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섬용회 일본총회
 오사카-나라-교토-온천 기행문

 

글/ 이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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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은 60년을 지워 버린 동심이다. 10시가 되자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여행에 처음 참가하는 두 친구가 있어 더 조급해 졌다. 같은 고희로 늙어 가지만 그래도 여행에 이력이 난 나보다는 그들이 더 불안해 할 것 같아서다.  정해진 위치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 정명화 친구는 한시간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뒤편에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을 보지 못하고 나만 기다린 듯 하다.  하동과 진주 친구40여명이 부산여개선터미널에 1시반이 못되어 도착하였는데도 서울과 부산 친구들이 먼저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존 김광석 회장은 하동과 진주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주는 모습이 예전보다 더 건강하였다.

 부푼  마음이 친구들의 주름진 눈가에 파도처럼 너울거린다. 모두가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온 듯 '곰보상!'하며 어머니의 흉내를 내며 나를 부르는 친구도 있다.  오랜만에 배를 다시 타 보는 나는 마치 선원같은 여유를 가졌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총92명의 친구들이 팬스타 드림호의 이벤트 홀에서 참존회장 김광석 친구의 우정에 감사하는 "우정의 패" 전달식을 가졌다. 100여명의 관광단이 애국가 제창과 영우들을 위한 묵념을 하는 기념행사는 팬스타호 창립이후 처음이란다.  우정의 패와 감사의 꽃다발을 받은 참존회장 김광석 친구는 어느 누가 이런 귀한 선물을 받겠느냐며, 오늘부터 4박5일 동안은 60년의 세월을 지워 버린 친구로 지내보잔다.

  우리의 모임의 금상첨화는 여자 친구들이다. 언제나 누님처럼 여동생 처럼 어떤 때는 어머니처럼 음식을 챙겨주는 등, 남자의 사기를 고취시킨다. 오늘 밤도 예외없이 합창을 하여 우리의 사기를 진작 시켰다.  7시 모닝콜이 울리기도 전에 모두 일어나 아침식사를 기다리는 동심은 원족이라는 옛 말을 되새기는 소풍같단다. 끼리끼리 모여 앉아 즐거운 식사를 하는 중에도 집에서 싸 가지고 온 개운한 찬을 나누어 주는 여자친구도 있다.  막내 딸같이 귀여운 안내양들도 고희의 노인들을 마치 그들의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은 고마운 배려가 아닌가.

  우리는 두 금지 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한 후에야 일본 땅에 들어 설 수 있었다.  11시가 좀 넘어서 일본 3대 명성중의 하나인 오사카성으로 바로 갔다. 이 현란하고 화려한 시대가 남긴 상처는 우리에게만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통일의 거점으로 권익과 권력을 상징하는 난공불락의 거성인 천수각을 쌓아올려놓고 62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정유재란을 일으켜 자기의 죽음도 숨긴채 유명으로 철군명령을 내린 것은 이순신 장군이 죽음을 숨긴채 독전의 북을 울렸던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황금색 빛나는 호장하고 화려한 천수각은 당시 세계적으로 찾아볼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으로 평가를 받는다. 오사카 성 천수각의 전시를 통해서 우리는 일본역사의 발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시간에 쫓겨 수박 겉 핥기만 하고 밀려나온 것이 아쉬워 일본 동란의 역사를 간략하게 약술 해둔다.

오사카혼간지 시대; 메이오 5년(1496년), 정토종의 랜뇨상인(上人)이 지금의 오사카성 부근에 스님들을 위한 숙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이 숙소가 나중에 오사카 혼간지 절로 성장하였고, 전국시대의 상당한 세력을 누렸으나, 텐쇼 8년(1580), 천하통일을 꿈꾸던 오다노부나가에게 굴복하여 함락되고 말았다.
도요토미 시대의 오사카성;
오다노부나가의 몰락후, 정치의 주도권을 잡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텐쇼11년(1583), 오사카혼간지 절터에 새로운 축성공사를 시작하여 천하의 히데요시를 상징하는 대성각을 쌓아올려 완성시켰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에 정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겨져, 게이초20년(1615)의 오사카 여름 전투에 낙성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재건;
오사카성은 히데타다 장군의 명령에 의해, 겐나 6년(1620)부터 10년에 걸쳐 전면적으로 재건축 되었다. 간분 5년(1665)에 번개에 맞아 천수각은 불타고 말았으나, 오사카성은 에도 시대의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 서쪽지방을 지배하는데 중요한 거점이 되어 큰 역할을 완수하였다. 메이지유신 동란 때 많은 건물이 불타 소멸되었다.
쇼와 시대의 천수각 재건;
메이지 이후, 오사카성은 군사시설로 사용되었다. 그 후 시민의 열의에 의해 현재의 천수각이 재건되어 현재는 박물관으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사카 성 일대에는 제2차세계대전에 많은 폭격을 당했으나 전후 사적공원으로 정비되었다.

