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피야

CHEKHOV  ANTON  PAVLOVICH

  나는 0군(郡)에 머물러 있을 때, 두보프스키 채원(菜園)의 원정(園丁) 사우브·스루카치(통칭 사브카)한테 가는일이 있었다. 이 채원은 이른바 <멋진>낚시터로서, 내가 선택한 마음에 드는 곳이다. 집을 나설 때에는, 돌아올 날도 시간도 염두에 없었으며, 낚시 도구들을 모조리 챙겨 가지고 먹을 것을 마련하여 떠났던 것이다. 실은 나는 낚시보다도, 자유로운 산책이나,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지 남ㅎ은 식사나, 사브카와의 대화나, 조용한 여름밤 등에 이끌렸던 것이다.

  사브카는 키가크고 아름다운, 부싯돌처럼 건강한, 스물 다섯난 청년이었다. 그는 사려가 깊고, 사리에 밝은 사나이로 알려졌으며, 무식하고, 워트카(酒)도 어쩌다가 간혹 몇잔씩 마실정도였으나, 노동자로서는 이 한창 때의 건강한 사나이가, 한푼어치의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힘도 힘이지만, 그의 강철같이 억센 근육속에는 묵직한, 주체스러운 권태가 가득차 있었다. 이 사나이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오두막집에 살며, 자기 소유의 땅이 있었으나 씨를 뿌리지 않고, 밭을 갈지 않았으며,그밖에 어떤 일도 하기 싫어하였다.

 그의 어머니인 늙은 노파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창문 밑에 서서 구걸을 하엿지만, 그는 하늘을 나는 새처럼 살아가고 있었다.――아침이 되면 점심거리를 걱정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의지나, 정력이나, 혹은 어머니에 대한 동정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쩐지 일 하는 데 흥미를 느낄 수 없었으며, 그 이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모든 지체(肢體)에서는 타고난 평온한 입김――게으른, 생활에 대한 거의 예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열의 입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사브카의 젊은 건강한 육체가 생리적으로 근육 노동에 이끌릴 경우는, 그는 한동안 어떤 자유로운, 그러나 보잘 것 없고 전혀 쓸모가 없는――가령 말뚝 같은 것을 깎아내는 일 따위나, 아니면 여자들을 상대로 보물찾기 같은 놀이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꼼작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가만히 한 점을 바라보며 같은 자리에 몇 시간씩이나 서 있곤 하였다. 그러나 일할 때에는 몹시 일에 끌리기라도 하는 듯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허나 그것은 어떤 신속하고 돌발적인 동작을 해야 할 기회가 생겼을 경우에――가령 뛰어가는 개의 꽁무늬를 잡거나, 폭이 넓은 구덩이를 뛰어넘는 따위의 일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사브카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어떤 가난뱅이 봉ㅂ보다도 더 심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체납금이 쌓여 갔으므로, 건강하고 혈기 왕성한 그는 마을 조합의 주선으로, 노인의 일거리인, 공유채원(共有菜園)지기로 일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그를 보고 너무 일찍 늙었다고 해서 웃음거리가 되어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였다. 조용한 병상에는 가장 적합한 이 일자리는, 그의 천성에 꼭 맞는 것이었다.

  이 사브카를, 나는 5월 어느 아름다운 저녁에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그 조그마란 오두막 바로옆에서, 낡고 찢어진 썰매용 무릎 덮개를 덮고 드러누워 있었다. 그때 오두막 속에서 짙은 마른 풀 냄새가 났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 아래를 받치고 앞을 내가보았다. 발치에는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사브카의 검은 개 쿠치카가 눈에 뜨었으며, 쿠치카있는 데서 2미터쯤 떨어진 곳은 절벽이었다.
  드러누워 있는 자세로는 강을 바라볼 수 없었다. 다만, 이쪽 기슭에 울창한 버드나무 가지와 맞은편 기슭의 마치 뒤틀린 것 같은 꾸불꾸불한 끝이 보일 뿐이었다. 멀리 강기슭 맞은 편의 거무스름한 언덕 위에는, 마치 공기총에 맞은 어린 까치처럼, 사브카가 살고 있던 마을 농가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언덕 저쪽에서는 저녁 놀이 희미해져 갔다. 단지 블그레한 자주빛이 한 줄기 남아 있었으나, 그것도 숯불이 재에 묻힌듯, 조그마한 조각 구름에 덮이고 있었다.

