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說/ 李炳注의 文學

 

歷史와 記錄과 文學과…

 

李  光  勳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 주고 있는 작가 이 병주는 1965년 중편「소설 알렉산드리아」로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이다. 身邊雜記와 私小說에 안주하고 있던 한국 문단에 던진 이병주의 파문은 거의 충격적인 것이었다. 소설의 웅대한 스케일과 대하처럼 흐르는 유려한 문체는 30년대적 소설에서 한발짝도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 계속하고 있던 문단에 새로운 자극과 흥분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이병주의 이러한 작업은「관부연락선」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지만 7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가 쌓아 올린 문학적 업적에서 더욱 뚜렸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신동아」에서 연재중인「산하」를 비롯하여「세대」지에 5년이상 연재한 미완의 작품「지리산」,그리고「조선일보」에 장기 연재중인「바람과 구름과 비」,「문학사상」에 연재중인「행복어 사전」등등, 지칠 줄 모르는 집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40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병주는 문학에 듯을 세우기 전까지 대학 강단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고, 언론계의 일선에서 여론을 이끌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연론계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 쓴 논설이 말썽이 되어 거의 3년에 가까운 세월을 囹圄에서 보내야 하기도 했었다.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한「소설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의 옥중 생활에서 얻은 체험과 사상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話者인「나」에 의해 그려지고 있는「형」이며「형」은 작가의 사상을 대변해 주는 분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우인「나」에게 보내진 형의 편지는 작가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격조 높은 에세이들이다.

  「관부연락선」,「지리산」등에서 보았듯이 그의 소설은 거의가 자전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대부분 역사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가 78년 가을에 발표한「秋風辭」의 경우는 완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40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20여 년간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가장 격렬한 청년기를 살아온 것이 그의 소설을 살찌우는  소중한 체험이 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가 지배하는 암울한 계절에 사춘기를 보냈고 4년의 2차대전 학병으로 중국전선에 참가,  8·15해방과 그 이후의 혼란, 6·25와 자유당의 독재정치, 4·19와 5·16등 그는 우리 역사를 바꾼 굵직굵직한 사건을 거의 20년이란 짧은 시간에 직접 몸으로 체험하거나 관찰하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소설에 자주 나타나는 중국 학병 시절의 얘기나 해방 직후의 혼란상 등등은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들이 가장 밀도 짙은 체험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당의 압정이 무르익던 50년대를 신문의 편집 책임자로 일할 수 있었던 행운이 역사의 순간순간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다양하고 폭넓은 체험이 오늘날 이 병주 문학의 뼈대를 이루고 살을 붙이는 밑거름이 되어 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이 데뷔작「소설 알렉산드리아」에서도 그러했지만 그의 작품 무대는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일본이나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인디아 대륙(마술사)에소 미주 대륙(조선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그 무대로 하고 있어 한반도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한국 소설에 새로운 장을 덧붙이는 역할도 해 주었다.

   그의 소설은 숱한 역사의 행간 속에 묻혀 버린 회색의 군상과 패자의 삶에 빛과 의미를 부여해 주는 기록으로서의 문학과 오늘의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心象을 적나라하게 그려 주는 세태 소설로 크게 분류해 볼 수 있다.

   「소설 알렉산드리아」,「지리산」,「변명」,「겨울밤」,「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등등의 작품이 전에 속하는 소설이라면「망명의 늪」,「철학적 살인」,「낙엽」,「행복어사전」등등은 후자에 속하는 소설이다.  지칠 줄 모르는 작가 이병주는 이러한 소설들을 통해 역사와 인간의 문제, 정치와 사회 문제,  풍속과 세태, 인간 심리의 밑바닥 등 모든 종류의 人間事를 리얼하게 묘사해 내는 역량을 가진 우리 시대의 소중한 작가의 한 사람이다.
   언젠가 그는 소설과 역사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많고 또 많은 사명을 지니고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흔히 쓰이는 오소독스한 역사 의식이 반드시 역사 그 자체를 옳게 전하지 못하는 면이 많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도자 중심이거나 혹은 정권 중심으로 내려간다든지 또는 영웅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 사이에 여러 가지 배치되는 요소가 있고 지식인의 고민이 있고 서민의 애환이 있고 하는게 아닙니까…… 소설은 그런 역사의 뒤에서 생략되어 버린 인간의 슬픔, 인생의 실상, 민족의 애환 등을 그려서 나타내 주는 것이 소설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하겠습니다.

