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노예제를 논술하라

 


                                                                                      경상대 영어영문학과 3년 이수지

 

 


                     목     차


               1. 머리말

 

               2. 고대 노예제의 발달

                        2.1. 노예의 개념

                    2.2. 노예제의 이론


               3. 그리스의 노예제

               4. 로마의 노예제

               5. 결론(노예제의 종언)


                참고문헌



1. 머리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가 노예제 사회였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별 다른 이론이 없다고 한다. 노예제(servitus)는 인가의 모든 불평등이 존재이유를 가지던 사회가 성립되면서부터 존재하였다. 한 사회에서 자원과 권력이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면 그 사회의 유력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을 초과하는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비자발적 강제노동을 이용하게 마련이다. 이때 다양한 형태의 강제노동이 동시에 존재 할 수 있다.

  또한 가부장제적인 사회에서 가부장의 권한에 종속된 아내나 자식, 혹은 지주에게 예속된 소작인처럼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지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부채노예(nexus), 피호인(cliens), 헤일로타이(heilotai), 농노(serf), 노예(servus)등으로 불렀다.

    본 논술에서는 고대 노예제를 그리스와 로마의 노예제에 대하여 노예 및 노예제 사회의 개념을 약술해 보고자 한다.

      

 

2. 고대 노예제의 발달


   노예제(slavery)는 하나의 고대 사회제도이며, 주인과 노예간의 물리적, 법적, 제도적, 관계를 일컫는 개념으로 볼 수가 있다. 이러한 관계가 공동체나 국가의 관습 혹은 법에의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하나의 사회제도로서의 노예제(slave system, institution of slavery)가 되는 것이다. 사실상, 노예제는 인류의 문명사회와 함께 생겨난 유래를 갖는 까닭에, 유럽인들이 진출하기 이전의 일부 아프리카사회나 호메로스 시의 세계와 같은 초보적인 사회에서도 이미 노예제가 발달하였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초기왕국들과 고대 이집트, 구약성경에 나오는 초기히브리사회에서도 이미 법률적, 사회적으로 규정된 노예제가 있었다. 그러나 노예가 사회구조 내에서 차지한 역할이나 기능이 부수적인 중요성을 지녔을 뿐이기 때문에 ‘노예를 보유한 사회’라고 불렀다.

  ‘노예제 사회(slave society)'는 단지 노예를 보유하였을 뿐인 사회와 구별하기 위하여 근래에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역사상 노예제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르러 그 사회경제기반이 될 만큼 질적으로 고도화되고, 양적으로 팽창하였다. 시민단의 지배체제가 강화되어감에 따라 그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노예들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시민과 노예, 내부인과 외부인, 자유민과 예속민으로 나눠지는 구조적 이분화와 그에 따른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노예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경제적 측면이다. 노예들이 담당하는 경제적인 역할과 기능이 그 사회에서 근본적인 의미를 갖게 될 때, 우리는 그 사회를 노예제 사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대사회의 지배계급은 무엇보다 노예 소유자들이었으며, 그들의 부의 원천은 노예 노동에 있었다. 또한 고대의 전형적인 문화가 발전한 곳이 노예제가 발전한 지역과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고대사회는 노예제 사회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2.1. 노예의 개념


   노예는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지위에 처한 자들이나 다른 범주의 예속인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로마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인 자유인과 명백히 구별되는 노예의 지위를 로마법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자유(libertas)란 어떤 사람이, 만약 무력이나 법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할 수 있는 자연적 능력이다.①노예상태는 만민법(ius gentium)상의 제도로서 한 인간이 자연적 질서에 반하여 타인의 소유권(dominium)에 들어간 상태이다.②군사령관들이 사로잡은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매각함으로 포로들을 죽이는 것이아니라 목숩을 살려주기(servare;목숨을 살려주다) 때문에 노예들(servi)이라고 불린다.③재산으로서의 노예들을 지칭하는 단어(mancipia)는 노예들이 적으로부터 무력(손)에 의해 서로잡힌(manu capiantur)사실로부터 나왔다.”라고 했다.

  그리스어의 노예(doulos, 라틴어로 servus)란 첫째 출생집단으로부터 뿌리뽑히고 개별화된, 주인에 무력한 자이다. 포로가 되거나 기타 방식으로 노예화가 된 순간부터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보호와 도움을 받을 수가 없게 된 사람으로 ‘유보된 죽음’과 같은 인간운명의 전환을 노예화라 한다.