  짙은 오렌지와 하늘색의 유니폼은 천지부모의 의상이다. 하늘과 땅, 음양오행의 조화를 자랑하는 한울님의 행진 같다. 우리는 대오를 갖추고 행군가(전우야 잘자라)를 부르며 식당으로 간다.  주위의 일본인들은 호기심과 위협을 느끼는 상상의 청중을 보는 듯 했다. 일본에서 처음느낀 풍부한 식사는 노익장들의 식도락을 유감없이 발휘케 하였다.  고베 대 지진의 참상을 보기위해 메모리얼 파크로 왔다. 호안블록이 지진으로 부서진 일부의 잔상만 남겨 두었을 뿐 엿가락처럼 뒤틀렸던 고가도로와 전철길은 모두가 복원이 되어 있었다. 다만 이 철길을 표시하기 위해 보수당시의 철각을 그대로 남겨 둔 현장만 보았다. 전화위복인지 지진을 견뎌낸 고층보험회사빌딩은 일본의 방진 건축기술이 세계제일이라는 신뢰를 주는 동기가 되었다.   나의 호주머니에는 지금도 방진 마스크가 있다.  20여년의 선박생활을 했던 나는 대만과 고베지역에서 공업분진과 우천의 운무 또는 황사 등으로 우산과 마스크를 상시 휴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상하게도 섬용회의 관광때에는 언제 어디서나 쾌청한 날씨다.  나는 한 사람의 지극한 정성이 한울님과의 교통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안다.  천도교에서는 이를 도통이나 감응이라 한다.  나는 한 사람의 후덕이 모두를 구제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꿈결에서나마 천덕사은을 기념코자 <감천한 우정>이란 아래 글을 얻어 김광석 친구에게 새겨주었다. 이것이 지성감천이란 것이다.

한울이 덮고 땅이 실어
요순의 덕이 만든 신의여
삼경으로 우러러 받든
만고의 우정을
영세불망 기립니다.

   세계 어디든 차이나타운이 있다. 오사카 난킨마치(남경거리)도 산프란시스코와 버금 가는 곳이다. 대개 차이나 타운은 음식점이 태반이다. 간혹 유창한 한국말로 호객안내를 하는 아가씨가 있는 것을 보니 한국관광객이 자주 오는 것 같다.  긴 거리를 군침만 흘리다가 막다른 골목에 오니, 김회장이 마지막 집에서 팟 강정이 든 찹쌀도넛을 사서 따라온 친구들에게 하나씩 배급해 준다. 그리고 맛보지 못한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여 6통을 더 주문하여 비서에게 맡긴다. 메리칸 파크의 집결지에 다가오자 만두 두 개를 사서 나와 하나씩 맛을 보았다. 참 맛이 있었다.  일본의 전통 음식점거리로 유명한 도톰보리 가를 구경하고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덴부라, 생선초밥, 우동, 대게 까지 일본인들의 3~4인분을 거뜬하게 남김없이 해치우는 노익장들의 식도락에 일본이들은 혀를 내 두른다. 일본에서 음식을 남길정도로 포식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플라자 오사카 라는호텔이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옛날 선원들이 꼭 선실같이 늘푼 수 없이 만들었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랬다.  화장실, 주방시설, 침실이 사실상 하나의 컴팩트로 된 것 같았다.  일본이 누에처럼 생겨 집을 크게 지어면 종말을 부른다는 야사가 있다고 하여 항상 작은 집을 지어 분수를 알고 살았단다. 그래선지 요즈음은 엄청난 건축물을 지으면서도 한 사람이 사용할 공간은 관습처럼 작은 것이다. 동경이나 여타 대도시의 객실 유니트를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다. 땅값이 비싸서 그렇다고 하는 것은 일말의 체면일 것이다.

