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기

 

글/ 熊菴 이진원           

 

   이번 베트남 섬용총회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연주 속에서 희망과 의욕이 넘치는 농업국을 다녀온 기분이다. 조용한 전원도시에서 크리센토로 시작하여 역동적인 하노이 거리에서 디크리센토로 우울하게 되돌아오는 감상적인 여행이었다.

   진주를 출발 할 때, 일기예보가 하루를 넘기지 못하는 변덕이었다. 질척이는 날씨처럼 친구들의 표정도 축축했다. 여행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구운몽이라도 꿀 것 같았는데…. 친구들도 날씨 탓인지 표정들이 무겁다. 시샘도, 시기도 우정과 믿음으로 여겼던 자신감도 나이만큼 작아지고 서글픈 옹고집이 빈자리를 채우는가 보다. 나 역시 고희증후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공부와 수련이 부족한 탓이다.

약속시간 30분 전인데도 거의 모였다. 늦게 온 민명수 말을 듣고 버스에 합승하니 출발시간 10분 전이였다. 뒤늦게 장문석이 도착하여 출발하니 11시가 좀 넘었다. 좌석 2개를 여분으로 오산하여 마산 친구 2명을 태우니 한 좌석이 부족했다. 리무진 이름이 출발부터 말썽이다. 하동 진주간의 소통부재로 생긴 일이라, 두 책임자가 한 좌석으로 인천공항까지 수고를 했다.

대한항공 4번 게이트에는 참존 회장과 비서진, 서울총무와 여행사 사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지역은 개별로 도착했다. 파란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탑승권을 받자 순식간에 동심으로 돌아간다. 행복이 가득한 표정으로 잡는 손들이 따듯했다. 우정이 순간이나마 정직한 시간을 만들어 낸다.

84명의 푸른 물결이 공항로비에 일렁인다. 다른 여행자들이 큰 눈으로 섬용의 군무를 의아스럽게 묻는다. 한 사람(참존 회장)의 자선이 매년 동기동창을 모아 우정여행을 간다는 말에 행복을 만드는 노인들이라고 부러워한다. <성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김광석의 나눔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지가 벌써 6년이 지났다. 20여년의 해기사 생활 동안에도 베트남과 북한의 땅만 밟아보지 못한 나는 은근히 구운몽의 세계를 상상해 보기도 했고, 신학설인 한민족의 남방유래 설을 체험한다는 즐거움이 앞섰다.

이번에는 서울부산 섬용은 아시아나항공733, 하동진주마산 섬용은 대한항공679편으로 약 5시간의 지루한 비행을 마친 후, 세 대의 전세버스로 나누어 타고 대우 하노이 호텔(특급)로 가면서 여행가이드의 특강 같은 안내를 들었다. 안내원의 설명이 객관성을 다소 잃은 자만심이 짙었다. 어느 나라건 노인은 젊은이의 공경대상이 아닌 세월을 이곳에서도 느낀다.

베트남 정부의 신임을 독차지한 김우중 씨가 지은 대우 하노이 호텔에 하룻밤의 여장을 풀었다.(http://hanoi-daewoohotel.com/) 별 다섯의 호텔은 참으로 웅장하고 깨끗했다. 종사자들도 말없이 순박해 보였다. 동양의 중심인 중국이 무력으로 제패하지 못한 곳이 동남에는 베트남(월국)이고, 동북에는 한국(동이)이다. 이 두 개의 작은 나라 중 동이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만들게 하였고, 남월은<오월동주>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영리하고 의지적이며, 자손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민족군상이다.

환경순화에 의한 체형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반세기전의 우리모습과 다를 게 없다. 현대 사학자 일부는 한민족의 남방 유래설(베트남계)을 주장하고 있다. 모습은 북방의 몽골을 닮았으나, 언어와 사고력, 가족제도 등의 생활관습과 종교적 문화는 남방설이 훨씬 유력하다는 것을 느꼈다. 순박하고 조용하나 의욕과 욕구는 남방의 동이족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다.

특급호텔의 아침식사는 여유가 있었다. 서구나 일본만 가더라도 쫓기는 시간관념이 아침식사의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이곳은 온화한 기후 탓이거나, 두 시간의 딜레이타임 때문인지 여유를 느끼며 푸짐한 식사를 즐겼다. 호텔음식은 모두가 신이내린 자연식품(slow food)이다. 베트남인이 우리처럼 끈기와 저력이 있는 역동적 민족성을 가진 것도 음식과 통했다. 북쪽은 무공해 상공업으로, 남부는 친환경 영농으로 세계의 먹을거리를 장악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믿는다. 벤치마킹한 한국을 앞서겠다는 그들의 역동성도 보았다. 순박하고 정직한 외모가 50년 전의 우리를 닮았다.

