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체홉의 <年 譜>

 

1860년  그 러시아력 1월 17일, 아조프해의 항구도 도시인 타칸로그에서 식품점을 하는 아버지 파벨과,어머니 에게브게니아 사이에서 태어남. 형제 5남 2녀.

1867년  7세, 그리이크 교회의 부속 소학교에 입학.

1868년  8세, 타칸로그 중학교 에비학급에 편입.

1869년  9세, 타칸로그 중학 고전과에 입학. 그는 아버지의 횡포로 시달림을 받음.

1875년  15세, 큰형 알렉산더는 모스크바 대학 물리 수학과에 입학하고, 둘재형 니콜라이는 모스크바 미술학교 입락.

1876년  16세, 부친의 파산으로 모스크바 빈민가로 이사. 그는 타칸로그에 남아서 중학 졸업까지 가정교사 생활을 함.

1877년  17세, 그는 다칸로그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면서 희곡<아버지 없는 아들>과 유우머 소품(小品)을 씀.

1880년  20세, 그의 최초의 작품인 <유우머 꽁뜨>를 모스크바 주간지 <잠자리>에 게재. 이때부터<아토오샤·체홉테>, <게발다스토프>, <루벨>등 여러 가지 익명으로 각종 유우머 주간지에 기고.

1881년  21세, 주간지 <잠자리>의 편집자에게서 혹평을 받고 약6개월간 집필을 중단함. 희곡<플라토노프>를 써서 소극장에 갖고 갔지만, 상연을 거절당함.

1882년  22세, 페테르스부르크의 유우머지 <단편(斷片)>발행자를 알게 되어, 그 후 5년 동안에 약3백 편의 유우머 꽁뜨 등을 싣다.

1883년  23세, 꽁뜨 <관리의 죽음> 외에 120편을 씀.

1884년  24세, 6월에 의학대학을 졸업. 모스크바자치회 병원 근무. 12월, 객혈.  의사 개업.<멜포에네 이야기>간행. 102편의 작품을 씀.

1885년  25세, 화가 레뷔탄과 친교. 12월에 페테르스부르크 문인들을 알게 되어 대환영을 받음. 보수파의 대신문 사장과, 문단의 원로 그리고로비치를 알게 됨. 꽁뜨 <하사 리시베에프>외 129편을 씀.

1886년  26세, 2월에 처음으로, <신시대>지에 본명으로 단편<추선공양(追善供養)>을 발표함. 4월, 두 번째 객혈. 제2 작품집인 <잡화집(雜話集)>을 간행. 112편을 씀.

1887년  27세, 제3 작품집<황혼에>, 제4작품집<죄없는 이야기> 간행. 11월, 모스크바 코르슈 극단에서 희곡 <이바노프>를 상연. 단편 <티프스>, <키스>, <칸슈탄카>등 66편.

1888년  28세, 페테르스부르크의 종합잡지<북방시보(北方時報)>에 중편<광야(曠野)>를 기고. 여름을 우크라이나의 린토바리요프 별장에서 보냄. 10월, 학사원에서 뿌시낀 상 500루우불을 받음. 12월,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와 만남. 작품, 단편<졸음>, <곰>, <포러포우즈> 등 12편.

1889년  29세, 1월, <이바노프>를 개작하여 페테르스부르크의 알렉산드라 극장에서 상연. 여름에 얄타에 머물면서 중편 <지루한 이야기>탈고. 가을에 희곡 <숲의 요정>을 탈고. 작품, 단편<발작>, <도박> 등 많음.

1890년  30세, 4월,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사할린을 여행. 유형지의 실태를 파악. 귀로에는 인도양, 수에즈, 흑해를 거침. 작품, 기행문<시베리아 여행>, 단편 <도둑>, <구세프>등.

1891년  31세, 3월에 스보린과 남유럽 여행을 함. 여름에는 카르가현 보기모보에 머물면서<사할린 섬>을 집필. 작품은 중편<결투>와 단편<시녀들>. 가을의 대기근으로 난민 구제 사업에 협력.

