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자

 

MAUGHAM, WILLIAM SOMERSET

 

    나는 루이자가 무엇 때문에 나를 늘 성가시게 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기회 있을 적마다 내 등 뒤에서 그녀 독득한 방법으로 은근히 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는 터이다. 그녀는 매우 세심한 편이라,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암시(暗示)나 한숨, 또는 교묘하게 놀리는 두 손으로 아무튼 자기가 말하는 취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 가정 부인이었으며, 나와는 25년 전부터 가까이 지내는 사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구면 같은 것은 염두에 두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더러 나폭하고 우악하고 야비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그녀가 무엇 때문에 좀더 태도를 분명히 하여 나와 절교를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오리혀 나를 내 버려두지 않고, 함께 점심을 먹자고 청하기도 하고, 일년에 한두 번은 시골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지내게 하는 것이다. 

  나는 마침내 그녀가 이렇게 대하는 동기를 찾아내었다. 그녀는 내가 가지를 신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그것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원인이라면, 그것은 나와 친분을 계속해 보려는 이유도 되는 것이다. 내가 유난히 그녀를 우스운 여자로 가주하는 것은 그녀의 비위를 건드릴만도 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녀로서는 내가 잘못을 깨닫고 실수를 이정하기 전에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내가 자기의 그러한 가면(假面)을 들여다 본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걸 보고, 그녀는 나도 불원에 가면을 쓰게 되리라고 짐작하였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를 위선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나로서는 그녀가 세상을 희롱할 만큼 자기 자신을 철저히 조롱하였는지, 또는 그녀의 마음 속에 어떤 익살이 깃들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만일 그녀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면, 그녀가 나에게 끌린 것은, 한 쌍의 악한이 각각 남몰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서로 끌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루이자를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커다란 수줍은 눈을 가진 연약하고 섬세한 쳐녀였다. 그녀의 부모들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어떤 병을 앓고 나서, ― ―아마도 홍역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심장이 무척 약해졌으므로, 언제나 건강을 걱정해 왔었다. 그 무렵에 톰 메이트랜드가 그녀에게 구혼을 하자, 양친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딸이 몸이 약하여 결혼생활을 감당해 나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별로 넉넉하지 못한 반면에, 톰 메이트랜드는 부자였다. 그는 루이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겠너라고 약속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딸을 그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톰 메이트랜드는 몸집이 크고, 성미가 콸콸한 사나이로 훤칠하게 생긴 스포오츠맨이었다. 그는 루이자를 무척 사랑하였다. 그녀가 심장이 약하여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살아 있는 몇해 동안에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심산이었다. 그는 그렇게 즐기던 운동도 그만두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러기를 워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남편이 골프를 치거나 사냥을 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우연히도 그가 하루쯤 아내 곁을 떠나려고 하는데  심장마비가 생겼던 것이다.

   구 사람 사이에 혹시 의견 차이가 생기면, 그녀가 곧 양보하곤 하였다. 그녀는 아내로서 남편에게 잘 순종하였다. 그런데 언제나 심장에 탈이 생겨, 일주일씩이나 불평 한 마디 없이 누워서 배기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의 마음에 거슬리는 행동을 예사로 하는 무지막한 사나이가 될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는 사움도 곧잘 벌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의례 그가 누그러져, 아내를 간신히 설복시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8마일이나 걷는 길 여행을 하였다. 그것은 그녀가 몹시 원하던 여행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목격하고 톰 메이트에게 그녀는 생각하기보다 몸이 튼튼한 편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천만에, 그렇지도 못해요. 집사람은 몹시 허약해요. 세상에서 고명하다는 심장 전문위는 다 찾아가 보았으나,  저마다 집사람의 목숨은 실오래기애 매달린 격이라지 뭐요.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는 굳센 정신이 있어요.」
  그는 내가 자기 아내의 인내력에 대하여 한 말을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그 결과는 내일이나 되어야 알게 되겠죠.」하고 그녀는 푸념조로 나에게 말하였다.
 「아마도 죽음의 움턱까지 이르게 될 테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봐요.」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그녀가 혹시 파티 같은 데 참석하였을 경우에 흥만 나면 아침 다섯 시까지라도 춤을 출수 있지만, 재미가 없으면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톰이 일찌감치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내 내답을 기다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녀는 가느다란 미소를 살짝 지어 보였을 뿐, 그 큼직한 푸른 눈에 흥미 있는 듯한 표정은 지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댜답하였다.
 「내가 당장이라도 쓰러지면 당신이 고소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 걸요.」

   루이자는 남편보다 더 오래 살았다. 하루는 그들 내외가 항해를 하다가, 남편이 독감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때 그녀는 담요를 모두 갖다가 자기 몸을 깜싸고 감기를 몰아내었다. 남편은 루이자에게 상당한 재산과 딸 하나를 남겼다. 그녀는 마음을 붙일 데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충격을 견디어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가 곧 남편의 뒤를 따라 무덤으로 직행하리라고 생각하고, 고아로 남게 될 그녀의 딸 아이리스를 무척 가엾게 여겼다.

