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서울

 

HEMINGWAY, ERNEST

 

  아래층 식당에서는 창수(槍手)가 사제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만일 방안에 여자들이 없으면 영국인 같은 신사들도 흥미있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여자도 외국인도 있었다. 창수는 지금 두 사람의 사제를 재미나는 듯이 거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창수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사마귀가 달린 경매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프킨을 접고 술을 병에 반 이상이나 남겨 두고 나가 버렸다. 만일 이미 루알카 여관에서 술값을 지불하였더라면 그는 그 술병을 밑바닥까지 다 따라 마셨을 것이다.

  이 두 사제들은 창수를 바라보지는 않앗다. 한 사제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와서 기다린지 벌써 열흘이나 죄었오. 응접실에 앉아 종일 있었지만 그 사람은 날 만나 주지 않는 구려.」
 「무슨 일인데요?」
 「아무것도 아니오. 지금 당국에 거역하여 뭘 할 수 있겠오?」
 「나는 이곳에 온지 벌써 두 주일이나 되었는데, 한 일은 아무것도 없오.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만나 주지 않소.」
 「우리는 아마도 버림을 받은 나라에서 왔나 봐요. 노자가 다 떨어지면 동아가야지요.」
 「그래요. 마드리드가 갸리시아에 대하여 대단하게 여길 리가 없지 않소. 우리는 가난한 관구(管區)이니 말이오.」
 「사람들은 우리 바시리오 사제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바시리오 알봐레즈의 총명을 믿을 수 있오.」
 「마드리드는 사람을 해치는 도시지요. 스페인을 망치고 있단 말이오.」
 「그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나서 거절을 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당신은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지쳐 버릴  거요.」
 「어디 두고 봅시다. 나도 남들처럼 기다릴 수는 있오.」
창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제들이 앉아 있는 식탁 쪽으로 가서 반백의 매같은 얼굴을 하고 그들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투우사로군.」
  한 사제가 다른 사제에게 말하였다.
 「좋은 놈 같군.」

  창수는 투덜거리면서 식당밖으로 나갔다. 그는 재색 자켓을 걸치고 허리가 날신하며 다리는 앙가발인데다가 꼭 끼이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굽이 높은 목축업자들의 신을 신고 마룻바닥을 쿵쾅거리면서 웃는 얼굴을 하고 의젓이 걸어갔다. 그는 개인의 힘으로 이룬 한 야무진 직업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밤이면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잘난 체 거만하게 구는 것이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현관 복도에서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 쓰고 카페로 나가는 길이었다.

 창수가 밖으로 나가자 사제들도 자기네들만 식당 안에 남아 있는 줄 알았던지, 뒤이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제는 식당에 파코와 중년 급사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식탁을 치우고 술병을 부엌에 갖다 놓았다.
  부엌에는 잡시를 씻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파코보다 세 살 위로, 비꼬기를 잘하였다.
 「이 술을 들게.」
  중년 급사가 발데코난주 한 잔을 따라서 그에게 주었다.
 「네, 들지요.」
  소년은 술잔을 얼른 받아들었다.
 「파코 자네도 한 잔 하게!」
  늙은 급사가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파코가 말하였다. 셋이서 어울려 술을 마셨다.
 「이젠 난 가봐야겠어.」중년 급사가 말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남은 두 급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는 밖으로 나가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파코는 발 뒤꿈치를 버티고 사제 한 분이 쓰던 내프킨을 들어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투우사의 동작을 생각해 내면서 서서히 움직이는 회전술을 본따 팔을 흔들었다. 이어서 돌아서면서 바른 발을 앞으로 가볍게 내밀고 가상적인 황소에 두 번 째 패스를 하고 나서, 여유있게 세 번째의 패스를 하였다. 알맞게 간격을 둔 그럴듯한 패스였다. 그는 다시 내프킨을 허리에 가져다가 반회전술로 궁덩이를 살짝 황소에게 빼돌리는 시늉을 하였다.

  이름을 앤리크라고 부르는 접시 닦기 소년은 파코가 하는 거동을 비판적인 눈으로 멸시하고 있었다.
 「황소는 성질이 어때?」
하고 그는 물었다.
 「꽤 용감해.」
  파코가 대답하였다.
 「자아, 봐!」
  그는 날씬한 자세로 똑바로 서서 네 번째의 멋진 패스를 제법 미끈하게 그리고 점잖게 해치웠다.
 「그런데  황소는 어찌된 거야?」
  앞치마를 걸친 앤맄크가 술잔을 들고 물었다.
 「아직 가스가 많아.」
 「구역이 난다.」앤리크가 말했다.
 「왜?」
 「이것 봐!」
  앤리크는 앞치마를 벗고 가상적인 홍소의 보기를 들면서 멋진 회전술을 네 번 해 보이고는 황소에게서 비켜 걸어나오면서 앞치마로 황소의 콧등을 스쳐 호선(弧線)을 그리면서 레보페라로써 동작을 끝내었다.
 「이걸 보란 말이야. 난 접시나 씻으려고 해.」그가 말하였다.
 「왜?」
 「무시무시해!」앤리크가 말하였다.
 「투우장에서 황소와 마주칠 때를 생각해 봐!」
 「아냐, 난 무서워하지 않을 걸.」
 「말 말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투우사는 황소를 다룰 수 있도록 그 무서움을 억제할 뿐이야. 난 아마츄어 시합에 나간 적이 있어. 어떻게 무서운지 도망쳐 버렸어. 무두들 웃었을 거야. 너도 아마 무서워할 거야. 그렇지만 않아 봐. 스페인의 구두닦이들도 다 투우사가 될 걸. 너 같은 촌놈은 나보다 더 무서워할 거야.」
 「천만에!」파코가 말하였다.
 

