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의 국악향연

 

글/ 이진원

 

  국립진주박물관과 함께 하는 "우리가락 우리소리" 국악을 국민속으로란 홍보지의 시간(6월 12일 오후 7시 30분)에 대어 진주성박물관 야외무대로 갔다. 음악 감상과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앞 줄 왼편 끝자리를 잡았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실용음악을 좋아하여 노랫말에 곡을 붙여 혼자 즐기다보니, 악기 연주실력은 초보를 면치 못하지만 그 연륜이 숙성된 것처럼, 눈귀가 절로 예술 감각을 지닌 것처럼 스스로 착각할 때가 가끔있다.

  지휘자가 국립부산국악원 청소년예술단을 소개하면서, 고등학생들이 대다수라고 소개 할 때만해도 그저 그러려니했었다. 많은 박수로 편달을 바라는 지휘자의 체면치레로 몇 번의 힘없는 박수를 쳐주고, 어떤 연주든 한 번 해보란 듯이 의자등받이에 허리를 묻은채 다리를 포개어 웅커리고 앉았다. 

   묵향으로 난(蘭)을 그리듯 시작한 부드러운 선율이 점점 굵고 박력이 넘치는 굵은 매화 기둥 같은 저음 장단을 딛고 일어서 듯 관현화음이 폭포처럼 넘처나왔다.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국악기의 웅장한 역동성음이었다. 가슴이 벅차고 숨이 막혔다. 안압이 오르고 눈물이 나도모르게 맺혔다. 꼬았던 다리는 고치고 웅쿠렸던 허리를 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민족의 함성을 듣는 환타지였다.

    관현악'아리랑'이란 이름의 이 연주곡은 북한 공훈예술가 최성환이 1976년에 작곡하여 1978년 김홍재 지휘로 도쿄교향악단이 일본에서 처음 연주한 곡이라 했다. 풍자로 가득한 민족적 선율이 수난의 시대와 영광의 오늘을 형상화한 것처럼, 슬픔을 딛고 일어선 아름다운 문화의 자랑이었다.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정신없이 손벽을 치며 감동한 천진한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칠 선녀의 아름다운 메아리같은 귀에익은 정선아리랑을 시작으로 울릉도, 충청도, 제주도, 해주, 진도, 경상도 밀양까지 너울 거리는 춤 나래에 실린 메들리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청년 학생들이 500년의 한을 풀어주듯 부드럽게 감싸주는 포근함이 박물관 뜰안을 가득 채운다. 우레같은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린 눈 앞에는 어느새 햐얀 학 한 마리가 넘실 둥실 날아들었다.

    카메라를 눈에서 떼지 못한다. 천상의 운률을 따라 날아온 듯 했다. 이것이 부산의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동래학춤'이다.  청렴을 상징한 선비의 하얀 도포에 갓을 쓰고 추는 영남 선비의 역동성을 학에 비유한 것이다. 그 우아함이 격조가 있으나 자유롭고, 규범이 있으나 자율적 능동의 이상을 추구하는 개인의 예술성을 발현하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춤사위가 아닌가!
   아름다움은 모든 정중동의 형상이 반드시 자유로움을 구추할 때만 공감을 얻게 된다.  자랑스러운 진주성은 우리의 민속 국악 음악 처럼 자유롭고 청렴하고 해맑은 민족의 안식처가 되도록 지켜야 한다. 

   예도 진주를 만드는 것은 역사의 기록만으로 이루지 못한다. 진주시민이 자긍심을 가지고 역사의 진실을 논증하여 실천하는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7만의 군관민이 산화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보다, 전통예술을 자랑한답시고 성문을 닫고, 진주성을 찾아온 여행객의 귀향 시간을 빼았는 추태나, 시도 때도 없이 부수고 고치는 진주성관리, 농약냄새를 풍기며 예초기의 굉음을 내어 공원의 안식을 빼앗는 일들이 이젠 보이지 않게 하는 일이다.
   공원안의 작은 풀 나무 벌레 하나까지, 자유롭고  평온하지 않는 것이 없어 보이고, 빨가 벗은 어린 아이가 잔디위에 기어다녀도 농약이 묻지 않는 진주성으로 가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