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옷
전 소 희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옷을 만들고 있다. 그것도 전통 한복을 고집한다. 우리 한복은 착용감이 편안하고 화려하며, 그 우아함은 세계 어느 의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요즈음의 옷에 비하면 활동성이 떨어지고 가격도 만만찮으니 점차 밀려나 큰 잔칫날이나 결혼식, 회갑연 같은 특별한 행사에만 한복을 입는다. 그래서 보다 한복을 많이 보급하기 위해 간편한 모양으로 만들고 있지만 한복의 섬세함을 표현해 내기엔 옷감의 종류나 디자인에 있어 한계가 있다.
한복의 원단은 주로 부드럽고 따듯한 명주를 사용한다. 또한 우리 천연 염색의 미묘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화려함과 은은함은 찌들은 현대인의 마음을 정화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고도의 기법과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손 자수는 우리 여인네들의 아름다운 향수다. 이 손 자수를 한복에 많이 사용하는데, 옷 한 벌에 동양 손 자수를 놓으려면 자수량에 따라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 것도 있다.
원단 배색과 자수의 기법이나 색상의 조화가 한복의 섬세한 곡선에 잘 접어들 때, 그 아련한 곡선미에 살아난 선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완성된 옷을 잘 맞는 사람이 입었을 땐 보는 것 자체가 즐겁고 가슴 뿌듯한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옷을 제작할 땐 행사에 맞는 색상과 나이, 얼굴색, 체형 등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기에 오랜 경험과 안목이 중요하다. 또한 우리 옷은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그것은 속옷에 따라 옷맵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속옷도 직접 만들어 입히고, 신발, 장신구(노리개, 아얌, 주머니 등)도 완벽히 전통으로 갖추어 입힌다. 물론 한복을 입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다소곳하고 행동이나 걸음걸이도 신경을 써야 한층 돋보인다.
언젠가는 옷을 제작하여 찾아가 입는 법을 자세히 알려 드렸는데도 행사장에서 치마를 뒤집어 입고 하객과 인사를 한 손님이 게셨다. 특히나 요즈음은 한복을 자주 입지 않으니 옷고름조차 매는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행사장에 사람을 보내어 옷을 입혀 주고 뒤처리를 하는 등 마음을 다하고 있다. 그리하여 행사 후, 단순한 옷이 아니라 작품을 입고 패션쇼를 하는 기분이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 올 땐 정말 내 마음이 즐겁다.
약간의 손해가 있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제작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성의를 다하여 어머니가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옷을 만들어 내보낸다.
내가 옷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또 한 가지는 행사에 따른 사람들의 옷의 조화이다. 결혼식의 경우, 신랑 신부도 중요하지만 양가 혼주의 의상에도 신경을 쓴다. 앞에서 하객을 맞이하는 혼주가 우아하면서도 품위 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식장 행사가 더욱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손님들도 비교적 혼주의 옷엔 신경을 쓰지만 조부모님의 옷은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다. 거동이 불편하다거나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식장에 모시지 않는 경우도 더러 본다. 그 조부모님은 어찌 사랑스러운 손자 손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 섭섭함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번은 수수하고 인자한 중년 부인이 혼수를 장만하러 오셨는데 시모님의 옷을 제일 좋은 것으로 특별히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혼주 본인은 예전의 한복을 입으신다고 했다.
그 시모님은 오래전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시장에서 생선을 팔아 두 남매를 키워 결혼시켰단다. 이 며느님도 시모님을 잘 모시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오열과 오환으로 병원에 갔더니, 간암 말기로 육 개월을 못 넘기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팔십이 넘은 시모님은 고향 산속 마을에 아들과 정착하여 매일 산에 올라 맑은 공기와 적당한 햇빛 속에서 취미 생활과 명상을 즐겼단다. 또 약초와 쑥을 즙을 내어 먹고 산채와 무공해 잡곡으로 밥을 지어 먹이며 지극 정성으로 아들을 보살피셨단다. 자식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이니 오죽했겠는가, 그런데 신통하게도 육 개월을 넘어 이 년이 지났는데도 건강이 점점 좋아지더란다. 그 부인은 무엇으로 시모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꼭 효도해야 한단다.
형편도 넉넉지 못하고 평탄하지도 않지만,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으로 지혜와 덕을 갖춘 가슴의 따스함ㅇ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아하게 한복을 만들어 그 부인에겐 입게 하고 샘플로 사용하고 있다.
옛날 사대부 여인들은 지식, 지혜와 덕을 갖추어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사랑을 베풀 줄 알았다. 옛 기생들조차도 단순한 술시중이 아니라 가야금, 소리, 서예, 그림, 시 등 혹독한 교육을 통해 우리 문화에 기여한 바가 있다. 아름다운 우리 문화, 우아하고 귀품 있는 우리 옷을 더욱 연구하고 개발하여 세계에 널리 알리고 사랑해야겠다. <2005. 4 문학세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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