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눈 앞에 걸린 달력, 첫 장을 보며

 

                                                                                                          글/竹杷 車 連 錫

  

  살아가는 경기야 어떻든, 정치판이 거꾸로 놀 듯, 星辰성신의 運行운행은 어김이 없다. 일 년 삼백 육십 오일이 다 지나고 어느덧 새해 새 달력이, 웃는 모습, 깔끔하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새해 밝아진 己丑年기축년을 맞아 내 天道천도를 본받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탓인지 한 줄기 두려움이 없지 않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당에 우리가 사는 모든 이에게 공통된 감회는 언제나 지난 한 해가 너무도 터무니없이 빨리 가버린 데 대한 허무감이겠지만, 지난 한 해야 말로 남긴 것 없이 허무하게 보낸 것이 서글퍼질 정도로  착잡해오기만 한다. 지난해 겨울도 무던히 추위에 떨었었는데, 금년 겨울도 차갑기만 하다. TV에서는 연일 고환율 고물가로 서민생활이 이 겨울만큼이나 추워지고 생산과 수출의 불균형으로 기업의 도산과 실업자의 양산이 우려된다고들 떨리는 목리가 나로선 듣기가 민망할 정도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 년 365일을 차츰차츰 짧아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天地運行의 법도를 불신하는 것도 같지만, 안다는 것과 느낀다는 것은 반드시 일치되지 않는 것이고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또 어떻게 부인할 도리가 없다.

실상은 새해니 첫해 아침이니 하는 것부터가 우스운 노릇이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永劫영겁의 둘레 위에 어디다 글을 그어 古今고금을 가린단 말인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을 1년이라고 한다지만, 그 1년의 첫날이야 누가 아는가. 삼백 예순 날의 어느 날이 첫날 아닌 날이 있는가. 그것은 사람이 작정하고 이름 짓는 데 매일 따름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고대의 중국사를 보면 왕조가 바뀔 때마다 정월이 달라졌었다. 夏나라는 寅月인월(음력 정월)로 歲首세수를 삼았으니 지금의 음력 정월이 하나라의 정월이다. 그러나 殷은나라는 丑月축월(음력 섣달)로 歲首를 삼았고 周나라는 子月자월(음력 동짓달)로 세수를 삼았던 것이다. 섣달은 설달의 音轉음전이니 우리 민족도 고대에는 은나라와 같은 曆法역법을 썼던 모양이다. 부여족은 殷族은족과 동일 문화권에 속하는 종족으로 많은 類緣性유연성이 있거니와 이는 어쨌든 지금의 동짓달도 섣달도 정월 노릇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왕조가 바뀌고 새로운 曆을 發布발포하면 그 역이 시행되는 곳은 그 왕조의 명령 아래 드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正朔정삭을 받드는 것이다. 정삭을 받든다는 것은 그 왕조의 曆을 받아 시행한다는 것이다.

  서양에 있어서도 역법은 마찬가지란다.

 

 로마시대에는 March가 정월이었다고 한다. 마아치로부터 다섯째 달이 줄리어스 시저가 태어난 달이라고 해서 July로 고치고 또 여섯 째 달을 August 이름을 따서 고쳤을 뿐 September는 그때 역법으로는 7월이었다고 한다.  그 뒤에 January를 첫머리에 놓아 정월로 삼고 February를 둘째 달에 갔다놓아  March가 3월이 되고 July가 7월이 되고 September가 9월이 되었으며 본디 열째 달이던 December가 12월이 되고 만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September와 December는 어원적으로 일곱째와 열째라는 뜻이 아직도 그냥 남아있다. 우리말에 12월을 섣달이라 해서 설이 있는 달, 곧 정월이란 말로 그냥 쓰고 있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천체의 운행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데, 날과 달의 이름이나 한 해의 首尾만이 변하는 것이다. 이게 모두 사람의 행위가 아니가. 「산중에 달력(曆)이 없는 날에 곷과 잎이 봄 가을을 알린다.」는 옛말이 있거니와 만고불변의 曆은 風花雪月(바람,꽃,눈,달=자연)인 것이다.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인 것이다.

