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여자섬용 매물도 나들이

  사진 글/ 이진원    

  내일, 나처럼 늙은 KORANDO 95년식 자동차로 진주여자섬용들을 매물도 까지 모신다. 나와 같이 지긋한 나이지만 아직도 8만km를 채 주행하지 않은 새차나 같다. 이 코란도는 나의 분신처럼 방송통신대학교를 94년부터 지금까지 15년동안을 건강하게 함께한 믿음있는 학우와 같다.  그러나 먼 나들이를 하기전에는 습관처럼 꼭 안전점검을 받는다.

   근무 시간이 시작될 아홉시에 맞추어 장재실 조카사위의 현대정비소를 찾았다. 나를 아는 정비사가 인사를 한다. 사장은 국제대학에 강의를 갔단다. 오후에 돌아 올 것이라 하여 정밀 검사를 포기하고, 엔진오일과 네 발통의 공기압만 맞추어 돌아왔다.

   한가지 더 준비한 것은 오작동이 심한 노트북을 이웃 컴마트에서 정비한 일이다.  앞으로 외박이나 긴 여행을 떠날 땐 현지의 정보수집을 위해서 노트북을 가지고 다닐 작정이다.

   <여행과 노트북>

   명줄을 저울질 하는 밤을
   탕진한다는 노파심일까
   시간 귀함을 아는 낫살 탐인가
   잊음 두려운 가는 귀 먹은 한일까
   아서라, 아니다.
   노망은 신선의 생각이니라!

   9월 15일이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즐거운 여행을 생각하다 잠자리에 늦들었다.  새벽 5시 기도를 마치면 보통 일상으로 드는데, 오늘은 잠깐 쉰다는 것이 늦잠이 들었다.  8시 괘종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식사를 마치니 두 친구가 도착할 시간이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다. 진주에서 제일 싸다는 주유소에서 경유를 탱크 가득 채워 돌아왔다(50,000원). 인사동 집에서 김, 홍 두 친구를 태우고 세 친구에게 출발을 알렸다. 차례로 칠암동 민, 강남동 조, 가호동 정 모두 다 태우고 처음으로 진주-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려보았다. 첫 휴게소에서 내비게이터에 점심식사 장소로<거제시청>을 등록하고 출발 하였다.

  마누라 잔소리 같은 내비게이션 지시대로 거제시청 인근의 '칼치구이 백반'집에서 점심을 마치고, 소문난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시장를 관광하였다. 어릴 때의 처참한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포로교환으로 살아온 정두화 이종 사촌형의 비참한 말로가 한스럽다. 그는 무적의 화랑9연대 소속으로 도솔산 전투에선가 고기잡이 떡밥같은 역할을 하고 전멸한 전사자로 알고 있었으나, 포로교환때 남한으로 넘어와 거제도수용소에 수용되어있다가 자유인이 되었으나, 그의 우울증은 영원한 안식처를 스스로 택하고 말았다.

   대포동 선착장에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할 것이라는 전화연락을 받고도 30여분을 앞당겨온 도선 선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이란 선명을 가진 쾌속페리보트였다. 태양호의 선장은 나이60인데도 건강하고 평온하여 50청년처럼 젊어 보였다.

  너나 없이 가는 귀의 친구들이라, 전화로 들려주는 지명을 '저구리를 저부리로, 대포동을 개포동'으로 혼동하여 길을 찾다 늦어진 시간이 30분은 넘었으리라. 나는 길을 잘못들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도, 친구들은 이상한 지명 때문에 생긴 일들이 걱정은커녕 배꼽을 잡고 마냥 웃어재치는 천진난만한 노년의 여유있는 여행은 참으로 즐거웠다.

 서로 손잡고 조심조심 배에 오르자, 잔잔한 푸른 바다위로 미끄러지듯 달려 나가는 태양호. 그녀는 엔진소리를 높이며 하얀 물거품을 토하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어느새 소녀들 처럼 손벽을 치며 '바다로 가자'고 박수를 치며 합창을 한다.

   즐거운 절경의 관광으로 40분이 금방 지나, 소매물도(등대섬)의 아늑한 영지에 태양이 멎는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모두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조용히 병풍바위절벽에다 코끝을 밀어붙이고 조용히 물장구를 쳐주었다.  마치 신비한 도원경의 입구에 든 것 처럼 느껴졌다.  삼태기 처럼 생긴 병풍바위가 쪽빛 바닷물을 담아 흔들고 있는 벽안이 절경이었다. 파란 쪽빛이 물든 해풍이 내 가슴 깊게 스며들어 참 개운하고 쉬원했다. 신선이 따로 있나, 나 이곳에 있어 신선이지.

  산 정상 등대까지 잘 다듬어 놓은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노루처럼 멈춰서서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한다. 우리와 비슷한 두 쌍의 노년들이 먼저와 반가운 듯 맞아준다. 어디서 왔느냐는 수인사에 모두가 진주에서 왔다며 진주사람 단합대회나 하잔다.  노년은 어린 아이 처럼 허물없어 좋다. 그래서 늙은 이를 신선이라 부르는가 보다.