2시간 반의 여유 있는 버스투어는 베트남의 장묘문화가 남북이 다를 수밖에 없고, 우리의 고려장이 늪의 문화 속에 옮겨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닌빈 호아루’ 지역의 토템 신앙이 한국의 삼신 사상과 유사했고, 자연을 아끼고 지키는 것은 우리의 동학사상과도 통했다. <내륙의 하롱베이>라 불리는 ‘땀 꼽’은 천정천인 강보다 낮아, 넓은 분지가 제방으로 둘러싸여 갈대 늪의 큰 호수로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대 섶으로 엮어 만든 대바구니 배(sampan; 三板 중국의 하천과 연안에서 쓰던 거룻배. 옛날 우리나라 연안포구에서 갈대 섶을 엮어 삿대로 운행하며 조개와 김을 채취하던 거룻배의 구조와 모양새가 같았다.)를 타고 얕고 넓은 호수 같은 늪 속의 기암괴석절벽과 수중동굴을 관광했다. 맑고 깨끗한 수면의 파란공기는 나의 지혜를 곱절로 만들어 주었다. 일엽단주에 두 사람씩 태우고 가녀린 몸으로 사공은 노도를 저어 한 시간을 넘는 중노동을 견뎌내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뒤를 돌아보는 나를 보고 천진스럽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워 곱절로 팁을 주었더니 그마져 거슬러 주려는 순박함은 우리의 선비정신까지 닮았다.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두 느티나무를 기둥처럼 살려둔 채 둘러지은 한국인의 음식점에서 매콤한 닭찜으로 점심을 마치고 4시간의 지루한 여행을 하여 하노이로 돌아왔다. 한국의 석학(남명, 퇴계, 율곡)이 성리학을 형상화한 말이 ‘靜中動’이라 한다면 베트남 하노이의 역동적 거리에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본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신호체계의 교통대란을 겪는 시행착오를 우리처럼 겪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느긋한 마음이 한층 더 풍부한 것을 인력거를 타면서 느꼈다.

복잡하고 스릴이 넘치는 인력거의 경륜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춘하추동>이란 한국인의 음식점에서 소주를 곁들인 삼겹살 불백으로 저녁식사를 마친후 2박을 예약한 하롱 드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http://www.marimari.com/hotel/vietnam/halong/halongdream/)
웅장한 호텔로비정면에 현판처럼 전면에 붙여진[(慶)大韓民國 蟾龍會 베트남 하롱베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祝)]현수막은 멋쩍은 자존심까지 부풀게 했다. 이곳에서도 함께한 여행객들이 ‘행복을 만드는 어른들’이라고 부러워했다. porter들이 짐을 각자의 객실로 옮기는 동안 우리는 삼층 대회의실에서 섬용회 Forum을 열었다. 김광석 친구의 나눔의 우정에 답하는 시간을 만들어 우리의 우정도 모아 주었다. 행복한 마음은 늙은이의 모든 가슴을 쓰다듬도록 서로 울렸다. 포름은 이 다정한 눈물 때문에 모두가 말을 닫았다.

넓은 뷔페식당의 공기는 맑았다. 모두가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탓에 은은한 향취만 있다. 수육 두 점이 놓인 쌀국수가 입에 맞다. 한 그릇 비운 후 밥과 빵, 그리고 쌀죽을 먹은 후 디저트까지 잔득 먹어도 거북하지 않았다. 신진대사가 집과 같이 상쾌했다. 연속된 긴 버스여행은 숙면에 들게 했다. 김광석 회장의 새벽기도와 연성의 수련 덕분인지 오늘따라 날씨가 점점 좋았다.

약 4시간 정도의 지루한 버스여행에 오금이 저릴 무렵에 3,000여개의 기괴한 섬을 만들어낸 융기해안, 세계 8대 절경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하롱(下龍)베이에 도착했다. 공명(울림)이 없는 숭솟 석회동굴과 바람, 파도, 해류, 물결도 없는 호수같이 잠잠한 티톱 섬에만 불가사이하게 모래톱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융기이전에 해저에서 모래밭이 생길수가 없다면, 강 하구의 모래삼각지가 역으로 침강한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각설하고 우리가 이곳에서 태양을 보게 된 것은 천재일우라는 가이드의 말이다. 한울의 배려가 있는 우리들의 우정임을 분명히 깨닫게 한다.