  그는 이 투우사의 놀음을 상상 속에서 너무나 여러 번 해 왔던 것이다. 그는 너무나 여러 번 황소의 뿔과 젖은 콧등과 귀를 경련시키면서, 머리를 수그리고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발을 쿵쿵거리면서 케이프를 휘두르면, 성난 황소가 자기 옆을 스쳐나가고, 다시 케이프를 휘두르면 또 돌진해 오며, 또 다시 휘두르면 공격해 오는 것을 보아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의 큼직한 반회전술로 자기 주위에 황소가 휘말리게 하고, 다음 번의 아슬아슬한 패스에서 황소의 머리가 자기 자켓의 황금 장식에 걸리게 하고 나서, 몸을 내 저으면서 걸어나오면, 황소는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멍청하게 서 있으며, 관객들은 우레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그는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남들은 무서워하더라도 자기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무서운 생각이 들면 어떻게 적절히 조처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만하였다.
 「나는 무서워하지 않을 걸.」하고 그는 말하였다.
 「제기랄」하고 앤리크는 다시 말하였다.
 「어디 한 번 해 볼까?」
 「어떻게?」
 「이봐!」앤리크가 말을 이었다.
 「너는 황소는 생각하지만, 황소의 발은 생각하지 않지 뭐냐. 황소란 힘이 무척 세어 그 뿔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찢거든. 그리고 총검처럼 찌르구 말이지. 그 뿐인가, 곤봉처럼 때려눕힌단 말이야.」
  그는 테이블 서랍을 열고 두 개의 싣고를 꺼내었다.
 「내 이 칼을 의자다리에 매달고, 내가 의자를 내 머리 앞으로 쳐들어 황소 모양을 하지. 이 칼이 뿔이란 말이야. 만일 네가 그런 패스를 한다면 볼장 다 보는 거야.」
 「앞치마를 발려줘」하고 파코가 말하였다.
 그걸 식당에 가서 해 볼 테니까.
 「안돼. 파코, 하지 마.」
  앤리크는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할 테야. 난 조금도 무섭지 않아.」
 「이 같이 덤벼드는 걸 보면 겁이 날 걸.」
 「어디 두고 봐. 앞치마를 이리 좀 별려 줘.」
  파코가 말하였다.

