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가르쳐 준 행복

 

웅암 이진원  

 

 

 신은 태초에도 지금도, 행·불행이나, 옳고 그럼을 구분 하지 않으신다. 다만 인간이 서로의 변명을 위해서나, 차별을 두고 싶은 마음 가짐을 형상한 말일 뿐이다.  군자나 선비의 마음가짐이 대범하여 경외하는 직관으로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다. 구김살 없는 표정은 편협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나는 언제부턴가 가끔 '행복이란 생명을 가진 만물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현존해 있는 그 자체'라 믿어왔다. 자연스럽게 살이있는 존재의 인식, 즉 인간의 매사가 행복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막연했던 이 믿음이 이번 섬용회의 여운이 상당 부분을 구체화 해 주었다.

   단호히 거절을 했던 청재가 3사람의 진주여자친구를 태워 주는 바람에, 나는 미국에서 참석한 서대식과, 김재규, 백정웅, 홍현자 네 사람을 모두 태우고, 남해와 창선대교를 거쳐 진주로 돌아오는 즐거운 관광 여행을 한 것이 우정이 가르쳐 준 행복의 시작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재규가 병원에서 어려움을 이기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 남해 정웅이가 늙어막에도 어려움을 딛고 재기를 하였다는 소박한 고백, 충청대학 초청 강의를 받았다는 대식의 이야기들이 친구들의 현존의 행복을 전하는 말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피로감마져 잊게하는 즐거운 드라이브가 나의 행복이 되었다. 친구들이 말하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 모두의 행복인 것이다. 작은 짚차안에서 디젤엔진 소음을 이겨내며 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행복이다. 추억의 회상이나 미래의 희망은 마음을 주름지게 하는 편협한 사고나 갈등이 되기싶다.

   독거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아지터 문을 열고 들어선 대식이가 '아, 내집에 온 것 같다!' 고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짐을 들고 뒤따라 들어오던 나는, 가족들로부터 소외받는 '무능한 노년'이란 생각이 깡거리 사리지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가진 사람이 <나>였다는 것을 알게한 것이다.

   대식이는 피곤에 지쳐 단추구멍처럼 닫힌 눈으로, 부산 광안대교의 불꽃놀이 영상 뉴스를 보고, 부산 상영 친구에게 시도때도 없는 전화를 건다. 서로 죽이 맞아, 화요일을 부산의 아리랑관광호텔에서 하루밤을 묵으면서 부산 야경을 감상했다. 집에서 쫓겨난 부랑아처럼, 세 사람은 광안대교, 자갈치, 광복동, 서면을 휩쓸며 지칠 줄 모르는 고희가 철잃은 세 사람의 행복이었다.

 길자부부의 점심초대를 받은 일, 진주 섬용의 후대에 감사하는 대식의 저녁초대, 재규의 점심초대 중부교회에서 '마법의 손 서대식'이라는 10년전의<KBS 한민족레포트> DVD를 감상하며, American Dream을 이룩한 자랑스런 친구를 인식하는 순간이 바로 행복이란 것을 알게 된다.

   더러는 업적이나 과거의 능력을 자랑하여, 남으로부터 권위나 존경을 받아 부러움을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훌륭한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방관자의 표정이었지, 권위와 신뢰를 갈구하는 본인의 표정은 아니었다. 과거의 업적은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으나, 장본인의 표정은 번뇌와 갈등을 벗어나지 못한 구김살이 있었다.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보내온 신상영의 메일을 전해들은 서대식은 청주대학 특강을 마치자마자 진주로 왔다. 남해 정웅이와 약속을 지킨다는 핑계다. 또 시도때도 없는 전화를 부산에 건다. 내일 오전 11시까지 꼭 도착한다는 신상영의 전화를 되 받았다. 만사를 제쳐놓고 미국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구김없는 그의 마음이 나의 행복이기도 했다.

  어디 행복이 그 뿐이랴! 대식이가 나의 아지트에 가방을 풀자마자, 가사 도우미를 나무라듯 나를 불러 이것 저것 지적하면서 노랗게 때가 낀 솥 남비 그릇 컵 등을 새 것처럼 눈부시게 닦으면서 행복해 하는 친구의 모습이 바로 그와 나의 행복이었다.

