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학

김 길 정

내가 하동을 가 본지는 40년도 더 된 것 같다.
길을 가며 손에 든 담배 대가 뒤로 가면 '내 담뱃대 ?'  그 손이 앞으로 오면 ' 어! 여깃군.'
한다는 나이가 됐는데도 내가 태어난 곳, 내 유년기의 기억들은 어제 같이 생생하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겠지만 40년 전에 갔을 때만 해도 하동은 내 어렸을 때의 기억과 거의 같았었다.
  읍내에서 초등학교를 가자면 조금 못 미쳐 학교 뒤에 세무서가 있고, 세무서 높은 계단 앞으로 중섬으로 내려가는 길이 학교 가는 길과 십자를 이루는데 그 십자로에서 세무서 담 장을 끼고 수리조합 관사, 길 건너  잡화가게, 대각선으로 방앗간, 방앗간 건너는 논 이였다.  
 입학 무렵의 나는, 위로 두 누이를 둔 그 방앗간 집 외아들 이였다.    
언제부터 거기 살게 됐는지는 몰라도 도망가던 일본군이 송아지(?) 만한 돼지를 쏴 죽였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나, 처음 전학을 가기 전, 여순 반란 사건 뒤에 지리산으로 철수하는 반란군이 지금의 철도역 뒷산에 머릿속의 서캐 같이 하얗게 올라가던 기억이 있는걸 보면 태어나고 곧 이어 거기서 살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금은 너뱅이 들 쪽으로 있던 수리조합 방천(둑) 쯤으로 새 도로가 났다고 하지만 내가 자랄 때 만해도 그 십자로에서 경찰서 앞으로 중간 지점이 약간 내려간 신작로(우린 그렇게 불렀다)가 있고 신작로 양옆으로 아름드리(100년은 족히 됨 즉 한) 벚나무가 열 발쯤 간격으로 서있었다.  벚나무 바깥 양쪽은 지금 새로 난  도로나 시장 쪽이 다 논 이였다. 중간지점부터 경찰서까지는 이빨 빠진 아이의 이빨처럼 듬성듬성 했지만 우리 집 뒤에서 군청으로 들어가는 개울 뚝 부근은 잎이 무성한 건강한 나무였다.

 그 때만 해도 가로등이 있을 리 없어 벚꽃이 피고부터, 잎이 무성한 여름철까지는 저녁을 먹고 나와 걷기에 아주 좋은 산책로였다.      벚꽃이 피고 버찌(열매)가 익을 때까지 나는
야행성 동물 같이 밤이면 그 벗 나무 위에서 살았다.   벚꽃도 그렇지만 잎은 더 무성해서 캄캄한 밤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입이 시꺼멓게 버찌 따먹는 재미도 재미지만 곱게 차려입고 나온 연인들 위에다 냅다 오줌을 갈기고 숨는 재미다.     배꼽근처 와 남 보이기 뭐한 곳에 지금도 크게 나 있는 상처를 보면 창자가 나왔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풀어놓은 강아지 모양 재미지게 자라는데, 일년만 더 참아 줄 일이지 미쳐 7 살도 안된 나를, 무슨 억하심정으로,  일부러 학교까지 찾아가 입학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입학하는 날은 그동안 몇 번이나 메어보고 쓰다듬어봤던 란도셀 ( 등에 메는 책가방, 해방 직후라 일본말?. )에, 꽃 그림이 예쁘게 그려진 양철 필통 속에는 잠자리가 그려진 일제 '돔보' 연필을 넣고, 숯불 넣은 다리미로 칼날같이 다려놓은 세루(무슨 천인지 모르지만) 양복 입히고는, 가슴에 하얀 코 수건 달아 주시고(그때는 콧물이 다 빠져야 영리해 진다고 할 정도로 누구나 다 누우런 콧물을 콧수염처럼 달고는, 양 팔 소매로 쓱쓱 문질러 소매가 번질번질했다.)        '어이구, 내 새끼 !'  
번쩍 들어올려 숨이 막히게 끌어안고 예뻐 죽겠다는 듯 부르르 떠시며 내 볼에 입맞춤을 하시고는 손을 잡고 학교로 갔다.      하늘 같이 믿었던 어머니가 매정하게 아이들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앞으로 나라이 !' 팔을 뻗는데 뒤 녀석이 그 애지중지하던 란도셀을 툭 민다. 뒤 아이로서는 란도셀 두께만큼 뒤로 물러나야 하니 옆줄의 아이와 열이 안 맞는 거다.  
 첫날부터 돌아서서 싸움 짓거리다.
 뒤꿈치를 들고 꼰두배기를 쳐도 출석번호가 한 반 60명중에서 10번 밖에 안 되는 체구인데 수업이 끝나고 너뱅이 들로 미꾸라지 잡으러 줄 행낭을 칠라치면 다른 아이들은 책 보자기를 허리에 질끈 매든지 어깨에서 팔 밑으로 대각선으로 매면 몸에 착 붙어 날렵하게 뛰는데 이놈의 원수는 양옆으로 덜렁거리고 그 속에 든 필통은 어떻게나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었다.    파란 잎이 몇 개, 울긋불긋한 무궁화를 두꺼운 가죽 위에 찍어눌러 양각시킨 명품(?) '란도셀'.  그런데 그놈의 '란도셀'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수 같을 수 없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외고집이라도 부려 학교 안가고 일평생 그 버찌 나무 위에서 재미지게 살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리 앙탈을 부려도 우리어머니는 아침마다 이 원수를 내 등에 지어주시고 ' 아이구 내 새끼 !'  그러시는데 어찌 '마다'고 하랴.  엄마도 그렇지 그 좋은 '책보'를 두고 말이다.  
 이렇게 속아 학교에 들어 가, 조회시간마다 뒤 아이와 싸우다가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또 맨발로 집으로 가느라 거의 매일이다 시피 울며 집으로 갔다.  

