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 邦 人

第 2 部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2

   이야기하고 싶지 않던 일들도 있었다. 나는 형무소에 들어왔을 때의 일을 결코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그러한 혐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즉, 처음에 나는 형무소에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어떤 새로운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일은 처음이자 단 한 번인 마리의 방문을 받고 나서부터였다. 마리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나의 아내가 아니라고 해서 이제는 면회를 하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나는 나의 감방이 내 집이고 나의 생활은 그 속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체포되던 날, 나는 우선 이미 여러 사람들이 들어 있는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는데, 대부분이 아라비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웃더니, 무슨 일을 저질렀냐고 하였다. 아라비아인을 한사람 죽였다고 했더니,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다. 그들은 누워서 잘 돗자리 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돗자리 한 끝을 말아서 베개로 사용할 수 있었다. 밤새도록 빈대가 얼굴 위를 기어다녔다. 며칠 후에 나는 독방으로 격리되어, 판장 위에서 자게 되었다. 변통(便桶)과 쇠로 만든 대야기 옆에 있었다. 형무소는 시가지 꼭대기에 있었으므로, 조그마한 창문으로 바다가 내다보였다. 어느날 찰창에 대달려 햇빛을 향하여 얼굴을 내밀고 있으려니까, 간수가 들어와서 면회온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리가 왔으려니 생각하였더니 과연 찾아온 사람은 마리였다.

 면회실로 가기 위해서 기다란 복도를 거쳐서, 계단을 지나 끝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하여 넓은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큰 방에 들어섰다. 그 방은 옆으로 가로막은 커다란 두 개의 철책에 의해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철책 사이에는 8미터 내지 10미터 가량의 간격이 떠 있어서 면회자와 죄수의 사이를 떼어놓고 있었다. 내 앞에 줄무늬가 진 옷을 입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은 마리가 나타났다. 내가 서 있는 쪽에는 죄수들이 십여 명 있었는데, 대부분은 아라비아 사람들이었다. 마리는 모오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두 여자 사이에 끼어 있었다. 한여인은 입술을 꼭 다물고 키가 작고 점은 옷차림을 한 노파였고, 또 한 여인은 맨머리의 뚱둥한 여자로서, 몸짓을 유난히 하며 목청을 돋구어서 지껄이고 있었다.

  철책 사이의 거리로 말미암아 면회인이나 죄수들은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만 하였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넓고 펀펀한 벽에 부딪치는 요란한 목소리와 하늘에서 유리창을 통하여 방안 퍼지는 눈부신 햇빛으로 말미암아 얼떨떨하였다.

 내가 들어선 방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곧 밝은 빛에 더러난 얼굴들을 독똑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간수 한 사람이 철책 사이의 복도 끝에 앉아 있었다. 대부분이 아라비아인 죄수들로서, 그들은 그 가족들과 마주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소란한 가운데서도 나자막한 말로 서로의 의사를 교환하는 것이었다.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그들의 가느다란 속삭임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교차되는 마소리에 대하여 사뭇 일종의 바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한 모든 것을 곧 깨닫고 나는 마리에게로 나섰다. 그녀는 벌써 철책에 달라붙어서 웃어 보였다. 나는 그녀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하였으나 입밖에 내지는 못하였다.
 「어떠세요?」
하고 그녀는 목청을 돋구워 말하였다.
 「별일 없어.」
 「불편하진 않으세요?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무것도 없어.」
 우리들은 여기서 말을 끊었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뚱뚱한 여자는 애 옆의 사나이를 행햐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아마, 남편인 듯하였으며, 솔직한 눈길을 가진 키가 큼직하며 금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긴지 하던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쟌느는 그녀석을 붙들려고 하지 않아요.」
하고 여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
  하고 사나이는 대꾸하였다.
 「당신이 나오면 그 녀석을 꼭 붙잡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그래도 듣질 않는구려.」

 마리도 그때 레이몽이 문안을 하더라고 소리를 지르기에 나는 고맙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난의 목소리는<그녀석은 잘 있어?>하고 묻는 나의 옆의 사나이의 목소리에 눌려 버리고 말았다.그의 아내는 <몸이 아주 좋아졌어요>하면서 웃었다. 내 왼편에 있던 손이 가냘프고 키가 작은 청년은 아무말도 없었다. 그는 자그마한 노파와 마주서서,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더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마리가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외쳤기 때문에 나는
 「그야 물론이지.」
하고 대답하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마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옷에 가린 그녀의 어깨를 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그 엷은 피륙에 요적을 느꼈고, 그피륙 이외의 무엇에 희망을 가져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어 한 말도 아마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사뭇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는 그녀의 반짝이는 이빨과 눈망울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웨쳤다.
 「나오시면 우리 결혼해요!」
 「글쎄.」
하고 나는 대답하였지만, 그것은 무슨 말이고 지껄이기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매우 빠르고 높은 음성으로 정말이라고 하면서, 석방되면 또 해수욕을 하러 가자고 하였다. 옆에 있는 여자도 고함을 치며, 서기과(書記課)에 바구니를 맡겼다고 말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하나하나 줏어섬겼다. 돈이 많이 든 것이니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왼쪽 옆에 서 있는 청년과 어머니는 아직도 마주 바라보기만 하였다. 아라비아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아직도 우리 발밑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밖에서는 햇빛이 창문에 부딪쳐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너니 그 햇빛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 위를 신선한 액체처럼 흘러 넘쳤다.

