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억새

 

 

                                                                                                  글/ 전 소희

   가을이 되면 나는 고운 단풍과 억새를 꼭 즐겨야지 하는 생각을 해마다 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어쩌다 보면 아직 철이 이르고, 그러다 보면 절정기를 놓쳐 다음해로 미루곤 했다. 금년엔 꼭 제철에 맞추어 억새 구경을 해야 겼다고 벼르고 있다가 억새의 철을 놓치고선 뒤늦게 민둥산 억새를 보겠다고 나섰다. 사실 단풍은 도심 한가운데 공원이나 가까운 인근 산에도 쉽게 보고 느낄 수 있지만, 억새는 그렇지 않으니 단단히 작심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 오대 억새 군락지로 알려진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해발1.120m)을 택한 것은 우선 기차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 무궁화열차를 타고 태백선의 증산역에 도착 정선 선 철로아래 난 길로 접어들어 낙엽송 지대를 벗어나 해발 800m 발구덕 마을을 지날 때 까지도 이곳에서 매년 10월 중순에 “민둥산 억새 축제”가 열린 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가파른 길을 따라 정상으로 조금 올라섰다. 정상에는 나무 한 그루없이 비스듬하게 억새 군락이 펼쳐졌다. 14만평 가량이 억새풀로 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 삼군부리 억새도 보았고 경기도 명성산도 가보았지만 그 어마어마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산나물이 많이 나라고 매년 한 번씩 불을 질러놨기 때문에 나무는 없고. 억새 군락지로 바뀐 것이라 한다.  결국, 자연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생할 수 있는 능력, 즉 생존 경쟁의 우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가지고 온 차와 음식을 먹고 억새 수풀속에 앉았다 누었다 하니 우리 모두가 신선인 듯하다.  바람이 억새를 흔들 만큼 불지만 풀속은 어머니 가슴처럼 연인의 품속처럼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아 포근하다.

억새 숲에

팔베개 베고

여린 네 꽃대 씹던

그 시절

꿈꾸듯 지나가고

너와 나는

은색 너울에

화려한 두 개의 돛 세운

잠기듯 솟아나는

파도 넘는 조각배라

억새 길 바람소리

흔적 없는 모습인 걸

석양빛 저물어

아쉬워하나

 

친구 정 남식 시인의<억새길>이라는 시가 나도 모르게 읊어진다.

억새길 따라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은색 너울에/ 화려한 두 개의 돛 세운/ 잠기듯 솟아나는/ 파도 넘는 조각배라”라는 구절이 얼마나 억새의 모습을 잘 나타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도심을 떠나 계절에 맞추어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억새를 즐기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를 깨닫고 아무리 바쁘고 어렵더라도 이런 여가를 가끔은 가져보아야겠구나 결심을 했다.

  아우라지, 구절리로 이어지는 노추산,  바로 마주보는 두위봉, 멀리 함백산, 가리봉산등이 한없이 펼쳐지는 민둥산에서 시인의 마지막 구절처럼 “석양 빛 저물어 아쉬워하며”내려와야 했다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