 선생님 그 라틴어는 어떻게 되었어요?」
  「아! 아! 그 라틴어, 그 라틴어, 그 라틴어 말인가? 그 라틴어야 어디 주인 먹여 살릴 수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