   이리하여 그들은 루이자에게 갑절이나 관심을 갖고, 그녀더러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그녀의 괴로움을 제거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주려고 하였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혹시 무슨 귀찮거나 불편한 일이라도 시키면, 그녀는 의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를 돌봐 줄 남자가 없고 보니, 앞길이 캄캄하였다. 연약한 몸으로 아이리스를 어떻게 키워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친구들은 그녀더러 개혼하면 좋지 않느냐고 했다. 심장이 그렇게 약한 여자가 재혼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러나 톰은 그녀가 재혼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재혼을 하면 아이리스에게는 매우 이로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중한 환자를 누가 아내로 데려다가 속을 썩히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부담을 짊어지겠다고 나선 청년은 얼마든지 있어, 남편이 죽은지 1년만에 그녀는 죠오지 흡하우스를 남편으로 맞아들였다. 그는 미남으로 몸집이 날씬하였다. 그리고 못 사는 편도 아니었다. 나는 이ㅓㄴ 연약한 여자를 돌보겠다고 나서는 그런 고마운 사람은 처음 보았다.

 「나야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테니까, 괴롭을 끼쳐 드리는 것도, 그리 오래지는 않을 거예요.」하고 그녀는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군에서 제대한 야심이 큰 육군 장교였다. 루이자의 건강ㅇㄹ 위해 그해 겨울은 몬테 칼로에서 나고, 다음 여름은 듀빌에서 보내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막상 군대생활을 떠나려고 생각하니, 좀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자는 처음에 그가 제대하는 데 찬성하지 않았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그녀가 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아내의 여생을 되도록 행복하게 해 줄 마련이 되어 있었다.

 「인제 얼마 남지도 않았어요. 귀찮게 굴지 않도록 노력하겠어요.」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후 루이자는 2, 3년 동안 심장병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게 차려입고, 혼자서 파아티에 참석하는가 하면, 도박도 즐기고, 때로는 키가 늘씬한 젊은 청년들과 어울려 춤도 추고, 바람도 피웠다. 죠오지 흡하우스는 첫 번째 남편만큼 열성적이 못되어, 그녀의 둘째 남편구실을 하기 위해, 가금 독한 술의 힘을 빌어야 하였다. 이 주벽(酒癖)이 차츰심해지자, 루이자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데 마침 정쟁이 일어나 그는 다시 군에 들어가 석달 후에 전사하였다. 루이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 비상시에 자기 개인의 슬픔에만 잠겨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심장병이 재발하였는지 몰라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기분 전화을 위하여, 몬테 칼로의 별장을 병자의 요양소로 만들었다. 친구들은 그녀가 이 요양소 일 때문에 오는 과로(過勞)를 감당해 내기가 아려울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얼마 못 살 것은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것과 이것은 상관 없는 이이야. 나도 세상에 적당히 봉사를 해야 잖어?」

  그녀는 죽지 않고 삶을 즐겼다. 프랑스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요양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느 파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미남인 프랑스 청년과 리츠 요정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나더러 요양소의 일 때문에 그곳에 왔노라고 하였다. 병원 직원들이 모두 자기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여, 몸이 약하다고 해서 한 가지 일도 그녀의 손에 맡기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그녀의 남편이나 되는 듯이 그녀를 잘 돌보아 주었던 것이다.
 「죠오지는 정말 가엾은 분이에요. 내 심장으로 그이보다 오래 살리라고 누가 꿈에나 생각할 수 있게어요?」
  그녀는 한숨을 내 쉬었다.
 「톰도 가엽지요.」하고 내가 말하였다.
  그녀는 내 말이 귀에 달갑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아름다운 눈에 눈물이 글성하였다.
 「당신은 말투가 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보군요.」
 「하여튼 심장은 많이 나아졌지요?」
 「뭘요, 오늘 아침에도 의사가 그러는데 말씀이 아니라지 뭐요.」
 「아, 그야 근 20년 동안이나 노상 그렇게 말해 오지 않았어요.」

   전쟁이 끝나자, 루이자는 런던에 눌러 살게 되었다. 그녀는 인제 가냘픈 몸집에 커다란 눈과 창백한 볼을 가진 40대가 되었으나 25년 전과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던 아이리스는 다 커서,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집에 와 있었다.
 「그 애가 날 돌봐 줄테죠. 나같은 약골과 같이 살아간다는 건, 그 애로선 못마땅한 노릇이겠지만, 그것도 어차피 오래 가진 않을 테니까, 별로 문제시하지 않을 가예요.」