 선장이 빨리(해지기 전)갔다오라기에 친구들은 땀도 제대로 식히지 못한채 처음 배를 내린 험 한 곳으로 힘들여 내려왔다. 노인들을 위해 좀더 편하게 승선하도록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힘든 승선을 마친후에야 편안한 잔교에서 자기를 부를 줄 알았다고 한다. 응당 그렇게 하리라고 제 혼자만 생각한 것 같다. 고희는 옛부터 도인의 나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미련한 선장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우정도,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도, 도에서 우러나야 한다. 탐욕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아는 것이 노년의 도라 했다.

  매물도 포구로 들어온다.  신축한 큰 방파제와 선착장 입구의 좌우현 청·홍 안전 항행 등이 멋지게 뽑내며 우리를 맞는다. 손잡고 천천히 내리라는 선장의 말대로 탈 때 처럼 나는 한 사람씩 손을 잡아 잔교로 내려주었다. 여행 제안을 했던 홍여사가 한 번 와 본 곳이라고 뒷둥걸음으로 앞장을 선다. 시멘트로 어슬프게 포장한 자갈밭 비탈 골목길을 몇 번 돌아 오르자 민박집 안주인은 대문 밖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큰 방에서 모두가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는다. 나도 홍여사가 지정해준 문앞방에 들어 집을 풀고 옷을 갈아 이었다. 맑고 파란 해풍은 이곳에도 가득했다. 3시간 정도의 운전과 1시간의 승선, 그리고 등산까지 마친 하룬데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모두들 시원한 옷차림으로 푸짐한 식탁에 둘러 앉아 권하며 먹는 밥맛은 감탄사가 연발되었다. 꽃게를 넣은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시장끼를 더 했다. 맛있다는 칭찬이 밥과 찬이 동이 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둥, 어디서 구입했느냐는 둥,  식단에 대한 관심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칭찬은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분의를 벗어나면 다음 때를 망치게 될 수도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모두들 연속극을 본다며 둘러 앉아 TV를 켜 둔채 지난 일들의 푸념이 시작된다.  모임 때마다 말수가 적던 민여사가 오늘 밤은 설교자처럼 법설을 시작한다.  친구들에게 고된 시집살이를 자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겠는가.  오늘은 너나 없이 여유가 많은 듯 전례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말을 곁들여 주고 받는 모습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앉은 것 같아 보였다. 허 참, 여유로운 환경이 사람을 이처럼 바꾸는 것이로 구나!

   매물도의 여유있는 해풍의 정기가 이들의 가슴에도 가득 스민 탓이리라. 제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는 잘 들을 줄 모르던 여자친구들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어제나 이렇게 여유를 가진 모습이 모성의 본능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울님의 의지를 잃어가는 나약한 노년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란다.
   인터넷연결이 되지 않아 컴퓨터를 켜고 하루 일정의 학습만 마무리 한다. 이곳은 역사의 형지로, 그토록 먼 불귀의 귀양지였다. 그런데 오늘 하루해가 지기도 전에 도착하여 여행의 즐거움과 도인의 여유를 얻는 곳으로 변했다. 값진 것 만큼이나 경비가 많이 나기도 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계금의 60%를 썼으니, 한 사람당 10만원의 경비가 들었다.  그러나 한 순간이나마 여유의 의미를 배워 실천 했다면 참으로 싼 값이 아닌가!

  집에서는 저녁 9시 뉴우스를 들은 뒤거나,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었든 일상이 여기서도 이루어졌다. 한울님의 지혜가 가득한 집안의 공기가 너무나 신선했다. 4시 30분의 모닝콜이 나를 깨웠다. 세수를 하고 5시 새벽기도 주문을 한 시간 동안 현송했다. 어제 저녁 친구들에게 나의 주문소리를 자장가 삼아 편안히 잠을 자라는 예고를 했기에 미안하지 않았다. 6시가 좀지나 주인 아주머니가 일어준대로 혼자 마을 뒷산정에 올랐다.  태양이 막 수평선위 떠 올라 있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멋진 일출을 감상 했으리라. 신정 때마다 그 비싼 경비를 들여 이곳에 일출을 보러 온다는 '일출 명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늘 아침도 산뜻한 기분으로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장군봉 등산을 서두르자고 했다. 모두들 뭐가 바쁘냐며 여유를 부린다. 화장도 하고 자외선방지 크림도 발라야 하겠지.
나도 조여사가 내미는 로숀크림을 덤뿍 발랐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비치파로솔 변치에 앉아 파란 해풍을 마시며 졸린듯이 먼 바다를 바라본다. 하얀 운무가 수평선위 너무나 곱게 깔려 있어 하늘과 바다를 섞었다.