  사진으로 봐서, 그때는 무너질 듯 삐긋거리는 2층 목조건물이 지금 교사 자리에 있었고
 그 왼쪽에 아담한 단층 교무실이 있었다. 그 목조교사는 중앙과 양옆으로 입구가 있었다.
교무실과 교사 사이에는 약간 뒤쪽으로 6.25후 다시 돌아와, 오줌발 창 너머로 넘기기 내기하던 화장실이 있었다, 교무실 쪽에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신발장이 있었는데  교실에 들어 갈 때는 누구나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들어가게 돼 있었다.    그런데 방과 후 청소를 하고 나오면 나를 꼭 빼 닮은 이 멍텅구리 신발이 주인을 기다리기는커녕 뭐가 그리 급한지 다른 아이를 따라 교정을 나가고 없기 예사였다.. 다들 검정 고무신을 신을 때인데 닳고 찢어 진 것들만 초라하게 팽개쳐져 띄엄띄엄 구석 지에 남아있었다.     크던 작던(거의 내 발보다 작은 건 없었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게  있으면 다행인데 그도 없으면 집까지 징징 짜며 자갈 밭 길을 걸어가야 했고, 겨울이면 어쩔 수 없이 교무실에 가면, 재수 없게 걸린 선생님이 손잡이를 빙빙 돌려 '모시모시'하고 거는 교환전화로 마치 자기 탓으로 잃기라도 한 듯 어머니에게 미안해하며 전화를 걸어 일해주는 누나가 와서 업고 가 곤했다.    

  처음 몇 번은 울고 들어가다가, 이골이 난 다음부터는 교무실에 시무룩하니 들어서면 선생님들이  ' 니 또 왔나.." 그러시고 ,  요 조그마한 골치 아픈 단골을 쉽게 알아보셨다.
그때부터 지금 까지 줄곧 생각해도 신기한 건, 한 신발이 딴 아이 따라가고 나면 새로 사 신은 신발은 주인 얼굴을 미쳐 못 익혀서인지 종치자마자 쫓아 나와도 그 날로 잽싸게 다른 아이를 따라가고 없으니 매일이다 시피 울고 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간혹 운동화라도 아버지가 사다주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날이 우는 날 이였다.

학예회,  몇 번 연습해본 소녀( 그때는 '가시나' 였다.)와 듀엣으로 노래를 한다고 했는데 자꾸만 목에 걸리는 나비넥타이에, 풀 멕여 다려 입은 와이셔츠 채로 학교로 가다말고, 교문 맞은 켠, 너뱅이 들 쪽으로 있던 양철로 지은 농협창고 너머로 미꾸라지를 잡으러 갔다가 찾아 나선 누이들에게 뒤통수 맞아가며 끌려, 뻘 투성이가 된 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에이!   그때 그 미꾸라지는 배가 누우러니 내 팔뚝만큼 크고 포동포동 했더랬는데....
 
 그렇게 일년 남짓,  서울로 전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됐다.   194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