蟾津江下流의 貝塚文化

-河東 牧島里 錢島里, 光陽 烏沙里 貝塚을 中心으로-


張 明 洙     


Ⅰ. 緖  言


  從來 先史遺蹟의 空白地와 같이 알려져왔던 河東, 光陽地域의 蟾津江下流 沖積地帶에서 最近 筆者의 地表調査로 新石器時代의 貝塚群이 새로이 確認 되었다. 筆者는 拙稿를 통해 이 遺蹟들을 처음으로 紹介하고 아울러 지금까지 학계의 관심밖에 있던 蟾津江文化, 그중에서도 특히 이 일대의 新石器文化에 대하여 그 대체적 성격을 파악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地表調査를 통해서 얻어진 資料가 貧弱한데다가 원래 淺學菲才한 탓으로 所期의 成果를 거둘 수 있을는지 심히 두렵다. 다만 지금껏 考古學的으로 不毛地帶였던 이 지역에 대해 처음으로 學問的인 關心을 쏟았고, 그럼으로써 이를 통해 南海岸의 新石器文化硏究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韓半島 전체의 新石器文化硏究에 있어서 重要한 資料를 새로이 하나 더 添加하게 되리라고 은근히 期待한다.

  

  最近 洛東江支流인 南江 및 黃江의 上流에서 빗살무늬토기의 出土가 보고되고 있어, 南海岸新石器遺蹟의 分布領域이 점차 內陸쪽으로 擴大되어 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旣往의 調査硏究對象이 主로 蔚山 釜山 金海 統營 등지의 海岸과 그 附近의 島嶼에 位置한 貝塚遺蹟(蔚州 新岩里는 包含層 遺蹟)이었으므로 現在까지 알려진 南海岸新石器文化遺蹟의 所在는 대체로 慶南中部以東의 海岸을 벗어나지 못한 實情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半島나 沿海地方에 있어서 漁撈經濟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新石器文化의 轉移는 그들의 生活領域이 水邊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海岸을 따라 傳播되고, 江을 거슬러 內陸으로 進出하여 왔던 것이 一般的 現象이었다. 이러한 文化理解의 基本視覺에서 볼 때 南海中部의 蟾津江下流에 位置한 河東 光陽 一帶에서 新石器遺蹟의 새로운 發見은 우리나라의 南海岸新石器文化뿐만 아니라 韓半島新石器文化 全般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巨視的인 把握과 總體的인 解釋(體系化)의 立場에서 높이 評價될 수 있을 것으로 確信한다.


  本稿는 이같은 時點에서 焦點을 맞추어 지금까지 不分明했던 이 地域 新石器文化의 性格을 糾明하되 특히 그 全般的 文化 立地條件 즉, 당시의 自然環境 및 文化環境을 깊이 있게 分析 檢討하고, 復元하는데 주력하였다. 무릇 文化는 立地條件을 背景으로하여 發達하는 것이므로 배경에 대한 참된 접근은 그만큼 그 文化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때문이다.


  本 遺蹟들을 調査하게 된 經緯는 평소 筆者가 간직한 위에서 말한 觀點에서 慶南西部地域一圓의 遺蹟을 찾고 있을 무렵인 1985년 11월에 河東 牧島里 居住의 孫保泰氏가 牧島里 貝塚에서 採集한 石斧(그림9, 사진6)를 갖고 國民大 博物館으로 筆者를 찾아와 提報함으로써 시작 되었다. 겨울을 지나 다음해인 1986년 3월 20일에 現地調査를 처음으로 實施하였고, 이후 1988년 7월 26일까지 4次에 걸쳐 地表調査를 施行하였다. 第4次調査에서는 牧島里 隣域의 蟾津江下流 및 河口 一帶를 廣域으로 探査한 바 있는데 이때 光陽郡 烏沙里와 河東郡 錢島里에서 牧島里 것과 類似한 貝塚을 더 發見하는 成果를 올렸다.


  그간 遺蹟의 調査에서부터 拙稿를 이룩하는데 그게 聲援하여주신 許善道 館長(國民大)께 깊이 感謝드리고, 아울러 洪榮義, 趙誠泰(國民大博物館助敎), 崔成仁(國民大圖書館助敎)君에게 謝意를 표한다. 또한 遺蹟所在를 提報해 주었을 뿐아니라 조사활동에도 적극 協調하여주신 孫保泰氏 一家에 대해 眞心으로 感謝드리고, 아울러 鄭三得 河東文化院께도 感謝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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