  우리끼리는 배꼽을 잡고 웃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친구부인)에게는 스트레스를 만드는 엄청난 죄악이 될 것이다. 대식이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세면장과 싱크대를 눈부시게 닦아 박테리아를 박멸 한다고 하면서 나의 늦잠을 깨우는 일들도 우리의 행복인 것이다. 제집 같이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곳이 친구의 행복이자, 나를 신뢰하는 그 우정이 가르쳐준 행복인 것이다.

   설거지를 맡겠다고 나선 대식이가 열시가 되도록 접시와 그릇을 꼼꼼하게 닦는다. 부산 신교장이 9시 차를 탈지도 모르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졸랐으나 막무가내 였다가, 결국은 한 시간 앞당겨 도착 한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허둥지둥 터미널로 나갔다. 남강교 앞에서 나의 앞을 질러가는 버스에 친구가 탔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의 예상이 모두 적중한 것은 한울님을 모신 우정의 심경이 동귀일체한 것이다.  

   주차장 입구에서 상영이를 픽업한 우리는 남해를 향하며 출발을 서둘렀다. 옆자리에 앉은 대식이가 오늘 여행주무를 맡은 기획경제 재무장관직을 맡는다며 주유소에서 연료탱크가 목이 아프도록 기름을 눌러담고 현찰을 지불한다. 뒷 자석에 앉은 상영이가 농림식품무장관을 맡아 식사책임을 선포한다. 나를 교통부장관으로 임명하며 운전만 하란다. 삼부 요인이 진주를 출발하며 정웅에게 수차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중이다. 아들 전화를 경유하여 어렵게 연락이 되었다. 정웅이 핸드폰에 수신 거절이 입력되어 있었단다. 이 모든 것이 행복한 웃음을 자아내는 죽이 맞은 동심의 유희가 아닌가!

  정웅부부와 함께 남해안 일주를 드라이브 관광을 하기로 했다. 아들 부부가 낡은 구식 코란도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아버지 차 조심하시이소!'한다.  아마도 아들이 내 차를 보고 근심을 하는 것 같다고 했더니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송정을 해수욕장을 돌아 절경의 <일출>식당에서 갈치와 멸치 조림식단의 풍성하고 멋진 식사를 농수산식품장관인 상영이가 베풀었다.

  남해의 동쪽 해안을 한 바퀴 돌아, 정웅이가 기반을 닦었던 선소에 들러, 고장의 전설들을 설명하며 베풀어 준 배부른 생선회 대접을 받고, 자리를 마련해 준 정웅이 아들 내외의 환송을 받으며 헤어졌다. 남해대교를 건너자 상영이가 좌회전을 명령한다. 악양 손병옥도 만나보자고 제안한다. 집으로 바로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다.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 병옥의 다정한 모습이 전조등에 비친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친구 셋을 위해, 차려준 저녁밥상에 따뜻한 김이 정성으로 구미를 당긴다. 삼가던 반주를 한잔 마셨다. 야간 운전을 피하고 싶어서다. 정서 입구에서 간담을 서늘케 한 일이 생각났다. 신선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병옥이 혼자 심혈을 기우려 일구어 놓은 아름다운 6천여평의 넓은 녹차밭을 거닐어 본다. 마치 내가 만든 문중족보처럼 위대한 업적으로 나의 가슴에 묻어왔다. 모든 것이 우리의 행복이었다.

   병옥이가 안내한 남도대교 앞의 손짜장면으로 점심을 나누고 병옥부인께서 마련해 준 무를 얻어가지고 보답 인사도 제대로 못한채 서둘러 돌아왔다. 병옥이 집에서 밤을 묵으면서도, 잠에 취할 정도로 밤 늦게까지 마음에 품은 많은 이야기만 했다. 추억이나 미래의 희망과 같은 것은 자신을 변명하는 구김새의 마음이었지 평온한 행복은 아니었다. 함께 밤을 지새운 자체가 우리의 행복이었다.

  행복이란 직관의 situation을 순순히 믿는 평온한 마음이다.<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