1892년  32세 3월, 모스크바현 메르호브에 토지가 달린 집을 사서 이사. 작품, 중편<아내>, <6호실>. 단편<바람난 여인>, <추방>, <이웃 사람들>, 소극(小劇)<기념제>.

1893년  33세, 잡지 <러시아 사조에 <사할린 섬>을 연재. 중편으로 <무명씨 이야기>

1894년  34세, 8월에 2차 남구여행을 하고 10월 귀국. <체홉 중·단편집>간행. 단편<흑의의 승려>, <여자의 왕국>, <문학교사>, <장원에서> 등.

1895년  35세, 8월에 최초로 똘스또이를 방문함. 11월에 희곡<갈매기>완성. 작품은 중편 <3년>, 단편 <살인>, <아리아도나> 등.

1896년  36세, 집근처 탈레슈 마을에 소학교를 세움. 8월에 코카서스와 크림을 여행. 타칸로그 시립도서관에 책을 기증. 작품, 중편 <나의 인생>.

1897년  37세, 3월, 모스크바에서 객혈. 입원했다가 4월에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 집근처 노보오세르키에 소학교를 세움. <체홉 희곡집>간행. 작품, 단편<백성>, <페체네크 사람>, <테어난 고향에서>, <농촌 풍경극>, <바냐 아저씨> 등.

1898년  38세, 2월에 스보린에게 반 드레퓌스적인 태도에 분개하여 반발의 편지를 보냄으로써 우정에 금이 감. 3월에 프랑스의 묵학서적 300여권을 타칸로그 시립도사관에 기증. 모스크바 극단에서 여배우 오리가·쿠니펠과 알게 됨. 10월, 부친 사망. 모스크바 극단에서 <갈매기>를 연출하여 대성공을 거둠. 연말에 막심·골키와 서신 교환. 작품 단편 <지인(知人) 밑에서>, <상자속에든 사나이>, <까치밥나무>, <귀여운 여인>, <이오누이치>, <왕진 중에 생긴 일> 등.

1899년  39세, 1월, 모스크바의 출판없자 마르크스에게 희곡의 상연권을 제외한 그의 생애의 작품 전체의 판권을 7만 5천루우불에 팔다. 마르크스판 전집 편집에 열중함. 5월에 체홈을 위해 모스크바 극단에서 <갈매기> 상연. 8월, 얄타로 이사. 10월, 모스크바 극단에서 <바냐 아저씨>상연. 작품, <직무로써>,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 등.

1900년  40세, 1월에 똘스또이 등과 함께 학사원 명예회원에 당선. 12월에 니스에 여행. 희곡 <세 자매> 탈고. 작품, 중편<골짜기>, 단편 <크리스마스 주간> 등.

1901년  41세, 1월, 모스크바 극단에서 <세 자매>초연. 5월, 모스크바에서 오리가·쿠니펠과 결혼. 가을부터 겨울가지 크림에 머물면서 똘스또이 방문.

1902년  42세, 4월에 아내가 병이 남. 작품, <승정(僧正)>.

1903년  43세, 1월 늑막염에 걸림. 마르크스사에서<자산작품집>이 나오기 시작함. 10월, 희곡 <벚꽃 동산>을 탈고. 작품 단편 <약혼녀>, <모놀로그>, <담배의 해독에 대하여> 등.

1904년  44세, 1월에 모스크바 극단에서 희곡<벚꽃 동산>초연. 모스크바 극단 무대에서 창작 활동. 25주년 축하를 받음. 건강이 악화되어 얄타로 돌아감. 5월에 모스크바로 감. 6월에 아내 오리가·쿠니펠과 함께 독일의 광천지인 바덴바라로 감. 구 러시아력 7월 2일, 그곳에서 사망. 9월에 유해가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그버테비치 수도원 묘지에 묻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