    <하얀 운무>

    하늘인가 바다인가
    구름인가 안개인가
    비단 솜 이불 넓고 길게 
    수평선을 덮어
    부끄러운 신부를 숨긴다 
    신랑이 올 길을 잊을가
    걱정하는 운무여!

   나의 주위에 아무도 없다. 혼자 대문 밖을 나섰다.  골목에서 전송을 하고 돌아오는 민박집 안주인이 친구들이 간 길을 가르쳐 준다. 중간 중간에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작은 산 능선을 오르자 친구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두 개의 능선을 넘어 작은 마을까지 다 내려가서야 장군봉 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였다.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안내를 했던 선장의 말은 젊은 이들의 산행시간이라고 다녀온 뒤에서야 말했다. 이것은 두 번째 그의 실 수였다. 이것도 안전을 배려하지 못한 현지인들의 배타적인 관습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히 위험하거나 험하지 않다고 하여,  70고령의 노인들이란 것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큰 잘못이다.  

  그래도 환경에 잘 적응하려는 의지가 있는 친구들라 다행이지, 여행 경험이 전무한 친구들이였다면 여행을 망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오를 때도 서둘지 않고, 서로 배려하며 몸에 맞는 지팡이 등 안전장구를 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아랫마을의 정보를 알고싶어 먼저 내려와 민박집과 부두의 환경을 둘러보았으나, 우리가 머문 곳 보다 안정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정확한 정보로 민박 5명이상이 잘수 있는 방 한 칸 대실료는 인원에 상관하지 않고 5만원을 받았는데,  많은 사람이 찾게 되자 인원수를 제안한 대실료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많으면 인원수를, 사람이 적으면 방을 기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는 한 사람당 2만원이 되었다. 우리는 방을 세 개 썼으니 한 사람은 봐 준셈으로 자위한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이다.

  이곳을 와보고 싶은 친구들을 위하여 말을 줄여쓴다. 노년의 봉변은 미연에 막아야 한다. 용선을 쓸 경우와 정기여객선을 이용할 경우를 잘 따져야 할 것 같다. 장군봉 정상에서 낙도의 절경을 구경하면서, 우리는 섬용회를 이곳에서 개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토론해 보았다.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이다. 부산팀, 서울팀 같이 15인 이내의 구성이면 가능 할 것 같다. 용선의 정원이 16명이었기 때문이다.  내 혼자 먼저 내려와 마을을 둘러본 후 삼거리 이정표에서 친구들을 상당히 기다려보았으나 기척이 없었다.  출발때와 같이 먼저 돌아갔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되돌아 가보려고 하는데 주인이 전화를 해서 도착을 알리라고 한다. 좋은 생각이라 여기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 소리가 방안에서 울렸다. 앗차, 이건 큰 실수다. 여행자의 핸드폰은 언제나 몸에 지녀야 한다는 것을 잊은 것이 불안했다. 집주인이 험지가 아니라서 괜 찮다고 안심을 시켜준다.  땀을 씻고 시원한 벤치에 앉아 졸릴정도가 되어서야 모두 돌아왔다. 내가 뒤따라 오도록 천천히 걸어왔기 때문에 더 늦어졌단다.

 선풍기를 있는대로 틀어대며 더위를 식힌다. 땀을 씻고 돌아갈 차비를 마쳤다. 횟감이 늦어 12시가 좀 지나서야 점심식사를 마쳤다.  언제나 식사시간은 즐거웠다. 다음을 기약하며 집주소를 얻어 모두 선착장으로 나왔다. 안주인도 선착장까지 배웅을 나와 태양을 계류해둔 밧줄을 대빗에서 풀어주며 친절하게 전송한다. 다음을 기약하는 간절한 마음이 보였다. 조용히 포구를 빠져 나오자 태양호가 더 없이 즐거운 듯 굉음을 지르며 최고의 속도를 올린다. 푸로펠라가 힘차게 물장구를 치며 크다란 와류를 사정없이 밀어내다.  크다란 너울이 태양의 꽁무늬를 춤을 추며 따라오면서 숨찬 듯 잘가라 손짓을 한다. 멀뚱히 앉아 구경만하고 있던 고기잡이 배들도 즐거운 듯 춤을 치기시작한다. 조용했던 바다도 갑자기 큰 입김을 불어재끼며 우리의 모자를 벗긴다. 나는 야! 쬐끄만게 잘 달린다. 25낫트는 나갈 것 같다! 아마 20분안에 대포동에 도착할 거야!

  처음 도착시 40분이 넘게 걸렸던 관광을 겸한 항해 시간이, 나올 때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주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내비게이터의 친절한 안내대로, 통영시청과 경상대학교를 경로로 지정하여 오후 6시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즐거운 여행은 피료마져 가셔주나보다.
  친구들을 모시고 즐거운 여행을 무사히 마치도록 감응해 주신 한울님께 심고 드립니다.

<서로 배려해준 친구들에게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