 

 우리 말에 동지 지나면 한 가닥 햇볕이 처음 움직인다고 했다. 어쨌든 동지 지난 새 달력을 보니 봄 뜻도 움직이는 듯도 하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는다는데 이는 겨울이 오는 것이 아니라 겨울도 한 고비를 넘었으니 더 일러 무엇하겠는가. 陰이 극에 달하면 陽이 다시 생기는 법. 음지가 양지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는 단순히 팔자타령이나 요행을 희구하는 운세의 돌고 도는 天理천리를 말하는 것일까. 이제부턴 陽의 대낮이 陰의 밤을 잠식하며 춘분에 이르러 잠시 陰陽음양이 균형을 이루다가 夏至하지에 이르러서는 陽이 전성하는 것이니 이가 곧 음양설이요 이것이 바로 辨證法변증법이 아니던가. 태극기를 그리는 법이 아리숭할 때, 이 원리를 가져다 대면 곧바로 卦象괘상의 위치와 태극의 형태를 부합시키는 법이 나올 것이다.

 

  어쨋든 새해엔 눈앞의 현실적 갈등이 없었으면 하는  衷情충정에서다. 그러나 이 辨證法은 대립자의 통일을 양자가 동시에 自己變容자기변용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에 의한 다른 사람의 자기에의 통일로써 함께 변용하는 것이므로 무엇에나 우선권을 주어 절대자를 想定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을 변증법의 神學性신학성이라 할까, 또는 宗派性종파성이라고 해야 할 지…? 天行천행의 변증법은 陰陽正反음양정반의 교체에 무리가 없지만 인간의 변증법은 왕왕 유혈의 참극을 동반하는 것이 탈이다.

 

  이제 묵은 해 가고 己丑기축새해는 왔지만, 겨울은 아직 다 가지 않았고 봄은 먼 곳에서 보일 듯 말 듯 한데, 금년 겨울은 평년에 비해 그렇게도 추웠는지 얼음짱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도 얼어졌는지 내 사는 寓居우거의 물길도 멎어, 산 아래 오릿길 마을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얼어붙은 겨울이다. 물길 트일 날이 멀기만 하다.

뜻을 두고는 있어도 이루지 못할 나의 깊은 恨은 커져만 가는데, 해마다 마음은

한 살씩 젊어가고 생사람 병들기 알맞은 世態세태에다 物價景氣물가경기까지 등에 업었으니 내 한 해가 10년 폭의 늙음을 주는구나.

 

 낡은 것이 새것을 위해 양보한 적이 흔하던가!. 義가 不義를 눈앞에서 이겨 본 적이 그렇게 많던가! 낡은 것과 싸우는 동안에 새것도 그대로 낡아간다. 義도 權力과 결부되면 不義를 닮아가는 세상. 거기다가 권력이 재물에 팔리기도 하니, 나를 보는 현실이 惻隱측은해지기라도 한다. 또 사회윤리는 어떤가……!

  얼마 전에 나에게 택배차가 왔었다. 그는 30대 초반 청년, 나는 70대 나이. 자식같은 나이, 보태서 손자 벌 나이라 여겨져 서스럼 없는 반말(������자네������… 운운)로 대했더니 벌떡 화를 내는 受侮수모를 당한 일이 있었다.--나의 실수다--

 

  세상살이가 자꾸 어렵고 두렵다.

  오직 삶과 죽음만을 생각하면서 올해도 삼백예순날이  그렇게 흘러갈 것인가……

天道천도의 循環순환은 無往不復왕불복이라 하나 어찌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가서 아니 오고 와서 안 가는 일도 있는가. 가는 것은 세월뿐일세――天行의 건재함이여 군자는 마땅히 그 自强不息자강불식을 본받을 진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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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1 새해를 맞으면서 죽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