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passant
「당신에게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어요. 저는 이제 두려운 것이 없으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저를 죽이고 싶으면 죽여도 좋아요. 당신의 자식 중에서 하나는 당신의 것이 아네요. 저는 지금 저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것만이 제가 당신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어요. 그 소름끼치는 한 남자의 압제와 당신이 저에게 강요한 그 징역살이와도 같은 임심과 해산에 대한 복수였단 말예요.
정부가 누구냐 고요?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어요. 아마 당신은 세상 사람들을 다 의심해 보실 테지요. 그렇지만 절대로 찾아내지 못해요. 저는 아무런 사랑도 기쁨도 없이 그 사나이에게 몸을 맡겨 버린 거예요. 오직 당신을 배반하기 위해서 말예요. 그러자 그 남자도 저를 어머니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어느 아이냐구요? 당신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예요. 이아들이 일곱이나 있으니, 그 가운데서 찾아내 보세요. 이런 이야기는 얼마 후에 하려고 했어요. 아주 나중에요. 남자를 배반하더라도, 그런 줄 모르고 있으면 복수가 되지 않으므로, 오늘 이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고백은 당신이 저한테 간청한 거나 다름이 없어어요. 이제 제얘기는 끝났어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서, 거리로 열린 교회 문을 향해 뛰어갔다. 등 위에서 바삐 도전(挑戰)해 오는 남편의 발길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차라리 도살장의 쇠망치 같은 남편의 주먹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져 몸뚱이가 돌을 깐 한길 위에 나가 쓰러지를 가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사히 마차에 올라탔다. 몸이 마구 쑤시고 뒤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하여 숨이 막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부에게 소리를 질렀다.
「집으로 가!」
두 필의 말이 쏜살같이 뛰기 시작하였다.
2
백작 부인은 자기 방에서 자녁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그것은 사형수가 마자막 시간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남편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 집에 돌아왔을까? 옹고집이오, 심술꾸러기이며, 무슨 짓이라도 능히 저지를 수 잇는 것일까? 집안은 잠잠하엿다. 부인은 줄곧 벽에 걸린 시계바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하녀가 들어와서 저녁 화장의 시중을 들고 나가버렸다.
시계가 여덟시를 쳤다. 그 때 누가 분을 두어 번 노크하였다.
「들어오세요.」
하인의 우두머리가 나타나 말하였다.
「마님! 저녁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백작이 돌아오셨어?」
「네, 나으리님은 지금 식당에 계십니다.」
부인은 순간 얼마전에 사 둔 조그만한 권총을 몸에 지니고 갈가, 생각해 보았다. 지금 기슴속에 움트고 있는 비글을 생각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인은 자식들도 모두 안자리에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고, 강심향료병 하나만 갖고 가리로 하였다.
부인이 식당에 들어갔을 때, 남편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내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아이들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사내아이들 셌은 아베·마랑 선생과 같이 어머니의 오른 쪽에 앉고, 계집애 셋은 영국인 가정교사 스미스 양과 같이 왼쪽에 앉았다. 나은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갖난애는 유모와 함게 방 한 구석에 혼자 떨어져 있었다.
계집애들 셋은 모두가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열 살짜리 맨 위의 계집애는 조그마한 흰레스 장식이 달린 파란 옷을 입고 있어, 마치 아름다운 인형처럼 보였다. 작은 아이는 아직 세 살도 못되었다. 세 계집애가 다 벌써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을 하고 장차 어머니와 같이 미인이 될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사내아이들 셋중에서 맨 위는 올해 아홉 살 인데 벌써 어른 같이 갈색 머리를 하고 나머지 두 아이는 밤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건장한 사나이가 될 소질이 충분히 엿보였다. 이 한 가족은 저마다 분명히 굳세고 활기찬 한 계통의 피를 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신부가 식사전 기도를 올렸다(손님을 초대하였을 때에는 아이들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에는 언제나 이렇게 모여서 식사를 하였다.). 이어서 모두들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백작 부인은 뜻하지 않은 감동을 느껴 가슴이 조여드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두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편 백작은 세 사내아이들과 세 계집애들을 벙갈아 가며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는 몹시 불안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큰 번민으로 혼란을 일으켜, 한 아이의 얼굴에서 다음 아이의 얼굴로 옮겨가며 들떠 있었다.