   아이리스는 멋진 아가씨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꼬마 때부터 그녀는 떠들지 못하도록 제재를 받아왔었다. 또한 어머니가 까닭없이 곧잘 신경질을 부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루이자가 그녀에게 귀찮은 늙은 것의 치닥거리에 수고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말하였을 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가엾은 어머니를 위해 수고하는 것은 오히려 핵복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한숨을 삼키고 딸의 효성을 받아 들였다.
 「그 애는 자기가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게 기쁜가 보죠?」하고 루이자는 말하였다.
 「따님이 좀더 바깥 바람을 씌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까?」하고 내가 물었다.
 「내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가 그거예요. 그 앨 좀 더 즐겁게 해 줘야 할 텐데 도리가 없군요. 난 나 때문엔 아무도 희생시키고 싶진 않아요.」
  내가 그에 대하여 아이리스에게 충고를 했더니 그녀는 말하였다.
 「우리 어머님처럼 불쌍한 분이 어디 있겠어요. 저더러 친구들과 좀 자주 어울리고 파티에도 나가라고 하지만, 막상 제가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어머니는 금방 심장이 마비되는 걸요. 그러니 어떡해요. 그저 집에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할 밖에요.」

   그러나 그녀도 이윽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 내 젊은 친구인 매우 견실한 청년의 청혼을 그녀가 받아 들였던 것이다. 나는 아이리스를 귀여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녀가 마침내 자기의 생활을 갖게 된 기회가 온 것을 나는 매우 기빠하였다. 그녀도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청년이 수심에 찬 얼굴을 하고 날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의 결혼이 무한정 연기되었노라고 하였다. 아이리스가 가엾은 어머니를 아무래도 그냥 팽개쳐 둘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물론 내가 관여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루이자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녀는 티 타임이면 의례 친구들이 찾아 주기를 기다렸으며, 인제 나이도 지긋하므로, 화가나 작가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였다.
  「듣자니, 아이리스가 결혼을 하지 않을 심산인가 보더군요.」하고 나는 얼마후에 입을 열었다.
 「알고도 모를 일이예요. 글쎄 그 앤 결혼하라고 내가 마무리 권해도, 서두를 것 없다지 뭐예요. 내 생각은 아예 말라고 애걸해도, 내 곁을 떠날 수 ㄴ없다고 우겨대니 난들 어떡해요.」
 「그렇지만, 그 앤 그 애대로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야 괴로울 테죠. 하긴 내 앞날이 길어야 몇 달일 테지만, 난 누가 나 때문에 희생하는 건 질색이예요.」
 「루이자, 당신은 남편을 두사람이나 여의었오. 앞으로 두 사람쯤 더 여의지 못한다는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게 그래 좋은 일이란 말씀예요?」
  그녀는 불쾌한 어조로 반문하였다.
 「당신은 마음에 내키는 일이면 뭐든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만큼 몸이 튼튼하지만, 언짢은 일만이 생기기만 하면 심장에 고장이 나거든요. 그래 이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으셔요?」
 「아, 알아 듣겠어요.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알겠어요. 당신은 내가 몸에 아무 이상도 없는데 괜히 그런다는 거죠?」
 「나는 그녀를 똑바로 노려 보았다.」
 「그럼요, 당신은 지난 25년 동안이나 괜히 수선을 떤 거지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이기적이고 짖궂은 여자가 아닐까요? 두 남자의 일생을 망쳐 놓고도 모자라, 이제 딸의 일생까지 뭉개 버리려고 하는 거지 뭐요?」
  나는 그때 루이자가 설사 심장마비를 일으켰더라도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화를 발칵 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다만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당신은 아마 곧 나한테 그런 말 한 걸 후회할 거예요.」
 「그래 아이리스를 그 청년에게 주지 않을 셈인가요?」
 「내가 결혼하라고 얼마나 졸랐는지 아세요? 그렇게 되면 난 죽게 되리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지만, 할 수 없지요. 날 돌봐 줄 사람이 없어지니까요. 난 인제 남에게 짐이 될 뿐이예요.」
 「그래, 결혼을 하면 죽게 될 거라는 말을 그 애에게 했나요?」
 「하도 묻기에 했죠.」
 「마치 마음에 없는 일을 누가 억지로 시켜서 했다는 식이군요.」
 「그 앤 자기 마음만 내킨다면, 그 청년과 내일이라도 결혼할 수 있을 거예요. 그 결과 내가 죽는데도 할 수 없지요.」
 「그럼 어디 한 번 모험을 해 볼까요?」
 「당신은 나한테 조금도 동정을 느끼지 않으세요?」
 「남이야 어지 되든 자기만 위하라는 사람을 동정할 여지가 어디 있어요?」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루이자의 창백한 두 볼에는 붉은 반점(斑點)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노기(怒氣)가 가시지 않았다.
 「한 달 내로 아이리스를 결혼시키기로 해요.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애와 당신은 그 때문에 어떤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어요.」
  루이자는 약속대로 하였다. 결혼 날짜가 정해지고, 신부의 값진 장신구를 주문하고, 청첩장을 돌렸다. 아이리스와 청년은 무척 기뻐하였다. 결혼식을 올리는 날 아침 열 시에, 그 막마와 같은 루이자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녀는 자기를 죽게 한 아이리스를 관대히 용서하고 죽어 갔던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