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공간

 

 

   뻬앗긴 우정의 공간

   나는 우정처럼 어려운 것이 없고 우정처럼 반가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깊은 밤 혼자 가만히 누워 생각해 봅니다. 내 평생 과연 진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고 보면 가금 허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때까지 살아노는 동안 이처럼 친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서야 내 인생살이를 살아온 보람이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또 반대로, 나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해 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도 생각해 봅니다. 여러 친구들의 얼굴을 차례대로 떠올리며 그 사람이 나를 최후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문해 보지만,「아니 그렇지도 못할 것이다」라는 자답이 나오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검증을 해나가다 보면 또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생애를 돌아보면 많은 친구들이 죽었습니다. 참 좋은 친구였는데 싶은 친구들도 여럿 죽었습니다. 죽은 다음에야 나는 그 우정들을 아쉬워하는데, 그럼 살아 있을 때, 자기들이야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의 우정을 가꾸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이 바쁘다 보니까 하는 핑계로 그때 그때 친구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역시 우정도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가꾸어나간다는 정성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서양 속담에「백 명의 친구는 모자라도 한 명의 원수는 벅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적용시켜볼 때 과연 나에게 백 명의 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愚問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놓고 볼 때 지금의 세상은 우정적인 면에서, 우정의 바탕에서 보는 세상으로는 가장 각박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정이 깃들 여지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경제적 여건과 구조가 그 원인이 되어 있겠습니다마는, 이러한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에서 지금 자라고 있는 세대들이 아마 평생을 통해 죽마고우라든가 진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心友를 얻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닐 것입니다. 기성세대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핵가족주의나 마이 홈 주의니 하는 것에는 우정이 끼어들 공간부터가 우선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방법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우리 조상들은 분명 가정의 세계와 우정의 세계를 양립시켜놓은 가운데서 생활했습니다. 우정의 세계가 없으면 남자구실을 아예 못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분들의 생활공간이었던 주택주고를 살펴 보더라도 확연히 드러나는 일입니다. 안방과 사랑방이 딱 구분되어 있어 부인을 만나는 밤의 몇시간에 불과하고,남자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친구를 중심으로 한 사랑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요즘은 가족중심의 사회가 되어 버려 각박하기가 한량없어졌지만, 우리 조상의 사회는 친구를 중심으로 사는 사계가 이른바 군자의 세계라고 보고, 오히려 부인은 그러한 세계를 뒷받침해 주는 존재로까지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사회는 마이홈 주의니 핵가족주의니 해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우정이 없어지고 단위는 어디까지나 가족단위입니다. 울타리가 너무나 분명해져 버린 것입니다.소시민이라면 열 두어 평이나 스무 남은 평, 좀 여유있는 사람이래야 서른 예닐곱 평에서 마흔 둬 평이 고작입니다. 게다가 사랑방이란 건 아예 없고 응접실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친구가 찾아오더라도 엉덩이만 잠시 붙이고 앉았다가 돌아가라는 얘깁니다.

  「가족과 함께 주말을」이라는 슬로우건은 청저히 가족끼리만 즐기자는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적적히 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마이홈 주의를 나무랄 수야 없는 일입니다. 서양 비누 냄새가 약간 풍기기도 하는 이 마이홈 주의는 사실 단군이래 면면하게 존재해온 생활습성이 아니었던가 싶고, 또 새삼스럽게 권장하기엔 너무나 끈덕진 利己根性의 또다른 발현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때문에 이를 억압할 도리는 없다 하더라도 장려해야 할 일은 못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만약 우리 민족이 마이 홈 주의에 철저해 있었다면, 다시 말해 조국이니 하는 것보다 자기의 가정만을 우선시키고 그것이 주는 평안과 행복만을 탐해왔더라면 도대체 우리는 오늘날의 해방이니 자유니 하는 것을 갖지도 못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가족과 가정보다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일신을 내던졌던 본보기들을 일제하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에서 숱하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신의 행복을 초개처럼 여겼던 이들의 행동에 대해 주저없는 경의와 尊念을 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이홈주의란 성립되지가 않습니다. 주의란 갑보다 을을 우선시킨다는 주장이며, x보다 y를 택한다는 태도입니다. 독립투사나 해방운동자는 분명 독립과 해방을 가정보다 우위에다 두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따뜻한 안방을 버리고 혹한의 만주벌로 달려갔던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큰일을 하려면 우정을 가꾸어라