   역사 속에 묻혀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간 패배자,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희생된 개인의 비극과 애환은 지금까지 이병주가 줄기차게 추구해 온 명제이기도 하다.「관부연락선」에서는 좌우익이 대결하는 해방 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다가 좌절해 버린 한 지식인(柳泰林)의 비극을 그려 주었고「겨울밤」,「내 마음은 동이 나니다」등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제물이 되어 한평생을 그늘에서 살아야 하는 노정필의 비극을 그려 주고 있다.

   그리고「辨明」에서는 역사와 소설의 관계를 政攻法으로 다루어 보이고 있다. 이작품에서 이병주는 역사에 대한 깊은 의문과 소설의 사명을 밀도 짙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 블로크의「역사를 위한 변명」이란 저서와 저자의 생애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역사를 벼녕하기 위해서라도 소설을 써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이 높은 목소리로 강조되고 있다.

   중국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한국인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어 끝내는 처형당한「탁인수」가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나의 불효는 장차 역사가 보상해 주리라고 믿는다」는 말을 남기고 총살형에 처해진다. 사람들이 즐겨 쓰는「역사가 심판할 것이다」「청사에 빛날 것이다」하는 등등의 표현 속에는 역사에 대한 인간의 깊은 신뢰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신뢰에 언제나 보답해 주는 것이 아니다. 탁인수는 결국 역사로부터 배반당한 채 죽어간다. 마치 마르크 블르크가 역사를 깊이 신뢰했으면서도 끝내 역사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죽어간 것처럼―.

   그런데 탁인수를 일본 헌병대에 밀고했던 장병중이라는 자는 해방 전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왔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에 출마까지 하게된다. 근소한 차이로 낙선은 했지만 동포를 밀고한 매국노가 버젓이 행세하고 있는 현실과 작가의 양심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깊은 의문이 시작된다. 역사는 과연 누구의 편인가.

   탁인수의 유골이 일본 후생성 창고로부터 봉환되어 오고, 당시 같은 운명으로 묶여 있던 친구들의 정성으로 부산항을 굽어보는 언덕에 탁인수의 송덕비가 세워지지만 작가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는다. 작가는 마르크 블로크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서둘지 말아라. 자네는 아직 젊다. 자네는 역사를 변명하기 위해서라도 소설을 써라. 역사가 생명을 얻자면 攝理의 힘을 빌거이 아니라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빌어야 된다. ……나도 문학을 외면한 어떤 인간의 노력도 인정하지 않는다.

   작가 이병주의 文學觀을 가장 선명하게 나타내 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의 변명을 위해 역사가 다 비추어 주지 못한는 死角의 그늘진 인간에게 빛을 주기위해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또한 기록자로서의 작가의 사명을「겨울밤」에서 노정필과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선생은 어떤 각오로 작가가 되었습니까?」
   「기록자가 되기 위해서죠.  …나는 내 나름대로의 목격자입니다. 목격자로서의 증언만을 해여죠. 말하자면 나도 그 증언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일,  그 일을 위해서 어떤 섭리의 작용이 나를 감옥에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라는 것을 읽어 보았소. 그런데 그건 기록자가 쓴 기록이 아니고 시인이 쓴 시라고 보았소. …기록은 철저해야만 기록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시인의 감상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해도 기록은 될 수 없ㅇ들 것입니다. 기록이 되려면 시와 결별해야 하오. 기록자는 자기 속의 시인을 추방해야 할 거요.」
   「나는 기록이자 문학인 것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학이자 기록이라 밖워 말해도 좋지요.」
   「기록의 뜻 이외에 문학이 무슨 뜻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이선생은 시인입니다. 시는 구체적인 슬픔, 개체적인 죽음을 추상적으로 일반적으로 페인트칠해서 슬픔의 또는 죽음의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꾸밉니다. 시는 허무를 노래해서 허무에도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잘라 없애야겠다는 의욕을 마비시킵니다. 시는 또 절망을 노래해서 절망송에 무슨 구원이 잇는 것처럼 조작합니다. 시인은 패배를 미화해 가지곤 모든 사람이 패배자가 되도록 권유합니다. 당신의<소설 알렉산드리아>는 그러한 시인의 교활한 작품이오. …당신의 시인은 감옥에서 나오면 사형폐지운동을 해야겠다고 했는데 그래 당신은 사형 폐지를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소. 그저 문학을 했다는 말만 가지고 통할 것 같소? 당신의 시인은 세상을 기만하고 당신 자신마저도 기만했단 말이오.」

