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교우 삼색
이진원
친구가 많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랑이다. 교우는 신뢰가 생명이라는 책무를 잊은채…. 대개의 사람은 자신의 생을 친구와 비교하고 자랑하기 위해 산다고 해도 부정하지 못한다. 남편 처자식 자랑과 원망은 친구밖에 할 곳이 더 있겠는가. 좋게 여겨 선의의 경쟁이지 격을 낮추면 질시나 시새움이며, 어떤 때는 지나쳐 증오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팔불출이라 하나보다.
이사 온지 일년도 되지 않아 많은 죽마고우가 나를 찾아 주었다. 이듬해(83년) 가을에는 서울 친구(참존화장품 회장 김광석)가 주동이 되어 전국의 죽마고우를 서울 우의동으로 불러모았다. 120명이 넘는 섬진강의 용띠 동창회(초등학교 41회, 중학교8회, 고교7회)를 만들어 '섬용회'라 이름지었다. 그후 지금까지 25년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모임을 가졌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도와주고 시샘하며, 존경하고 신뢰하며 지내왔다.
이렇게 해가 바뀔 때마다 한 두 친구는 제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도 했다. 환원한 친구의 이야기는 살아남은 친구의 색깔있는 우정으로 남는다. 그것이 세 가지 모습의 우정으로 나누어 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색깔의 친구가 더 나은 교우인지, 사회와 국가에 바른 도우미가 되었는지도 비교하게 된다. 어렵고 힘든 사회의 난국을 만든 원인이 잘못된 교우에서 얻어진 것이라면 지나치게 확장된 가설이라는 말을 들을까? 그러나 사실적으로 사회나 국가, 국가간의 외교를 구성한 근본단위는 교우가 아닌가.
그러므로 교우의 질적 수준이 그 사회와 국가의 수준이 된다는 것은 자고이래 변함이 없는 진리다. 다만 교우를 친구, 가정, 가문, 교육,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국가에 확장된 의미를 대비한 것 뿐이다. 그렇다면 그 교우의 진실성, 정직성, 신뢰성, 공경성, 청렴성에 따라 그 가정에서부터 사회와 국가간의 신뢰가 바르게 이루어 진다는 哲理다. 나의 경전에 이를 言戰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섬룡회>가 변함없는 우정을 지켜오는 것은 무슨 교우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여러 가지 교우를 나열하다 보면 연유를 알 것도 같아, 나의 친구들을 일일이 생가하며 구분을 지워본다. 이것은 나의 교우들을 보고 나혼자 느낀 바를 솔직하게 술회한 나의 생각이라고 단언해야 도리가 될 것 같다.
나의 친구 중에는 어릴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친구의 도움을 구걸하여 사욕만을 챙기고 남을 배려하는 생각을 소홀히 하거나 책임과 의무를 변명으로 일관하다 참회할 기회를 잃어 버린 경우의 교우도 더러 있다. 이런 교우는 자신의 구절양장 인생이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이와 엇비슷한 교우가 있으나 전자와는 다른 숭고한 교우이다. 자의든 타의든 본의아닌 부득이한 사정이든 간에 언제나 친구에게 만번의 도움을 청하여 기어이 자기의 뜻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경우라도 평생토록 도와준 친구를 위해 단 한 번만이라도 목숨을 걸고 친구의 은혜를 갚으려는 숭고하고 진실한 우정을 지켜 감명을 주는 교우를 우리는 관포지교라 알고 있다. 이친구는 의무와 책임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낸 훌륭한 친구다.
또 다른 성정을 가진 두가지 친구의 융합이다. 곧고 굳어 상장의 기개를 가지고 약한 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앞장을 서서 난관을 극복하며 친구를 보호하려는 영웅기질의 친구와 보기에 연약하나 고귀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온화한 성정으로 신뢰를 주는 친구가 어울려 변증법적 사고를 달성하는 교우를 금란지계 혹은 금란 지교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이 저급하여 어울리는 성정끼리 유유상종한다면 어슬픈 시새움의 교우가 분명한 것이다.
나는 이 둘을 떠나 진정한 교우는 知音이라고 믿는다. 신뢰하고 배려하는 우정에 가장 어울리는 天理가 아닌가. 교우의 삶을 바로 보고, 바로 알아, 우정의 진실을 아는 순수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신뢰가 아닌가. 信은 교우를 말하고, 친구의 말은 믿음으로 공경해야 한다. 이것이 죽마고우라는 것이다. 자기는 모든 친구의 말을 믿고 친구의 마음을 안다고 하면서 위신을 앞세워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지음이 아니다.
내가 진주에 머문지 25년이 넘었다. 머물렀다기보다 붙들려 있었다는 말이 옳을 것 같다. 부산에서 하동으로 돌아오는 귀향길에 진주 신안동 남강에 발이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처가가 진주였던 탓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잘못된 교우가 큰 몫을 하였다.
그나저나 심우한 섬진강보다 아담한 남강이 정겨워 보였는지도 모른다. 진주는 선조의 전헌지라 고향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합천이씨 전서공파 사직공의 후손은 합천, 거창, 함양, 산청, 진주, 사천, 남해, 하동을 거쳐 광양, 순천, 구례, 남원, 대전까지 연하여 살았다. 그래선지 여러 가문의 어울림 마당으로 옛부터 진주가 제격이었다. 
말년은 가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남을 배려하는 쉬운 길이라 하신 선친의 말씀을 기억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런데 뜻밖에도 나의 죽마고우가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더없이 기뻤다. 친구를 신뢰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각인된 습관이 나에겐 호사다마이기도 한 것이었다.
고향의 선후배들이 유별난 교우라고 부러워 하고 시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섬용회>는 넓게 이름이 알려진지 오래되었고 봉사의 위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교우가 이토록 돈독하게 굳어진 것은 교우 삼색의 순기능적 융합이 있어서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아이러니한 삼색의 교우가 즉, 역기능의 관포지교, 금난지교, 지음 등이 서로 대치하여, 저울 잔등이 부러지기를 기다리 듯 조금도 양보없는 역순의 변증법으로 뭉쳐저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섬용회>가 하나의 집단 써포터로 발전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과 과학에 올바른 도우미가 되어져 국가에 봉사하는 모임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기 보다, 두려워 해야할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앞선다. 기축년을 맞아 섬룡회의 분명한 진로를 키워가자고 감히 토를 달아 본 나의 주장이다.
교정일치를 주장하는 천도교의 교리에 따르면 "국법은 한울님의 법"이라고 믿고있다. 국법을 바로 지키는 것(합목적의 순기능을 따른다)이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첩경임을 천도교신앙의 종지로 여긴다. 교우는 한울님의 법과도 상통한다는 진리다. 기축년에 섬룡회가 베풀어야 할 봉사는 사회의, 국민의, 국가의 올바른 도우미가 되어 존경받는 노익장이 되자는 건배이다. 친구들이어, 항상 평온하고 건강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