  나는 몸이 좀 불편하여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리를 좀 더 보고 싶었다. 그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마리는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연신 웃고 있었다. 속삭이는 소리, 외치는 소리, 주고 받는 이야기 소리가 서로 교차되었다. 내 옆에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와 노파 두 사람만이 침묵의 고도(孤島)를 이루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라비아 사람들이 하나씩 이끌려 나갔다. 맨 첫사람이 나가 버리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말을 중단하였다. 키가 작은 노파가 철책 창살로 다가섰다. 동시에 간수가 노파의 아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하고 말하자, 노파는 두 창살 사이오 손을 들이밀어 아들에게 천천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노파가 나가자 모자를 손에 든 남자 한사람이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더니, 이와 동시에 죄수 한 사람이 끌려 들어와서 서로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었다. 방안이 다시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내 오른쪽에 있던 사나이가 나갈 차례가 되자, 그의 아내는 아직도 소리를 크게 지를 필요가 없게 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였다.
  「몸 조심하시고 아무쪼록 주의해야 해요.」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마리는 얼굴을 창살에 문지르며, 켕겨서 굳어진 듯한 웃음을 짓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리가 편지를 보낸 것은 그 후 조금 뒤의 일로서, 이때부터 내가 말하고 싶지 않던일이 시작되었다. 어쨋든 과장을 삼가야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나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형무소에 수감된 후 처음에 가장 괴오웠던 것은 내가 자유인의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일이었다. 예컨데 바닷가에 가서 물속에 몸을 잠그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발치에 해초를 밀고 오는 잔잔한 물결 소리며 물속에 몸을 잠갔을 때의 느끼는 해방감 그러한 것들을 상상할 때, 나는 감옥의 담벼락이 그 얼마나 견고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한 심정이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죄수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날마다 뜰안에서 산보를 한다든가, 변호사의 방문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밖의 시간은 이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그 무렵에 나는 만일 내가 고목나무 밑둥속에 살게 되어 머리 위에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는 외에 할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생활에 차차 익숙해 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여기서 변호사의 진귀한 낵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듯이, 혹은 자 바깥 세상에서 마리의 육체를 껴안을 것을 기다리며 토요일까지 참고 견디듯이, 날아가는 새들의 그림자며, 흘러가는 구름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결코 나무 밑둥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어너미의 생각도 마찬가지여서,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 익숙해지게 마련이라고 늘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나는 대체로 그런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괴롭기는 하였지만, 에쓴 덕분에 그럭저럭 넘기게 되었다. 예컨대 여자에 대한 정욕은 하나의 두통 거리였다. 나는 젊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마리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여자, 모든 기회에 좋아하여 사귀던 모든 여자들을 생각한 까닭에 나의 감방은 그러한 여자들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고, 욕정이 충만해 있었다. 그것은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였지만, 시간을 보내는데 필요하였던 것이다. 나는 마침내 식사때 부엌 사환과 같이 오곤 하던 간수장의 동정을 사게 되었다. 맨 처음 나에게 여자 이야기를 한 사람은 그였다. 다른 죄수들이 무엇보다도 못 견디어 호소하는 것이 여자문제라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나도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환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당신네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그 때문이거든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아니, 그 때문이라니?」
 「아무렵, 자유라는 것, 그것을 당신네들에게서 빼앗는 거란 말예요.」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동의를 표시하여,
 「참, 그렇긴 해요. 그렇지 않다면 형벌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어요.」
하였다.
 「그럼요. 당신은 이해력이 많군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던데요. 그렇지만 결국 그네들도 스스로 만족을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담배도 역시 고통거리였다. 형무소에 들어올 때, 나는 허리띠, 구두끈, 넥타이, 그리고 포켓에 들어있던 모든 것, 특히 담배를 빼앗겼다. 감방으로 옮겨와서 담배를 돌려달라고 간청해 보았지만, 그것은 규정상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매우 견디기 어려웠다. 내가 가장 괴로움을 단한 것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침대 판자쪽을 뜯어서 빨기도 하였다. 그러면 온 졸일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것을 왜 빼앗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뒤 그것도 형벌의 일종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금연(禁煙)에 익숙하여서 그것은 나에게 아무 형벌도 되지 않았다.