   인용이 좀 길어졌지만 이 부분에서 노정필의 발언은 실상 이병주의 문학관을 보다 강렬하게 나타내기 위한 강조 어법으로 쓰여지고 있을 뿐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는 물론이고「쥘부채」「겨울밤」「지리산」「관부연락선」「변명」「산하」「조선 공산당」등등의 작품 역시 기록을 문학의 사명으로 하는 이병주의 노력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78년 가을에 상재된「지리산」을 보아도 안에 많은 실재 문물이 나타나며 한 사람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중앙 도서관에 매일처럼 나가 해방후의 기록들을 들추는 노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낙엽」「예낭 풍물지」「망명의 늪」「여사록」「행복어 사전」등은 역사의 기록이라든지 사상성이 약한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세태와 풍속을 리얼하게 묘파한 격조 높은 풍속 소설이다. 이들 작품에는 수많은 종류의 인간들이 浮沈하여 오늘의 세태와 풍속을 흥미있게 엮어 가고 있다.

  「낙엽」에 나오는 서울의 변두리 옹덕동 18번지는 이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당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느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다가 5년 징역을 치르고 나온 박열기, 전직이 시체 미용사란 희귀한 직업인 모두철, 미국 유학 6년에 박사 학위는커녕 석사 학위도 못 받고 돌아온 거달 신거운, 교원 노조의 일을 보다가 모가지당한 뒤 프린트사의 필공으로 취직했지만 그나마 타이프라이터 때문에 실직한 안 인상 등 모두가 前자가 붙은 인생들이 벌이는 인간 드라마가 바로「낙엽」이다.

   여기에 과거에 사는 빛바랜 독립운동가, 바람난 구멍가게 안주인, 남편(?)을 두고 멀리 동두천으로 벌이 나간 양공주, 바아거얼 등등이 등장해서 살인 사건과 간통과 이혼 등 인간 서회에서 벌어질 수 잇는 모든 드라마를 엮어 나간다. 철저히 무능하고 철저히 가난하고 철저하게 선량한 이들에게 작가 이병주는 끈끈하고 따뜻한 사랑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이다.

  「낙엽」을 읽고 나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들 무능하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이 우리 형제 우리 이웃으로 뜨겁게 부딪쳐 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버림받은 그들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고 따뜻한 인정이 있고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우리는 결코 미워할 수 없다.

  「망명의 늪」에 나오는 주인공 역시 우리가 미원만 할 수 없는 신생들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과의 집단 자살을 기도하다가 혼자만 살아남은 나「이」군. 2년 전부터 술집에 나가는 여자에 업혀서 버스값조차 타 갖고 다녀야 할 정도로 철저히 무능한 사람이다. 몇 번의 사업 실패로 그는 이제 최소한도의 노력으로 행운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복권이 당첨된다든지 간첩을 잡아 상금을 탄다든가 하는 행운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다.

