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섬용 청산도 나들이

 

글 /이진원      

 

  <진주섬용회>를 곱게 가꾸어 가고 있는 우정이 참 귀하다. 항상 즐거운 표정으로 경쟁하듯 건강을 지키는 우정이 매월 기다려지는 셋째 화요일에 피어난다. 금년 봄에는 여자동창들 속에 홍일점으로 참여하는 나를 위해, 제주도 2박3일 여행을 계획했다가, 나의 급변 사정으로 여행계획을 청산도로 변경하였다. <진주섬용회>가 앞으로 계절마다 국내의 명승지를 2박3일여행 코스를 택하여 여유있는 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첫 번째 여행지가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완도의 청산도였다.

   나는 채무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피곤한 심신을 숨기고,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듯 아침 7시 순천행 버스를 탔다. 마음 속에는 법원에 보낼 답변서를 써서 피아노 위에 올려 두고 나왔던 것이다. 여행중 행여 귀가가 늦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위탁송달을 시킬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이다. 숨겼던 불안한 마음이 친구들을 만나자 따듯한 물속의 고드름 처럼 깜쪽같이 녹아버렸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 모든 근심과 걱정을 깡거리 잊어 버리게 만들어 준 여섯명의 친구는 강영자, 김춘자, 민명수, 정후자, 조영자, 홍현자 등의 여자 동기동창생들이었다. 지금도 이들은 <진주섬용회>를 알뜰하게 지켜오면서 우정을 귀하게 가꾸고 있다. 여행 보디가드겸 포터로 나를 멤버에 넣어주었단다. 여자단체 속에 섞인 남자 한 사람 때문에 여행경비가 초과될 경우가 생길 수가 있으나, 그 값을 해낸다고 믿어주는 고마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나이 텃으로 떡 삶은 물에 서답 데치듯 적당히 묻혀 넘어 갈 때가 많다. 지난번 매물도 여행에서도, 이번 여행에서도 방 두칸만 빌려쓰면 되는데, 나 때문에 방을 하나더 얻어 쓰면서도 2칸의 방값만 지불하는 도움을 얻어내는 것은 고운 마음의 씀씀이 때문이리라.

   순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인터넷 정보가 오보였음을 알았다. 순천 완도 간의 배차 간격도 25분이 아니라 두 시간 반이었고, 운임과 운행 거리도 모두 곱절이 넘었다. 베낭여행의 매력은 현지 조달의 능숙함에 멋진 여행이 좌우된다. 큰 차이가 없는 경비로 시간을 벌수 있는 여행을 만들어 내는 것이 최선이다. 다행으로 젊은 시절 진주대동중공업에 근무하며 진주에 처가를 둔 ,순천콜택시' 기사의 성실한 서비스로 미니버스를 현지에서 대절하여 두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돌아오는 여행마져 책임을 져 주신 이분의 도움이 노년의 힘든 여행을 즐겁고 안전하게 마무리 해준 것이다.

   배낭여행의 연륜이 베테랑인 김춘자 친구는 매사를 꼼꼼하게 현장을 확인하며 여행계획을 착오없이 운용하는 부지런함과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신뢰성은 감탄스럽고 존경할만한 우정의 형상이였다. 진실은 모두를 감화하듯 친구들도 고마운 마음을 더하여 불평없이 즐겁고 명랑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은 어린천사들 같았다. 청산도의 관광코스 중간지점에 위치한 은행나무 민박집에서 여장을 풀자마자 남은 시간을 아껴<말탄바위>와 <범 바위>전망대를 올라 맑은 해풍을 눈으로 마시 듯 시원하고 개운한 청해를 감상하고 돌아 왔으나, 솜같이 가벼운 몸이 오히려 여행의 피로를 잊게했다.

   한 사람도 낙오없이 두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여행에 참석하지 못한 김길자 친구가 보내 준 고도의 오디와인원액을 물에 희석해 마시면서, 나의 기타반주에 맞추어 합창하며 즐거워 손벽치는 친구들의 어린이 같은 모습이 청산도의 석양을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이장님이신 집 주인도 덩달아 신이 난 듯 즐거워 했다. 심신이 스트레스로 지친 나의 피로도 한꺼번에 친구들의 노래소리를 타고 먼 수평선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 사람 당 5000원짜리 저녁 밥상도 성찬처럼 깨끗하고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짧고 고요한 밤이 지나가 버린 듯 한 아침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아침 식사를 하라고 창문을 두드린다. 어제 밤에 치솟아 올랐던 잇몸이 갈아 안고 개운한 몸이 이상할 정도였다. 역시 이곳의 공기는 참으로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풍부한 산소와 해풍의 오존이 약리작용을 한 것처럼, 신선한 바닷바람의 톡특한 효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의 저녁식사도 피로를 풀어 준 슬로우 푸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운한 몸으로 하루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을 든든이 챙기고, 우리는 산뜻한 발걸음으로 해안 오솔길을 따라 3시간의 장정을 걸어 여객터미널까지 낙오자 없이 완주 하였다. 해안의 오솔길에는 여행객이 고사리를 채취하느라 관광을 잊어 버린 탐욕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친구들은 손벽을 치며 어린이 소풍길처럼 노래를 부르며 천진난만하게 즐거워 했다. 중간의 쉼터에서 토속주를 마시고 초분(草墳)이란 민속장례법을 소개 받기도 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노구에 지친 우리는 더 이상 도보 관광을 할 수 없었다. 두 대의 콜 택시로 나누어 타고, 나머지 관광코스를 일주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여장을 풀고 둘러앉아 민명수가 준비 해온 윷판을 벌려 여행 경비를 충당하는 모습도 멋있고 즐거운 놀이로 보였다. 오늘 적녁 디너는 요리강습을 겸한 유명한 청산도 전복죽이었다. 다음 날 강영자의 제안으로 유명한 완도의 해저해수욕탕에서 바닷물 속의 고기를 보면서 피로를 풀었다. 오후 1시경 청해나루라는 모범식당에서 풍요로운 해물찜으로 피로회복을 겸한 보신을 하면서 텅빈 뱃속을 가득채웠다. 내가 음식점에서 밥 한공기를 다 먹지 못하고 남겨 보기는 이 해남의 식당이 처음이었다. 그 맛있는 해물찜을 남겨두고 떠나 온 것이 지금도 서운할 정도였다.

  청해나루의 주인은 나의 키타를 보고 협주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넓은 식당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주인의 앰프기타와 나의 기타협주에 맞춰 주인과 나는 두엣 합창을 하였다. 노래에 손벽으로 박자를 맞추며 함께 부르는 주객의 경노잔치같은 멋을 여행중에 만끽하는 모습은 그들에게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3시 약속 시간을 맞대어 놀이가 끝나기도 전에 대절 승합차가 도착하였다. 그렇게 친절한 기사는 한 시간을 앞당겨 진주에 안전히 도착시켜주었다. 조영자 부군께서 여행의 피날레를 축하하며 베풀어 주는 저녁식사의 환대를 받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모든 가족이 안전한 여행을 축복 해 주는 우리들의 행복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