우리는 세척의 배로 나누어 관광을 했다. 모든 배의 모습은 임란 때 왜적을 무찌른 우리의 판옥선처럼 돛대와 노도를 이용하듯 돛대와 엔진을 겸용하여 조용한 유람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구조가 너무나 같았다. 판옥선은 배 밑창이 넓어 수심이 얕고 좁은 해안선에서 많은 사람과 짐을 싣고 자유롭고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특장이 있다. 다만 넓은 바다에서 속도가 느린 것이 흠이다. 선상의 점심 식사는 해물 별식으로 여유 있는 식사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가씨들의 말없는 친절은 우리를 더 행복하고 젊게 만들어 주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즐거운 것은 여유 있는 식사시간이었다. 나이든 우리에게 고마운 배려가 아닌가. 반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려 다시 어제 저녁을 먹었던 ‘춘하추동’으로 돌아와 전골 한정식으로 저녁을 마치고 발 마사지를 받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이드가 설명을 두 번 세 번 하면서 주의를 주었는데도 팬츠까지 홀랑 벗고 반바지로 갈아입는 친구가 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우릴 줄 아는 친구들이라 5~6년 동안 낙오자 없이 무사히 단체 여행을 마친 경륜이 있지만, 아직도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친구가 한 둘은 있다. 질급을 하며 야단을 치는 다른 친구의 말에 당황하여 홀랑 벗은 팬츠를 다시입고 반바지를 급히 입는다. 멋쩍은 천진함이 박장대소를 만들어 낸다. 얼마나 커 길래 손녀딸 같은 아이에게 자랑 하려고 그런 짓을 하느냐는 빈정거림이 더 웃음을 자아낸다.

 

지난밤에도 숙면을 했다. 나이를 숨기지 못하는 피로가 예보다 무겁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모닝콜이나 친구가 깨웠다. 오늘 아침도 쌀국수 한 그릇, 빵과 밥, 쌀죽 한 그릇과 디저트와 커피 한잔으로 느긋한 식사를 했다. 오늘도 하루의 역사학습이 참되게 이루어 질 것 같았다. 호치민이 세기의 민족지도자로 사상가이며 청백리라는 사실을 호치민 영묘와 Nha San 을 관람한 후에서야 믿을 수 있는 지도자임이 확인 되었다. 세기의 강성제국들이 한사람의 청렴한 지도자를 가진 나라를 정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사의 현장이 증명했다. 우리에게도 역사에 빛나는 청렴한 지도가자 많았으나,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남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자만의 특성을 가진 민족성이 슬픈 역사를 반추하지도 모른다.

방송 PD가 인간의 잔인한 욕망과 이기심이 산 반달곰의 쓸개즙을 빼앗아 먹는다는 한국인의 저질관광을 비난했던 그곳에 가 보았다. 한국인 한의사의 말이 진실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말은 차치 하고라도 웅담을 얼마나 많이, 오래 먹어야 체질을 바꾸어 건강을 복원할 수 있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나의 생각으로 웅담은 모든 병을 완전하게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용량과 사용기간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이의 노병환자가 완치하려면 아마도 어른 곰 열 마리의 쓸개를 장복하야 될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수천 수억 원이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지구상의 반달곰은 수년 안에 멸종 해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웅담으로 병을 고칠 생각은 말아야 한다. 다만 웅담과 같은 성분의 양약을 개발하는 시료로 산 웅담 즙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유를 가진 친구들에게 웅담 사기를 권했다. 이곳의 한의사가 ‘이제마의 사상체질’을 진단해 주면서 일부 친구들에게 각인시킨 지나친 말을 뇌리에서 지워 안정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방편이 웅담을 상황버섯 달인 물에 희석하여 장복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마지막으로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건강코너 두 군데를 들렀다. 하나는 건강식품이고 하는 라텍스 침구였다. 지나친 자만심으로 정직을 가식하는 모습이 즐겁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것은 좋으나 뱃장부릴 정도로 신뢰성과 이곳 아니면 살 수없는 희귀성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다시올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도 또한 아니다. 겸손하고 배려하는 자세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상품 값도 여행자의 즐거움 더할 수 있는 정도로 level을 배 반 이하로 다운시켜 전매특허품 매매허가의 인상을 지워 대중화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직전의 저녁식사를 김광석 친구와 함께했다. 모두 진주 친구들이다. 귀국 이틀 후인 일요일 간증예배를 진주, 남해교회에서 가진다는 소식이었다. 건강이 걱정되었다. 내 스스로 느낀 피로가 예보다 무거웠기 때문이다. 하노이 공항을 이륙하는 엔진소리가 인천을 떠날 때보다 부드럽고 여유가 있게 들린다. 편안한 항행이 될 것 같다. 고도의 항로에 진입한 기장은 세 시간 40분 비행 후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고 방송한다. 한 시간이 앞당겨진 비행속도다.<웅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