  채원 오른쪽은, 버드나무 숲이 조용히 소곤거리거나 때때로 갑자기 불어닥치는 바람에 몸서리치면서 거무칙칙하게 보이고, 원쪽은 끊임없는 벌판이 연이어져 있었다. 저녁 으스름 속에서 어느새 벌판과 하늘을 분별할 수 없게 되자, 등불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나한테서 좀 떨어진 곳에 사브카가 앉아 있었다. 터어키풍으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쿠치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물고기를 끝에 달아맨 낚싯줄은 벌써 강물 속에 가라앉아 버렸으므로, 우리로서는 다만 한 번도 지쳐 본 적이 없는, 늘 휴식하고 있는 사브카가 제일 좋아하는 휴식에 몸을 내맡기는 이외에 할 일이 전혀 없었다. 저녁놀은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여름밤은 이미 그 부드러운, 잠재우는 듯한 부드러운 품에 자연을 감싸고 있었다.

  만물은 깊은 잡에 빠져 있었으며, 가끔, 뭐라 부르는지 이름모를 새가 숲속에서 구슬프게
  「투이 니키루 비제르」(너 니키타를 보았느냐?) 하고 묻고는, 바로 자기 스스로「이제르! 이제르! 이제르!」(보았다, 보았다, 보았다) 하고 대답하는 것처럼, 멀리서 아득히 들려왔다.
 「어째서 오늘은 꾀꼬리가 울지 않을까?」
하고 나는 사브카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천천히 나에게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 윤곽은 크지만, 분명히 알 수 있어, 여자의 그것처럼 부드럽고 표정이 풍부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점잖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숲을 바라보고 나서 천천히 주머니를 뒤져 피리를 꺼내어 입술에 대고, 암꾀고리 소리를 냈다. 그러자 곧, 마치 그 피리 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건네편에서 물새가 물기 시작하였다.
  「자, 원하시던 꾀꼬리에요……」
하고 사브카는 웃었다.
  「마치 낚싯줄로 잡아끄는 듯한 소리군요. 그렇지만 그놈은 제법인 듯이 여길 테지요.」
  「나는 이 새을 좋아하네……」
하고 나는 말하였다.
  「자네, 알고 있나? 물새는 하늘을 날개치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뛰어가는 걸세. 날아가는 것은 다만 강이나 바다를 건너갈 때 뿐이네.」
  「저놈 봐……」
하고 사브카는 탄복하는 듯한 눈초리로 물새가 우는 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사브카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수렵 책들에서 알게 된 물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리하여, 물새 이야기에서 으레 새들의 비상(飛翔)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사브카는 열심히,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면서,   「그럼, 새는 이곳과 그곳 중에 어디를 좋아할까요?」
하고 그는 묻는 것이었다.
  「그야 물론 이곳이지. 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새끼도 이곳에서 낳거든. 그러니까 이곳이 고향인 셈이야. 그래서 그곳에는 다만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날아갈 뿐이지.」
  「참 재미있군요!」
하고 사브카는 맞장구를 쳤다.
  「무슨 이야기나 다 재미있군요. 새 이야기나 사람이야기나……이 돌까지도……무엇에게나 각각 그 나름의 지혜가 있을 테니까……아, 당신이 오늘 오실 줄 알았더라면, 해녀더러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할 걸 그랬군요……오늘밤에 한 해녀가 이리로 오겠다는 거예요……」
  「그래, 내 염려는 말게, 훼방하지 않을 테니까!」
하고 나는 말하였다.
  「나는 숲속에서도 잘 수 있거든.」
  「천만에, 내일 오게 해도 괜찮아요. 설마 그 동안에 죽을라구요. 그녀가 이곳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다면 알마나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괜히 이야기에 열중하여 침만 튀게할 뿐이에요. 그녀 앞에서는 이야기가 한결 술술 풀릴 테지요.」
  「자네 다리야를 기다리고 있나?」
하고 나는 잠시 후에 물었다.
  「어뇨……오늘 새 여자가 와요……전철수(轉轍手)의 마누라 아가피야 말에요……」
  사브카는 이 이름을, 그 입버릇대로, 마치 담배나 괭이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표정한, 약간 공허한 듯한 목소리로 발음했다. 나는 무척 놀랐다. 전철수의 아내 아가피야라면 나도 알고 있다. ……아직 무척 젊은 여자로, 나이가 열아홉이나 스물쯤 되고, 대답한 청년인 전철수한테 시집간 지 1년이 될까 말까하였다. 그녀는 마을에 살고 있었으며, 남편은 밤마다 역에서 그녀에게로 자러 오곤 하였다.
