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나」
CAMUS ALBERT(알베르 까뮈)
요나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 정답게 키쓰해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밖에 내보낼 때에는, 그들이 그의 마음을 구석구석 완전히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아니들이 없었다면, 공허와 고독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기 그림을 사랑하듯이, 아이들을 사랑하였다. 세상에서 그들만이 그림처럼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알 수 없었으나 요나는 점점 그림을 덜 그리게 되었다. 여전히 열심이기는 하였으나, 지금은 혼자서 그릴 때에도 힘이 들었다. 그럴 때에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그는 언제나 방심하고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있으나, 이제는 몽상속에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그림과 자기 소질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고 그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붓을 든 손은 번번이 아래로 처지고 멀리서 라디오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의 명성은 떨ㅇ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그에 대한 신통지 않은 신문평을 갖다 보여 주었다. 어떤 기사는 나쁘고, 어떤 기사는 하도 고약하여 가슴이 조여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 속으로, 그런 공격들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하게끔 채찍질을 해 주므로 이로운 점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의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은 그를 전보다 한결 덜 공손하게 대하였다. 그들은 마치 흉허물 없이 대하는 옛친구처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럴 거 뭐 있어요. 시간은 얼마든지 있지 않아요.」
요나가 그림을 그리려고 돌아서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의미에서는 그들의 예술적인 실패에 자기도 휘말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 그 젊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이 있었다.
「자넨 너무 바보야. 그들은 자네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네.」
하고 라토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하였다.
「아니야. 인제 날 좀 존중하게 된 걸세.」요나가 대답했다.
「남의 존중을 조금이라도 받는다는 건 굉장한 일이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무방한 걸세.」
그리하여 요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답장을 쓰고, 여유가 있으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때때로, 특히 일요일 오후에 아이들이 제 어머니와 이모랑 함께 외출하게 되면 열심히 그림을 그려 보기도 하였다. 그런날 밤에는, 그것이 얼마간 나아진 것 같아 기쁘기 한이 없었다. 그 당시에 그는 하늘을 그리고 있었다.
어느날 화상(畵商)은 그림의 매상고가 현저히 줄어들어 미안하지만 봉급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요나는 이를 응낙하였으나, 루이즈는 불안하였다. 그때는 9월달이라, 신학기에 아이들에게 새옷을 사 입혀야만 했던 것이다. 그녀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하였으나 그녀의 힘으로는 살림을 꾸려나갈 수가 없었다. 내의를 깁거나 단추를 다는 일 같은 것은 손수 할 수 있었으나, 요를 지을 줄은 몰랐다.
마침 요나의 사촌누이가 재봉사여서, 그녀가 루이즈를 거들어 주려고 왔었다. 그녀는 가끔 요나의 방에 들어와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기도 하였다. 워낙 말이 없는 그녀는 단지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루이즈는 남편에게 <일하는 여인>을 그리도록 권고하였다.
「좋은 생각이야.」하고 요나는 말하였다.
그는 그림에 착수하였으나 캔버스를 둘식이나 버렸을 뿐, 계속 그리고 있던 하늘로 화필을 옮기고 말았다.
이튿날, 그는 저물도록 아파트를 서성거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자 한사람이 찾아와서, 흥분한 얼굴을 하고 길다란 신문 기사를 보여 주었다. 이렇게 일부러 보여 주지 않았던들 그가 읽지 않았을 그 기사에서, 그는 자기의 그림이 보잘 것 없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화상은 그림의 매상이 오르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해왔다. 요나는 그래도 여전히 꿈꾸듯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제자에게 신문 논평에는 옳은 말도 있지만, 자기는 앞으로 여러해 동안 노력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화상에게는 그의 불안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나, 자기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새로운 그림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완전히 새출발을 할 심산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이것은 사실이며, 자기의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할 수 있는 마련만 세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에 그는 며칠 동안 복도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하였으며, 이튿날에는 전등을 켜고 샤워실에서, 그 이튿날은 부엌에서라도 그림을 그리려고 하였으나, 어디나 사람들을 대하게 되어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들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까지도 그러하였다. 그는 한동안 일손을 쉬고 궁리하였다. 계절만 허락하면 <모티브>를 찾아서 그리고 싶었으나, 바로 겨울이 닥쳐오려는 판이라, 봄이 되기까지는 풍경화를 그리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는 그래도 그려 보려고 하였으나, 곧 단념하고 말았다. 추위가 가슴 속까지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는 여러 날 동안 캔버스와 함께 살았다. 대개 캔버스 옆에 앉아 지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들잧 앞에 서서 지내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아침에 외출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그림의 소재(素材)가 될 수 있는 나무라든지, 기울어가는 집,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켓치하기 위해서였으나, 하루가 끝나고 보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신문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나, 쇼윈도우, 카페의 더위와 같은 자잘구레한 일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는 밤마다 그럴사한 변명을 꾸며대었으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이런 공백기(空白期)가 지나가면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다. 그림은 안에서 익어가고 별은 그 어두운 안개속에서 다시금 밝게 빛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카페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는 알콜이 아이들에게서만느끼는 그러한 애정과, 뜨거운 정열을 열심히 그림을 그린 날에 느끼는 흥분을 갖다 주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코냑을 두 잔만 마시면, 자기를 세계의 임자인 동시에 세계를 섬기는 자로 생각하게 하던 그 커다란 감동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다만 그 감동을 공허 속에서, 즉 빈손으로 작품화하지 못하고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던 그 희열(喜悅)과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이제 연기와 소음에 가득찬 곳에서 오랫동안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주점이나 거리는 피하였다. 누가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두려움이 앞서곤 하였다. 그는 동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도망치고 마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뒤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잘알고 있었다.
