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일주여행


글/ 이 진 원    


  지난 3월 21일부터 3월25일까지 (주)참존 회장 김광석 친구의 주선으로 85명의 친구들이 함께 대만일주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작년 5월에도 65명의 친구들이 김광석 회장과 서울섬용회 친구들의 주선으로 중국 장가계와 북경 관광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의 기행문은 서울회장단에서 상세하고 친절하게 보내주어, <섬룡예지>에 그대로 실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시원한 대답이 있었기에 곧 보내 줄줄 알았다. 그런데 한해가 다 지나가는데도 서울회장단으로부터 소식이 없어 물었더니, 이제 서야 글 쓰고픈 의욕이 없어 이렇게 주저앉아 있단다.


  고희를 맞은 친구들의 의욕부진이 하루같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부득이 귀중한 이야기를 홈페이지에는 올려야 하겠기에, 이제야 글을 쓰려하니 나 역시 그때의 기억이 감감하고, 브레인스토밍이 없어 알쏭달쏭하다. 그러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진정으로 베푸는 우정의 진실을 남겨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글을 쓴다.


  70년대 중반 내가 외국무역선박을 몰고 타이페이, 퀴륭, 카오슝 항구 등에 들어와 장기간 정박하는 동안 주야관광을 즐기며, 선원들의 천국이라는 소문을 확인이라도 하듯 유흥을 즐기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한국은 새마을 운동으로 삼고의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수출 일백만 달러를 자랑하던 때였고, 대만은 본토와의 이념갈등과 군사적 경계상태를 확연히 느낄 수가 있는 때였다. 내가 이곳에 올 때마다 계절을 불문 하고 화창한 날씨는 거의 없었고, 안개속의 우중충한 시야는 항상 진면목을 볼 수가 없는 별천지 같은 나라 같았다.


  20~30여 년이 지난 지금 머리가 희끗하게 변한 친구들과 함께 부푼 마음으로 대만을 다시 찾은 감회는 새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쾌하고 해맑은 날씨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름도 ‘쑹싼’으로 바뀐 타이페이 국제공항에서 대중시까지 내국항공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여유 있는 하룻밤을 편안히 보내고, 이른 아침부터 카오슝 까지 지루하고 힘든 버스여행길에 올라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하였다. 관광가이드의 혀 짧은 한국말의 익살스러운 안내를 들으면서 카오슝에 도착하여 또 하루를 머물렀다.


  버스 안에서 장기 자랑 대회를 열어, 여자친구들의 호감을 얻은 지역 섬용들이 여자친구들과 동승을 하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시샘 많은 친구들은 서로 뒤질 새라, 없는 정력을 쏟아 내어 배꼽을 잡았다. 만담을 마친 장문석 친구가 나더러 노래를 불러라 지적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앞에 나가 머뭇거리자, 김광석 친구가 <TOO YOUNG>을 지정한다. 가사를 다 못 외울 것 같아서 김 회장에게 가사를 읽어달라고 했다. 연출가의 대사를 따라 연기하듯 감정을 섞어 노래를 다 불렀다. 앵콜! 이라며 박수가 터졌다. 고등학교시절 trumpet 과 클라리넷 등으로 암스트롱의 흉내를 내며 즐겨 불렀던 1955년 hit 재즈송이다. 


  사랑하기에 너무 어리지 않다고 우기는 그 노래 말이, 이제는 사랑하기엔 아직 너무 늙지 않았다고 우기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울고 넘는 박달재를 앵콜곡으로 한곡 더 부르고 나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대동시 까지 버스투어로 관광을 계속하였다. 하루씩 여자친구들의 차에 동승하면서 만담을 나누며 이곳에 도착하여 열차로 화련까지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다. 간밤에 호텔에서 여자들이 추첨으로 직접 뽑은 남자친구를 파트너로 기차여행을 즐기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긴 여행이 짧은 여행처럼 여겨졌다.


  마지막 타이페이 국제호텔에서 서울섬룡집행부에서 김광석 친구의 고마움에 보답하는 리셉션의 밤을 열었다. 각 지역의 대표들이 진심어린 우정의 감사를 드렸고 김광석 친구는 이를 화답하여 인사를 받았다. 노래반주에 맞춰 두 관광가이드도, 모든 친구들도 아쉬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환영회를 마쳤다.

  마지막 출국을 서두르며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장개석 기념관 광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에는 김광석 친구의 우정이 영원히 변치 않는 신뢰로 남게 한, 그의 새벽기도의 고마운 여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