  「자네 조심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큰 실수를 저지르는 원인이 될 지도 모르네.」
하고 나는 탄식을 하였다.
  「뭘 실수를 하게 되면 어때요……」
  그리고 그는 한동안 생각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나는 여자들에게 잘 타이르지만 듣지 않아요……그것들은 벽창호라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요.」   침묵이 흘렀다.……그 동안 저녁놀이 점점 짙어져, 만상은 그 윤곽을 잃어갔다. 언덕 저쪽을 두르고 있던 붉은 띠도 완전히 사라지고, 별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침울하고 단조로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물새며 메추라기의 울음소리 들이 밤의 공기를 깨기는커녕 오히려 거기 한결 단순성을 더해 주는 것 같았다. 조용한 울음소리로 귀를 엇갈리게 하는 것은 작은 새들이나 곤충들이 아니라,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별들의 속삭임인 것같이 생각되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사브카였다. 그는 검은 쿠치카로부터 천천히 눈을 돌려 나를 향해 말하였다.
  「몹시 심심한 모양이시군요. 밤참이라도 드시지요.」
 그는 내 말을 기다리지 않고, 기어서 오두막으로 들어가 물래 먹었는데, 그 바람에 오두막 전체가 마치 한 장의 나뭇잎사귀처럼 흔들렸다. 이윽고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 내 앞에, 내 몫의 워트카와 토기 그릇을 놓았다. 그릇 속에는 삶은 달걀과, 보리가루의 튀김과, 검은 빵소각과, 그 밖에도 몇가지가 드러았었다.……우리는 찌그러져 세워지지도 않는 컵에 물을 따라 마시면서 식사를 시작하였다.…… 잿빛 커다란 소금, 기름 냄새를 풍기는 찌들은 과자, 고무처럼 탄력 있는 달걀, 그것들이 얼마나 맛좋은지 알 수 없다.
  「가난하게 산다고 했지만, 자네는 여러 가지 것을 갖고 있지 않나.」
하고 나는 그릇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런 걸 어디서 구했나?」
  「여자들이 갖다 주지요……」
하고 사브카는 황소 같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뭣 때문에 여자들이 자네에게 갖다 주나?」
  「그야……동정하기 때문이지요……」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사브카의 의복에도 여자들의<동정>의 흔적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하여 이날 밤 나는 그에게서, 털실로 짬 혁대와, 때묻은 목에 구리(銅)로 된 십자가를 늘어 뜨리고 있는 빨간 리본을 발견하였다.
  나는 사브카에 대한 여성의 약점을 알고 있었으며, 또 그가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질문을 더는 계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아니었다.……우리에게 ㅇ첨하여 끈기있게 음식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쿠치카가, 별안간 귀를 빳빳이 세우고 낑낑거리기 시작하였다. 멀리서 물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누가 개울을 건너고 있군……」
하고 사브카가 말하였다.
  삼분쯤 지나 쿠지카가 또 낑낑거리고 소리를 내었다.
  「조용해!」
하고 사브카가 개에게 외쳤다.
  저녁 으스름 속에,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더니, 숲속에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꽤 어두웠으나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전철수의 아내 아가피야였다. 그녀는 머뭇머뭇 우리들 근처에 다가와 멈춰서서, 괴로운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그처럼 숨을 헐떡인 것은 급히 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밤에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두려움과 혐오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녀는 오두막 근처에 두사람의 그림자를 보자, 가느다란 소리를 지르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당신이군……」
 하고 사브카가 과자를 입안에 쑤셔넣어면서 말하였다.
  「저……저예요.」
하고 그녀는 땅바닥에 보자기를 떨어뜨리고는, 내 쪽을 곁눈질하면서 중얼거렸다.
  「당신에게 야코프가 안부를 전해요. 그리고 이걸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뭔지 알 수 없지만, 이거에요……」
  「흥, 왜 거짓말을 해요……야코프라구……」
하고 사브카는 웃었다.
  「거짓말할 필요가 없잖아. 그는 어디가고, 당신이 왜 왔는지 잘 알고 있어. 아무튼 앉아서 얌전히 손님 대접이나 받지 그래.」
  아가피야는 나를 곁눈질하면서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오늘은 당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고 사브카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 끝에 말하였다.
  「뭣하러 멍하니 낮아 있어? 먹어요. 아니면 워트카라도 마시고 싶어?」
  「어머, 그런!」
하고 아가피야는 말하였다.
