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  記

CHEKHOV  ANTON  PAVLOVICH

 

 안톤·체홉은 1860년 1월 17일,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타간로그에서 잡화점을 경영하는 파벨·체홉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체홉의 할아버지 예고르·체홉은 돈으로 자기 몸의 자유를 되찾은 농노출신이며, 아버지는 최하층의 상인계급으로, 이른바<3등 상인>이었다.

  그가 태어난 도시 타간로그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흑해 및 아조프해 연안에서는 가장 큰 상업도시였으나, 코카사스로 통하는 철도가 개통된 후로는 급속히 쇠퇴하여, 체홉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불결하고 쓸쓸한 지방도시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중요한 몇몇작품[<6호실><상자 속에 든 사나이>]의 배경은 이 타간로그가 그 중한 무대로 되어 있는 것이다.

  체홉의 문학수업은 1879년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16세 때에 이미 집안이 파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그는 가계와 학자를 마련하기 위해 안토오샤·체홉테라는 가병으로 신문이나 잡지사에 경쾌하고 명랑한 유우머 소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작품을 쓰면서 점차 문명을 얻은 그는, 당시의 비평가들로부터 <종달새처럼 노래하는 체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최초의 단편집<雜話集>이 세상에 나오자, 당시의 老大家였던 그리고로비치는 최대의 찬사와 격려의 편지를 띄웠다. 그러나 한편<이처럼 재능이 있는 작가가 단지 사름을 웃기기 위해 글을 쓰다니, 슬픈 일이다> 라고 노대가답게 안톤·체홉의 회화적인 작품에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체홉은 본격적인 문학수업에 들어가 88년에<曠野>,<졸음>, <곰>, 89년에<지루한 이야기> 등을 발표, 이때부터 그의 문단에서 지위가 확고해졌다.
   84년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오랫동안 앓아 왔던 지병인 결핵에도 불구하고 홀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사할린 섬으로 여행, 유형수의 실정을 상세히 조사하였다. 후에 발표한 방대한 폭과 깊이를 더해 갔다. 

  여행 후에는<6호실>(92), <黑衣의 僧侶>(94), <中2層에 있는 집;3년>(95)등,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편으로는 기근에 의한 난민구제, 콜레라에 대한 방역, 학교나 도서관의 건설 등, 사회활동도 활발히 했다. 이런 무리가 화근이 되어 병이 악화되었으며, 98년 얄타로 전지요양한 후도, <상자속에 든 사나이>, <까치밥나무> <이오누이치>, <귀여운 여인>(98),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99), <약혼녀>(03)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계속 썼다.  

  또한 만년에는 극작에 심혈을 기울여, 그의 희곡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모스크바 예술극단의 도움을 받아 연극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때 그는 모스크바 예술극단의 여배우 오리카· 쿠니펠과 결혼, 그 후 불과 4년도 못돼 44세의 장년으로 한 많은 인생을 마쳤다.

  체홉의 초기작품을 보면 단순한 웃음만을 노린 명랑, 경쾌한 소품과 사회 풍자색이 짙은 우울한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나오는 등장인물은 실로 다양하여 각계각층의 인물을 망라하고 있는데, 특히 관리의 슬픈 모습을 뇨사한 <뚱뚱이와 홀쭉이>(82), <관리의 죽음>(83), <카멜레온>(84)등의 작품은 우리에게 아이러닉한 웃음과 눈물과 울적함을 안겨 주는 사회풍자적인 소설이다.

 그 밖에도 <술픔>, <감>, <우수>(85), <아뉴타>, <바니카>(86), <졸음>(88)등의 작품들이 있는데, 이런 작품들도 사회일각에서 보잘 것 없이 내팽개쳐진 버림받은 인간을 동정적이며 서정적으로 묘사, 그 풍부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력작이다. 그는 이러한 작품에서 인간의 우둔함이나 속물성을 묘사, 인생의 비속함을 보였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행동력이 결여된 우유부단한 지식인으로, 한결같이 인생에 좌절한 사회의 낙오자이며 패배자이다.

 그는 이런 인물과, 이들이 처해 있는 사건이나 생활 속에서 에피소우드를 찾아, 그 깊은 곳에서 인생 전체를 부각시키는 것을 長技로 하고 있다. 대학시절, 行數의 제약이 있는 잡지나 신문에 기고할 때 얻은 경험이 바탕이 되어, 그는 문체를 될수록 간결히 표현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이러한 기술이 훗일 그의 출세작<曠野>를 낳았으며, 여기에서 그는 체홉 특유의 밀로도 높은 문장과 참신한 표현력이 구사되어,  그의 文名은 한층 더 빛을 보게 되었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그대로 1막짜리 가벼운 소극으로, <곰>, <프로포우즈>(88), <담배의 해독에 대하여>(03)등, 단편을 각생한, 비교적 같은 주제의 내용이었다.

