蟾龍叡智 제9호

 

착 각

                                                           시: 정 남식

   

해가 솟아오르고

달이 뜨고, 별이 지고

밤이 낮이 되고, 민물이 쓴물 되어 돌아가듯

오늘이 가고 바뀌어도, 나는 그대로 인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열두 달 다 지나, 또 한해가 다가오듯

세월이 가고 바뀌어도, 나는 그대로라고

 

바람이 불고

비가내리고, 눈이 내리고

나무가 자라고, 풀이 말라 다시 자라나듯

계절이 가고 바뀌어도, 나는 아직 그대로라고

 

어른이 세상을 떠나고

아기가 커서 어른이 되듯

세대가 가고 바뀌어도, 그래도 나는 그대로인가

 

- 그랬구나.

세상은 파도처럼 그 자리에 출렁이고 있었고

바뀐 것은 오직 나뿐이었네

 

웅암 이진원

    마음의 창

    요즘 더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고 친구나 이웃이 말 해 준다. 막내 딸을 시집 보낸 후부터 잠재 되어있던 근심이 사라진 때문이다. 한 순간의 생활 난이 장난처럼 이산 가족을 만들어 어영부영 10년의 별거로 정까지 멀어졌다. 당행한 것은 어려운 일이 부닥치면 가족이란 의무감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도 요즘은 매사에 의욕적이다. 해맑아진 얼굴에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소녀와 같다. 35년 전 시집 올 때의 착한 얼굴이 되살아 났다. 이순을 훌쩍 넘긴 아내의 얼굴에 검은 테 돋보기가 끼어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아내의 친구들도 우리가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은 남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해묵은 두 집 살림을 주말마다 정리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활기차다. 살림을 합치고 옷 가게도 접고 황혼의 여정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우리가 평안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 가려는 의지가 노년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웃이 먼저 느낀다. 그래서 마음의 창은 얼굴이라 했던가!

 

글을 쓰는 연유

웅암 이진원    

   2007년 내가 다섯 번째의 복수전공으로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한 연유는정직한 글도 형식에 맞아야 보편성을 갖는다는 보수성 때문이었다. 정직한 글이 공감을 얻지만 형식을 갖춘 보편성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디어 영상학과 3학년때 제30회 방송대 문학상(수필 가작<동란의 여명>)을 수상했을 때 심사평의 글이다.

  중문학과를 마치고 미디어영상학과에 편입하여 전공과목을 공부하면서 글 없는 매스미디어가 없다는 것도 알았고, 자연(신)과 인간 간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 예술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지식과 거억, 생각과 말을 글로 쓰는 것은 정직한 의지를 보여주는 수단이다. 이 의지는 정직한 마음일 때만 공감을 얻게된다. 공감이란 마음의 소통 현상이다.

  한국 문단은 아직도 노벨상을 받은 문인이 없다. 정직한 글이라고 인정을 받은 창작이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 전통의 형식 문학에 기대어 패러디된 모조품 창작이기 때문이다. 깊고 넓은 자연(신)의 세계를 심연으로 읽고 꾸밈없이 보여 주는 의지를 가진 문인이 없다는 말이다. 

  노벨문학상은 우리 문화와 글의 우수성이 아직까지는 모든 인간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적어도 모든 인류 문화의 최대공약수를 가진 정직한 창작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이런한 문학 작품에 붙여주는 라벨인 것이다. 작자의 감정이나 사상을 훌륭한 미사려구로 꾸며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직한 의지가 없는 넉두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과 소통하는 글이란 거짓이 없는 마음의 글이다. 인간이 없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정직한 마음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진 신의 의지다.

 

제주의 게스트 하우스

  여행지에서 이국인이나 낯선 사람들과 합숙을 할 수 있는 집을 말한다. 제주도에는 외지인들과 외국인이 많이 오기때문에 저렴하고 안전한 공동 합숙소가 필요하여 게스트하우스로 민박을 대체하고 있는 것 같다. 제주도에 7~8군데의 지역마다 게스트하우스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전국 섬용회를 제주도 2박3일정도의 저렴한 관광코스로 개최할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명의 친구들이 이게스트하우를 이용하면서 지역의 이장이 안내 해 주는 관광지와 레저시설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초행길에 만족한 2박3일의 여행을 마친 것도 이게스트하우스 덕분이었다. 대부분 게스트하우스 경영자들이 종교인이거나 봉사단체가 운영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있어 좋았다. <이진원>

모슬포의 인심

  -모슬포에서 진 빚은 갚아도(가파도)좋고, 말아도(마라도) 좋다.-는 관광버스 기사의 농담이 잊혀지지 않는다. 옛날의 모슬포는 바람과 파도가 강해 사람이 혼자 살기가 힘든곳이 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이 보존된 아름다움이 있는 두 섬의 이름을 빗대어 <가파도>와 <마라도>를 자랑한 것이다. 귀향살이의 일번지였던 이곳의 별칭이기도 하다.<이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