「흥, 램브란트나 된 줄로 생각하나보군.」
이리하여 그는 마음이 점점 더 언짢았다. 이제는 웃는 일도 없었다. 그의 옛친구들은 어쩔수 없이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웃지 않게 되었다면 그건 자기자신에 대하여 아주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야.」
이것을 알고 있는 그는 사람들을 점점 더 피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카페에 들어가서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혹시 있을듯한 생각만 들어도 그는 마음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무능과 야릇한 비애를 뼈아프게 느끼면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북받치는 우정의 아쉬움을 억제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라토오의 착한 눈길이 그리워 급히 밖으로 나와버렸다.
「저 상판 좀 보게.」
어느날 그가 자취를 감추려는 것을 보고 어떤 사나이가 말하였다.
그는 이제 거리의 변두리만 걸어다녔다. 그런 곳에는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서라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다시 상냥해지는 것이었다. 그에게 무어라고 군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가볍게 대할 수 있는 몇몇 친구도 생겼다. 그는 그 가운데서 한 친구와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자주 드나들던 어느 정거장 식당에서 일하는 사나이었다.
「자네 직업은 뭔가?」
하고 어느날 그 급사는 물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지.」
하고 요나는 대답하였다.
「화가요? 그렇지 않으면 간판 그림쟁이요?」
「화가지.」
「그럼 어려운 일 하는데.」
하고 급사는 말하였다. 그리고는 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일할 수 있는 만련만 되면 감당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하루하루 술잔을 기울이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고 여인들이 그를 돕기도 하였다. 그녀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 전후해서 그는 곧잘 이야기를 하였다. 이때 그는 자기 자랑을 슬며시 늘어놓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 심정만은 알아 주었다. 그는 때때로 옛날의 그 정열을 다시 느끼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 심정만은 알아 주었다. 그는 때때로 옛날의 그 정열을 다시 느끼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는 어느날 한 여자친구에게서 격려의 말을 듣고 마음을 작정하였다. 그는 집에 돌아와 바느질꾼이 없는 틈을타서, 방에서 일을 해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 시간 후에는 캔버스를 걷어치우고 아내에게 빙그레 웃어 보이며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그 여자친구의 집에서 하루동안 보냈으나 정이 졀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집에 돌아오자 함혹한 이즈러진 아내의 얼굴이 그를 맞이하였다. 아내는 그 여자와 육체관계가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하였다.
요나는 취하였으므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전에 다른 여자들과는 관계한 일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처음으로 아내의 얼굴에서, 놀라움과 큰 괴로움이 빚어내는, 물에 빠진 여자와 같은 표정을 발견하고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사실 그동안 아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아내에게 사과하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며, 내일 부터는 전과 같이 모든 일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아내는 말없이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감추었다.
이튿날 아침에 요나는 일찍 집을 나섰다. 비가 오고 있었다. 그는 어깨에 판자를 메고 버섯처럼 비에 젖어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는 그의 소식을 알려고 온 옛친구 두사람이 큰 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요나는 수법을 바꿀 심산이군. 앞으로는 판자에 그림을 그릴 모야이야.」
하고 그들은 말하였다.
「그게 아니야. 새로 일을 시작하려는 걸세.」
요나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는 샤워실과 변소와 부엌으로 통하는 조그마한 복도로 나섰다. 두 개의 복도가 직각을 이룬 모퉁이에 이르러 밤길을 멈추고, 컴컴한 천장까지 닿은 높다란 벽을 한참 쳐다보다가 문지기한테 걸상을 가지러 내려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집에는 손님이 몇 사람 늘었다. 그는 자기를 다시 만나 기뻐하는 친구들의 알들함 우정과 가족들의 질문을 물리치고, 복도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아내가 무엌에서 나왔다. 요나는 걸상을 내려놓고 나애를 힘껏 껴안았다. 아내는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물론이지. 인제 그림을 그릴테야.」
하고 요나는 말하였다. 그러나 그 말은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에 줄얼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딴곳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일에 착수하였다. 벽 중턱에 마루를 깔아 넓고 깊숙한 다락방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다.이 일은 오후 늦게 끝났다. 그는 걸상을 발판으로 삼아 다락마루에 매달려, 튼튼하게 되었는지 시험하기 위해 몇 번이나 잡아당겨 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과 어룰리는 것이었다. 그가 매우 상냥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였다. 밤이 깊어 집안이 좀 조용해지자, 그는 나포등과 의자와 걸상과 액자를 모두 다락방으로 옮겼다. 세 사람의 여인과 어린 아이들이 이상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인제 됐어!」하고 그는 높다란 마루턱에서 말하였다.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일할 수 있을 테지.」
아내가 정말 그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자리는 비봅아도 괜찮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거야. 촛불 밑에서 그림을 그린 위대한 화가들도 있었어. 그리구……」
「마루는 튼튼해요?」
「걱정할 것 없어.」하고 요나가 말하였다.
「일이 잘 되었어.」
마루는 사실 튼튼하였다. 그는 마루에서 내려 왔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