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떨어져도

                                                                                                                  시 / 차연석

헐벗은 나무에 목련이 지고 또 화사한 벚꽃이 흰 물감을 깔았었는데.
이젠 핏물로 물들인 진달래가 내 이 가슴을 붉게 태우는구나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봄비에 길바닥을 온통 하얀 꽃잎으로 깔아버리고
진달래가 온 천지에 붉은 씨알로 붉게 피어나구나.

숲은 한껏 고요하여 또다시 몰아칠 비바람에 잔뜩 움츠려 있고
봄은 소리 없이 서서히 꽃잎을 무너뜨리고
목련도 벚꽃도 소리 없이 무너뜨리더만,

사라진 하이얀 계절은 내 머릿속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올해에도 지난해와 다름 없이 꽃잎이 피어선 지는구나

이 아름다움의 뒤에는 솟아나는 샘도 식어서 노쇠함도 따르는 것
인생의 내 이 허약함이 몸뚱이를 타고 꾸역꾸역 터질 듯이 기어오른다.

다시 또 태양이 떠오르면 부서진 잔해처럼 꽃잎은 어디론가 흩어져 가고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닥칠 멸망의 긴 한숨을 쉰다.

그러나,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기약 없는 복원을 내밀한 새삶의 세상을 그리면서
이 대지의 잔액을 빨아들이고 다가올 태양의 궤도조차 내게로 휜다.

저만치 목련이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화사한 벚꽃마져 흩어져 가버린 계절
진하게 물들인 진달래꽃을 가슴에 담은 채
어제보다 내일을
�育� 지면

다시
푸른 숲에서
푸른 꿈을 가꾸면서 푸른 각오로
새 삶의 텃밭을 다듬는 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