   인도의 간디가 마이홈 주의였다면 과연 인도의 독립이 가능했을까? 네루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마이홈에 우선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가정을 등한히 하라고 주장하자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선 가정이란 불가결의 요건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형통한다는 얘기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시 사람은 그보다 우선하는 자신의 일거리를 갖고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정이 이러한「자기 일」에 역할하는 바는 어떤 것일까? 나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업에서도 그렇고, 특히 정치에서는 이것 없이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옛날 名君이라고 일컬어지던 분들은 예외없이 좋은 벗들을 갖고 있었고, 좋은 교유를 맺고 있었던 인물들입니다. 충직한 신하이자 최선의 친구들을 모두 갖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학문을 하고 문학을 하고 예술을 하는 데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흔히 예술을 고독한 작업이라 하지만 여기서도 친구의 도움은 크게 필요합니다. 친구의 충고와 토론 같은 것이 그 사람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만 하더라도 서클이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도 마찬가지였고, 앙드레 지드 역시 폴 발레리와  폴 크로델이라는 심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룹 중에서 우뚝솟은 봉우리들이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아가 큰일을 이룩하려면 무엇보다 좋은 친구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던 면에서 보면 친구야말로 부모나, 아내보다 더 자신을 잘알고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고, 또 그렇길래 부모 형제나 아내에게 말 못할 사정이라도 친구에게는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고 이마를 맞대고 상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친구란 귀중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친구를 가짐이 없이 일생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겨운 일이 되겠습니까.  참다운 친구가 있다면 언제나 그는 당신의 잘못을 힐책할 수 있으며, 때로는 위로가 되어 주며, 힘을 빌려주기도 하며, 또 때로는 동지가 되어 주고 반려가 되어 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는 우정이란 렌즈를 통해서 볼 때 화우지에 가까울 지경입니다. 동료는 있으나 친구는 없고, 계원은 있으나 벗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만큼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의 모델

   친구란 어떤 친구도 좋은 것입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도 좋고 다른 일을 하는 친구라도 또 그런 만큼 좋은 것입니다.  자고로 좋은 우정에 관한 얘기는 많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내가 본 바로, 이야말로 기막힌 친구라고 할 만한 예는 링컨에게서 발견한 것입니다. 몇해 전 그의 간단한 서간문을 미국 문학전집 속에서 읽게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대강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무렵 그가 친구의 편지를 받고 낸 답장이었습니다. 당시 릴컨은 하루에 1시간 정도밖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혹심한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땐데, 어릴 적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내용인즉 4백 불만 꾸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향리에 농장을 갖고 있었지만 별로 하는 일 없이 노름판에나 다니며 지내는 그런 건달이었던 모양인데, 링컨은 그 같은 격무를 치러내면서도 답장을 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4백 불을 꾸어 달라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 속에 있는 네 말이 마음에 걸려 이 편지를 쓴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너는 만약 4백 불을 갚지 못한다면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로 4백불이란 돈이 그다지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네 인격과 맞바꿀 만한 금액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너는 자신에 대한 존경을 잃어 버리지나 않았나 싶어 마음에 걸리고, 또 네가 그 돈을 갚지 못할 경우에는 농장이라도 팔아서 갚겠다고 썼는데, 농장을 갖고 있는 지금에도 사정이 어려워 돈을 꾸는 판에 농장마저 처분한다면 앞으로의 생활은 어떡할 작정이냐? 그러므로 내가 이런 제안을 네게 한다. 지금부터 네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라. 네가 하루에 10불을 번다면 내가 10불을 보내주고 20불을 번다면 20불을 노내주마. 그렇게 해서 몇 년이고 계속해보라. 지금 합중국은 네가 알다시피 전쟁중이라 일손이 달린다. 일만 하겠다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있을 거고, 또 합중국의 임금 수준이 그렇게 낫지는 않으니까 한 사람이 벌면 생활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보내주는 돈은 저축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빚을 갚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강 이런 간단한 내용이었는데, 참 세상에 이런 우정도 있을 수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당시 1시간밖에 못잘 만큼 갹무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게으른 친구에게 일하는 습관도 가르쳐주고 또 생활도 되게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여, 말하자면 물심양면으로 친구를 생각하고 도와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자 놀라운 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링컨의 위대성을 보는 것입니다.

   서재필 박사가 미국 생활을 할 때 한달 사는 데 5불이면 되었다고 하니 4백 불이란 적은 돈은 아니었을 것이고, 또 그러지 않았더라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를 위해 그를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이끌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위대한 友人이었던 것입니다. 친구의 정이란 모름지기 이런 길로 나타나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링컨의 우정을 보더라도, 우정 역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 나가야 하는 무엇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친구라면 어린 시절의 친구로부터,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그리고 대학·사회의 친구까지 각 단계의 친구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가 또 있습니다.「백명의 친구도 모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이들 모든 친구와의 관계를 귀히 생각해야 할 것이며, 그 우정을 고맙게 여기고 정성으로 가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당신의 일에 큰 도움을 준다는 타산적인 차원을 떠나서라도 우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며, 보다 풍요로운 생활, 건강한 생을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우정의 장(章)을 다음 말로 끝맺겠습니다.
 「우정은 우리 삶의 오아시스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