    그는 원래 상과 대학을 나와 군복무를 마치고 T물산에 들어간다. 스물 다섯에 들어가 서른 살에 과장이 되었지만,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사장의 아들이 실권을 잡으면서부터 온갖 부정을 예사로 저지르게 된다. 이런 가운데서「나」는 자본주의라는 것에 희의를 느낀다. 평생을 평사원으로 있어야 할 사람이 있고 기껏 과장이나 부장으로 끝나는 사람이 있는데, 능력과 덕망엔 아랑곳없이 연령의 차를 뛰어 넘어 사장의 아들이란 조건 하나만으로 사장이 되어 社規를 넘는 인간의 영역에 까지 군림하는 것은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주의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자본주의일 수 있자면 이득의 분배는 주식의 按分에 따르더라도 인사의 서열은 능력과 덕망에 따른 질서라야 하는 것이다.
  그는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짓밟지 않는 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요. 자기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무수한 지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 뭐하겠습니까. 나는 히피처럼 살아가렵니다.」

   이렇게 사는 그에게 어느날 시인 하인립 씨가 사기 죄로 잡혀 들어갔다는 뉴우스가 날아든다. 어느 사업가의 교모한 술책에 말려들어 구속까지 된 것이다. 시집 출판비조로 30만 원, 생일 축하금이란 명목으로 10만원을 받은 것이 뇌물로 둔갑하고 변호사법 위반에다 사기죄로가지 몰아가게 된 것이다. 40만 원은 갚고 하인립을 석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평소 하인립 씨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하인립 씨에게 신세를 진 사람도 모두 핑계를 대며 도움 주기를 피한다. 세상은「내가 상상하고 짐작하고 인식한 것 이상으로 냉혹, 각박, 잔인하다는 것을 느껴 보는 결과」가 되었다.

   우정은 사라지고 이리의 탐욕만이 남았다. 그런데 그 이리의 탐욕이 필요에 따라 형편에 따라 우정의 가면을 부벼 대기도 한다. 그 많았던 하인립 씨의 친구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거의 매일 밤 더불어 흥청거리던 하인립 씨의 술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런 살벌한 황무지에서 시를 쓴다고? 어립없는 소리!)
    철망 저편에 서서 그래도 태연한 척하고 있던 하인립 씨에 대해서 나는 비로소 맹렬한 증오를 느꼈다. 바보는 바보라는 그 죄명으로 광화문 네거리에 찢겨 죽어야 한다. 호인은 호인이란 그 죄명으로 사지를 찢겨 개의 창자를 채워야 한다.

   하인립 씨는 그 뒤 선고 유예로 풀려 나오고 성유정 씨 댁에서 생일 축하 겸 하 인립 씨를 위로하는 뜻으로 파아티를 벌이게 된다. 이 자리에는 하인립 씨 구출을 외면했던 자들까지 모여들어 저마다 한 마디씩을 늘어 놓는다. 하 인립 씨는「가시없는 장미」이고 보기드물게「순수한 사람」이고「엉뚱한 사람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40만원은 내가 조달할 수 있었을 텐데…」등등의 입에 발린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승자의 편인 것이다.

   이병주는「망명의 늪」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계산으로 가늠하는 우정이니 의리니 하는 것의 假面性을 철저하 고발하는 한편, 우리 사회에서 수억의 富를 축적하는 일이 얼마나 비정적이고 바도덕적인 것인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돈에 짓밟혀 사람 구실을 못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패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65년에 발표한「소설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데뷔작이자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소설이다. 정치적 변동에 따라 자기의 사상을 갖고 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설명해 주는 소설이다. 그 7년 뒤인 72년에 발표한「예낭 풍물지」에서도 그러 했듯이 소설은 소재나 스토오리보다는 작가의 사상을 에세이풍으로 집약한 소설이다.

   소설의 3분지 1분량을 차지하는 형의 옥중 편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상의 자유를 갈망하는 리버럴리스트의 의지가 담겨 있다. 어떠한 제도 어떠한 법률로도 제재받을 수 없는 인간의 자유와 조직사회가 있고 체제가 있는 곳에 어쩔 수 없이 있게 마련인「회색의 군상」을 극구 옹호한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으로「반 인간적인 조건이나 상황, 제약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강한 투사가 될 수 있는 사상이라야 올바른 사상」이라는 신념을 굳힌다.

   이병주는 문학을 통해 역사의 그물에 잡히지 않은 숱한 인간사, 승자가 되지 못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패자들,「역사」의 행간에 묻혀 버린 비극의 주인공들을 찾아 그들에게 빛을 주고 의미를 불어 넣어 주는「마술사」와 같은 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