  그러한 불편을 제외하면, 나는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듭 말하자면 문제는 단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배운 후로는 지루하여서 괴로워하는 일도 없게 되었다. 나는 가끔 내 방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한구석에서부터 출발하여 한바퀴 돌아 다시 출발점에 되돌아오면서 도중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빨리 끝나 버렸는데, 다시 되풀이할 적마다 조금씩 시간이 길어졌다. 왜냐하면 방안에 있는 가구를 하나하나 생각해 보고, 그 하나하나의 가구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모두 일일이 생각해 보았으며, 나아가서 그 물건마다 각각 특징을 세밀히 생각하였으며, 그러한 특징을, 예컨대 누각(鏤刻)이라든가, 흠이라든다, 또는 깨어진 귀라든가 그런 것들에 괜해서도 그 빛깔이나 혹은 결 같은 것에 대하여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내 재산 목록에 무엇하나 빼놓지 않고 완전한 일람표를 만들도록 힘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주일 후에는 내 방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세밀하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지금까지 등한히 하여 왔거나 또는 잊어버렸든가, 하던 것들을 내 기억속에 불러들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바깥 세상에서 단 하루만 산 사람이라도 감옥에서는 100년쯤은 능히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사람이라도 추억의 대상은 얼마든지 있을 터이므로 심심치 않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건 매우 편리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한 잠도 매우 고통꺼리였다. 처음에는 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으며, 더구나 낮에는 조금도 잘 수 없었다. 그러나 차츰 밤에 잠이 오기 시작하더니, 낮에도 잘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몇 개월 동안은 하루에 무려 열여섯 시간 내지 열여덟 시간이나 잠을 잤었다. 그러므로 남는 것이라야 여섯 시간이었는데, 그것을 식사며, 대변이며, 추억이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이야기로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어느날 나는 밀짚 자리와 침대 판장 사이에서, 한 장의 낡은 신문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거적 속에 틀어박혀서 누렇게 바래고 종이가 닳아서 앞뒤가 환히 비쳐 보였다. 첫대목은 없었지만, 체코슬로바카아에서 일어난 듯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즉 어던 사나이가 동능 벌려고 체코의 어느 마을을 떠나 35년 후에 부자가 되어 아내와 자식 하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고향에서 여동생과 호텔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을 놀래 주려고 사나이는 처자를 다 여관에 남겨놓고 혼자서 어머니의 집으로 갔는데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장난삼아 방 하나를 잡고 동을 보여 주었다. 밤중에 어머니와 여동생은 사나이를 망치로 때려 죽이고 동을 훔친 다음 시체는 갈물에 던져 버렸다. 아침에야 사나이의 아내가 찾아와서 그런줄도 모르고 손님의 신분을 밝혔다. 어머니는 목을 매고, 여동생은 우물에 빠져 죽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수천 번 읽었다. 하여튼 그 결과에 대하여는 사나이에게도 책임의 일부가 있으며, 희롱이란 아무때나 할 것이 못된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처럼 잠을 자고, 지나간 일을 추억하고, 삼면기사를 읽는 동안에 낮고 밤은 바뀌고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일찍이 어느 책에서 감옥에 있으면 시간관념이 없어진다는 것을 읽은 일이 있지만, 그때는 그러한 귀절이 별로 나에게 실감을 갖게 하지 못하였다. 하루가 얼마나 길고 짧을 수 있는지 나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감옥에서 지내기란 지루한 것이지만, 그 하루하루가 하도 길게 늘어져서 나날이 넘쳐나는 것이었다. 세월은 이리하여 명목을 잃게 되었다. 나에게는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간수로부터 내가 형무소에 들어온지도 다섯달이 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도무지 납득ㅇ 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언제나 같은 날이 닥쳐오고, 언제나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날 간수가 간 후에 쇠로 만든 밥그릇에 비친 나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아는 아무리 마주보고 웃으려고 하여도 시무룩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으나 비친 얼굴은 전혀 무뚝뚝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로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한때였다. 아래층 곳곳에서 저녁의 잡음이 침구의 행열을 뒤쫓아 올라오는 때이기도 하였다. 천장으로 뚫린 창문에 다가서서 마지막 햇빛 속에 비친 나의 자태를 들여다 보았다. 여전히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나는 그때 아닌게아니라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여러 달만에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나는 그것이 노래 전부터 내 귀에 울리고 있던 소리임을 알아차리고, 그동안 나는 혼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날 간호부가 하던 말을 회상했다.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형무소 안에서 맞이하는 저녁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