  「날 술꾼으로 생각하시다니……」
  「마시지 그래……뱃속이 더워질 테니까……어서!」
  사브카는 아가피야에게, 찌그러진 컵을 내밀었다. 그녀는 워트가만 마시고 안주는 먹지 않고 다만 소리높이 숨을 내쉬었다.
  「뭘 또 갖고 왔군.」
  사브카는 보자기를 풀면서, 그리고 무슨 생색이라도 내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여자란 빈손으로는 남자를 찾아오지 못하는 모양이군. 여, 피로그와 감자……잘 사는 모양기군그래.」
  그는 나에게 얼구을 돌리며 탄식을 하였다.
  「마을에서 이 여자만은 아직도 겨울 감자가 남아 있군.」
  어두워서 아가파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어깨나 머리의 움직임에서, 나에게는 그녀가 사브카의 얼굴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데이트 장소에서 제3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산책을 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숲속에서 뜻밖에도 꾀꼬리가 나직한 콘트라스트를 두어 마디 내더니, 30초쯤 지나자 한결 높은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사브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귀를 기울였다.
  「그건 어제였지……」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잠깐만……」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죽이고 숲속으로 뛰어 갔다.
  「이봐,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어?」
하고, 나는 그의 등뒤에서 외쳤다.
  「그만두게!」
 사브카는 한손을 흔들고 말없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사브카는 의향만 있었던들, 포수나 어부로서 성공했을 테지만, 여기서도 그의 재능은 힘과 마찬가지로 헛되이 소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판에 박힌 일을 하기에는 그는 너무나 게르름뱅이었으므로, 그가 갖고 있는 포수로서의 모든 정열을 하찮은 것에 쏟아았다. 그리하여 그는 괴꼬리쯤은 맨손으로 잡으려고 하는가 하면, 꼬치고기를, 매를 쏘는 총알로 쏘아 맞히거나, 때로는 강가에 몇시간씩 서서 열심히 커다란 낚시채로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으려 하였던 것이다.
 나와 단둘이 남게 되자, 아가피야는 기침을 하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이마를 비비내었다. 한 모금의 워트카를 마시고 그녀는 벌써 취하기 시작하였다.
  「어때, 아가샤?」
하고 나는 오랜 침묵 끝에 더 이상 잠자코 있는 것이 거북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덕분에, 그렇지만, 당신은 마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하고 그녀는 갑자기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그래그래, 걱정 말아요.」
  나는 그녀를 달래었다.
  「그러나 당신도 꽤 대담하군, 아가샤……야코프가 알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어떻게 알 수 있어요……」
  「하긴 거기까진 알 수 없을 테지……」
  「나는 그분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분은 지금 선로에 있어요. 집에 돌아오는 건 우편 열차가 지나간 후의 일이예요. 그리고 그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는 여기서도 들을 수 있어요……」
  아가피야는 한 번 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나서는, 사브카가 떠난 쪽을 바라보았다. 꾀꼬리가 노래부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작은새 한마라가 땅위까지 닿을락말락하게 날아와, 우리가 바라보자, 깜짝 놀라 날개를치면서 저쪽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괴꼬리 소리가 그쳤으나 사브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가피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한 듯이 몇발짝 걸어가가다 다시 주저앉았다.
   「어머, 저 사람은 어떻게 된거야?」
하고 그녀는 애타는 듯 말하였다.
  「열차는 내일이나 돼야 지나가는 게 아니고, 나는 곧 가야 하는데……」
  「사브카!」
하고 나는 외쳤다.
  「사브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가피야는 걱정스러운 듯이 망설이다가 다시 자리를 떴다.
  「나, 그만 가야겠어요.」
하고 그녀는 들뜬 어조로 말하였다.
  「곧 열차가 와요. 나는 열찻시간을 다 알고 있어든요!」
  가엾은 아내는 정확했다. 15분도 지나지 않아서 멀리서 찻소리가 들려 왔다.
  아가피야는 오랫동안 숲속을 바라보다가 초조한 듯이 손을 마주 비비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분이 대체 어딜 갔을까?」
하고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대체 어디 갔을까? 이제 가야겠어요.」
 그 동안 찻소리는 점점 분명히 들려 왔다. 벌써 육중한 기관차의 씩씩거리는 소리며 차퀴소리를 분간할 수 있었다. 이윽고 기적소리가 크게 들리고, 열차가 덜컥거리면서 철교를 건너고,……다시 도금 있자,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일분 더 기다려 보죠……」
하고 아가피야는 무슨 결단이라도 내리려는 듯이 주저앉으면서 말하였다.