  그의 작품태도는『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묘사함』을 신조로 삼고 있어서, 많은 비평가들로부터『印象主義』, 또는『無思想』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80년대의 청년의 마음을 포착한 패시미즘을 다룬 중편<등불>이나, 자기자신의 인생관을 못 가졌기 때문에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지 못하는 퇴직 교수의 절망적인 심경을 묘사한 <지루한 이야기>는, 당시 그 자신의 회의를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할린 여행후, 난민구제를 위해 사회에 뛰어든 그는,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목격하고,『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묘사하는 작품 태도를 바꿔,『있는 그대로의 생활에서 그 배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생활』을 묘파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보다큰 교화를 받도록 글을 썼다. 그의 후기작품은 모두 이런 신조가 바탕이 되어 있다. <6호실>의 이야기는, 한 정신병의사가「인간의 안정과 만족은 인간의 내부에 있으므로, 철창 속이나 따뜻한 서재나 본질적으로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하다가, 자신이 실제로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철장 속에 갇히자 비로소 현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으로, 당시 러시아의 지식인의 장래를 암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똘스또이의 무저항주의에 대한 결별상을 나타냈고, 또한 현실을 무시하고 공론만 일삼는 지식인에게는 반성의 게기를 만들어 각성토록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그는 그의 작품<中2層에 있는 집>이나, 같은 주제의 <나의 인생>(96)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中2層에 있는 집>의 여주인공 라자라는 처녀는, 그 작품속에 나오는 화가와 토론을 벌이는데, 리자는 사회를 개조하는 데 있어 농민에게 문학을 가르치거나 진료소 따위를 만들어 조그마한 행위에서부터 민중의 생활을 啓導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화가는 그런 고식적인 방법을 지양하고 단번에 사회개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은 말뿐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화가를 비꼼으로써 진보라는 문제를 심층있게 파헤치고 있다.

  <농민들>(97), <골짜기>(99) 등, 일련의 농촌물에서 그는 돼지만도 못한 농민생활과 그 비극을 묘사하고,<3년>에서는 현재의 생활에서 도피하려는 청년이 어느 사이에 자존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고뇌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때 이미 은연중 농촌에 스며든 자본주의의 필연성과 그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사회를 개조하는데 있어서 이상론만을 내세우는 진보주의나 일체의 무관심한 지식인에 대해 심한 현오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그는 마침내 인생에 대한 자각이나 목적도 없이 일체를 기게론적인 타성으로 돌려버리는 생활 그 자체에 주목하게 되었다.
  <까치밥나무>, <이오누이치>의 주인공이 바로 이런 생활의 주인공들로서, 예전에는 사랑이나 이상에 불타던 청년도 인생의 의의를 발견하는 것을 중지하고 하루하루를 무위도식하며 타락한다.

  <상자 속에 든 사나이>의 베리코프는 인습이나 위선의 상자 속에 꼼짝할 수 없이 갇혀 인생을 차용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귀여운 여인>의 오랜카는 남자복이 ㅇ벗어 볓번이나 남편을 갈지만 그때마다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를 따름으로서 그녀의 인생을 차근차근 쌓아 나간다. 이러한 여인은 귀여운 여인이기는 하나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다소 소극적인 점이 없지 않다.

  참다운 인생에 대한 희구는 보다 나은 생활에 대한 기대에 연결된다. 이 기대가 최후의 소설<약혼녀>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소살의 주인공 나쟈가 절규하듯이「오오, 맑고 새로운 생활이 빨리 오도록!」하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이런 절규를 우리는, 체홉의 4대 희곡이라고 불리는 <갈매기>(96), <바냐 아저씨>(97), <세 자매>(10) <벚꽃 동산>(04)에서도 볼 수 있다.

  <벚곷 동산>의 라네프스키야 부인이나 <세 자매>의 안드레이나처럼 생활의 타성에 몸을 맡기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내일과 오늘이 마찬가지이며, 내일과 오늘은 어제의 되풀이인 것이다. 그러나 <갈매기>의 주인공 니나와, <바냐 아저씨>의 소오냐처럼 인생에 개안을 하여 자기 눈으로 인생 전체를 직시하게 되었을 때 내일이라는 날은 특별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와 같은 것은 <세 자매>의 주인공이나 <벚꽃 동산>의 아냐를 위해 오랫동안 참아 왔고 기다려 왔던 새롭고 밝은 내일임에는 틀림없다.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체홉은 이말을 좋아하였다. 이 말이 그의 희곡의 중요 테에마이기도 하였다. 그가 80년대에 쓴 <플라토노프>(81), <이바노프>(87), <바냐 아저씨>의 원형인<숲의 요정>(89) 등의 희곡에서는 주인공이 모두 다 인생에 절망하여 자살하고 마는데, 후기의 작품인 그의 4대 희곡에 나오는 라나나, 바냐 아저씨, 소요냐, 그리고 <세 자매>의 주인공은 절망에 빠지면서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고 자기자신을 일깨워 재기하는 것이다. <벚꽃 동산>의 젊은 주인공 아냔느 보다 새로운 생활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이같은 사실은 미래애 대한 그의 신뢰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보다 강화되었음을 본다.

  흔히 체홉을 가리켜 허무적인 절망의 작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삶의 기쁨을 일깨워 주고, 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해 줌으로써 젊은 세대에게 보다 밝고 명랑한 미래를 보장했다. 이런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심어 준 주옥 같은 그의 단편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문화에 영원불멸의 공적으로 남을 것이다.

  이 단편집에는, 그의 초기에서부터 만년에 걸친 단편소설 중, 사회풍자적인 것 중에서 <둥뚱이와 홀쭉이>를, 사회의 버림 받은 인간을 서정적으로 묘산한 력작으로는 <아뉴타>, <우 수>를, 농촌물에서는<골짜기>를, 인생의 절규를 나타내는 것 중에서 <상자 속에 든 사나이>와 <약혼녀> 등, 체홉의 면모가 잘 드러난 작품만을 골라서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