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   記

 

MAUGHAM, WILLIAM SOMERSET

 

   윌리엄·서머셋·모옴(Maugham, William Somerset)은 1874년 1월 25일에 프랑스의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로버트·오몬드·모옴은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의 고문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20세 년하의 미인이었다. 이 부부는 파리의 일대에서『美女와 野獸』로 소문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1882년, 소년 오옴이 8세 때에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그 후 2년만에 아버지도 암으로 세상을 떴다. 이렇게 되어 처음으로 영국 땅을 밟았다. 형이 셋 있고 모옴은 넷째로 막내가 되는데, 그들은 모옴과 깊은 관계가 없다.

   그가 최초로 배운 국어는 프랑스어로, 이 사실은 뒤에 모옴이 모파상의 작풍을 배워,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과 결부시켜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사실로 되어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 어린 소년 모옴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는 것은 <인간의 굴레> 첫머리에서,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영국으로 건너간 후 그는 캔터베리에 있는 킹스 스쿠울에 입학했는데, 生來의 더듬는 버릇 때문에 거기서의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 뒤 아버지의 유산으로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 유학했는데, 이 기간은 매우 즐거웠던 모양이다. 유락하기 2년 후에 그는 숙부의 의견을 고려하여 마음에도 없는 런던의 聖토마스병원 부속학교에 입학했다. 소년 시절부터 이때까지의 자세한 것은, 다소의 紛飾은 있지만, <인간의 굴레>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 의학교에서의 그의 생활은 진실한 의학생으로서의 생활이 아니라, 철이 들면서부터, 동경하고 있던 文壇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여가에 의학도, 공부하는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 의학생으로서 자주 빈민굴에 출입하고 있던 경험이 그의 처녀작 <람베스의 라이자>의 소재로 되어 있다. 뒤에 모옴은 이때에 의학공부를 소홀히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모옴이 본래 희망하고 있던 것은 劇作家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소수의 인텔리를 상대로 하는 극이 아니라, 대중을 즐겁게 해 주려는 것이었으며, 그가 노린 것은 커다란 高等劇場에서의 화려한 극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劇壇은 A·W·피니로우(1855~1935)나 H·A·존스(1851~1929)등의 老匠의 독무대로서, 새파란 모옴이 끼어들 틈바귀는 거의 남겨져 있지 않았었다. 그가 처녀작의 소설 <람베스의 라이자>를 쓴 동기는, 소설계에서는 비교적 쉽게 무명작가의 활약면이 얻어진다는 데에 착안한 모옴의 빈틈없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1907년, <프레데리크 부인>이 우연한 일로 商業劇場에서 대히트를 치고부터 극작가·소설가로서의 巨步를 내딛기 시작한다.
   <다락방에서 빵부스러기를 씹으며 그럭저럭 연명해 가다니, 될 수 있으면 그걸 면하고 싶었다. 돈이란 第6感과 같은 것, 이것 없이는 다른 5感도 작용시킬 수 없다고 깨달았다>고 한 그의 유명한 말은, 당시의 苦鬪時代의 그의 심경과 그 후의 그의 진로를 어느 정도 짐작케 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모옴의 소설가·극작가로서의 경력은 순풍에 돛단 배와 같아, 劇, 장편 소설, 단편소설, 기행문, 수필 등을 속속 세상에 내 놓았으며, 영국뿐 아니라 널리 세계의 독자에게 호소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극작품으로, <높은 양반>(1915), <1周>(1921), <일꾼>(1930), <셰피>(1933)등이 있고, 장편 소설로, <람주>(1930), <극장>(1937), <면도날>(1926), <阿慶>(1919) 등이 있다.

   모옴은 다른 작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자신을 탁 평쳐 보이는 인물이다. 그것을<서밍·업>이나 <작가의 수첩>뿐이 아니라 모든 작품의 곳곳에서 보여 주고 있다.
  또 모옴은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물론 인도, 중국, 남양에가지 발을 뻗쳤다. 그리고 그 지방이 무대가 되는 많은 작품을 써냈고, 기행문도 스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첩보부원으로서 러시아에 잠입하여, 거기서 얻은 것을 다편집<아쉔덴>(1928)에 수록하고 있다.