  두 번째로 노예가 외부인(outsider)이라는 점이다. 주인의 관점에서 애초부터 외부인이요 적대자이지만 노예화된 뒤에 해방이 되지 않는 한 변함 없이 그 상태가 그대로 지속된다. 내부 인이 노예화되는 경우는 축출이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쳤다.

  세 번째의 특징은 노예의 재산으로서의 지위다. 이른바 가재(家財)노예는 가축이나 도구처럼 재산으로 인식되고 상품으로서 매매의 대상이 되었다. 노예는 ‘전적으로 주인에게 속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은 노예의 법적인 예속과 주인의 소유권을 다 같이 함축하고 있다. 노예가 타인의 재산이라는 점과 아울러 노예는 소유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2.2. 노예제의 이론


   노예제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신분체제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대의 노예란 바로 권리가 없는 외국인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로마 최초의 노예제가 국제적인 신분체제였다 함은,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노예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는 노예와 외국인의 두 개념이 혼동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로마 문헌에서 노예제가 만민법상(萬民法上)의 제도라고 거듭 이야기되고 있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공리의 형식을 빌어 다음의 두 명제를 검토 해 본다. ① 모든 노예는 외국인이다.

② 모든 외국인은 노예이다.

  실제로 노예의 실태는 법률상의 신분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제정기(帝政期)의 노예는 대령지(大領地)에서 주인의 관심의 대상이 못하고 법에 의해 최소한의 인격은 인정받으면서도 지극히 가혹한 처우를 받던 불행한 존재였으나, 반면에 고대의 노예는 어떠한 법적 규제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않았지만 주인과 친밀한 가운데 생활하고 있었기에 어렵고 불안정하면서도 주인의 생활과 근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최초의 노예제의 특징은 경제적 제 조건으로 인하여 부득이 주인이 노예와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떠한 형태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예에게는 가족도, 세습재산도 없으며 종교적으로도 미온적이며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인신저당자(nexus)로 타인에 예속된 시민은 노예가 아니었다. 모든 법조문에 일치하여 나타나는 사실은 로마시민은 언제나 자유인의 지위를 보유하여 노예의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3. 그리스의 노예제


   그리스의 노예제는 결혼, 친자관계, 또는 시민권과 같이 하나의 보편적인 인간관계였으며, 그 많은 인간관계 중에서도 노예제는 관심을 기울일 만큼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노예는 개인으로서 생각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의 사정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많은 가축과 같은 역할이 주어졌다. 그래서 노예는 때때로 유익하고 충성스러웠으며, 때로는 천박하고 신뢰 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였다.

 복합적이고도 상호의존적인 희랍사상이 노예제의 고전적 개념의 제요소를 분류함에 있어 대체로 4개의 주요한 제목으로 구분된다. ①숙명적으로 강제된 노예제 ②낮은 계층들이 정당화될 수 있었던 사회적인 지위로서의l 노예제 ③공적으로 인정된 노예제 ④자신의 사악과 욕망으로 인한 인간의 노예화 등이다.

  노예제가 숙명적으로 강제된 것이라면 비천한 정신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된다. 노예제는 제신(諸神)들의 도구로 인간의 위대성과 자만심에 대한 비극을 증명하는데 사용하고있고, 노예제는 인간의 힘을 파기하고 약화시키고 또 능력을 추락시킨다는 점을 인간에게 각성시키는 신들의 위협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둘째로, 노예제의 실제적인 국면과 노예의 취급, 노예의 지위가 어떠하며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용도와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노예의 성격에 관한 평가도 내포하고 있다. 노예를 천한 존재로 생각했다는 것은 노예가 인간사회의 낮은 계층으로 정의되었음을 말한다.

  셋째로, 희랍인들이 지배력, 지식, 자유의 영역과, 인간본성에 있어 가장 사악한 모든 사람을 우직하고 수치스러운 예속상태로 만드는 육체적인 생활과의 사이에 정확한 구별을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던 것이다. 인간에게 그들 자신이 치욕적인 존재가 되느냐 은전을 받는 존재가 되느냐에 대한 가능성을 달성시킨 것 중 하나이다.