  「할 수 없군요. 기다려 보겠어요!」
 드디어 어둠 속에서 사브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맨발로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무어라고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참, 복도 많군!」
하고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숲속에 가서 손으로 겨냥하는 시늉을 하니 저놈이 글쎄 금방 잠자코 있단 말야! 그런데 글쎄. 저놈의 개가! 다시 새소리를 기다리고 있자니가, 결국 군침을 흘리지 뭐야……」
  사브카는 아무렇게나 털썩 아가파야의 곁에 주저앉으며, 몸을 가누기 위해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에 마달렸다.
  「아니, 뭣 때문에 그렇게 흐려 있어? 마치 숙모가 당신을 낳은 것 같군.」
  상냥하면서도 단순한 사브카는 여자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그는 여자들에 대하여 교만한 태도를 취하며, 자기에 대한 그녀들의 감정도 비웃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쩌면 이 비웃는 듯한 태도가, 마을아가씨들에 대한 그의 강한 매력의 원인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으랴.

  그는 균형잡힌 미남으로, 그 눈에는 언제나――그가 경멸하고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은근한 친밀감이 빛나 있었는데, 이 매력만은, 다만 외부적인 특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잘 생긴 외모와, 독특한 태도나 동작 이외에, 세상에 알려진 패잔자로서, 자기 집에서 채원으로 쫓긴 불행한 추방인으로서의 사브카의 감동적인 역할도 여자에 대하여 커다란 영향을 갖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신은 뭣 때문에 이런 델 찾아왔소? 그 까닭을 이 아저씨에게 말해 봐!」
하고 사브카는 여전히 아가피야의 허리를 껴안은 채 말하였다.
  「말해봐, 마누라! 하하……그런데 말이야, 아가샤, 워트가를 한 잔 더 할까?」
  나는 일어나 밭두렁을 지나 밭 한가운데를 걸었다. 어두컴컴한 밭두렁은 커다랗고 납작한 무덤같이 보였다. 파헤친 흙과 이슬에 젖은 풀잎사귀들의 부드러운 습기가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왼손에는 여전히 붉은 등불이 빛나고 있엇는데, 그것은 마치 친절하게 살짝살짝 눈 웃음을 치는 것 같았다.
  나는 행복스러운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아가피야의 웃음소리였다.
  <그런데 차는?>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차는 벌써 도착했는데>
  얼마 동안 기다리다가 나는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사브카는 터어키풍으로 잠자코 도사리고 앉아서 조용히, 겨우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흐 투이, 누 투이……야 다 투이……」하고 한음절만으로 노래부르고 있었다. 워트카와, 사브카의 경멸하는 듯한 애무와, 밤의 무더위에 취한 듯한 아가피야는, 그의 옆에 땅위에 몸을 눕히고, 발작적으로 남자의 무릎에 얼굴을 비벼대었다. 그녀는 완전히 그 감정에 빠져 있었으므로, 내가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가피야, 차는 벌써 도착하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하였다.
  「시간이 됐어, 이봐!」
하고 사브카가가 머리를 흔들면서 내 생각을 밑받침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런 데 딩굴고 있어? 창피스럽지도 않아……」
  아가피야는 몸을 부르르 떨고 나서, 그의 무릎에서 머리를 치켜들더니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그에게 매달렸다.
  「벌써 시간이 됐어!」
하고 나는 말하였다.
  아가피야는 한 번 몸을 딩굴더니, 한쪽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그녀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30초쯤 그녀의 모습 전체는, 어둠속에서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투쟁과 주저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한순간 제정신을 차렸던지, 상체를 똑바로 하고 일어서려했으나,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힘이 그녀의 전신을 움직인 것같이, 다시 사브카에게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 사람은 마무래도 좋아여.……」
하고 그녀는 가슴에서 북받쳐오르는 듯이 웃으면서, 그러나 쌀쌀하게 말했다. 이 웃음 속에는 무분별한 결심과 무기력과 괴로룸이 한데 울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숲속을 헤매다가, 낚싯줄을 드리워 놓은 개울 가로 내려갔다. 개울은 잠들어 있었다. 기다란 줄기 위에 얹혀 있는 한 부드러운 꽃잎사귀가, 부드럽게 내 뺨에 닿았다. 마치 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알리려는 어린이처럼. 나는 낚싯줄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줄은 평평한 채로 축 늘어졌다.――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다.
