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첫걸음 / 천도교의 이해

 

1. 들어가는 말

    동학 천도교포덕 1년(1860) 4월 5일 경상북도 경주시 서쪽에 자리한 구미산 아래 용담정에서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에 의해 창도되었습니다. 천도교는 출현한 지 불과 140여 년이란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로부터 비롯되어 나타난 것이며 고유 사상의 정통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그때까지 존재했던 모든 사상을 아울러 그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한 교리이자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천도교 창도의 배경:

  
A. 신앙적, 영성(靈性)적 배경
     천도교를 ‘후천개벽의 종교’라고 얘기하듯이 천도교는 ‘선천시대’ 즉, 1860년 대까지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을 대치하는 새로운 종교로서 한울님의 계시에 의해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한울님은 이 우주 만물을 조화(造化)로
빚어내시고 무기물-유기물-식물계-동물계-인간계로 이어지는 이 우주의 진화를 계속해 오는 가운데, 인문적인 도약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새롭게 인간을 지도할 가르침을 수운 최제우 대신사를 통해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게 된 것입니다. 천도교는 ‘후천개벽’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탄생하게 된 것이며 후천개벽은 바로 ‘사람이 곧 한울님’인 세상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B.시대적, 사상적 배경
    그러나 우리가 좀더 구체적으로 동학 천도교의 창도 배경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적인 조건 속에서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도교가 창도되던 조선 후기는 국내적으로는 외척(外戚)의 세도정치와 양반?토호들이 일반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자행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민란이 각지에서 발생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의 무력 침략의 위기를 맞던 시대였습니다.

  천도교가 출현하게 된 배경을 먼저 우리 나라 안에서 볼 때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신적 토양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고유의
하느님 신앙을 갖고 있었으며 신라, 고려, 조선조의 천여 년 동안 차례로 유교, 불교, 선교(도교)을 수용하고, 조선조 말엽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수용하면서 그 사상적 깊이와 폭을 넓혀 왔습니다.

  그러나 조선조 말엽에 이르면서 전래의 유불선 사상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퇴락(頹落)해지고 새로운 사상 조류가 들어오는 속도나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의 정도가 그것들을 좋은 방향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면서 큰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당시의 세계 상황은 이른바 ‘산업화’와 ‘근대화’에 앞서 성공한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동양을 무력적, 경제적으로 침략하면서 큰 혼란과 불안이 넘쳐나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혼돈 상황에 즈음하여 수운 최제우 선생이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 사상의 정수를 모아(혹은 받아) 새로운 종교 문화의 일대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체계로 정립해 낸 것이 바로 천도교(동학)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대적이고 사상적인 배경으로 동학 창도를 살펴볼 때, 기성의 고전 종교로서는 혼란에 빠진 세상을 건질 만한 힘이 없고 이미 그 기능과 가치가 상실됨에 따라 새로운 종교 사상에 의한 새로운 구원의 길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천도교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라 밖으로 볼 때 천도교가 창도된 배경은 좀더 분명해집니다. 당시 서구 사회는 2천여 년 역사의 귀결로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유물론적 세계관이 극대화됨으로써 나타나게된 제국주의적 세계 침략이 가속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그러한 세계관과 논리 속에서 전개될 세계 역사의 불행을 예감하고 이에 대한 근원적인 대안을 찾던 과정 속에서 우주 정신과의 교감을 통해 이룩된 것이 바로 천도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구 문명의 충격을 민족 주체적인 슬기와 역사 감각으로 극복하고 민족 전통 사상의 바탕 위에 외래 종교 사상을 수용해온 한민족의 정신적 토양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종교가 곧 동학이요, 오늘의 천도교(天道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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