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流仙脈 智異河東』論


諸 相 宰    

 

一. 壺中別有天, 花開洞의 章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발길은 어떤 境遇에 있어서는 잊혀진 歷史를 遡及하는 것과 한결같은 意味를 갖는 일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서, 그와 같은 歷史의 遡及은 또 한편, 동안에 피고 진 수많은 꽃봉오리의 줄기를 더듬어 가 지금도 본대 그대로 고스란한 그 뿌리를 캐는 일이기도 하다.


  王室峰 잔등이가 西向하여 잦아들고, 白雲山槐 蛾眉峰 어깨부들기는 동녘으로 훑어져 내리는, 그 두 산자락이 엇물린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한 가람의 물줄기가 頭流山 兩斷水의 飛流直下三千尺으로 동그라드는 또 한 갈래 물줄기를 보듬어 안고, 감도는 廻浦가에 하나의 한갓진 市井을 성글어 놓았던 것이니, 이름 불려져 화개장터라 하였다.

 

  그곳에서 現代라는 虛構的怪獸의 傷處입은 咆哮속에 驚魂亡失된 人間性으로 하여 스스로 疎外된 自我가 그 고달픈 먼 旅程의 무겁디 무거운 짐짝들을 부리고, 忘却된 迷路같은 바로 그 歷史의 뒤안길을 디뎌갈 竹杖芒鞋로 차림새를 바꾸었다.


  찌들대로 찌든 汚濁의 바로 그 大都會文明彩衣를 우선 홀라당 벗어부치고 나자, 마음부터 한결 산뜻해지는 생기는 발목을 날렵스럽게 채질하여 잊혀진 歷史의 迷路가 벌써부터 환한 光明으로써 그 스스로 가닥을 하나하나 간추려서 풀어주는 듯 슬기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이제 더듬어 딛고 갈 그 바로 역사의 뒤안길은 다름 아닌 나(自我)라는 生命이 그 生緣 을 맺은 故場 河東의 文化의 根脈이 잠겨 있는 숨결이다. 文化의 根脈은 歷史의 動脈인 것이고, 그 歷史의 動脈은 그 바로 自我의 溫床인 것이다. 때문에 일찍이 孔子는 그의 語錄 論語 學而編에 일러 놓기를 君子務本 本位而道生(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근본을 중히 여기나니 그 근본이 바로서고 나면 진리의 탐구는 절로 이루어진다)이라고 하였던 까닭이었다.


  수박향내 그윽한 銀魚 한 모타리에 隱然한 가운데 걸식 걸식한 竹葉酒 한사발로 목을 가시고, 댓바람으로 花開洞天을 찾아 들었다. 의신골을 누비고 훑어져 내리는 花開洞天의 溪川水를 바른편 겨드랑이에 끼고 거슬러 오르는 눈길 저 멀리로 하늘과 땅을 아물 아물 갈라놓은 碧霄嶺 등줄기가 東西로 가로 펼쳐든다.


  雙溪津頭龍韶에는 그 옛날 玉泉庵의 梵唄소리가 웅숭깊은 여울목울음으로 삼켜진 채 덧없는 歲月에도 그냥 無心한 山影이 되어 얼룩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곳을 단순히 한갓된 忙中閑의 風流였을 것이랴. 멀리 山淸땅에서 무엇을 찾아 南溟(曺植先生의 號 1501~1572)은 여기 이 龍沼辺龍磐石에 이르러 괴인 路毒의 발목을 그 물속에 잠그고 素心을 읊조렸던고…?

                頭流山 兩斷水를 예듣고 이제 보니

                桃花뜬 맑은 물에 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武陵이 어디메오

                나는 옌가 하노라.


 그런데 이보다 더 아스라한 예전 어느 때, 伽倻國 七王子는 그 무엇에 이끌려 불무잔등이 동녘기슭 해돋이 때, 雲霧 자욱한 雲上仙院으로 隱迹하여 羽化登仙을 煉功했던 것이랴.

  그 길에 孤雲은 또한 못내 뿌리칠 수 없었던 風流仙緣을 끝내 맺고 碧霄嶺마루를 넘나들며 寒天玉流의 花開洞壺中別有天에 大方廣佛華嚴의 圓方을 닦아, 宇宙攝受의 數理를 펼쳤었고, 落榜小儒 西山은 出世間의 佛緣을 神凝庵에 묻어 汲水歸來忍回首,靑山無數慈雲中(물 긷고 돌아오다 문득 머리를 돌림에 셀 수 없는 푸른 산들이 구름 속에 잠겨 있네)인 그 바로 雲上仙院에서 文字法師(경전의 문자만 희롱하는 스님)아닌 참다운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바보 멍청이가 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이에 南溟은 그를 그리워하여 회남이재(回南嶺)를 넘어 花開洞天을 찾고는 自然之氣溟倖(자연의 氣는 海印이 되어 천연스러운 것이다)의 浩然之氣를 기르곤 했던 텃수였다. 여기 참으로 隱遠한 人文의 根脈이 潛流하고 있음이 아니런가! 이에 이를 詠嘆해 마지않음이니.


孤雲留游 碧霄嶺

외로운구름(孤雲:崔致遠)홀로 머물러 푸른 비단 펼친듯한 벽소령 마루를 넘나들며 즐기고

西山日落 靜中動

사녘산자락(西山淸虛大師)지는 해는 고요한 가운데 大造化의 움직임을 일구더라.

疊疊重重 雲霧海

구름과 안개는 겹겹으로 쌓이고 포개져 가마득하게 眞如의 仙境을 이루었는데,

曉起河東 廣莛紡

그 속으로부터 날 밝는 새벽의 여명은 銀河水처럼 흐르는 江 東녘에서 비춰 올라 大地위에 生命의 터전 댓 자리를 넓게 짜 펼쳤구나.

  

  라고 떠오르는 벅찬 喜悅같은 七言絶句의 詩想을 따라 그 高邁한 仙人들의 지워진 足跡을 더듬어 가고 있는 참이다.

  아! 저기 千年長眠속에 沈黙의 化石이 된 奇巖怪石의 矗石亭을 울리고 되돌아 오는 메아리인 雙溪古刹의 梵鐘소리가 그 모든 秘史를 속삭여주고 있질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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