그는 별안간 굽이 달린 컵을 자기 앞에 내놓고 깨어 버렸다. 포도주가 식탁보를 물들였다. 부인은 이 단순한 동작으로 말미암아 생긴 조그마한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제서야 두 내외의 눈이 마주쳤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두 내외는 자기도 모르게 몇 초씩 사이를 두고 번번이 권총 알과도 같은 눈초리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네 개의 눈동자가 마주칠 때마다 전신에 결련을 일으키며, 두 사람의 가슴속을 마구 뒤 흔들었다.
신부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가 매우 긴장되어 있음을 알고 화제의 실마리를 찾느라고 애썼다. 그는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화제를 생각해 보았으나 적당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 번도 이야기의 꽃을 피우지 못하였다.
부인은 여자 독특한 솜씨로 사교계의 부인답게 신부가 꺼내는 말에 몇 마디 응답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자기자신의 정신상태가 뒤죽박죽이었으므로, 한 마디도 적당한 말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은그릇과 접시에 숟갈이 닫는 소리만이 달그락거리는 것이었다.
남편은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수그리며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의 자식들이 모여 있는 이 자리에서 아까 내게 한 그 이야기가 사실임을 맹세할 수 있오?」
부인은 핏줄에 증오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리하여 방금 남편의 사나운 눈초리에 도전한 그 기세대로 이 물음에 분명한 대답을 하려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오른손은 사내 아이들의 이마를 향하고, 왼손은 계집애들의 이마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거침없이 내답하였다.
「제 자식들의 머리에 대고 맹세하지요. 아까 말씀드린 이야기는 사실이에요.」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입수건을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의자를 벽에 밀어던지며 획 돌아서서 말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한편 부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생전 처음으로 승리를 맛본 사람처럼 조용히 말하였다.
「너희들이 알 일은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 아빠가 방금 골치 아픈 일을 당하셨어. 그래서 아직도 괴로워하시는 거야. 그렇지만 며칠만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리고 부인은 신부며 스미스 양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에게도 부드러운 말씨로 사랑이 담뿍 깃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부인은 온 가족을 데리고 응접실에 들어가 큰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를 시키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윽고 잘 시간이 되자, 그녀는 자식들에게 오랫동안 입을 맞추어 주고 나서 각각 자기 잠자리로 돌려보내고, 혼자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남편이 찾아올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으므로 아까 사교계의 여성으로서 자기자신을 지킨 것처럼, 이번에는 인간으로서의 자기자신을 지키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며칠 전에 사 두었던 조그만한 권총에 탄환을 넣어 호주머니 속에 감추어 두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그리하여 시계가 여러차례 울렸다. 드디어 이 큰 집안은 고요에 잠기게 되었다. 다만 거리를 지나가는 마차의 수레바퀴 소리만이 어제까지나 벽틈으로 새어들어 멀리서 흐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부인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하게 그리고 끈기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남편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방하다는 듯이 일종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것은 남편에게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하루 스물 네 시간 겪어야 할 고통을 던져주었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새벽의 여명을 알리는 햇살이 창밖에 늘어선 소나무 사이로 흘러 들어올 때까지 남편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녀도 남편이 들어오지 않을 심산임을 깨닫고 저으기 놀랐다. 그녀는 방문을 닫아 걸고 쇠를 잠근 다음, 얼마 전에 새로 달아 놓은 커어튼을 치고 자리에 들어가 눈을 뜬 채 가만히 누워서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으나, 남편의 꿍꿍이속은 알고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하녀가 차를 갖고 와서 남편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거기에는 자기가 좀 긴 여행을 떠난다는 사연이 적혀 있고, 끝에 가서 돈 쓸 일이 있으면 공증인에게 말하여 받아 쓰라는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