  이때 앤리크는 면도날처럼 뽀죽한 두 개의 식도를 의자 다리에, 두 개의 더뤄워진 내프키으로 칼자루 반에까지 단단히 싸서 붙잡아 매었다. 그 동안에 퍼고의 두 누이는 <안 크리스티>의 그레타 가르보를 보러 영화관으로 갔었다. 두 사람의 사제 중에서 한 사람은 샤쓰바람으로 앉아서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읽고 있었으며, 다른 사제는 잠옷으로 갈아 입고 매괴경(玫瑰經)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병들어 누워 있는 투우사 이외에, 다른 투우사들은 풀노 카페에 갔었다. 그곳에서 커다란 몸집에 머리가 새까만 창수는 당구를 치고 키가 작은 착실한 투우사는 밀크 커피를 앞에 놓고, 중년의 투우사의 조수와 그밖에 노동자들과 함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주정뱅이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창수는 카자라 부란디 한잔을 앞에 놓고 이미 용기도 사라진 투우사가, 조수가 되려고 칼을 버린 다른 투우사와, 그리고 살림에 시달린 듯한 창부 두 사람과 함께 앉아 있는 저쪽 테이블을 재미있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경매인은 한길 모퉁이에 서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키다리 급사는 노동조합 운동 집회에서 발언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며, 중년 급사는 알바레즈 카페의 노대(露臺)에서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루알카 여관의 여주인은 잠이 들어, 긴 베개를 두 발 사이에 끼고 반듯이 누워있었다. 비대하고 깨끗한 몸집을 한 그녀는 무사태평이었다. 그리고 믿음이 두터워 20년 전에 죽은 남편을 날마다 그리워하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투우사는 자기 방에서 손수건을 입에 대고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는, 앤리크가 나프킨으로 칼을 의자 다리에 붙잡아매고 의자에 칼이 달린 다리 쪽을 앞으로 내밀어, 두 개의 칼이 똑바로 앞을 가리키면서 자기 머리 양쪽에 캉이 하나씩 뾰죽하게 나오도록 하고는 의자를 머리 위로 추켜들었다.
 「아이, 무거워!」하고 그는 말하였다.
 「이봐 파코! 위험해. 관둬.」
  그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파코는 일어서면서 그와 맞서서 앞치마를 펴들고 두 끝을 접어 손에 꽁꽁 동여매고, 엄지 손가락은 위로, 둘째손가락은 아래로 향하게 하여, 마치 황소의 눈을 잡으려는 듯이 펴 들었었다.
 「똑바로 밀고 나와봐.」하고 말하였다.
 「황소처럼 빙빙 돌아 가. 자 덤벼들어라.」
 「언제 패스를 하는지 알고 있어? 세 번 하고 나서 중간 패스를 하는게 나을 거야.」
 「됐어.」파코가 말하였다.
 「그런데 똑바로 돌진해 봐. 자 덤벼라. 요 가엾는 황소야.」
  앤리크는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달려갔다. 파코는 복부 앞을 스쳐갈 때 칼을 향해 앞치마를 내흔들었다. 칼이 스치자 정말 시퍼렇게 뾰죽 나온 맨들맨들한 뿔 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앤리크가 그를 보내고 다시 돌진해 올 때, 쿵하고 옆을 스친 것은 황소의 따근한 피투성이의 옆구리였다. 그러자 황소는 고양이처럼 되돌아 다시 공격해 왔다. 그는 그 칼끝을 치켜보고 왼발을 두 인치쯤 더 앞으로 내밀었다. 칼은 지나치지 않고, 마치 포도주 가죽부대를 쑤시듯 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굳어 버린 강철의 안쪽 위와 언저리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앤리크는 외쳤다.
  「아이, 뿔을 뽑아라!」
  그러자 파코는 의자 쪽으로 미끄러졌다. 앤리크는 앞치마를 손에 쥔 채 칼이 파고에게 들어 갈 때 의자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칼은 빠져나왔다. 그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내프킨을 대고 꼭 잡고 있어.」
하고 앤리크가 말하였다.
 「의사를 불러 올께 꼭 쥐고 있어. 피를 막아야 해!」
 「고무 컵이 있을 텐데.」
  파코가 말하였다. 그는 전에 그것을 투우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곧 돌아올께.」앤리크는 울면서 말하였다.
 「난 위험하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을 뿐인데.」
 「걱정 할 것 없어.」파코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렇지만 의사는 데리고 와.」
  투우장에서는 사람들이 들어서 급히 수술실에 옮겨 갔다. 만일 수술실에 도달하기 전에 넓적다리의 동맥에서 피가 다 흘러나오면, 그들은 사제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사제 한분에게 알려 줘.」
  파코는 아랫배에 배프킨을 꼬옥 누르고 말하였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앤리크는 캬레라 샌 제로미노를 뛰내려가 야간응급치료소로 뛰어갔다. 파코는 처음에는 일어나 앉았으나 곧 마룻바닥에 퍽 쓰러졌다. 그는 숨을 끊을 때까지, 자기의 생명이 마치 목욕탕의 더러운 물이 매개를 뽑으면 곧 빠져 버리듯이, 육신을 떠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놀랐으며, 한편 현기증을 느꼈으며, 휘개하려고 입을 열었다.
 「오, 하나님이시여, 저의 사랑이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송구하기 짝이 없어오며, 이제 단호히 결심하오니……」
  그는 되도록 빨리 말하려고 하였으나, 말을 맺기도 전에 실신할 듯한 현기증을 느껴 얼굴을 아래로 푹 수그리고 말았다. 죽음은 재빨리 닥쳐왔던 것이다.
  피는 끊어진 동맥을 타고 신속히 쏟아졌다.

  응급치료소의 의사가 앤리크의 팔을 붙잡은 순경 한 사람을 데리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을 때, 파코의 두 누이는 여태 그랜비어의 영화관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가알보 영화에 실망을 금치 못하였다. 그 주연 여배우는 다른 영화에서는 굉장히 하려한 씬에만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비천한 환경 속에서 등장하고 있엇던 것이다. 관객들은 저마다 실망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휘파람을 불고 발을 동동 굴으면서 항의하였다.

  이때 여관에서는 손님들이 각자 자기 볼일들을 계속하고 있었다. 두 사제만은 기도를 마치고 잘 분지를 하고 있었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창수는 창녀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창녀 하나를 데리고 카페를 나왔다. 그녀는, 바로 용기를 잃고 만 그 투우사가 술을 사 준 창부였다.
  파코는 이런 일들을 알 리 없었으며, 더구나 이 사람들이 이튿날, 아니 장차 무슨 짓을 할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어가는지 알지 못했으며, 그들이 끝장을 보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죽었다. 스페인의 속담처럼 한 많은 꿈을 가득 안고 죽어버렸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 그 어느 하나도 잊어 버릴  시간 여유도 없었다. 심지어 숨지기 전에 회개를 끝낼 시간마져 없었다. 또 일 주일 내내 마드리드 시민들을 실망케 한 그 가알보 영화에서 실망할 시간 여유도 갖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