  같은 여행지를 여러번 구경할 때도 함께 어울리는 사람에 따라서, 심취하는 마음 가짐에 따라서 별천지가 되거나 지겨운 지옥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이번 섬용회 관광이 바로 그렇다. 더러는 한 번 다녀온 곳은 두 번 다시 같은 여행지를 가지 않는 사람이 더러있다.  그러나 그곳의 운치를 한 번에 기억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행지를 다녀오면 거짓 없는 글을 남겨기는 것이 남을 위한 배려가 된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기행문을 쓰도록 권하고, 나 역시 글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섬용회나 단체여행을 할 때 마다 5년이상 젊어진다고 강변한다.  기억을 오래토록 본존하는 것 만큼 뇌의 젊음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선의의 경쟁같은 우정의 시새움은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기억이기 마련아닌가!

   지금도 이상한 것은 호텔 라운지의 식사 분위기가 산뜻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팬스타호의 정겨운 분위기가 깊이 각인된 때문이지도 모른다. 호텔에서 뷔페를 먹은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아침마다 식전에 호텔 프론트에서 홈페이지를 열어 게시판과 이메일을 정리한 것이 전부다.  그래도 중국이나 대만처럼 인터넷이 열리지도 않는데 사용료만 받아먹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일본은 다행한 편이다.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어 시원한 인터넷환경이 세계인이 가장부러워 하고있는 것이며, 우리의 큰 자랑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가방은 호텔에 남겨둔채 단독무장으로 백제 역사의 잔상을 확인하러 나라로 갔다. '나라(奈良)'라는 발음은 우리나라의 말이 본산이라고 일본인들이 말하고 있다.  나라 국립공원을 거닐면서 이구동성으로 쓰레기 떠러진 곳을 찾아보라고 감탄하는 친구들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 보였다. 우리나라도 이럴수 없는 가 말이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인 東大寺를 구경했다. 백제의 불교(화엄종)가 세웠는지 대웅전의 현판에 큰 부처를 모셨다고 大자를 붙인"대화엄사"였다.  일본의 국보인 '대불전(東大寺金堂)' 크기가 Frontage 57.01m,  Depth 50.48m, Height 48.7m로 한국의 불당에서 볼 수 없는 큰 규모다. 盧舍那大佛의 크기는 몸체높이가 14.98m, 불상의 머리가 5.41m,  눈의 크기가 1.02m,   귀의 길이가 2.54m,  앉은키가 3.54m 나 되었고 부처의 손바닥에 장정 세사람이 올라설수 있다고 했다. 모두 목조로 이룬 거대한 작품임에 손색이 없다.  일본사람들은 목수를 大工이라고 하여 상당히 존경하고 그들을 신뢰한다.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하천 계급으로 여겨져 일삯을 받지 못해 식구들과 배를 골아가며 왕궁이나 절을 짖지 않았다. 우리의 이러한 사회풍토는 지금도 숨김없이 내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안내양들의 주의를 되새기며 사슴공원에 들어 섰다.  숫 사슴들의 뿔은 모두 거세를 당하여  옛날 처럼 멋진 뿔을 가진 사슴은 한 마리도 없었다.  게으르고 살이쪄 지금의 일부 신대의 일본 젊은이들의 습성을 나타낸 듯 하였다. 일본돈의 위력으로 세계를 우습게 보는 지금의 일본인들이 허리가 가늘었던 옛날의 숫 사슴처럼 되어질 때,  세계인을 배려하며 공존할 의무를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일부의 졸부들이 일본의 숫 사슴처럼 살아가고 있는 형상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치 풍토가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인가.  예전엔 멋진 뿔의사슴들이 어린이나 관광객을 공격하여 상처를 입힌 일이 허다 했었다. 아무리 착한 사슴이라도 약을 올리는 사람이 미웠던 것이다.  푸짐한 식사 는 예전의 일본이 아닌 것 같다.  음식의 양과 배식 스케일이 나의 기억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참존 김회장의 배려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패로다임은 분명히 변한 것 같다. 이 고집스런 일본인에게도 그로발이란 감응이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김회장의 제안으로 남녀 합석을 주선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여, 기모노(일본 전통의상)쇼를 관람하지 않고 音羽山 淸水寺를 구경하였다.  손씻는 물을 마사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관광객이라는 안내양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몇몇 친구들은 기어이 그 물을 마신다.  고희가 되어도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인색한 습관은 부질없는 자존심의 형태가 아닌지.  이 곳의 청수를 마시면 오래산다고 하여 많은 사람이 차례로 줄을 서서 물을 받아 마셨다. 