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시/죽파 차연석

말 없어 멍-한 대낮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할 사람도 없다.

내게는그런 날이 더러 있다.

마당을 두리번거리다가 또 걷다가

방으로 들어 허심한 내가 된다.

人家와는 멀어진 땅

발길이 멈처선 곳

그래도, 우체부아저씨의 빨간 오토바이 바퀴 굴러서 온다

고물장수 털털대는 트럭의 외침도 간혹은 들리고

물끄러미 창가에 앉아

세상소리에 귀를 모아본다

내 귀를 스첬던 시절의 소리 아련한데,

지금은 소용 없어진 과거

흘렸던 일들을 주섬주섬 엮어도 보다가

문득 기억의 길섶에 떨어졌던 단추 하나

어머니 꾸중에 풀속을 헤집다가 해가 저물고

진 종일 긴 이랑  땀 젖은 어머니 품을 파고 들던

밤이 평화롭다

전봇대 꼭대기에 놀라 뜨는 새 한 마리

안락의 밤숲으로 석양을 이고 바람 저어 날아 들고

어느새

노오란 불빛이 내 방을 꽉 채우니

잃었던 나를 직각으로 틀어 書林에 손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