 

   모옴의 소설과 극작품을 보건대 그 특징은, 멋있는 대화, 그 나름의 익살, 예술지상주의적경향, 평이한 구어체의 명쾌한 문장, 여성 경멸의 태도에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체홉流의 단편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변화가 적은 기분을 주로 한 것에 만족치 않고, 또 줄거리를 무시하여 새로운 숫법에 몰두하고 있는 20세기의 영국 소설가를 비판하여, 시작이 있고, 클라이막스가 있으며, 에필로그가 있어야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그의 태도는 그의 작품의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이와같은 줄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사실 그의 재간 있는 줄거리의 운용은 밉살스러울 정도이며, 거기서 주제로 취택하고 있는 것은 不義密通, 殺人, 痴情 등, 누구에게나 맞는 화제로, 더욱이 무대는 남양, 중국을 비롯하여 동양의 각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로 다채롭다. 이 점만으로도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필요조건을 십이분 갖추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다음으로 그의 특질로서 익살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소설에 있어 고추 역할을 하여 독자로 하여금 슨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가 즐겨 쓰는 익살은 꼭 기발한 것뿐만은 아니고, 독자가 누구든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말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생각을, 그가 독자를 대신하여 급소를 찔러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도 역시 그의 작품이 대중성을 갖는 커다란 원인의 하나로 인정할 수가 있다. 그 익살의 바탕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보통 인간과는 逆의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데에 있다. 그가 기회 있을 적마다 말하는 바이지만, 인간이 갖는 多面性을 그 각도에서 볼 것 같으면, 惡人은 善人으로, 姦婦는 가엾은 순정의 여인으로, 현부인은 바람직하지 못한 빈틈없는 여자로 된다. 이 태도는 처녀작<람베스의 라이자>의 주인공 라이자에서 분명히 볼수 있으며, 또 그것이 全作品의 특질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태도는 거꾸로 우리가 모옴流로 관만한다면 휴우머니즘과 일맥상통하는 동시에 간과 할 수가 없는 사실이며, 또 그것은 이제부터 말하려는 그의 世紀末的인 審美主義 태도와도 통하는 것이된다.

  모옴이 태어난 해가 1874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인간형성의 기반이 되는 다감한 20歲代는 영국의 文藝界가 위선적인 풍조, 말하자면 빅토리아風에 대해 감연히 일어선 시대, 世紀末運動이 영국 朝野를 뒤흔들었던 시대에 해당한다. 이 운동의 주역자의 한 사람이 바로 오스카·와일드(1856~1900)인데, 그들의 구호는『예술을 위한 예술』이었다. 이 藝術至上主義는 젊은 모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그가 美를 추구하는 모습은 그의 작품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특히 단편의 걸작<비>는 그것을 가장 端的으로 나타냈으며, 인간의 二中性을 폭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옴의 修業時代의 靑年期는 오스카·와일드나 워터·페이터(1839~94)등의 화려한 문체가 영국의 문단을 지배했던 시대였다. 그도 일찍이 그러한 문체를 터득하려고 애쓴 때가 있었으나, 결국 그가 문장에 대하여 도달한 결론은 明快, 簡潔, 리듬이 있는 것이었다. 실제가 俗語를 적당히 섞은 유수와 같은 아름답고 읽기 쉬운 그의 문체는, 다른 어느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달과 六펜스>를 비롯하여, 모옴의 작품 전반에 걸쳐서 보여 주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의 신념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여성 경멸의 태도이다.
  <여자란 알고도 모를 것이다. 개처럼 취급하고 팔이 뻐근할 정도로 두들겨 패도 남자에게 붙어사니 말야. 그런데도 여자에게 넋이 있다니, 정말 턱없는 기독교의 환상이야>

   이와같은 여성 경멸의 태도는 그의 작품 어디서나 눈에 띈다. 그와 같은 경향은 작품만이 아니라 사생활에 있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는 여자를 즐기기는 했지만, 여자를 몹시 싫어했던 모양이다. 前妻 시리와의 사이에는 딸 라이자가 있는데, 1955년 7월에 이 시리의 사망통지를 받았을 때, 모레스크 별장에서 트럼프 테이블에서 혼자 혼자 놀고 있던 모옴은, 당장 트럼프를 내려놓고, 신이 나서 테이블을 탕탕 치며, 「타라, 라, 라, 라, 신난다, 別居手當도 끝장이다. 타라, 라, 라, 랏」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고 로빈·모옴의<모옴의 私生活>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모옴이 사랑스럽다고 느낀 여인이 전혀 없느냐 하면, 더는 몰라도 소설에서는 그렇가고 단언할 수 없다. 방종하고 무책임하며, 그리고 오로지 쾌락과 남자를 追求하는 여자――그와같은 여자에게 모옴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藝術이 道德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모옴의 審美思想이지만, 그에게는 도덕 같은 것은 이 쾌락에 비할 때 아주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눈에도 띄지 않는 문제였던 것이다.
  모옴은 실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로우지라는 여배우와 1904년경부터 애인관계를 맺고, 마침내 결혼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한 일도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