나는 멋 모르고 역순으로 물을 마시려다가 부끄러움을 알고 포기해버렸다. 모든 친구들의 고운 표정(기대하는)을 사진기에 담아 두었다.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전형적인 일본의 고갯길을 거닐어 보는 것도 멋진 관광이었으나, 일부 친구들은 귀찮은 듯 지쳐 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았다면 좀 덜 피곤했을 것이다. 목조로 5~6층의 엄청난 축성을 하여 그 위에 절을 지은 건축이 얼마나 정교하고 정성을 들였기에 수 백년의 아름다움을 어연하게 간직하고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있었다. 우리의 국보를 불태워 버린 부끄러움이 앞섰다.  챙피한 이일은 한사람의 이기심이 아니라, 국민을 가렴주구한 행정부의 책임이 더 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관람은 우리의 아픔이 있는 귀무덤이다. 우리는 너나 없이 측은한 마음으로 묵념을 하여 마음속으로 위령제를 드렸다.  태양이 뉘엇 뉘엇 지는 석양이다. 어떤 친구들은 흥분을 참지 못하는 감수성을 발휘한다. 그러한 용기가 생활에서 남을 배려하는 책임감으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안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가슴 깊이 새겨진 채 호텔로 돌아왔다. 쑤시개를 만들어 놓았던 침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오늘 밤은 손발만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많이 걸은 탓인지 오늘은 좀 피곤했었다. 잠결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서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모닝콜이 오기도 전에 김재규 친구는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를 깨워주었다. 식전에 호텔로비의 컴퓨터로 메일박스와 홈페이지 게시판의 스펨을 지웠다. 방문자가 스펨메일 주소에 들어가 손재수를 볼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나는 매일 게시판을 청소한다. 이것도 남을 배려하는 관리자의 책임이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니, 불편했던 발바닥과 발목도 한결 개운한 것 같았다.  ATC(아세아 무역회관)를 관람하고 그곳에서 징기스칸이 유라시아 정복때 먹었던 음식이라는 사브사브를 양껏 먹고 나니 태평스러웠다. 1호와 3호차를 탄 친구들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2호차를 탄 친구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오사카 남항으로 돌아왔다.  팬스타호는 우리를 기다리는 듯 반가웠다. 출국 때보다 한시간 앞 당겨 승선하니, 마치 한국에 도착한 기분이다. 사실상 팬스타호는 치외법권이 존재하는 한국이기도 하다.  짐을 풀어놓자마자 영선부원을 불러 구멍난 세면기를 수리하게 하였다. 임시로 물새는 것을 막았더니 손을 씻기가 편했다.  오늘 밤은 바지가랭이와 신발을 적시지 않고 손을 씻을 수 있어 좋았다. 선박관리자는 객실을 철저하게 순찰하여 승객이 미쳐 알지 못한 불편한 점을 미연에 제거해 주어야 한다. 팬스타호의 관리자는 초보자가 운용하는 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스타 드림호 선상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오늘 저녁 이벤트 홀에서 각 관광팀들의 장끼자랑 대회를 연다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들뜬 마음으로 출국 때 맥주를 얻어먹은 핑게로, 맥주 8깡을 사들고 문신식 친구를 찾았다.  김길자 친구 방에 많은 친구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맥주를 풀어 놓았다. 오랜만에 마신 한 깡의 맥주가 우리의 끼를 발동시켰다. 문신식 친구가 섬용회 선수로 나를 뒤늦게 등록하여 맨 마지막에 출전하여 '나는 너를'이란 장현의 노래를 불러 대상을 받았다. 상품은 디너 2인분의 식권이었다.  나를 응원해준 안내양 세 아가씨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움을 전하고 싶어서다.  다행히 상받은 선물이라고 극진한 인사를 받았다. 이벤트가 끝나고 곧이어 섬용회의 밤을 개최하여 더욱 즐거웠다. 여자 친구들의 '나그네서름'이란 즉흥적 창작 단막극을 연출한 최진환 친구의 위트는 참으로 멋이 있었다.  그토록 즐거운 밤을 지새며 아쉽게 지나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햇살을 실눈으로 받으며 선상의 일출을 본다. 아름다운 조국의 조용한 아침을 말 해 주는 것 같다. 10시반에 하선을 시작하여 11시가 다되어서야 입국절차가 끝났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쉽다고 김회장은 점심도 함께 하고 헤어지잔다.  부산회장 신상영 친구가 미리 준비 해 둔 음식점으로 가서 개운한 해물탕으로 가벼운 식사를 마쳤다.  기차 시간이 많이 남은 서울 친구들이 하동과 진주 친구들을 전송해 주었다.

참존회장 김광석 친구는 내일 오후의 일정에 맞추어 그동안 만이라도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며 우리와 함께 하동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갔다.<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