  저쪽 언덕이나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한 농가에 등불이 번쩍거리더니 곧 꺼져 버렸다. 나는 기슭을 돌아다니면서, 낮에 보아 둔 도랑을 찾아내어, 그 곁에,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기라도 하듯이 앉았다. 나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별들이 차츰 빛을 잃어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냉기가 가벼운 한숨처럼 지상에 스며들고, 눈뜬 버드나무 입사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가피야!」
  누가 부르는 소리가 마을 쪽에서 들려 왔다.
  「아가피야!」
  그것은 집에 돌아와 깜짝 놀란 남편이 마을을 온통 돌아다니며 찾는 목소리였다. 그때, 채원 쪽에서는 참다못해 터져나오는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마누라는 정신 없이 취해 열두시간의 행복으로, 내일, 그녀를 기다릴 고통을 보충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한잠 푹 잤다.
  내가 눈을 떳을 때에는, 사브카가 곁에 앉아서, 내 어개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강, 숲, 씻어내린 푸른 강기슭, 나무들, 들――모든 것이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가느다란 나무 줄기 사이로 방금 솟아오른 햇살이 가볍게 내리고 있었다.
  「그래, 당신은 물고기를 잡았나요?」
  사브카는 웃었다.
  「어서 일어나세요!」
  나는 일어나 기분좋게 기지개를 켰다. 가슴은 미친 듯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기 시작하였다.
  「아가피야는 갔나?」
하고 나는 물어 보았다.
  「저기 가요.」
하고 사브카는 개울 가를 가리켜 보였다.
  나는 그 곳을 바라보고 아가피야를 확인하였다. 치마폭을 들어올리고 머리칼은 푸시시하게 흩어진 채,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머리수건을 누르면서 그녀는 개울을 건너고 있었다. 그녀의 발은 간신히 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괭이놈은, 누구의 고기를 훔쳐먹었는지 알고 있겠죠!」
하고 사브카는 그녀 쪽을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걸으면서도 고리를 치는군요……저런 여자들은 괭이처럼 음침하고 토끼처럼 비법하거든……바보가, 어젯밤에 돌아가면 좀좋아! 오늘은 크게 혼날 테지. 그런데 나까지도 지서에 끌려가게 생겼군……그래, 또 여자 때문에 매를 얻어맞아야 하다니……」
  아가피야는 언덕에 올라갔다가 마을을 향하여 들길을 걸어갔다. 처음에 그녀는 꽤 기운을 내며 걸어갔으나, 이윽고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불안스러운 눈초리로 뒤 돌아보기도 하고, 발길을 멈추고 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무서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사브카는 아가피야가 지나간 뒤에, 이슬을 머금은 풀위에 죽 드러낸 밝은 푸른 띠를 바라보면서 서글픈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야! 남편이 한 시간이나 서서 기다리고 있던데요……그 작자를 보았어요」
  사브카는 빙긋이 웃으면서 마자막 말을 마쳤다. 나는 가슴이 써늘하였다. 마을 어귀에 있는 농가 부근의 한길 위에, 아코프가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꼼짝않고 기둥처럼 서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만나서 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아가피야는 한동안 서 있다가, 우리의 도움이라도 바라는 듯이, 한번 더 이쪽을 바라보고 나서 걷기 시작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발걸음을 본 일이 없었다. 주정뱅이나 그밖에 어떤 사람에게서도 그런 발걸음을 본 적이 없다. 아가피야는 남편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때로는 갈지로 걷고, 때로는 무릎을 꺽고 두 손을 벌리고 한 군데 멈추기도 하고, 또 때로는 뒷걸음을 치기도 했다. 백 보쯤 갔다가 다시 이쪽을 돌아다보고 주저앉아 버렸다.
  「자네는 숲속에라도 가서 숨는게 좋겠군……」
하고 나는 사브카에게 말하였다.
  「흑스 그가 당신을 보면 큰일날 테니까……」
  「놈은 보나마나 알고 있어요. 아가피야가 누구한테서 돌아온다는 것쯤은……설마 한밤중에 여자들이 채소밭에 배추를 훔치러 갈리도 없을 테구……다 빤히 알고 있어요.」
  나는 사브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사람이 괴로워하는 가축을 볼 때와 같은 혐오가 섞인 연민의 정을 나타내면서 찌푸리고 있었다.
  「괭이에게는 웃음거리지만, 쥐에게는 눈물의 씨란 말이야!」
하고 그는 탄식했다.
  아가피야는 갑자기 펄쩍 뛰더니, 머리를 흔들고 용감한 걸음으로 납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겨우 힘을 되찾아 굳게 마음을 다지는 모양이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