  마지막을 요약하면 책임성 있는 자는 각자가 의로운 바를 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의무를 완수치 못한 자는 스스로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학들도 노예제의 필연성을 인정하면서 국가나 사회의 형성은 치자(治者)와 피치자가 생겨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플라톤의<국가론>에서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주장하고 있다. 지배와 복종의 상호보완관계의 공통의 이해관계의 결과는 언제나 강자인 주인에게 돌아갈 뿐이다.

 


4. 로마의 노예제


  로마의 노예제는 그리스의 노예제가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는 기원전750~550년 사이에 대규모 식민운동을 전개하여 이탈리아 남부와 시실리에 많은 그리스인의 폴리스들이 건설  되었고, 로마보다 강력하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더욱 발달하여 노예제는 당연시되고 있었다.

  이들 그리스인들과 페니키아의 식민자들은 그들이 본국에서 익숙하던 노예이용의 관행과 노예획득방법들을 로마인들에게 전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로마노예제도는 그리스의 신분불변제도와도 다를 뿐 아니라 미국 과 영국 등의 노예제도와도 다른 국면이 있다. 특히 이들 요소 중에서 로마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노예들은 주요 기구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높은 가격으로 노예해방이 되며, 지난날의 노예도 토착 로마시민들과 거의 동등한 관계 위에서 시민사회로 융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아주 복잡하고 미국남부 노예제도와의 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로마인들은 시민들이 이미 개간한 땅을 경작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많은 농업노예들을 수입하였다. 그와 동시에 시민들의 추방도 병행했던 것이다. 로마의 노예제도는 로마제국의 세력팽창시기에 있어 제국의 정치적인 경제구조와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이루기도 했던 것이다.

  로마의 집단노예제는 정복의 산물이었다. 정확하게 200년 이상 로마인들은 지중해 전역을 정복했다. 기원전 260년 로마는 이탈리아 중 남부지역을 통치한 정치적으로 강력한 도시국가였다. 기원전 1세기 말까지 로마는 영국해협으로부터 홍해까지, 또 알제리아에서부터 흑해까지 신장한 제국을 지배하였다.

 노예들은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적 이탈리아에 집중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포로였고 농업노예들 중에는 남자들이 지배적이었으며 제국의 세력이 확대해가고 있을 때 새로 잡힌 포로들이 농업 노예들을 대신하였으며 상업과 동물사육에 보충되었던 것이다. 제국의 세력이 확대해 가고 있을 때 노예인구도 증가하여 기원전 1세기 말까지 이탈리아 전 인구 6백만 중에서 약2백만이 노예였다고 한다.

 거대한 제국의 정복사업과 약탈과 행정이 고대의 정치적 질서를 변질시켰다. 전통적인 과두정치는 오랫동안 유지되어갔으나 그 세력은 정부재원의 결핍과 무장한 시민인 농민들로 구성된 선거민에 의해서 약화되었다. 적대적 세력으로 발전한 장군들끼리의 내란은 직업군인의 독점적인 지배를 기초로 한 강력한 군주정치의 확립을 초래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노예로 전통적인 생산제도가 변질되었고, 궁핍해진 재정난으로 시민인 농민들은 노예들에게, 정복자들은 포로들에게 그들의 가옥이나 토지를 양함으로써 정치적 혼란이 심화되었다.

  4백만의 시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수입해온 2백만의 노예들에게 식량과 일자리를 공급한 사실은 경제적 정치적인 기구에 있어서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했던 것이다. 이들 변화는 상호의존을 발견하고 로마적 이탈리아의 노예제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5. 결론(노예제의 종언)


  후기 로마의 노예제도가 제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듯이 인간의 노동력은 자율적이고 자의적 의지에서 발생한 능력만이 생산의 한계를 증폭할 수가 있다는 진리를 터득했다. 물론 학술적 영향도 있었지만 종교적 배경과 더불어 시대적 변화에 따른 노예해방의 물결은 노예제도에 의한 인간의 동물적 경영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현대 우리사회에서도 형식적 노예제는 존재하지 않으나, 산업의 세계화를 배경으로 한 경제환경은 실질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노예와 같이 다른 민족이거나 이방인이란이유로 비인간적 노예대우를 받고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는 것을 보고있음은 역사의 반추를 실감하는 것 같다.



참고문헌


 서양고전고대경제와 노예제 

 편역자 : 고려대학교대학원

            서양고대사연구실

 도서출판 법문사

 1981년 9월 10일 초판발행                             

 

 서양고대사강의

 지은이/김진경 외

 펴낸곳/도서출판 한울

 1998년 2월 16일 초판4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